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새 페이지 1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성품은 스스로 혼자 다 하실 수 있는 일을 혼자 다 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이요, 사람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사람들은 방법과 요령을 찾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 점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그룹(Cherubim)들이나 천사들을 통해 일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꼭 필요하신 것처럼 대하시며,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고전3: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입니다. 주님은 목수인 요셉에게 양육을 받았지만 단 한 채의 교회 건물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조직을 만들거나 무리를 모아서 협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학교를 세우시거나 출판사를 만들어서 구약 주석을 만들어 파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계속해서 사람을 부르셨고, 제자들을 삼으셨습니다. 12제자, 70인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있었고, 일시에 부활을 보여준 500명의 제자들을 키우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사람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을 삼으시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고전3:9).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원하시며,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주님이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시며,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자 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5:17)라고 하셨습니다. 또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여러분은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없습니다. 모두 주님이 함께 일하십니다. 주님을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간증할 때 어떻게 간증하는가를 보십시오.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밝히 말하니라.](행15:4). 자기들이 행한 일을 보고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이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하나님이 사용하실 합당한 그릇,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보겠습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로 함께 도울지니 이것은 많은 사람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선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우리를 대신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11). 주님은 위로부터 하늘의 창으로 여셔서, 아니면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시듯이, 엘리사를 통해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적적으로 얼마든지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뭄으로 궁핍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구제를 할 때 많은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도울 때 자신의 뜻을 수행할 만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던, 선교를 지원하던, 교회에 헌금을 하던 주님은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시고 누군가를 찾아서 그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 원리는 창세기부터 일관되게 볼 수 있는 진리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네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의 여행을 후원하면 잘하는 것이리라.](요삼1:6)고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주님의 놀라운 섭리와 역사를 매일 보고 들을 수 있으며, 내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이라면 더욱더 많은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먼저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능력과 공급하시는 은혜를 통해서 일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계획하시고 일하실 때  우리에게 먼저 일하십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이제 우리를 사용하시고(wrought) 또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고후5:5). 주님께서 먼저 우리 안에서 일하신 후에야 일은 시작됩니다. 사람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재(人才)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천재(天才)나 준재(俊才), 영웅호걸들의 피와 땀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지혜와 힘을 빌려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그 안에서 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즉 헌신된 사람을 필요로 하시며, 사람 안에서 일하시고 그 사람이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그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적 사역 방법입니다.

주님은 다윗 안에 먼저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늘 사람이 먼저입니다. 주님은 엘리야를 부르시고, 엘리사를 부르시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부르시고 그들 안에서 일하신 후에 그들에게 일을 주십니다. 이 원리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주님의 일은 언제나 우리 안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여러분 안에서 주님이 무엇인가를 시작하셔야만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work out). 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work in)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빌2:12-13). 얼마나 놀랍습니까? 주님의 방법이 바로 사람이며, 주님은 먼저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람들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내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주님께 산 제물로, 거룩한 희생물로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1:6, 히브리서 13:21입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빌1:6). 주님은 어디서부터 일하시는가? 주님은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하시는가? 묻는다면 대답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일을 시작하십니다. 주님은 어떤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여러분의 믿음과 순종과 헌신과 결단을 필요로 하시며, 여러분 안에서부터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출발점입니다. 사람들은 일을 먼저 생각하고 구조(system)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엇인가 일을 벌리기를 좋아합니다. 남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먼저, 남편이 먼저, 부모가 먼저, 자식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들은 언제나 성도들이 먼저 변화되어야 교회가 살아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좋은 건물이나 좋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재정이 튼튼해져야 무엇인가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밖에서부터 일하시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서 일을 시작하시며 항상 나부터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변화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부터 변화되기를 간구하며, 변화받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새 사람이 되는 것, 자신이 성령 충만해지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다는 강력한 증거란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일을 시작하시고 우리를 완전하게 하신 후에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모든 선한 일에서 너희를 완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자신의 눈앞에서 매우 기쁜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히13:21). 순서에 주목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에게 일하시고, 그 다음에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변화된 사람과 함께 일하시며 성취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많은 일을 한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바울 안에서 강력하게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일했습니다. 주님이 바울 안에서 강력하게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돌에 맞고, 채찍에 맞고, 굶고 헐벗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며, 파선당한 배에 갇히면서도 계속해서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영광스런 권능에 따라 모든 강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인내와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1:11)란 그의 기도는 자신의 체험에 근거한 기도였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힘쓰며 수고하노라.](골1:29). 바울은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했고, 의지했고, 순종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 대로 힘쓰고 수고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합당한 사람이 없으면 자신의 뜻을 성취할 사람을 찾으실 때까지 일을 멈추시며 통탄하십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그분께서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보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분의 팔이 그분을 위하여 구원을 가져오고 그분의 의가 그분을 지탱하였으니](사59:16). 하나님은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중보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주님은 중보자가 있을 때까지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세상에는 의로운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사람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롬3:10).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이 없이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곧 하나님의 방법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약해도 무식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한 자로 바꾸시고, 무식한 사람을 지혜로운 자로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내가 가진 능력이나 지혜, 학식이나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범죄로 가득 찬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려고 하셨지만 그들에게 문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낳은 모든 아들들 중에서 예루살렘을 인도할 자가 없고 예루살렘이 기른 아들들 중에서 손으로 예루살렘을 이끌 자가 없도다.](사51:18).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과 용서를 베풀고자 해도 그 안에는 하나님이 찾는 사람,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고,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습니까?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겼노라. 그러므로 내 팔이 내게 구원을 가져왔으며 내 격노가 나를 떠받쳤느니라.](사63:5). 이 역시 동일한 말씀입니다. 없었습니다.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건이 없거나 자원이 없거나 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한 명의 사람만 있어도 얼마든지 큰일을 행하 실 수 있으며, 불가능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찾는 사람입니다. [이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울타리를 세우며 무너진 곳에 서서 나로 하여금 그곳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찾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나니](겔22:30). 주님은 사람을 찾지 못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께서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하시면서 통탄을 하셨는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지상의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에 “이렇게 큰 믿음”을 두 번 보셨습니다(마8:10, 마15:28)-백부장, 수로베니게 여인/둘 다 이방인이었다. 큰 믿음을 보셨다는 것은 큰 믿음의 사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실 사람, 능력을 부어 주시고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사람,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를 살펴보고, 우리 자신이 주님이 찾으시는 그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깊이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주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을 주님은 심판의 도구나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신 다음 버리실 수는 있지만 그 안에서 일하시고 함께 일하실 수 없습니다. 영과 진리로 경배 드리지 않는 사람을 주님은 사용하신 예가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물론이요,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참된 경배가 무엇인지 알았으며, 예배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요4:23-24)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참된 경배자를 찾으십니다. 제대로 드리는 경배 한 번이 인위적인 3년의 경건 훈련보다 더 강력한 효과가 있고, 열매가 있습니다. 참된 경배를 통해 받은 은혜가 몇 년의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단 숨에 뒤집어 놓습니다. 여러분들은 예배의 회복이야 말로 믿음의 삶의 첫 걸음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경배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만 엉뚱한 것을 붙들고 있습니다. 붙들어봐야 아무런 힘이 되지 않는 것들을 굳게 붙들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그랬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로 너희를 속여 너희 보상(報償)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런 사람은 자기가 보지도 아니한 것들 속으로 들어가 자기의 육신적 생각으로 헛되이 우쭐대며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느니라. 온 몸이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에 의해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결합하여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느니라.](골2:18-19).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에는 나오지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나 만나고, 잡담이나 나누고,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종교적 행사로 끝내 버리지 않습니까? 각 교회나 가정이나 성도 개개인이 능력을 얻고 싶고, 평안과 기쁨을 얻고 싶고, 성령 충만을 회복하고 싶다면 바른 예배를 드리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부흥은 모두 올바른 예배에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 경배드릴 때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은 사무엘과 더불어 올바른 예배를 드림으로서 영적 각성과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포로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역시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주도한 예배를 통해서 부흥되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그들은 마음을 새롭게 했고, 죄를 회개했으며, 영적 능력을 덧입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삶의 무능의 문제, 어려움으로 얼킨 문제는 참된 예배를 통해서 풀어야 합니다. 부부간의 문제가 있다면 함께 예배를 드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있다면 예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경솔히 행한 죄로 인해 복수의 위기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창34). 그 때 야곱이 느꼈던 위기감이 얼마나 큰지 한 번 보십시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괴롭게 하여 나로 하여금 이 땅의 거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 가운데서 냄새를 피우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하니] (창34:30). 한 마디로 멸문지화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그렇게 심각하게 느낀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과 가족들에게 닥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 형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시니](창35:1). 주님은 제단을 쌓게 하셨습니다. 바른 예배가 문제 해결의 열쇠란 것입니다. 예배란 마치 어떤 전기기구의 플러그를 전기에 꽂을 때 능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된 예배는 머리되신 예수님과 나를 연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하러 갈 일꾼을 찾으십니다. [또 내가 {주}의 음성을 들으니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라.](사6:8).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천사를 통해 복음을 전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대환란 때 하늘을 나르며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가 나오지만(계14:6-7), 구원의 복음은 사람들을 찾으시고, 사람들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맡길만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머리 좋은 사람, 학벌 좋은 사람, 혈통이나 가문이 좋은 사람을 찾아서 맡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 변화 받고, 말씀을 두려워 떠는 사람들에게 맡기십니다. 주님은 학자들이나 신학교에 자신의 말씀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처럼 레위 지파나 서기관들에게 말씀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을 통해 거듭난 성도들에게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사람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고후5:19). 주님은 먼저 사람을 찾으시고 일을 맡기신다는 점은 일관된 원리인데 복음 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음이니](딤전1:12). 먼저 우리를 능하게 하신 후에 사역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일할 일꾼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며,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율법 조문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고후3:6a). 주님은 절대적으로 일손의 부족을 느끼시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부족을 느낄 수가 없지만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시는 관계로 사람의 부족이 곧 자신의 부족이 되는 까닭입니다. [이러므로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시는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자신의 추수 밭에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하라.](눅10:2). 추수할 것에 비해 일꾼이 너무 적습니다. 때는 매우 시급합니다. 추수는 일년 내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가 있습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미 희게 되어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푸른 밀이나 보리가 황금빛으로 누렇게 들판이 변하고 그 다음에는 하얗게 됩니다. 이 때가 마지막 단계입니다. 하얗게 된 다음에는 그냥 쓰러져 썩어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추수할 일꾼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은 모두 구령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문과 T.V에 광고를 내는 대신 자신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부지런히 이 사실을 광고하시며, 모집하고 계십니다.

셋째, 주님은 선한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목자들에게 해당되지만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 주인으로부터 그 집 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리라.](눅12:42-44). 하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일들을 사람들에게 위임하시고 맡기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일을 맡길만한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를 찾으십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님의 뜻을 위임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양식을 나누어 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됩니다. 주인의 뜻을 거슬러 행동하는 청지기는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종들을 돌보지 않고,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며 놀고먹는 청지기는 주님께서 벌하실 것입니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자기 뜻이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이는 감독이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결코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그는 자기 뜻대로 하지 아니하며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자기를 술에 내어 주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익에 빠지지 아니하며](딛1:7). 청지기는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지 자기의 더러운 이익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기꺼운 마음으로 하며](벧전5:2)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주인들은 언제나 믿을만한 일꾼들을 찾기에 갈급하듯이, 주님은 언제나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 신실한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청지기로 여겨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길지어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할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전4:1-2).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복음의 청지기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자원하여 이것을 행하면 보상(報償)을 얻으려니와 자원하여 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청지기직을 내가 맡았기 때문이라.](고전9:17). 선한 청지기는 서로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은사를 써서 섬기라.](벧전4:10).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는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입니까? 아니면 주인의 것을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허비하고, 주님이 늦게 오실 줄로 생각하며 방탕하게 행하는 불의한 청지기입니까? 주님은 오늘도 사람을 찾고 계시며,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시며, 함께 일하려 하십니다.

넷째, 주님은 기도하는 중보자를 찾으십니다. 위대한 한 명의 기도하는 중보자는 민족을 멸망에서 건지며, 죽음에서 살립니다. 모세가 바로 그런 중보자였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멸하려 하실 때 모세는 목숨을 걸고 중보 기도했습니다. 사무엘 역시 민족을 위해 기도했는데,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않겠다고 결단하고 실행했습니다(삼상12:23). 그래서 그는 기도의 대표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제사장들 가운데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가운데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주]를 부르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셨도다.](시99:6). 우리에겐 기도의 중보자 성령이 있습니다(롬8:26-27). 우리에게는 저 하늘에 예수 그리스도란 위대한 중보자가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롬8:34, 히7:25). 주님은 중보자들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며, 용서하시며,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고, 돌이키십니다.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멸망을 앞둔 예루살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대언자이며 [주]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거든 이제 그들은 만군의 [주]께 중보하여 [주]의 집과 유다 왕의 집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들이 바빌론으로 가지 못하게 하여야 할지니라.](렘27:18). 주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 중보하여 주님의 진노와 저주, 심판과 징계를 거두어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이런 중보자가 없었습니다. 민족의 죄악을 위해 중보하고, 동족의 허물을 위해 울 줄 아는 중보자가 없는 것은 그 민족의 비극이요, 재앙입니다. 우리는 모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중보 해야 합니다. 형제들을 위해 중보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仲保) /기도/와 감사를 드리되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것은 우리가 모든 경건함과 정직함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함이라. 이것이 하나님 곧 우리 구원자의 눈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딤전2:1~3).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이 찾으시는 중보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중보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시고, 중보자 성령을 통해 일하시듯이 중보 하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중보자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중보자들을 찾으십니다. 중보의 기도를 통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예는 성경 안에서나 밖에서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주님은 의인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패역한 세상 가운데 한 명의 의인 노아를 찾았습니다. [노아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자기 세대에서 완전한 자더니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6:9). 한 사람 노아를 통해 주님은 방주를 만들게 하셨고, 멸망하는 세상에 씨를 남겨 놓으시고, 보존하셨습니다. 주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 그곳에 혹 있을지 모를 의인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오 {주}여 노하지 마시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열 명을 찾으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열 명으로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창18:32). 롯과 그의 아내, 롯의 두 딸과 그의 사위들, 시집가지 않는 두 딸만 해도 이미 8명입니다. 아브라함은 열명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소돔과 고모라에는 주님이 찾는 열 명의 의인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의인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 표를 해 두시고, 그들을 건지십니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 도시의 한가운데 곧 예루살렘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그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찍으라, 하시니라.](겔9:4). 결코 함께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대환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섯째,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를 찾으십니다. [[주]께서 하늘에서 사람들의 자녀들을 내려다 보사 혹시라도 깨닫는 자나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신즉 그들이 다 치우쳐서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시14:2,3).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 사람들의 자녀들을 내려다보시고 계십니다. 누군가 하나님을 찾으면 주님은 만나 주십니다.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사두 썬다싱은 시아파 회교도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썬다싱은 자기 조상의 신과 예수 중 어느 신이 참 신인가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다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여 어린 영혼에게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는 답을 얻지 못하면 기차가 오는 철로에 목을 대고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내가 참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셨답니다. 얼마 후 그는 영국의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들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인도의 복음화와 티벳 고원의 라마승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당한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를 만나 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주] 네 하나님을 찾게 되리니 만일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여 그분을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주님은 언제나 자신을 찾는 자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만날 만한 때에 [주]를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사55:6). 주님을 찾으면 만납니다. [또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날 것이라.](렘29:13). 주님은 하늘에서 누가 나를 찾는 사람이 없는가? 지금도 내려다보시고 계십니다. 주님을 찾는 자들이 주님을 만나며, 주님은 그들에게 일하시고, 동행하십니다. 주님은 자기를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의 집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암5:4). 주님은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을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니라.](히11:6).

일곱째,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십니다. 이것은 복음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할 죄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러 친히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음이니라.](눅19:10).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일상생활에 자주 있는 사건을 통해 이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 중의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에 돌아와서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불러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자.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눅15:4).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듯이 주님은 잃어버린 죄인을 찾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잃어버린 사람들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주님은 왜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까?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죄인들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란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쓸만한 재목이기 때문에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찾으시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가 어느 곳에서 증거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깊이 생각하시오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찾아오시나이까?](히2:6). 시편 기자는 주님이 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찾으시는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해 했습니다. 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높이시나이까? 어찌하여 주의 마음을 그에게 두시나이까?](욥7:17). 구약의 지혜서에는 한결같이 “사람이 무엇이기에”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주]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나이까!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나이까!](시144:3).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을 찾으시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이지만 주님께서도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오늘 우리는 사람을 찾으시고, 사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고, 사용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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