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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영원불변한 것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불변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가 진리 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변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보석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에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색깔이 금방 변색되고, 금방 부서져 버린다면 별로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색상이나 재질이나 강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일수록 가치가 있고, 비쌉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불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서히, 서서히 변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옷장에 넣어 둔 옷이 못쓰게 변해 있던가,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이 상해 있는 것은 기본이고, 강철도 녹이 슬어 변하고, 목재도 썩어 버립니다. 태산은 변하지 않는 것 같고, 유구한 장강은 그대로 천년만년을 흐르는 것 같아도 우리는 예전의 지형과 현재의 지형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변하는 것은 점점 좋게, 더 낫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나쁘게, 못쓰게 변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생명은 자연 선택에 따라 아메바와 같은 단 세포 생물에서 점점 고등 생물로 변화되고, 무엇이든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다고 주장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복잡하고 정교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해체되는 방향으로 변합니다. 새 것이 헌 것이 될 수는 있어도, 헌 것이 새 것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세상의 인심도 변합니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인간의 상태는 나빠집니다. 잘 변하는 것 가운데 단연 으뜸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자주 변하는지 좋다고 샀던 물건이 삼일도 안 지나서 바꾸러 갑니다. 매장에서는 좋아 보였는데, 집에 와서는 좋지 않게 보인 것입니다. 우리말에 ‘조변석개’란 말이 있습니다. 아침에 변하고 저녁에 바뀐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변하기 쉬운지 모릅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하여 마음먹은 일이 삼일이 되지 않아 변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변했어.”란 말은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곧 변해 버렸습니다.

사람의 마음, 감정, 의지는 잘 변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성품도 있습니다. 그것은 죄성입니다. 육신의 성품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교육과 수행을 통해서 훈련해도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하나님은 사람의 죄성, 근본적인 성품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변했다는 것은 매우 외적인 것입니다. 죄인은 어떤 경우에도 죄인일 뿐입니다. 비종교적인 사람이 종교를 가진 것을 변했다고 하고, 무식한 사람이 똑똑한 말을 하면 변했다고 합니다. 반대로 착해 보였던 사람이 사기꾼이 되어 있거나 부자가 가난한 무일푼이 되어도 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변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현재의 상태에 불만족인 사람들일수록 더욱 변화를 갈구합니다. 오늘날처럼 변화를 갈망하는 세대도 드물 것입니다. 무릇 변화의 시대, 속도의 시대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고 무섭게 변하는지 사람이 변화의 격차를 따라 잡지 못할 지경입니다. "변해야 산다", "바꿔야 산다"란 말이 들릴 정도로 변화를 위해 몸부림칩니다. 진정 몸부림치며 변화에 발맞추려는 사람도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너무나 쉽게 변하면서도 너무나 변하지 않는 존재인지라 진정한 변화를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 고사 성어에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이라 하여 매일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변하기를 잘하지만 결코 변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남으로써만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며, 영원히 동일하시며,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변화의 능력자이시지만 자신은 변화되지 않으시며, 변화 받으실 필요조차 없으십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하지만 주님은 마음을 새롭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주님의 성품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능력 역시 변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의 지식과 지혜는 더 자라거나 감소된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성장 소멸의 변화를 겪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내가 한 때는, 이전에는, 옛날에는, 앞으로는 ....”이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현재이십니다. 주님은 "I was..."란 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I AM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며, 변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변할 수 없으며, 변치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말3:6)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이 변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은 본래의 자신에서 결코 달라지지 않으심을 말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자라고, 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성장, 변화의 개념을 전혀 적용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개념이 자라나거나 점점 성장하시거나 점점 완전해지신다는 언급을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변화되신 분이 아니시며, 부족에서 채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단계적으로 완전해 질 수 있는 분이 아니시며, 그런 변화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주님의 영광은 탈색되거나 변할 수 없으며, 그분의 힘은 약간이라도 감소하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하시기 때문에 실수나 오류로 인해 타락하거나 조금씩 나빠질 수 있는 여지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보다 이전이나 이후에 좀 더 완전해 지거나 좀 더 거룩해질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자존하심에 대해서 공부해 보았듯이 하나님은 홀로 존재하시는 분이며, 스스로 계시는 분(I AM THAT I AM)이시므로, 변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주님은 영원무궁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변화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좋은 데서 더 나쁜데로, 혹은 더 나쁜데서 더 좋은 데로, 아니면 단계적 성숙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운데 하나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의복처럼 낡아지고, 닳아 없어질 수 있어도 주님은 동일하십니다. [주께서 의복처럼 그것들을 접으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年代)는 끊어지지 아니하리이다, 하시되](히1:12). 시편 기자 역시 [주는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끝이 없으리이다.](시102:27)고 노래했는데, 주님은 언제나 같으신 분이시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 자애로와 지셨다든가, 이전보다 더 긍휼이 풍성해 지셨다던가, 이전보다 좀 더 성숙해졌다던가, 이전과는 놀랍게도 달라졌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주님께서 더욱 엄해지시고, 더욱 무서워지시고, 더욱 어떠해 졌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분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 역시 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서 말이 바뀌고, 계획이 바뀌고, 뜻이 바뀌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는 중에 실수를 하시는 일이 없으시며, 수정을 필요로 하거나, 계획을 백지화해야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물론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주님은 복을 주실 수도 있고, 화를 내리실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주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7). 주님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주님은 Yes했다가 돌아서서 No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신 모든 말씀에 언제나 Yes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유리한 입장에 있으면 “예” 했다가 약간만 사정이 어려우면 곧바로 “아니오” 해 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예만 있습니다. [이는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너희 가운데서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 하고는 아니오 하신 분이 아니었음이라. 오직 그분 안에는 예만 있었나니](고후1: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십니다. 고로 거짓말이 있을 수 없고, 후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말만 있고 행동이 없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어찌 그 말씀하신 것을 행하시지 아니하리요? 어찌 그 이르신 말씀을 실행하시지 아니하리요?](민23:19). 우리는 불변하신 하나님, 변치 않으시는 주님의 성품으로 인해 안전과 평안을 얻습니다. 사무엘상 15:29, [또한 이스라엘의 강력하신 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후회하지 아니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후회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삼상15:29).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 안에 전적으로 뿌리내리고 산다면 우리 역시 주님과 같은 변하지 않는 신실하고 확고한 성품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시류에 따라서, 세상의 조류에 따라서 변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그렇게 변하는 자들과는 상관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주]와 왕을 두려워하고 늘 변하는 자들과 상관하지 말라.](잠24:21).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말3:6)란 말씀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입증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변할 수 있습니다. 덮는 그룹으로 지음 받았던 루시퍼는 변하여 타락했습니다. 그의 지혜와 아름다움은 완벽하다고 칭함을 받았지만 잠시 뿐이었습니다. 천사들도 변하여 타락했습니다. 어떤 천사는 범죄하여 흑암의 사슬에 갇혀 있습니다. 어떤 천사들은 주의 천사들이 아닌 마귀의 천사들이 되었습니다(마25:41).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아담도 변하여 타락했습니다. 이는 이들이 모두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완전하신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성, 의존적인 관계성 속에서만 그 완전함이 유지됩니다. 잠시라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분리가 일어나거나 독립적인 자아 의지가 발생하면 그 즉시로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의존적 관계 속에서는 영원히 안전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피조물은 자존하지 않으며, 자족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존(自存), 자족(自足)하신 분이십니다. 이 점에서 모든 존재하는 피조물들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이런 속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시며, 다른 존재가 아니십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분은 더 이상 자존하지도, 자족하지도 못하며 영원하지도 않으므로 하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말3:6)란 말씀은 주의 신실하심을 보증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주님은 어떤 사정이나 기분이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뜻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선한 목적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바뀔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바뀌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안전하며, 우리의 믿음은 확고하며, 우리의 소망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빌론 제국의 위대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은 이 한 가지 진리를 확실히 배웠습니다. [내가 한 칙령을 내리노니 내 왕국의 통치하에 있는 사람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라. 그분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실 분이시며 그분의 왕국은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르리로다.](단6:26).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실 분이십니다. 주님은 영원에서 영원토록 불변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흔들림 없이 푯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말3:6)란 말씀은 구원받은 자들을 향한 주님의 계획의 불변성을 보여 줍니다. 이로써 우리는 안위를 얻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불변함을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써 확증하셨나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로 하여금 큰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불변함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맹세로써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셨고, 확증하셨습니다. 중세의 성자 안셀름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그분께서는 항상 그것이셨으며, 이제까지 그분께서는 무엇이셨든지 또한 지금 무엇이시든지 그분은 앞으로도 그것이실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주님의 불변성에 대한 정확한 표현입니다. 주님께서 불변하신 분이시란 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은 영원히 안전하며, 큰 위로가 됩니다.

시편 기자는 [주는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끝이 없으리이다](시102:27)고 노래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동일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세월 앞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시간에 관계없이 주님은 언제나 동일(SAME)하십니다. 세상은 영원한 것 같아도 다 사라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고, 바뀝니다. 오직 한 분 주님만 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이런 불변성은 우리의 믿음의 확실한 근거가 되며,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닻이 됩니다. 주님의 불가변성, 불변성, 변함이 없으신 성품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모신 성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시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16:8). 변함이 없으신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왕이 [주]를 신뢰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이의 긍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21:7). 자신의 모든 짐을 주께 맡기는 자는 결코 흔들림이 없습니다. [네 짐을 [주]께 던져서 맡기라. 그분께서 항상 너를 붙드시고 의로운 자의 흔들리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사람의 마음은 마치 음식이 상하듯이 쉽게 상하며, 표면이 긁히듯이 긁히고 찢깁니다. 기분에 따라 안색이 변합니다. 음성이 변합니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맡기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사람은 너무나 잘 변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본성(old nature), 죄성(sinful nature)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시지만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새 사람을 창조하시고, 새 성품을 창조하심으로 변할 수 없는 하나님께 의존하도록 하셨습니다. 참된 변화를 통해 사람은 변할 수 없는 주님 안에서 영원불변한 새 생명을 발견하며, 지속성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changed)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후3:18). 변하기 쉬운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변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변화받는 것입니다.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어떤 종류의 사람”에서 “새로운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구원이란 한 사람의 능력이나 지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거짓말쟁이가 신실한 사람이 되고, 도둑이 정직한 자가 되고, 더러운 자가 순결한 자가 되고, 교만한 자가 겸손하게 되는 도덕적 인격적 속성의 변화는 물론이려니와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본질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외부적인 어떤 행동의 변화보다 더 깊은 변화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삶의 거처를 옮기고, 옛 사람에서 새 새사람으로 생명과 성품이 바뀌는 그런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생각이 변화를 받아야 하고(롬12:2),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순식간에 변화할 것임을 알고(고전15:51-52) 재림을 열망하는 산 소망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후3:18,빌3:21).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참된 변화는 이것이 전부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예수를 믿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이런 변화가 아니면 변화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는데, 어느덧 예수를 믿었다면 그는 완전히 변한 것입니다. 이 변화를 제외한 어떤 변화도 좋은 변화란 것이 없습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은 속죄의 과정을 통해 놀랍도록 변화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주님은 연속적인 변화를 주도하시며, 그 변화를 통해 결국 자신과 같은 불변의 세계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제사장 체계가 변하였은즉 율법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요,](히7:12). 주님께서 이런 변화를 주도하신 것은 우리에게 영원불변한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뒤에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셨으니 그분께서 그 첫째 것을 제거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10:9). 주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 율법, 제단, 제사장직, 이런 모든 것들을 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자신이 이 모든 것의 실체로서 친히 속죄 사역을 담당하셨습니다. 이로써 주님을 믿음으로 변화를 받은 성도는 더 이상 물결치는 어둠의 세상이나 흔들리는 세상에 살지 않고 영원 불변하신 주님의 말씀, 신실하신 그분 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아들로 삼으시고, 우리를 아들의 형상과 일치시키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음이니 이것은 그분으로 하여금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분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됩니다. 이 사실은 다음 구절에서도 분명하게 선포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요일3:2). 이제 더 이상 우리의 몸은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지 않습니다.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심으로써 변화되지 않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죄와 허물 가운데, 연약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어느 때나 우리를 돌보시며, 언제나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주님은 따로 사무 시간이 없으시며, 면회 사절의 시간도 없으십니다. 주님은 기록된 말씀을 단 한자도 바꾸지 않으시며, 우리가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나갈 때 ‘아니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자신을 찌르고, 때리고, 조롱하고, 못박던 죄인들을 향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던 그 심정 그대로 현재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기분을 바꾸시거나 애정이 식어지시거나 열정을 잃어 버리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죄에 대한 표준과 기준, 심판하는 마음도 동일하십니다. 주님은 어떤 죄에 대해서라도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시며, 십자가에 처리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며, 아무리 큰 죄라도 다 용서하실 수 있으신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타협하지 않으시며, 사람의 아첨이나 교활한 말에 속임을 당하지 않으시며, 설득당하여 자신의 말씀을 변경하시거나 이기적인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이는 내가 [주]요, 변치 아니하는 자이기 때문이니 ...](말3:6)란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의 뜻, 나의 환경에 맞추어서 변화되어야 할 분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에 맞추어 변화되어야 함을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명백히 계시된 주님의 말씀에 맞추어 믿음으로 순종하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굴복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 때 주님의 무한하신 능력이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복음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정해진 방식대로 우리를 향하여 즉각적으로 역사할 것임을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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