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사람은 누구나 죄의 본성을 타고 태어나며 사람은 누구나 죄의 본성을 타고 태어나며, 다 부정한 물건 같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우리는 다 부정한 물건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누더기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불법들이 우리를 바람같이 몰아가나이다.](사64:6). ‘부정’(不淨)이란 깨끗함의 반대말이요, 거룩함의 상대어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정결한 것을 부정한 것 가운데서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욥14:4). 우리는 부정한 물건 같고, 저주받은 물건처럼 그런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거룩함을 추구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고, 거룩함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거룩은 단순히 무한하게 개선된 상태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본질, 본성의 변화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룩함에 대한 영적, 성경적 개념이 없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경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속성이 있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 속에, 마음의 본성 깊은 곳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습니다(롬1:19). 뿐만 아니라 우주와 자연 세계를 보면서 일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인격과 신성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마련입니다(롬1:20). 바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하여 증거를 남겨 두지 아니하신 것은 아니니 곧 선한 일을 행하시고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주시며 결실의 계절을 주사 음식과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 주셨느니라, 하고.](행14:16). 이는 자연 계시를 말한 것입니다. 하늘의 비, 결실의 계절 가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알리기 위하여 남겨 두신 증거입니다. 그래서 어느 민족이나 농부들은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고, 마음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성경과 성령의 특별한 조명이 없이도 죄인들이 희미하게 아는 하나님의 인격은 ‘거룩함’입니다. 죄의 본성을 타고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천적으로, 본능적으로 알고 두려워합니다.

죄인들이 본성으로 어렴풋이 하나님을 알 듯이, 본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이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며,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있고, 그 형벌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거룩이란 단어가 얼마나 많이 쓰였던지 거룩한 책이라 불립니다. 주님이 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실 때 가장 많이 언급하신 말씀은 단연 ‘거룩’입니다. 성경에 거룩(holy)이란 말은 544구절에 걸쳐 611번 언급되며, 거룩하심(Holiness)이란 말은 43번이나 나옵니다. 주님은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레위기는 주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성도가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한 책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어떻게 거룩해졌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며,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며, 성경은 거룩한 말씀이며, 성전은 거룩한 전이며, 이스라엘은 주의 거룩한 백성이며, 성도는 주님의 거룩한 부름을 받은 자들이며, 하늘은 주의 거룩한 처소입니다. 반면 마귀는 부정한 영이며, 더러운 영입니다. 주님은 백성들에게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차이를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또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를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겔44:23). 차이를 두는 것, 구별을 두는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무엇이든지 통합하려고 합니다. 일치와 하나됨을 지고 지상의 선이요, 절대 가치인 것처럼 가르치고 추구합니다. 인종 통합, 종교 통합, 경제 통합, 정치 통합은 물론이고 인종의 경계, 남녀의 경계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거룩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분별할 줄 모르는 것은 그들이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를 두지 않으면 부정한 것이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부정해 지고, 구별을 하지 않으면 둘 다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더럽혀 집니다. [그녀의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고 내 거룩한 것들을 더럽히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차이를 전혀 보이지 아니하며 자기 눈을 가려 내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혀졌느니라.](겔22:26).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독특성입니다. 다른 누구와 비슷한 성품이거나 공유된 성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비교의 대상이 없는 하나님의 유일한 성품입니다.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누구와 동등하다 하겠느냐? 하시니라.](사40:25).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불법을 흩으십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실 수 없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차마 악을 보지 못하시며 또 차마 불법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속이는 자들을 바라만 보시고 사악한 자가 자기보다 더 의로운 자를 삼키는데도 주의 혀를 억제하시나이까?](합1:13). [심판의 왕좌에 앉은 왕은 자기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잠20:8). 거룩함은 죄를 용납하지 않고, 악을 차마 보지 못하며, 불법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서 결벽증이 있는 사람은 집안의 작은 먼지도 용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주 청소를 하고, 소독을 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성이 더러운 것과 무질서한 것들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는 모아서 버리거나 태워 버립니다. 옷은 빨고, 약품을 뿌리고, 태양에 말립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와 부정, 불법들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못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주님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현 세상을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시고 불로 다 태워 버리십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듯이, 자기 백성들을 징계하셔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징계와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함의 표현이요, 표출입니다. [진실로 그들은 잠시 자기들이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그분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시나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히12:10). 징계의 목적은 우리의 더럽고 추한 것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에 적합하지 않는 것들을 없애고, 깨끗하게 하여 주님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으신 이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 속에서 영화로우시며 찬양할 만큼 두려우시며 이적들을 행하시는 이가 누구니이까?](출15:11). 주님은 거룩함 속에서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신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영화롭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마음속으로 깊이 깨닫고, 그 거룩함에 이르도록 나아가는 자들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道)를 수행하는 수도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금욕과 종교적 가르침을 따라 누가 마음속으로 정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거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조명과 계시를 통해 안 하나님의 거룩함만이 우리의 삶에 참다운 생명이요, 능력이요, 자유입니다. 말씀의 조명이 없을 때 사람은 촉각 없는 곤충처럼 날갯짓하지만 제 자리를 맴돌다 지쳐 버립니다. 주의 거룩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바른 인식은 오직 말씀을 믿음으로, 성령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 안에 비추어 집니다. 계시가 없으면 암흑과 무지와 혼동과 무성한 교리만이 존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신 각종 대체물들이 등장합니다. 영으로 하나님을 안 성도들만이 주님의 거룩하심을 심중으로 찬양하며, 찬양할 만큼 두려우신 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의 한 위대한 대언자였던 이사야는 하늘 보좌에 앉은 홀로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사야 6:1-3을 보십시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그 위에는 스랍들이 서 있는데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졌더라. 그가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며 /그들이/ 서로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사6:1-3). 하늘의 스랍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서로 크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찬양이며, 경배입니다. 이 때 이사야는 충격과 공포로 자기 붕괴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자각한 성도는 누구나 자신의 부패함, 죄악성, 더러움으로 인해 고통하며, 쓰러지며, 압도당합니다. 이사야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화로다, 나여!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므로 망하게 되었음이니 곧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으로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음이라, 하였더라.](사6:5). 이사야는 영적으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격렬한 자기 붕괴로 인해 몸부림쳤으며,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습니다. 진정한 자아 발견과 참다운 자아 성찰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떠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는데서 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인 동시에 하나님의 칭호(이름)입니다.

어떤 성도라 할지라도 성경의 조명 아래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이는 진정한 거룩함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처럼 우리가 자신을 보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거룩한 삶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적당히 교회 다니고, 적당히 종교적이고, 적당히 영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더러운 죄성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더러움과 부정함 속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 진 결과, 자신의 더러움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화로우심을 보게 하시고 이사야처럼(화로다, 나여!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므로 망하게 되었음이니), 욥처럼(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몹시 싫어하고/혐오하고 티끌과 재 속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6) 자신이 붕괴되는 처절한 눈물과 회개가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대언자 하박국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모든 죄인들이 하나님을 “나의 거룩한 이여”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오 [주] 내 하나님이여, 나의 거룩한 이여, 주께서는 영원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합1:12a).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며, 동시에 “나의 거룩한 이”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기 위해서 어떤 표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표준에 도달하거나 기준을 정해 두시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 자체가 거룩함의 표준이요, 거룩함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본질적 방식입니다. “나의 거룩하신 이”는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고, 부패함을 척결하시고, 정화하시고, 태워 버리시는 것 역시 거룩함의 발로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하나님께 속한 것은 무엇이나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것 역시 거룩의 보전성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으로 인해 우리 역시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내가 [주] 너희 하나님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서 기는 것 즉 기어다니는 그 어떤 것으로 인하여 너희 자신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이는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주]이기 때문이라. 내가 거룩하니 그런즉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4-4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해 질 수 있습니까? 종교 행위나 인간의 땀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해 집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율법의 요구에 따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11:45)는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히13:12). 주님의 고난 당하심은 자신의 피로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며, 속된 것을 거룩하게 하는 화학 작용을 합니다. 이것이 피의 능력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거룩해 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롬6:22). 복음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이시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자는 모두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은 것입니다. [이는 첫째 열매가 거룩한즉 덩어리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들도 거룩하기 때문이니라.](롬11:16). 복음을 믿음으로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도 없고,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 열매도 없습니다.

새 사람을 입음으로 거룩해 집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었도다.](엡4:24). 옛 사람은 아담 안에서 물려받은 성품, 육신을 말합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욕을 일으키고, 성령을 거슬러 싸웁니다. 반면 거듭난 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으로 자라나게 합니다.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새 생명을 받았기에 새 사람이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갈6:15).

하나님의 약속들로 인해 거룩해집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 약속들을 가졌은즉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7:1).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거룩한 말씀이요, 거룩한 언약입니다(눅1:72). 하나님의 귀한 약속들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본성에 참여하게 되고(벧후1:3-4), 거룩함을 완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성도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사는 것보다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히 구별합니다. 사람들은 능력을 기준으로 구별합니다. 재산을 기준으로 구별하고, 외모를 기준으로 구별하고, 학력을 기준으로 구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아버지의 진리로 거룩히 구별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 때문에 우리는 거룩해 집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3:13). 주님이 오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함에 흠이 없게 되어 설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후에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완수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빌1:6).

징계를 통해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진실로 그들은 잠시 자기들이 기뻐하는 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그분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시나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히12:10).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같은 믿음의 시련은 마음 속에 있는 모든 불순물들을 태우고, 정결하게 합니다. 주님은 농부로서 전지 가위를 드시고, 열매맺지 못하는 모든 가지들을 잘라 내 버립니다. 이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징계는 의의 화평한 열매를 맺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거룩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해 집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聖別)과 구속(救贖)이 되셨으니](고전1:30). 주님의 나의 성별(sanctification)이 되시면 우리는 완전한 거룩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르셨듯이, 교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성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고전1:2). 주님이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정함에 이르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요, 거룩함에 이르도록 부르셨음이니](살전4:7)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의 구속자(救贖者)로 말하건대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시니라.](사47:4).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이 규칙에 따라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6:16).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하신 이”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면 우리는 온갖 악을 내어버리고,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며, 주님과의 친교를 통해 점점 더 성화되어 가야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구했지만 막상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바위틈에 자신을 숨겼듯이,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 아래 우리 자신을 숨겨야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주여, 오직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22:3).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물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히13:15). 주님은 매사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함께 계시지만(마18:20)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경배의 근거가 됩니다.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발받침 앞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5). 경배하는 이유는 주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거룩한 산에서 경배할지니 이는 [주] 우리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로다.](시99:9). 경배의 이유는 주님의 거룩하심입니다. 그래서 스랍들은 거룩, 거룩, 거룩을 외쳤습니다. 요한계시록 4:8에 여섯 날개를 가진 짐승들은 보좌 둘레에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외칩니다. 주의 거룩하심을 안다면 경배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모두 거룩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의 손길을 감사함으로 받아 들이는 근거가 됩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모든 길에서 의로우시며 자신의 모든 일에서 거룩하시도다.](시145:17). 주님이 행하신 일들에는 굽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의 길은 완전(완벽·perfect)합니다. [그분은 반석이시요 그분의 일은 완전하니 이는 그분의 길이 다 공의롭기 때문이라. 그분은 진실하고 불법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의로우시고 진실하시도다.](신32:4).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들기도 합니다. “어찌하여...”라며 불평을 토로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행하신 일 가운데 거룩하지 않는 것이 없고, 진실하지 않는 것이 없고, 불법이 없고, 완전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일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해로움, 더러움이 없으시며 죄인들과 분리되십니다. [이는 이러한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셨기 때문이니 그분은 곧 거룩하시고 해(害)가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신 분이시라.](히7:26).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선을 위해 필요를 공급하시지 우리를 해(害)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징계와 심판도 사랑에서 나온 것이요,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성도는 분리의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세상과 혼합, 혼잡, 일치를 촉구하지 않으십니다. 거룩의 기본적 의미는 분리, 떼어놓다(set apart)입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은 주를 두려워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근거가 됩니다.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심판들이 드러났사오매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계15:4). 주의 거룩하심을 알 때 우리는 주를 두려워하게 되고,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거룩하심을 접하면 접할수록 성도는 더욱 주를 두려워하게 되며, 주의 이름을 드 높이고, 영광을 돌립니다. 이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이것이 경배의 이유요, 주를 두려워 하는 이유요, 영광을 돌리는 이유요, 주님의 섭리와 인도를 믿는 이유요, 찬양의 이유이며, 그분의 길들을 신뢰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묻기를 왜 당신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까? 라고 하면 대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입니다. 왜 여러분은 매사에 불평이나 불만이 없습니까?라고 물으면 그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신에 찬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왜 주님을 찬양합니까? 물론 많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가 그 이유입니다. 왜 여러분은 주님은 경배합니까? “이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기 때문이니이다.” 이것이 이유이며, 대답입니다. 다른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고, 십계명을 주실 때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이유를 딱 한 가지만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여러 가지 많은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이유와 목적을 찾으면 많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법규를 지켜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이것입니다.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그 안에서 걸으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레18:4).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 너희는 내 법규 안에서 걸으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고](겔20:19). 참조/레18:30, 19:3,4,10,25,31,34,36.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주실 때마다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가 이유의 전부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LORD)시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의 많은 계시의 진리는 주님이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설명을 듣고 이해를 한 후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해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 역시 이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참된 지식이 마음 안에 자리 잡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경을 어렵게 생각하고, 신학을 결론이 없는 철학과 사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바로 믿음의 자리에 이성(理性)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성도의 삶은 어리석은 자의 삶이며, 배교자의 삶이며, 우상 숭배자의 삶과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저희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바울이 기도한 대로 우리도 기도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17). 하나님의 영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알 수 있고, 저희들에게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이는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기 때문이라.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0~11).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우리 역시 간절히 주님을 알기를 간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따를지니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인격적 속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안다면 동일한 거룩함에 참여한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뜻이 거룩함이요, 우리는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확신과 우리가 거룩하게 될 수 있는 방법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거룩하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음행을 멀리하고](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여, 거룩히 구별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Know thy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능하신 하나님  (0) 2005.04.14
삼위일체의 하나님  (1) 2005.04.14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0) 2005.04.14
[하나님을 알라] 영광스러운 하나님  (1) 2005.04.14
신실하신 하나님  (0) 200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