2003년 2월 09일- 출애굽기
출애굽기(XIX)
말씀: 출애굽기 6:6-8
요절: 출애굽기 6:6-8
19. 나는 주라. 내가 하리라
믿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실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내와 연단이 있을 뿐입니다. 시련의 과정을 통해 단련된 순수한 믿음을 통해 주님을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실패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십니다. 파라오의 완악함이나 백성들의 좌절, 이스라엘 관원들의 불평은 모세와 아론을 낙심시켰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실패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출세와 성공의 도구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대개 불순한 육신적인 의도를 지닌 마음의 욕망은 종교적 가식 아래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들어 그들은 열심히 기도함으로서, 성경을 읽음으로써, 자선을 베풀고, 많은 돈을 기부함으로서 성경을 배포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줄 수 있게 함으로써, 실패를 모르는 성공을 위한 든든한 후견인으로 주님을 세워 두려고 합니다.
인기에 집착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여론 조사에서 약간의 인기도가 떨어져도 주님께서 자신을 크게 시험하는 줄 알며, 마치 감옥으로 가는 것처럼 괴로워합니다. 운동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평소보다 약간의 득점력이 떨어져도 주님 앞에 나아와 모세처럼 울부짖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지난 달이나 지난 해에 비해 소득과 매출이 떨어질 때, 연주회 스타는 박수 갈채에 매달려 살며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공공연하게 눈물을 흘리며 출애굽기 5:22-23의 모세와 같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주여 어찌하여...어찌하여...또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전혀 구해 주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출5:22-23 모세의 기도 참조).
때로 성도들은 너무나 황당한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너무나 많은 눈물이 성공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울분으로 하나님 앞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링에서 도전자가 챔피온을 녹아웃시키는데 실패하였을 때, 공공연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최고였던 사람이 두 번째가 되면, 그는 깊은 비탄에 잠기게 됩니다. 승진을 위해 달려 왔던 직장인이 인사 발표 때 누락된 것을 볼 때 눈물을 쏟습니다. 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공이란 신화를 위해 주님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주님 앞에 불평을 쏟아 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대와 기도를 산산조각 부수심으로 그들의 욕망 속에 숨겨진 거짓된 믿음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극심한 시련의 풀무에 성도들을 던지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위대하심, 전능하신 능력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겪는 시련을 통해 불신자들을 놀라게 하십니다. 다니엘의 시련을 통해 다리오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는 시련이었습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여 주기 위해 세 친구들은 용광로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성공으로 우쭐대는 사람과 실패로 낙담하는 사람은 여전히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공함으로 하나님께 더 소중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계획에서 더 가치 있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깨닫게 하신 후에야 참된 열매를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과 6절 참조-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6)>. 주님은 세 번에 걸쳐 한 가지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6-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 곧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자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산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주]라, 하셨다, 하라.](6-8).
첫째,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주라](6-8)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에 걸쳐 주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은 자기 계시입니다.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없습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좌지우지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자란 사실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온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닌 사람이 파라오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파라오의 압제하에서 이 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사실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며 기도하는 것은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주인이시며, 구원자이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고 죄에 빠졌을 때마다 주신 말씀이 바로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I am the LORD란 말은 구약 성경에서만 161회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 기초해서 역사하십니다. 모든 말씀은 이 4단어 위에 얹혀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대언자들은 이 한 가지 사실을 반복적으로 전했습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온 몸으로 이 한 가지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의 마음 속에 변하지 않고 심겨진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저 하늘에 집을 갖게 하기 위해 집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 주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샘을 주시기 위해 목마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벌겨 벗겨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들이시기 위해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묶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가 되시기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 하늘로 들어올리시기 위해 지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위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약의 모든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새겨 두시고자 했던 말씀입니다. 천년 왕국 때에, 영원 세계에서 주의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고 아무도 더 이상 주를 알라고 하지 않을 그 때가 오기까지 설교의 주제는 영원히 이 말씀입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권위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하기 전, 하신 후에 이 말씀으로 인을 치심으로 아무도 그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레위기 19장을 참고할 것. 19:3,4,10,12,16,18,18,25,28,30,32,34,37절,- 규례와 명령을 주신 후 [나는 주니라]는 말씀으로 인을 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바로 주님의 말씀이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로서, 주 너희 하나님으로서 7가지를 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 곧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자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산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주]라, 하셨다, 하라.](6-8).
이 일곱 가지 약속은 주님께서 직접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기에 앞서 두 곳의 본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I will(내가 하리라.)이란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7:6-21참고할 것.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일곱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17:6,7,8,19,21절입니다.
이 약속들은 예레미야 31:33-34절의 주님의 약속과 거의 일치합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일곱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①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②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③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④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⑤ 다시는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이나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요, 또 ⑥ 내가 그들의 불법을 용서하고 ⑦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34).
이제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 보겠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I will(내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00% 주님이 하실 것들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백성들이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첫째, 내가 너희를 건질 것이요.(I will bring you out)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달리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곧 성취될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몇 년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날 일들입니다. 주님을 믿고 경배한 후에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현실 앞에서 그들은 정 반대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들을 기억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쉼을 주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은 죄와 저주의 무거운 짐밑에 있는 우리의 영혼을 건져내사 평안을 주셨습니다. (요14:27, 16:23참조).
둘째, 내가 제거하리라(I will rid you out of...).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이것은 속박에서 건지는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일입니다. 예를들어 노예는 친절한 주인을 만나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노예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고, 휴가를 받고,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노예는 노예이며, 종은 종일 뿐입니다. 주님은 이집트의 무거운 짐 밑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종살이만 아니라면 여전히 이집트에 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세상이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집트에서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안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갈5:1 참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셋째, 내가 너희를 구속하리라(I will fedeem you).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구속이란 말은 값을 주고 사서 풀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구속에는 대가와 능력이 동반됩니다. 주님이 치르신 값은 보혈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편 팔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고, 마귀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구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것 역시 이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위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홍해를 통해 이집트를 심판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 참조. 고전6:20 참조.(주님은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19 참조-(능력의 크심)
넷째,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I will take you to me...)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이 세상에 민족으로서 하나님과 이런 관계를 맺은 백성은 이스라엘이 유일무이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nation)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한 사랑으로 돌보시고 지키시며, 먹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그들을 구속하셨기에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집트의 노예 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우리와 너무나 다릅니다.
저는 미국의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인들 중에 가장 존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체아들, 장애아들을 입양해서 자신의 아들과 딸로 삼는 성도들입니다. 한국의 입양하는 부모들을 보면 이왕이면 좀더 잘 생기고, 좀더 예쁘고, 건강하고, 머리 좋은 아이를 입양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자녀로 손색이 없을만한 아이를 고르려고 하는데 반해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도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킵니다. 우리 주님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을 보십시오. 주님은 가문이나 능력이나 지혜를 보시지 않으시고 죄와 허물 가운데 신음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고 하셨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특별한 백성이 됩니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백성입니다. 그들의 말과 생각과 행동 방식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차이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말이 다릅니다.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생활 방식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과는 전적으로 달라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말투가 달라야 합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삶의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신명기 7:6,14:2참조(거룩한 백성-특별한 백성). 신약- 성도들(특별한 백성-딛2:14, 벧전 2:9참조).
다섯째,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요(I will be to you a God).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이 말은 고아에게 내가 너의 부모가 되어 주마란 말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없는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 주고, 병자에게 의사가 되어 주고, 학생에서 선생이 되어 주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은혜로운 말씀이 바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요’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은 구원자가 되신다. 목자가 되신다. 인도자가 되신다. 원수로부터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되신다.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가 되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관계성을 지니게 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은 주님이 자원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맡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훨씬 더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고린도후서 6:16참조.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섯째, 나는 너희를 인도할 것이요(I will bring you into the land).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 주님은 이집트에서 끄집어내어서(bring you out),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bring you into).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 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파라오가 아닙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여러 민족들이 아닙니다. 아말렉이나 아모리 족속이나 발락의 연합군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모두 위협을 가하긴 했지만 주님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그들 안에 있는 불신, 지도자를 향한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목자로서 양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원수 마귀도 다 물리쳐 주십니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삼각 편대가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일곱째,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I will give it you).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산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주]라, 하셨다, 하라.] 주님의 약속의 완결판입니다. 주님은 남의 땅에서 종노릇하는 그들을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을 유산으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천년 왕국 때 이 약속을 온전히 다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불신과 불순종으로 범죄하여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약속의 땅을 다 누리지 못했습니다.
저희들 역시 동일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성령을 주셔서 상속의 보증으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1:14참조.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기를 원합니다(엡1:18). [너희가 상속의 보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이는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이니라.](골3:24). 구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상속은 선물이 아니라 주님을 섬김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함으로써 얻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말씀을 모세에게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하리라...]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대적함으로 일은 더욱 힘들어질 때, 우리의 육신은 의심과 불안 가운데 불평만이 쏟아질 때, 세상은 우리를 대적함으로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은 말씀을 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하리라...]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눅1:37).
☞ 예레미야 32:17,27 참조할 것.
☞ I AM, I will의 믿음을 가질 것.
☞ 성도들이 세상을 사는 비결-- 믿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나의 하나님.
출애굽기(XIX)
말씀: 출애굽기 6:6-8
요절: 출애굽기 6:6-8
19. 나는 주라. 내가 하리라
믿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실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내와 연단이 있을 뿐입니다. 시련의 과정을 통해 단련된 순수한 믿음을 통해 주님을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실패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실패가 없으십니다. 파라오의 완악함이나 백성들의 좌절, 이스라엘 관원들의 불평은 모세와 아론을 낙심시켰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실패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자신의 출세와 성공의 도구로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대개 불순한 육신적인 의도를 지닌 마음의 욕망은 종교적 가식 아래 숨어 있게 마련입니다. 예를들어 그들은 열심히 기도함으로서, 성경을 읽음으로써, 자선을 베풀고, 많은 돈을 기부함으로서 성경을 배포하고 전도지를 나누어 줄 수 있게 함으로써, 실패를 모르는 성공을 위한 든든한 후견인으로 주님을 세워 두려고 합니다.
인기에 집착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은 여론 조사에서 약간의 인기도가 떨어져도 주님께서 자신을 크게 시험하는 줄 알며, 마치 감옥으로 가는 것처럼 괴로워합니다. 운동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평소보다 약간의 득점력이 떨어져도 주님 앞에 나아와 모세처럼 울부짖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지난 달이나 지난 해에 비해 소득과 매출이 떨어질 때, 연주회 스타는 박수 갈채에 매달려 살며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공공연하게 눈물을 흘리며 출애굽기 5:22-23의 모세와 같이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주여 어찌하여...어찌하여...또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전혀 구해 주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출5:22-23 모세의 기도 참조).
때로 성도들은 너무나 황당한 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너무나 많은 눈물이 성공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울분으로 하나님 앞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링에서 도전자가 챔피온을 녹아웃시키는데 실패하였을 때, 공공연하게 눈물을 흘리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최고였던 사람이 두 번째가 되면, 그는 깊은 비탄에 잠기게 됩니다. 승진을 위해 달려 왔던 직장인이 인사 발표 때 누락된 것을 볼 때 눈물을 쏟습니다. 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공이란 신화를 위해 주님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주님 앞에 불평을 쏟아 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대와 기도를 산산조각 부수심으로 그들의 욕망 속에 숨겨진 거짓된 믿음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극심한 시련의 풀무에 성도들을 던지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위대하심, 전능하신 능력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겪는 시련을 통해 불신자들을 놀라게 하십니다. 다니엘의 시련을 통해 다리오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리오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는 시련이었습니다.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여 주기 위해 세 친구들은 용광로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성공으로 우쭐대는 사람과 실패로 낙담하는 사람은 여전히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공함으로 하나님께 더 소중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계획에서 더 가치 있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깨닫게 하신 후에야 참된 열매를 맛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과 6절 참조-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6)>. 주님은 세 번에 걸쳐 한 가지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6-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 곧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자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산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주]라, 하셨다, 하라.](6-8).
첫째,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나는 주라](6-8)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에 걸쳐 주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은 자기 계시입니다. 위험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없습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좌지우지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자란 사실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온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닌 사람이 파라오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파라오의 압제하에서 이 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사실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며 기도하는 것은 온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주인이시며, 구원자이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고 죄에 빠졌을 때마다 주신 말씀이 바로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I am the LORD란 말은 구약 성경에서만 161회나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 기초해서 역사하십니다. 모든 말씀은 이 4단어 위에 얹혀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대언자들은 이 한 가지 사실을 반복적으로 전했습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온 몸으로 이 한 가지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의 마음 속에 변하지 않고 심겨진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지 않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저 하늘에 집을 갖게 하기 위해 집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배부르게 하기 위해 주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샘을 주시기 위해 목마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해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벌겨 벗겨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들이시기 위해 버림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묶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의가 되시기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 하늘로 들어올리시기 위해 지옥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위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백하는 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약의 모든 대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새겨 두시고자 했던 말씀입니다. 천년 왕국 때에, 영원 세계에서 주의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하고 아무도 더 이상 주를 알라고 하지 않을 그 때가 오기까지 설교의 주제는 영원히 이 말씀입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이 말은 권위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하기 전, 하신 후에 이 말씀으로 인을 치심으로 아무도 그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레위기 19장을 참고할 것. 19:3,4,10,12,16,18,18,25,28,30,32,34,37절,- 규례와 명령을 주신 후 [나는 주니라]는 말씀으로 인을 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지키고 행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바로 주님의 말씀이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로서, 주 너희 하나님으로서 7가지를 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너희 하나님 곧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자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산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주]라, 하셨다, 하라.](6-8).
이 일곱 가지 약속은 주님께서 직접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기에 앞서 두 곳의 본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I will(내가 하리라.)이란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7:6-21참고할 것.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일곱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17:6,7,8,19,21절입니다.
이 약속들은 예레미야 31:33-34절의 주님의 약속과 거의 일치합니다. 여기서도 주님은 일곱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그 날들 이후에 ①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 /중심/부에 두고 ②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하여 ③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④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주]가 말하노라. ⑤ 다시는 그들이 각각 자기 이웃이나 자기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너는/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요, 또 ⑥ 내가 그들의 불법을 용서하고 ⑦ 다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임이라. [주]가 말하노라.](렘31:33-34).
이제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 보겠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I will(내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00% 주님이 하실 것들입니다. 모세와 아론과 백성들이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첫째, 내가 너희를 건질 것이요.(I will bring you out)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주]라.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달리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곧 성취될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몇 년 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날 일들입니다. 주님을 믿고 경배한 후에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현실 앞에서 그들은 정 반대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이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들을 기억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쉼을 주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은 죄와 저주의 무거운 짐밑에 있는 우리의 영혼을 건져내사 평안을 주셨습니다. (요14:27, 16:23참조).
둘째, 내가 제거하리라(I will rid you out of...). [그들의 속박에서 너희를 자유롭게 하고] 이것은 속박에서 건지는 것보다 한 단계 위의 일입니다. 예를들어 노예는 친절한 주인을 만나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노예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고, 휴가를 받고,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노예는 노예이며, 종은 종일 뿐입니다. 주님은 이집트의 무거운 짐 밑에서 건져내실 뿐만 아니라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종살이만 아니라면 여전히 이집트에 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세상이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집트에서 평안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통과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안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갈5:1 참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셋째, 내가 너희를 구속하리라(I will fedeem you). [또 편 팔과 큰 심판들로 너희를 구속(救贖)하며] 구속이란 말은 값을 주고 사서 풀어 준다는 의미입니다. 구속에는 대가와 능력이 동반됩니다. 주님이 치르신 값은 보혈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편 팔과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고, 마귀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구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것 역시 이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위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고, 홍해를 통해 이집트를 심판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 참조. 고전6:20 참조.(주님은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19 참조-(능력의 크심)
넷째,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I will take you to me...) [너희를 취하여 내게 한 백성으로 삼고] 이 세상에 민족으로서 하나님과 이런 관계를 맺은 백성은 이스라엘이 유일무이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nation)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한 사랑으로 돌보시고 지키시며, 먹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고, 그들을 구속하셨기에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집트의 노예 민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은 우리와 너무나 다릅니다.
저는 미국의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인들 중에 가장 존경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체아들, 장애아들을 입양해서 자신의 아들과 딸로 삼는 성도들입니다. 한국의 입양하는 부모들을 보면 이왕이면 좀더 잘 생기고, 좀더 예쁘고, 건강하고, 머리 좋은 아이를 입양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자녀로 손색이 없을만한 아이를 고르려고 하는데 반해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도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고, 교육을 시킵니다. 우리 주님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을 보십시오. 주님은 가문이나 능력이나 지혜를 보시지 않으시고 죄와 허물 가운데 신음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으리라’고 하셨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특별한 백성이 됩니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백성입니다. 그들의 말과 생각과 행동 방식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의 차이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말이 다릅니다.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생활 방식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들과는 전적으로 달라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말투가 달라야 합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삶의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신명기 7:6,14:2참조(거룩한 백성-특별한 백성). 신약- 성도들(특별한 백성-딛2:14, 벧전 2:9참조).
다섯째,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요(I will be to you a God). [나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리니] 이 말은 고아에게 내가 너의 부모가 되어 주마란 말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없는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 주고, 병자에게 의사가 되어 주고, 학생에서 선생이 되어 주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은혜로운 말씀이 바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될 것이요’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은 구원자가 되신다. 목자가 되신다. 인도자가 되신다. 원수로부터 보호해 주는 보호자가 되신다. 필요를 채우시는 공급자가 되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관계성을 지니게 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은 주님이 자원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맡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훨씬 더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고린도후서 6:16참조.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섯째, 나는 너희를 인도할 것이요(I will bring you into the land).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 주님은 이집트에서 끄집어내어서(bring you out),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bring you into).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 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파라오가 아닙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여러 민족들이 아닙니다. 아말렉이나 아모리 족속이나 발락의 연합군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모두 위협을 가하긴 했지만 주님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그들 안에 있는 불신, 지도자를 향한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목자로서 양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원수 마귀도 다 물리쳐 주십니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삼각 편대가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일곱째,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I will give it you).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산으로 삼게 하리라. 나는 [주]라, 하셨다, 하라.] 주님의 약속의 완결판입니다. 주님은 남의 땅에서 종노릇하는 그들을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을 유산으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천년 왕국 때 이 약속을 온전히 다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불신과 불순종으로 범죄하여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약속의 땅을 다 누리지 못했습니다.
저희들 역시 동일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성령을 주셔서 상속의 보증으로 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1:14참조.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기를 원합니다(엡1:18). [너희가 상속의 보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이는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기 때문이니라.](골3:24). 구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상속은 선물이 아니라 주님을 섬김으로써 얻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함으로써 얻습니다.
주님은 이 모든 말씀을 모세에게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요약하면 두 가지입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하리라...]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대적함으로 일은 더욱 힘들어질 때, 우리의 육신은 의심과 불안 가운데 불평만이 쏟아질 때, 세상은 우리를 대적함으로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은 말씀을 주심으로 해결하셨습니다. [나는 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하리라...]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눅1:37).
☞ 예레미야 32:17,27 참조할 것.
☞ I AM, I will의 믿음을 가질 것.
☞ 성도들이 세상을 사는 비결-- 믿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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