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약 10시간에 걸쳐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를 공부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라고 했다면
성경은 반드시 올바르게 나누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나로 합하신 것을 나눌 수 없고, 하나님이 나누신 것을
합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주님은 분리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공부할 때, 나누어서
공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그 말이 어느 세대에 적용되는 말인지 분명히
알아야 혼란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대상별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성경을 주의해서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성경 전체의 반 이상이 한 국가, 특정 한
민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불리는 이 민족은 성경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다루심과 계획 가운데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들이 결코
누려 보지 못한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맺었으며, 어느
민족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구약
성경은 다른 어떤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 관련된 구약 성경의 역사는
서사적이면서, 동시에 예언적입니다. 다른 민족들의
이야기가 조금 언급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역사는 오직
이스라엘과 관련될 때만 약간 기술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민족으로서,
선민으로서 이 땅을 다루시는 한 모형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민족으로 삼으셔서
이 민족을 통해 이 땅을 다루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신실하고 주님과 바른
관계성에 있을 때, 그들은 복을 받고, 부유해졌으며,
강성했습니다. 반면 그들이 불순종하고 반역했을 때 온
세상으로 흩어저 다른 민족들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신명기 28:64절, [
주께서 너를 땅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백성들 가운데로 흩으시리니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무와 돌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기리라.] 유대인과 관련하여 약속된
가장 큰 축복은 그들에게 메시야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민족들의
축복입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축복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로마서 9:4,5 [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4,5).
첫째, 양자 삼으심. 둘째, 영광과 언약들. 셋째, 율법을 주심.
넷째, 하나님을 섬김. 다섯째, 약속들. 여섯째,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일곱째, 그리스도.
성경에는 하나님과 관련된
또 한 부류의 독특한 부류가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약속들을 받았으며, 그분의 모든 계획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는 달리 구성원들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씨에서 나와서
혈연적으로 공동체이며, 민족적 공동체인 반면 교회는 혈과
육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이 거듭난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후손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 교회는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됩니다.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육신적 탄생과는 상관없이 영적 탄생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주님께 복종할 때 지상의 물질적
부와 건강, 위대한 국가를 약속 받았지만, 교회는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할지니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해와 증오, 핍박과 미움을 받을 것이란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그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성경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지상의 것들이 약속되었던 반면,
교회에게는 천상의 영적인 것들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이 외에도
이방인이란 한 그룹이 더 나옵니다. 유대인과 교회는 각각
모두 시작점이 있습니다. 반면 이방인이란 것은 어떤
시작점이 없습니다. 유대인의 시작은 아브라함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처음 오순절에 몸된 교회가 지상에 출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 동안에도 교회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성경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상
생애동안 [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will build)](마16:18)고 말씀하셨지, 교회를
세웠다거나,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단 한번도 교회라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구약의 어떤 대언자나 왕이나 어떤
사람에게 미리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3:5-10에
의하면 교회는 구약 시대에 감추어진 신비였습니다. [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같이 다른 시대에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이 신비를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 신비는 곧
복음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엡3:5-10). 주님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신약에서 계시하셨습니다. 이방인에 관련된 다음
구절들을 보면 그들이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란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2:11,12, [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은 자들 곧 할례자라 일컫는
자들로부터 무할례자로 일컬음을 받은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공영권 밖에 있던
외인들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더니] 이방인은
유대인들과 상관이 없고, 교회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고 싶으면 개종을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신약 시대의 이방인들이 교회에
속하고 싶으면 복음을 믿으면 됩니다. 이방인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육신적으로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고, 영적으로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이방인인 것입니다.
성경은 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이방인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에베소서
4:17-18, [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같이 되지 말라. 그들의 지각은
어두워지고 그들 속에 있는 무지와 그들의 마음이 눈먼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둘째, 이스라엘과 상관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어떤 축복도 이방인들이 가로채거나 얻을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7:27, 28, [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먼저 자녀들을 배부르게 할지니 이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기 때문이라,
하시매 그녀가 그분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밑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의 빵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성경이 말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비교하면 둘 다 기원이 있고, 둘 다 약속이 있으며,
둘 다 경배하며, 행위에 관련된 규범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미래의 운명은 더욱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부르심과
교회의 처음 부르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봅시다. 창세기 12:1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
그런데
전에 주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 집에서 나와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신명기 8:7-9에서 그 땅이 어떤 땅인지 말씀하십니다. [
이는
주 네 하나님께서 좋은 땅으로 너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니
그곳은 시내가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 흘러나오는 샘과 깊은
곳이 많이 있는 땅이요,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요, 네게 아무것도 모자라지 않은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쇠요, 산에서는 놋을 캐리라.](신8:7-9).
이스라엘은 부르심에서부터 문자적인 땅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풍성한 수확과 지상의 물질적인 부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는 어떤 교회도 결코 받지 못한 약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부국 강병을 통해 지상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가
될 것이란 약속도 받았습니다. 신명기 28:7, [
네
원수들이 일어나서 너를 치려 하면 주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신명기 28:13, [
주께서
너로 하여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이 약속은 다윗과
솔로몬 재위 80년 동안 잠시 동안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셔서 다스릴 왕국이 되면 영원 무궁한 왕국이
됩니다. 이런 약속들은 모두 문자적인 것이며, 그 대상은
이스라엘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에서 적용할 수 없으며,
어떤 정치 집단이나 종교 집단이 주장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닙니다. 교회는 이런 약속이 없습니다. 만약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못된 적용으로 인해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부르심은
완전히 다릅니다. 히브리서 3:1, [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교회는 하늘의 부르심(heavenly calling)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높으신 부르심(high
calling)을 받았습니다. 빌립보서 3:14,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 가노라.](빌3:14). 우리의 부르심은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디모데후서 1:9, [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요...](딤후1:9). 경건한
유대인들이 죽을 때 하늘의 왕국에 가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교회의 부르심과 같은 부르심과 약속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역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땅은 고사하고
핍박과 채찍과 헐벗음과 감옥으로 전전하며, 갖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풍성한 복을
약속하셨지만 결코 지상에 속한 복이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1:3, [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이 없는 성도들은 영적인 복보다 물질적인 복을
추구합니다. 성경의 맥을 전혀 잘못 짚은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며, 그분의 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으며 둘은 하나가 됩니다. 우리도 전에는 모두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교회의 행동
윤리에 대한 비교를 통해 그 차이점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출애굽기 21:24-25,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매는 매로 갚을 지니라.]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약에 와서 율법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 한번도 율법을
바꾸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적용 대상이 다르고, 주체가
다른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4:12-13, [
또 수고하여 직접
우리 손으로 일하며 욕을 먹으나 축복하고 핍박을 받으나
참으며 비방을 당하나 간절히 권면하니 우리가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
이스라엘과 교회의 예배
장소를 비교해 봅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정하신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이 정하신
제사장을 통해서만 제물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아무데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2-3사람이 모인 그
곳에 주님이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정하신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주님의 제사장이며, 중보자의 도움이 없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지성소로 바로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아뢸 수
있습니다. 레위기 17:8-9과 마태복음 18:20을 보십시오. [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집 사람이나 너희 가운데
거하는 타국인 중에 누구든지 번제 헌물이나 희생물을
드리되 회중의 성막 문으로 가져다가 주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레17:8-9), -특정
장소로 가야 했다. [
이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마18:20).-특정 장소가 아니라 성도가
있는 곳으로 주님이 오신다. 민수기 3:10과 베드로전서 2:5을
보겠습니다. [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임명하여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할 것이요, 낯선 자가
가까이 오면 죽일지니라.](민3:10), [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 희생물로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벧전2:5).
이스라엘과 교회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살펴봅시다. 교회는 이 땅에서 들림을 받고 이
땅에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회복되어 지상에서 최강의 국가가 됩니다. 누가복음 1:31-33, [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크게 되고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시리니 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을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눅1:31-33). 이 말씀 중에 몇
가지는 성취되었지만 몇 가지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다윗의 왕좌를 앉지 않으셨으며, 야곱의 집을
통치하지도 않습니다. 아직 왕국은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30:10-11, [
주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오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 하지 말라. 오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이는,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부터 구원하고 네 씨를 그 포로 된 땅에서부터 구원할
것임이니 야곱이 돌아와서 안식하며 평온히 지낼 것이요,
그를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를 흩어서 함께 거하게 한 모든 민족들을 내가 완전히
끝을 낼지라도 너는 완전히 끝을 내지 아니하리라. 다만
내가 적절히 너를 징계할 것이요, 전혀 벌하지 않은 채
두지는 아니하리라.] 아모스 9:14,15 [
또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포로된 것을 다시 돌이키리니
그들이 피폐한 도시들을 건축하여 거기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심고 그 포도즙을 마시며 또한 동산들을 만들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아니하리라. 주 네
하나님이 말하노라.](암9:14-15). 어떤 이들은 이
말씀들을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 왔을 때, 이미 성취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그렇지
않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다시 흩어졌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첫 번째
회복이지 두 번째 회복입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아직 예루살렘조차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만 지금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주님은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을 모으시고, 영원한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의 땅에 모인 후에 그곳에서 먼저
심판을 받고(겔20:34-38, 22:19-22), 그 다음에 회심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팔을 불 때, 교회는 휴거될
것이며,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미래에 관련된 몇 구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저택- 요한복음 14:2,3 [
내
아버지 집에 저택들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는 이 땅에서 Mansion을 받을 것이란 약속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저 하늘에 있습니다.
휴거 - 데살로니가전서
4:15-17,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이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임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서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도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영광스런 몸-빌립보서
3:20,21 [
이는 우리의 생활권이 하늘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됨- 요한일서 3:2 [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되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요한
계시록 19:7-9 [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릴지니 이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르렀고 그분의 아내가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 또
그녀에게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는 이고운 아마포가 성도들의 의이기
때문이라, 하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만찬에 초청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이르되,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참된 말씀들이라, 하더라.]
천년 동안의 통치-
요한계시록 20:6 [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리는
권능이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교회를 유대인과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제사장과 평신도를 나누는 성직자 제도가
정당화, 합리화되었고, 교인들은 지상에서 물질적 복을 받는
기복 신앙을 가지게 되어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대신
세상에서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신앙인 줄 알게 된
것도 이 둘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상
왕국에 대한 진보적인 개념도 모두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교회에서 취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는 것은 단순한 성경 지식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의 현재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가치관,
세상에 대한 관점, 인생관,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혼란과 문제, 부패는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적용한데서 기인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
역시 이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아무쪼록 주님이 말씀하신
명령대로 올바르게 나누어 성경을 공부하여, 열매맺고,
자라나 장성한 믿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