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조명없이, 성경의 증거없이 하나님을 연구한다면 그는 또 하나의 우상을 정립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의하고 개념짓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개념은 잘못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욥의 친구 소발은 욥에게 말하기를, [네가 조사한다고 하나님을 찾아낼 수 있겠느냐? 네가 전능자를 완전히 찾아낼 수 있겠느냐? 그 일은 하늘 만큼이나 높으니 네가 무엇을 하겠느냐? 또 지옥보다도 깊으니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 그 한계가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으니라.](욥11:7~9)고 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옳은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을 자신이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어떤 존재로 탈바꿈시켜서 전혀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않을 때 우리의 신앙은 무신론자나 우상 숭배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말슴대로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빕니다. 오늘은 [영광의 하나님](시29:3, 행7:2), [영화로우신 하나님]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께 영광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거의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을 막연한 추상 명사로 마음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주님은 창조의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곧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자라. 이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음이라.](사43:7).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우리가 은혜를 받은 것도 주님이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요, 성령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입니다(엡1:6,12,14참조). 찬양은 주님께서 받으시는 영적 희생물이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양을 드리는 자는 다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자기 행실을 바르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로다.](시50: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것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구원받기 전까지 결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그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광을 받지 않으십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아니하노라.](요5:41)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께 무엇을 해서 영광을 주는 예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아 나가면서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한낱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어서 섬기고 경배한다면(롬1:23) 그 종말이 얼마나 허무할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주님의 영광의 풍성하심에 따라 강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부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하여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3:16). 주님은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알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1:27).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고후4:6). 복음의 진리를 따라 거듭나서 성령의 조명을 받아 말씀을 공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대답은 언제나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것이 계시의 전달방법이며 계시의 완성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진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도무지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롬6:4). 우리 역시 주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그릇된 지식은 태양보다 밝은 빛을 반딧불보다 흐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있는 그대로 찬란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본다면 우리는 필시 사도 바울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같이 그 빛에 눈이 멀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한 사이지만 주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 바위 틈에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그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는 동안에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출33:23). 주의 영광이 비칠 때 목동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보라,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오고 {주}의 영광이 그들 주위를 두루 비치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더니](눅2:9).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곳에 나타나는데, 그 빛이 인위적인 빛이 아니며 해나 달과 별과 같은 발광체도 아닙니다. 목동들은 별 빛에 놀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는 그 빛에 놀랐고 두려워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주님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 보지도 못하고,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오직 그분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분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니 그분께 존귀와 영존하는 권능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6:16). 우리의 육신의 눈은 찬란히 빛나는 태양도 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믿음의 영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기관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초월해서 이해할 수 있는 지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구와 관찰과 이성의 사유(思惟), 변증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계실지라도 성경을 통해 믿음으로, 마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영광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며, 하나님의 전유물(專有物)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가 자신의 영광을 훔쳐가거나 도용하거나 가로채는 자들을 미워하시며, 저주하십니다. [나는 [주]니 이것이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 [내가 나를 위하여 곧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리니 어찌 내 이름을 더럽히리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이런 이유로 인해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미워하시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경배하는 행위들에 대해 질투하십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피조물로 바꾸고 자신들이 서로 영광을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바빌론의 벨사살 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가 멸망했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죄를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도리어 자기를 높여 하늘의 {주}를 대적하며 그분의 집 그릇들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왕의 영주들과 왕비들과 후궁들이 그것들로 포도주를 마시고 금과 은과 놋과 쇠와 나무와 돌로 된 신들 곧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신들을 찬양하며 그 손에 왕의 호흡을 쥐고 계시며 자신의 길로 왕의 모든 길을 삼으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였나이다.](단5:2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백성이 환호하며 이르되, 이것은 신의 음성이요, 사람의 음성이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천사가 곧 그를 치매 그가 벌레들에게 먹혀 숨을 거두니라.](행12:22~23).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임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때 내리신 복조차 저주로 바꾸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을 때 저주를 보내십니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만일 너희가 이것을 듣고자 하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고자 하지 아니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심지어 저주를 보내어 너희의 복들을 저주하리라. 참으로 내가 이미 그 /복들을/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말2:2).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짓밟는 자들, 자신의 영광을 가리거나 더럽히는 자들을 얼마나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합당한 경배의 첫 걸음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그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시29:2)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거룩한 의무이요, 특권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님께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시며, 영광의 왕이십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하신 [주]시요, 전투에 능하신 [주]시로다. 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존하는 문들아 곧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주] 곧 그분께서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시24:8-10). 하나님의 영광스런 존귀(시145:5), 영광스런 위엄(시145:12)이 우리의 마음속에 한번도 들어와 본 적이 없고, 예배와 기도를 통해서도 도무지 그런 감(感)조차 잡을 수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조명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임의로 조직되고 정립된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마음 깊은 곳에 빛으로 침투한 그런 지식이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은 수백 권의 잡다한 조직 신학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단순함에 거하게 합니다.
신앙의 쇠퇴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의식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막과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구름들로 인해 사람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과 위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몸된 성전에 거하시는 주님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몸으로 죄를 짓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보여지는 유치한 경박성,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충격적인 불경건성 등은 눈먼 심령의 충분한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 영광스러운 하나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 속되고 천박한 예배는 그들의 마음 속에 속되고 천박한 의식이 가득 차 있음을 보여주는 것 밖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말씀의 빛을 따라 주님의 임재를 통해 직접 목격하고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영광은 주님의 임재와 더불어 드러나기 때문에 현재 우리는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없습니다. 구약의 몇몇 대언자들, 예를 들어 이사야나 에스겔이나 다니엘 등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했지만 그 영광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했는데, 말로 자세히 정확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영광스러운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은 말로 설명을 필요로 하고,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접하고, 체험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두 눈으로 보면서 증언한 사람은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보고 이르되,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매](행7:56-57). 그는 이 영광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던지 돌에 맞으면서도 아픔을 호소하거나 고통으로 울부짖는 대신 오히려 그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였고, 권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능력이었고, 죽음을 삼키는 생명이었으며, 원수를 용서하는 사랑이었으며, 죄인들을 위해 중보하는 기도였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이제 내가 다 이해했다. 이제 비로소 알겠다. 오늘에야 깨달았다”는 어떤 종교인들의 득도(得道)한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학 이론이 아니라 능력, 생명, 용서의 사랑,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며, 진리의 핵심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말이 아니라 마음 속에 분명한 확신 가운데 행동으로, 삶으로 먼저 드러납니다.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먼발치에서라도 제대로 한번 목격하고, 접해 본다면 그의 삶은 본질적으로 달라 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는 죽은 것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 다니엘이 홀로 이 환상을 보았으니 이는 나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큰 지진이 임하므로 그들이 이 환상을 보지 못하고 도망하여 몸을 숨겼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홀로 남아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게서 힘이 빠졌으니 이는 내 아름다움이 내 속에서 변하여 썩은 것이 되었고 아무 기력도 남지 아니하였음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얼굴을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단10:7~9). 의롭고 경건했던 다니엘이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했을 때 그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데 있던 사람이 자신이 입은 옷에 묻은 먼지와 때를 보지 못하다가 밝은 태양 아래서 확연히 볼 수 있는 것 같이 스스로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접하면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작은 것까지 선명하게 보게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우리 안에 직접 투여되면 우리는 모두 죽은 자 같이 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했는데, 그는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 빛의 영광으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의 손에 인도되어 다마스커스에 들어갔노라.](행22:11). 그의 육신은 눈이 멀었지만 이후에 사도 바울의 일생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우리는 달리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체험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게 할 때에 교묘히 꾸며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라. 이는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영광을 받으셨음이니라.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1:16-18). 우리는 이들의 체험을 놀랍게 생각하고, 부러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육신의 눈으로 목격했던 체험이 그들에게 능력을 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육신이 체험한 것은 쉽게 잊혀지고, 육신에 더 큰 위협이나 유혹이 닥치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말씀의 빛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것은 마치 빠지지 않는 못과 같이 단단하게 박혀 전 일생을 지배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것을 육신으로 신비하게 체험해 보고 싶어합니다. 환상이나 꿈을 통해 목격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적인 방법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으로 수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고 심지어 두려워 떨기까지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온 땅이 [주]의 영광으로 충만할 것인즉 내 영광과 또 이집트와 광야에서 내가 행한 내 기적들을 보고도 이제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 이 모든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격노하게 한 사람들 중 아무도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민14:21~23). 그들의 끝은 배교였고, 주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감각, 체험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삶을 변화시키는 열매를 맺게 하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주의 영으로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후3:18). 우리는 영으로 주님의 영광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접하지 못하면 그가 말하는 영광이란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더라”는 표현은 솔로몬의 성전이나 에스겔의 성전이 아니라 주의 몸된 성전인 교회와 우리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참다운 순결과 영적 능력과 경건함, 거룩함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영광’이란 말의 성경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존재, 현현(顯現)에 따른 빛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곳에는 반드시 영광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출현하시든 하나님이 계신 그곳은 빛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요일1:5).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어둠이 전혀 없다는 말이나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는 말은 동일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넘치게 됩니다. 이 빛은 태양이나 달, 별과 같은 창조된 빛이 아닙니다. 이 빛은 전기나 불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빛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서 발현되는 빛입니다. 이 빛은 얼마나 밝은지 태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광체(光體)가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밝은 광채의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요, 오직 [주]가 네게 영존하는 광체가 되고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라.](사60:19). 하나님의 영광이 해와 달을 대신해도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발광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요한은 그 빛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도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빛이 지극히 귀중한 보석 같고 벽옥 같으며 수정같이 맑더라.](계21:11). 지극히 귀중한 보석에서 나는 빛, 수정 같이 맑은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 도시에는 해와 달이 빛을 비출 필요가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光體)이시기 때문이라.](계21:23).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면 세상의 어떤 빛도 그 앞에서는 희미한 등불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든, 하나님의 속성이나 인격, 성품을 드러내든,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드러내든 간에 하나님의 무엇,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나 인격, 속성, 은혜 등을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에서 보이신 것처럼 친히 보일 수도 있고, 천사를 통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보일 수도 있고, 이적이나 기적을 통해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자연 세계, 피조물을 통해서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 목적이 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라고 했고, [하늘들이 그분의 의를 밝히 드러내니 온 백성이 그분의 영광을 보는도다.](시97:6)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어렴풋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보이십니다.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광야에서, 구름 가운데서, 시내 산에서, 성막에서 계속 나타났습니다. 출애굽기 16: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전체 회중에게 말할 때에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보라, [주]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니라.](출16:10). 그들은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름 속에서 태양 빛보다 더 밝은 빛이 찬란히 비치는 놀라운 광경을 본 것이며, 누구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빛에 압도되었고, 너무나 경이롭고 놀라워서 가까이 보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주]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더니 일곱째 날에 그분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는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 마치 산꼭대기의 맹렬한 불을 보는 것 같았고](출24:16-17). 이는 주님이 시내 산에 임재하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마주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셨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세를 통해 만들라고 명한 성막 위에 머무셨습니다. [그 뒤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기 때문이었으며](출40:34-35). 하나님의 거처는 출애굽하며 이동하는 이스라엘 회중의 장막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에 계셨습니다. 하늘의 보좌가 아닌 광야에 장막을 치시고 그 장막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주님이 거하셨기 때문에 그 장막(성막)에는 주의 영광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시는 분’-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14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광야에서 장막을 치시고 그 가운데 거하신 주님은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영광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본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중 한 가운데 있는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볼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한 방법은 성막과 성전을 통해서입니다. 역대기하 7:1-3을 보십시오. [이제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그 번제 헌물과 희생물들을 사르고 [주]의 영광이 그 집에 가득하니라. [주]의 영광이 [주]의 집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능히 [주]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온 이스라엘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주]의 영광이 그 집에 있음을 보고 돌로 포장(鋪裝)한 곳에 서서 얼굴을 땅으로 향하고 [주]께 경배하며 찬송하여 이르되,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7:1-3). 솔로몬이 건축한 주의 전에 주의 영광이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감히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주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서서 얼굴을 땅으로 향했습니다. 주의 영광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났는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엄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다는 것은 주님이 그곳을 처소로 삼으시고 거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단지 종교적 상징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주님이 실재적으로 거하시는 곳으로서 살아있는 성전이 된 것을 말합니다. 성전은 단지 건축물로서 신성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의 임재로 인해 거룩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지성소에는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신약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접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저 하늘이 아닌 이 땅에서 주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전3:16-17).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조화를 이루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우리 안에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이 거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러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하나님께 처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한 참을 기도하는데, “나는 네 안에 있다”란 음성을 듣고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늘 자신과 함께 해 오셨고,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는 주님을 딴 곳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님이 자신 안에 계셨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아서 기절해 버렸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 몇이나 하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고 계심을 믿고 있는지, 생생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영원히, 언제나, 어디서나 성령이 거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내주(內住)하십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에스겔은 주의 영광을 여러 차례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모양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요한이 본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모양 같으니 이것은 [주]의 영광의 모습을 가진 모양이더라. 내가 그것을 볼 때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을 들으니라.](겔1:28). [내가 일어나 평야로 나아가니, 보라, [주]의 영광이 거기 서 있는데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영광과 같으므로 내가 얼굴을 대고 엎드리니](겔3:23). 에스겔은 주의 영광을 보고서 얼굴을 대고 엎드렸습니다. 주의 영광을 목격했던 이사야, 다니엘, 욥, 사도 요한 등 누구나 다 공통적인 반응은 죽은 듯이 쓰러진 것입니다. 그 영광의 위엄이 얼마나 크고 두려웠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말씀을 통해 드러납니다. 성경은 복음을 영광스러운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게 됩니다.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神)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으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니라.](고후4:4). 말씀을 믿을 때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가 말하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요11:40).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마르다와 같이 슬픔에 젖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맛보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지 모릅니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술에 젖어 살던 가수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고 선교사가 되고, 마약에 찌든 술주정뱅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고 주님의 종이 된 예는 허다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을 때 사람들은 예외없이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 아들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라.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드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십니다. 성전에 있던 시므온은 어린 아기 예수를 보고,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것은 만백성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인들을 밝히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매](눅2:30~32)라고 찬양했습니다. 이는 주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고후4:6)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주님을 본 것이나 광야의 백성들이 성막 위에 임한 주의 영광을 본 것이나 솔로몬이 성전에 가득한 주의 영광을 본 것보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말씀은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제자들보다 더 확실한 것이며, 어떤 사람들이 환상을 통해서 본 체험보다 더 분명한 것들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주님을 통해 마음 안에 있던 모든 어둠들이 다 사라지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심으로 죽음은 정복되었습니다. 어둠의 세력들은 권세를 잃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주]의 영광이 일어나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사60:1).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주의 영광이 임한 체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믿는 사람들을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을 통해서 영광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받으시게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14:13). 열매를 맺음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선한 행위를 통해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마5:16). 정직하게 행함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벧전2:12).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벧전4:16). 하나님의 기록된 약속의 말씀은 성도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분 안에서 예가 되고 그분 안에서 아멘이 되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니라.](고후1:20).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란 말은 나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드러내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 일이 자신의 능력과 힘과 지혜로써 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은혜요 손길’임을 알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오 [주]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긍휼과 주의 진리로 인하여 오직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115:1)라고 노래했는데, 이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의 손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게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요, 영광은 하나님께만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들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많은 사람들의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이 {주}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19:1). [오 [주]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주의 것이오니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이니이다. 오 [주]여, 왕국도 주의 것이오니 주는 높임을 받으사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셨나이다.](대상29:11). 주님은 영광이 모두 아버지의 것이란 사실을 기도를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는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의 것임이니이다. 아멘.](마6:9b). 영광은 하나님의 아버지의 것입니다.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듯이, 거울이 빛을 받아 반사하듯이 교회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그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깊이 접하면 접할수록 더 강렬한 빛을 발 할 수 있습니다.
[오 내 혼아, [주]를 찬송하라.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영광과 위엄으로 옷 입으셨나이다](시104:1).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에게 주신 영광은 다시 주님께로 돌려 드려야 하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더 풍성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함으로써 다가올 세상에서 영광을 받습니다.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롬8:17).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묵상해 보십시오.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함께 영광을 얻을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이상한 그림 뒤에 둥그런 후광(後光)을 그려 넣으며 애써 영광을 표현했지만 그 때에는 영광스런 몸에서 자연스럽게 영광이 빛날 것입니다. 어둠이 없는 밝은 그곳에서도 찬란히 빛날 영광입니다.
이제 주님이 오시면 주의 영광이 온 땅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 넘치는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영광의 소망이 얼마나 풍성하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주제별(글) > Know thy God'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능하신 하나님 (0) | 2005.04.14 |
---|---|
삼위일체의 하나님 (1) | 2005.04.14 |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0) | 2005.04.14 |
거룩하신 하나님 (0) | 2005.04.13 |
신실하신 하나님 (0) | 200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