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27일- 출애굽기
출애굽기(XXX)
말씀: 출애굽기 11:1-2
요절: 출애굽기 11:1,2
30. 금은 보석을 빌리게 하라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파라오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이 이집트를 강타했지만 아직도 파라오는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있습니다. 경고위에 경고가 더 해지고, 재앙 위에 재앙이 더 해졌지만 파라오는 더욱더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이는 마지막 날 대환란 때 짐승의 표를 받은 인간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대적하며 보여 줄 모습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 가지 재앙이 더 집행되면 파라오는 백성들을 내 보낼 것입니다. 그냥 내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쫓아 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빛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그들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파라오와 이집트 위에 더 내린 뒤에야 비로소 그가 너희를 여기에서 가게 하리라. 그가 너희를 가게 할 때에는 반드시 여기에서 다 쫓아내리니](1).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항상 말씀을 주셨고, 파라오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 결과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거기에는 단 한 차례의 오차도 없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앞을 미리 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잘 보여 주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귀는 결코 이런 능력이 없습니다. 마귀는 욥을 시험할 때 연달아 두 번이나 욥에 대해 예언했지만 틀리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에게 욥을 치시면 욥이 ‘주의 얼굴 앞에서 주를 저주하리이다’(욥1:11)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다시 한번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미사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면 그가 주의 얼굴 앞에서 주를 저주하리이다”(욥2:5)라고 말했지만 욥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파라오의 행동을 열 번이나 한번도 빠짐없이 정확히 예측하고 맞추었습니다. 반면 마귀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순전한 한 사람의 믿음에 대해 한 번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고 미리 말씀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예언의 능력, 미래의 역사를 현재처럼 보시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더라.](출7:13, 22, 8:15,19, 9:12,35)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 이집트의 속박아래 있던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이적을 보고 놀라는 일 뿐만 아니라 바로 이점을 배워야 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더라.” 우리 역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더라.” 우리는 먼 훗날 주님 앞에서 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며 성취하시는 분이란 사실에 눈을 떠야 합니다.
다시 1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파라오와 이집트 위에 더 내린 뒤에야 비로소 그가 너희를 여기에서 가게 하리라. 그가 너희를 가게 할 때에는 반드시 여기에서 다 쫓아내리니](1). 모세와 아론은 지금까지 모든 일이 주님의 말씀하신 것과 같았음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번 역시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일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 그들의 마음에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파라오와 이집트의 신하들은 마음에 어떤 계획이 있었지만 그들의 계획이 서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을 향한 마귀의 계획이 많이 있지만 그것이 서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걸을 때 교회를 향한 마귀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은 다 섭니다.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만이 서리라.](잠19:21). 주께서 계획하시고 손을 펼치시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만군의 [주]께서 계획하셨은즉 누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으며 /그분께서/ 자신의 손을 펼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14:27). 주님께서 파라오와 이집트를 향해 계획하시고 행한 일은 누구도 취소시키거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5:2에서 파라오는 [... [주]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음성에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가게 하겠느냐? 나는 [주]를 알지 못하며 이스라엘도 가게 하지 아니하리라..](출5:2)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그의 입술에서 주를 찬양할 수 있도록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파라오는 모세와 아론을 통해 얼마든지 회심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재앙을 통해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런 예는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4:35-37절을 보십시오. [/그분께서는/ 땅의 모든 거주민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 안에서든지 땅의 거주민들 가운데서든지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분의 손을 멈추게 하거나 그분께 이르기를, 당신은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이제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공경하노니 그분께서 행하시는 일들은 /다/ 진실하고 그분의 길들은 /다/ 공의로우시니 교만한 중에 걷는 자들을 그분께서 능히 낮추시느니라.](단4:35,37). 느부갓네살은 7년이란 세월동안 제국의 왕에서 짐승처럼 들에서 살고 난 후에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파라오는 이런 교훈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에 한 가지 재앙을 더 내리실 것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집트의 모든 첫 태생을 죽이는 장자 재앙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에서 장자(첫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요 모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전쟁이나 재앙이 닥쳤을 때 한 집안에 한 명을 살려야 한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장자를 살리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것은 이집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장자를 힘의 으뜸이라고 말합니다. [이집트에서 처음 난 모든 것 곧 함의 장막들에 있는바 그들의 힘의 으뜸인 것을 치셨도다.](시78:51,105:37).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무시했을 때 임한 재앙은 너무나 컸습니다.
다시 1절을 보십시오. [그가 너희를 가게 할 때에는 반드시 여기에서 다 쫓아내리니](1).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버려야 했고, 세상은 그들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세상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제 백성의 귀에 고하여 모든 남녀로 하여금 각각 자기 이웃에게 금은 보석을 빌리게 하라, 하시니라.](2). 주님은 이제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를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그들에게 여비를 장만하도록 하셨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오랫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이집트를 떠나면서 그 나라 백성들에게 ‘금은 보석을 빌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공격하고 불신하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오랫동안 오역의 대표적 사례라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빌린다는 말은 언젠가 갚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후에 이집트에서 빌려간 금은 보석을 다 갚아야 했습니다(신26:68, 렘44:26, 호12:1, 대하12:9). 이 때 빌린 금은 보석은 후에 이들이 금송아지를 만들 때 사용되기도 하고, 성막을 지을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빌린 재물은 그들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셨던 내용입니다. 창세기 15:14, [또한 내가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심판하리니 그 뒤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창15:14). 이 내용을 보았을 때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인들에게 빌린 돈이 결코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400년 종살이에 대한 보상으로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겠지만 상당히 큰 액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집트 사람들의 눈앞에서 은총을 베풀어 주셔서 재물을 취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종살이를 했던 인생들에게 충분히 보상해 주십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삼촌 라반 밑에서 약 20년간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올 때는 빈손이 아니었습니다. 라반의 뜻과는 달리 하나님은 거부(巨富)가 되어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히브리 백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3:21-22,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눈앞에서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리니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할 것이요, 모든 여인이 자기 이웃 사람과 자기 집에 거하는 여인에게 금 보석과 은 보석과 의복을 빌려서 너희 아들들과 딸들에게 입힐지니 너희가 이집트 사람들을 노략할 것이니라.](출3:21-22). 빌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을 노략했습니다. 장자 재앙으로 인해 받은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금과 은, 의복을 다 빌려주었습니다(출12:35-36).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또 그분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금과 은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들의 지파들 가운데 허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시105:37)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빌리라’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이집트인들이 빌려주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특별한 계약서도 없이, 담보도 없이, 이자율도 정하지 않고 요구하는 대로 빌려주었습니다(12:35-36). 히브리인들은 떠나면서 이집트를 노략했습니다. 이런 채무 관계는 좀 특이한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노략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한 나라에게 행하는 행위입니다. 이긴 나라는 전쟁 배상액을 전부 부담시키고, 그 배상액에 해당하는 돈이나 천연 자원, 사람을 잡아가는데 이것을 노략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가지 재앙을 더 내리심으로 이집트인들은 나라가 망하는 줄로 알았고, 온 백성이 다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12:33).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은 피해가 오기 전에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내 보내려 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승리입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재산을 노략하겠느냐? 그 강한 자를 결박한 뒤에야 그의 집을 노략하리라.](마12:29). 히브리인들은 힘들이지 않고 이집트인들의 금은 보석과 의복들을 빌렸고, 노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후에 신약의 구속적 모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육신의 종이요, 마귀의 노예였습니다. 율법의 종이요, 세상의 종이었습니다. 30세에 구원을 받았다면 30년동안 죄의 종노릇 한 것이며, 마귀의 수하로 있었던 것입니다. 60세에 구원을 받았다면 60년을 죄의 종이요, 육신의 종노릇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면서 세상을 노략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금은, 보석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자녀들을 노략합니다.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2:15).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의 혼만 주님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소유 모두가 주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산은 더 이상 마귀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써 마귀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고 그들을 혼을 이겨올 때 그들의 모든 소유 역시 주님의 것이 됩니다. 이것은 종살이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신명기 15:12-15절을 보십시오. [네 형제 곧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려서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그를 놓아주어 너를 떠나 자유롭게 가게 할 것이요, 그를 보내어 너를 떠나 자유롭게 할 때에는 빈손으로 가게 하지 말고 네 양떼에서와 타작마당에서와 포도즙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너는 이집트 땅에서 노예 되었던 것과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구속(救贖)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내가 이 날 이것을 네게 명령하노라.](신15:12-15). 본래 종은 칠 년만에 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풀어 줄 때 빈손으로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인은 후히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집트의 파라오는 보내줄 마음도 없었거니와 행여 보낸다고 해도 그들의 양떼와 소 떼는 남겨 두고 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이집트인들의 재물을 빼앗거나 강탈할 수는 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속히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필요를 주어서 이집트에서 내 보내려 했기 때문에 이 일은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빌리게 하셨고, 노략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다시 돌려 주려고 하시면 돌려주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하나님은 빌려온 것들, 노략한 것들을 다시 이집트에 돌려주게 하실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노략하게 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금, 은, 보석을 모두 약탈당했는데, 이는 그 때 빌려온 것들을 주님께서 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금, 은, 보석을 빌리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물질적인 것을 빌리지만 영적인 것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세상의 것들을 빌려씁니다. 대신 영적인 것들로 갚습니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의 물질을 빌리지만 영적인 것으로 갚습니다. 원래 순례자의 길은 금과 은이 필요없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이집트의 금과 은이 왜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에게 금은 보석을 빌리게 하신 것입니까? 이 구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백성은 금과 은이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금과 은이 없었지만 무엇인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3:6). 하나님의 사람, 특히 전도자들은 이런 것들을 탐내서는 안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의 사역자로서 일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의 금이나 은이나 옷을 탐내지 아니하였고](행20:33)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면서 이집트인들의 재물에 손을 대거나 약탈을 하거나 훔치거나 달라고 요구하거나 위협한다면 성경은 마르크스의 무산계급 혁명을 지지하는 책으로 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인들에게 금, 은을 빌리라고 했지 결코 요구하거나 빼앗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금과 은이 있다면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는 가난한 것보다 부자들에게 임할 재앙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금과 은은 부식되었으니 이 녹이 너희를 대적하여 증거하며 불과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마지막 날들을 위하여 재물을 모아 쌓았도다.](약5:3). 주님은 제자들을 이스라엘의 각 마을로 보내시면서 지갑 속에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돈주머니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준비하지 말고](마10:9). 금과 은은 세상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받는 것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대속(代贖)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벧전1:18).
주님은 모세를 통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준비하게 하시면서 왜 이집트인들의 재물을 빌리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가 만약 이 말씀에 따라 세상 사람들에게 돈을 빌린다면 그것은 성경적인 원칙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 22:7, [부한 자는 가난한 자를 다스리고 빌리는 자는 빌려 주는 자의 종이 되느니라.](잠22:7)고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롬13:8)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의 채무에 대해서 좀 살펴보겠습니다. 이곳 미국 생활은 삶 자체가 빚에 눌려 있습니다. 차를 사고, 집을 사고,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는 것도 온통 은행 대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버는 만큼 살고, 번만큼 쓰는 생활이 아니라 사는 만큼 갚아야 하고, 쓰고 싶은 만큼 빌려서 버는대로 갚아 나가는 제도입니다. 저는 이 사회의 제도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는 제도라면 우리는 건전한 채무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채무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가능한 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내게 돈을 빌려 주거나 무엇을 빌려 줄 때 형제 사랑에 바탕으로 한, 받기를 포기한 그런 빚이라면 받아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 빌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정말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통해서 은혜의 선물로 주는 것이라면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내게 필요를 구할 때 빌려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더욱 비성경적입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등을 돌리지 말라.](마5:42)고 했기 때문입니다.
① 우리가 빌려 줄 때는 돌려 받기를 포기해야 하며, 심지어 아무 것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찬들의 채무 관계의 기본입니다. [너희가 만일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려 주면 무슨 감사의 /말을/ 듣겠느냐? 죄인들도 준 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들에게 빌려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 또 너희가 가장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되리니 이는 그분께서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 인자하시기 때문이니라.](눅6:34-35).
② 우리가 빌려 줄 때에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네가 만일 네 곁에 있는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 주거든 너는 그에게 빚쟁이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지니라.](출22:25). 저는 어떤 성경대로 믿는 교회라고 자랑하던 교회가 개척 교회를 자발적으로 1,500만원을 빌려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돈을 받기 위해 법원에 재판을 걸었고, 이자들을 청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성경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제 멋대로 믿는 것입니다.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주지 말고 이득을 얻으려고 네 양식을 빌려 주지 말지니라.](레25:37). 이 두 가지 원칙만 지켜진다면 성도들은 돈 문제로 인해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③ 우리는 자신의 몸을 주께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주]께 빌려 드리되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주]께 빌려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주]께 경배하니라.](삼상1:28). 한나는 서원 기도를 통해 주님께 사내 아이를 얻었는데 아이를 낳자 마자 곧 바로 서원한 대로 주께 드렸습니다. 드리면서 ‘[주]께 빌려 드리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이었던 엘리 역시 사무엘을 맡으면서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삼상2:20). 주님은 우리의 헌신을 받으실 때 전적인 소유권이 있지만 빌리시는 것처럼 생각하십니다. 우리는 몸을 빌려 드리고, 주님은 영적인 것으로 갚으십니다.
④ 우리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김으로 주께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께서 그가 베푼 것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우리는 선을 베풀고 빌려 줄 때 채무 관계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려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받지 못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⑤ 우리는 빚진 자였는데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의 삯을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러므로 우리 역시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하는 것같이 우리의 빚을 용서하옵시며](마6:12).
⑥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리스인이나 바바리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지혜 없는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빚진 자는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바바리인이나 지혜있는 자나 없는 자에게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빚을 다 갚아야 할 사람이 빚을 다 갚기 전에는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 마음의 평안이나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진 빚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채무는 꼭 해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⑦ 우리는 유대인들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참으로 그 일로 인하여 그들이 기뻐하였거니와 또한 그들은 저들에게 빚진 자들이니 이는 만일 이방인들이 저들의 영적인 것에 참여하였거든 육신의 것으로 저들을 섬기는 것도 그들의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이라.](롬15:27). 우리는 많은 면에서 유대인들에게 영적인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은 유대인들을 박해했지만 많은 면에서 그들의 빚을 진 채 살아갑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면 유대인들은 문자적으로, 육신적으로 세상의 빛이며, 소금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을 잘 대해 주어야 합니다. 온 세상은 유대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의 정신적, 물질적 자산을 많이 남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세상에 복을 주십니다.
⑧ 잘못된 채무 관계는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니니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롬8:12). 최악의 악성 채무 관계는 사기 채무입니다. 갚지 않아도 될 돈을 평생토록 갚도록 짐이 부과되어 고생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빚진 자들이지만 육신에게 진 빚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소욕대로 살 필요도, 순종할 필요도 없습니다. 죄는 기회를 타서 육신을 통해 우리를 속입니다. 마귀는 육신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육신의 소욕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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