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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율법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할 가장 중요하고도 <br />분명한 구분은 율법과 은혜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할 가장 중요하고도 분명한 구분은 율법과 은혜입니다. 율법과 은혜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구약과 신약을 나누는 중요한 구분점입니다. 요한복음 1:17,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요1:17). 물론 이 말이 모세 이전에는 율법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에나 이전 세대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과 악의 지식을 아는 나무에서 나는 실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그 자체가 법입니다. 아담과 여자가 죄를 범했을 때, 주님은 친히 범죄한 인간들을 찾아 오셔서 여자의 씨에 대한 계시를 주시고, 이들에게 동물의 가죽으로 된 옷을 입히심(창3:21)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고전1:30) 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계시하시는 수단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계시하시는 수단이십니다. 이 둘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언제나 변함없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말하는 율법은 모세에 의해 성문으로 주어진 율법을 말합니다. 이 율법은 시내산에서 받았으며, 갈보리의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특징지어 주었습니다. 갈보리에서 교회의 휴거 때 까지는 모세의 율법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가 특징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둘의 구분을 혼합하거나 전 시대에 걸쳐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성경의 많은 진리들을 가려 버리고, 스스로 혼란에 빠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성경은 율법을 말할 때 은혜와 대조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금지하시는 것을 다루는 반면,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 간청을 다룹니다. 율법은 정죄의 직분인데 반해 은혜는 용서의 직분입니다. 율법은 저주를 선포하는데 반해, 은혜는 저주로 받은 구속을 선포합니다. 율법은 죽입니다. 은혜는 살립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의 입을 하나님 앞에서 닫아 버립니다. 반면 은혜는 모든 입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율법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엄청난 간격과 거리가 있음을 말해 주며, 또 죄책감을 줍니다. 은혜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죄책을 제거하고 가까이 다가가게 만듭니다. 율법은 말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은혜는 말합니다. [악에게 맞서지 말라(resist not evil).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그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며](마5:39). 율법은 말합니다. [네 원수를 미워하라.], 은혜는 말합니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앙심을 품고 너희를 대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율법은 말합니다.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은혜는 말합니다. “믿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율법은 단 한 명의 선교사도 없습니다. 은혜는 세계 만민에게 가서 전파해야 합니다. 율법은 가장 최상의 상태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정죄합니다.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이라도 값없이 의롭다 합니다(눅23:43, 롬5:8, 딤전1:15, 고전6:9-11). [신실하도다. 이 말이여,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함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딤전1:15). 율법은 검증(檢證)의 체계입니다. 은혜는 호의의 체계이다. 율법은 간음한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은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 하시니라.](요8:11). 율법 아래에서는 양들이 목자를 위해서 죽었습니다. 은혜 아래서는 목자가 양들을 위해서 죽습니다.

성경은 어디를 펴보아도 율법과 은혜는 날카롭게 대조를 보여 줍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이 둘의 조화를 꾀하는 가르침과 설교는 둘 다를 훼손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율법과 은혜는 절대 조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율법의 무서움이 사라지고, 은혜의 값없음이 사라진다면 율법은 더 이상 율법이 될 수없고,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반드시 신약 성경에서 사용되는 율법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율법이라고 말하면 때로는 율법의 모든 것(도덕법, 의식법, 십계명을 모두-롬6:14, 갈2:16, 3:2)을 다 포함하지만 어떤 것은 도덕법(롬3:19, 7:7-12), 어떤 것은 의식법(골2:14-17)만 의미합니다. 의식법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상적 사역과 희생을 예표해 주며, 성막(출25-30)과 레위기의 희생 제사들(레1-7)은 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쁨과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시편에 나온 기록들 역시 [돌에 새겨진 사망의 직분]이란 사실만 이해한다면 전혀 해석할 수 없는 구절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속 사역과 연관지어 볼 때 분명하게 이해됩니다. 시편1:2, [오직 주의 율법을 기뻐하며 그분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시1:2), 시편119:97, [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시119:97).

오늘날 교회가 은혜와 율법의 관계에 대해 겪는 3가지 오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율법폐기론자- 신자들의 삶에 율법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디도서 1:16에 의하면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하니 가증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이요, 모든 선한 일에 버림받은 자들이니라.](딛1:16). 유다서 4절, [이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기어 들어온 자들이 몇있기 때문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정죄를 받도록 주께서 미리 정하신 자들이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니 곧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라.](유1:4).

둘째, 의식법주의자들 -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레위기의 의식들을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치명적 오류는 구약의 율법 준수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구원과도 직결된다고 믿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 형제들을 가르치며 이르되, 너희가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매](행15:1), 사도행전 15:11, [오직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 믿노라, 하니라.](행15:11).

셋째, 갈라디안주의 - 율법과 은혜를 혼합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분적으로 은혜를 통해 구원받고, 부분적으로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은혜는 힘없는 죄인들에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광범위하게 교회 내에 번져 있는 주장이며, 누룩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이 바로 갈라디아서란 성경입니다. 갈라디아서 3:2-3,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니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 갈라디아서 1:6-8,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이 다른 복음은 또 다른 참복음이 아니요,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는 어떤 자들이 있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 하는 것 뿐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선포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6-8).

율법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건전한 관점은 무엇입니까? 신약 성경이 말하는 율법에 대한 참조 구절을 찾아가며, 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합시다.

율법은 어떤 것인가? 율법은 의롭고, 거룩하며, 선한 것입니다. 로마서 7:12, [그런즉 율법도 의롭고 명령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도다.] 율법은 영적인 것입니다.로마서 7:14, [그 까닭은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은 영적이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기 때문이로다.] 율법은 내 속사람이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자신이 율법을 지킬 수 없어도, 다른 누군가가 의롭고 거룩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 사람을 성인이니, 군자니, 하면서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로마서7:22 [이는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율법은 사람이 적당하게만(lawfully-합법적으로) 쓰면 선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가 아노라.]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행위에서 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2, [또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오직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 가운데 살리라, 하였음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율법의 성격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것을 정확하게 믿고, 실행하고, 전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막연하게 아는 지식은 지식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어떤 것인가 그 성격에 대해서 방금 말씀드린 구절들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이나 노트에 적어 놓고,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흐릿한 잉크가 똑똑한 기억보다 오래가는 법입니다. 베이컨은 저술이 사고를 정확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자신의 노트에 새로 한번 써서 정리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신약 성도들에게 율법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합니까? 율법의 가장 큰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자신의 죄인됨을 알게 됩니다. 로마서 7:7,13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율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리니 이는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욕을 알지 못하였을 것임이라. 그러면 선한 그것이 내게 사망을 이루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을 통해 죄가 내 안에서 사망을 이루었나니 이것을 명령을 통해 죄가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기 때문이니라.].

율법은 범죄를 더하기 위한 것이며,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9.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 율법은 범죄들로 인하여 주께서 더하신 것이요, 천사들을 시켜 한 중재자의 손에서 정하신 것으로 약속을 받은 씨가 오실 때까지 있을 것이라.] 그래서, 모든 사람의 변명과 자기 의를 막아 버리고, 정죄합니다. 로마서 3:19, [이제 우리가 알거니와 무엇이든지 율법이 말하는 바는 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든 입을 막아 온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율법 아래 있는 것들을 guilty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유죄로 선포되면 저주와 심판이 따르게 됩니다. 율법은 모든 사람을 저주아래 있게 만듭니다. 갈라디아서 3:10, [그 까닭은 율법의 행위에 속하 자들이 다 저주아래 있기 때문이니 이는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하여 항상 그것들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저주 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야고보 사도는 이 점에 대해서 한번 더 입증합니다. 야고보서2: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성경은 율법은 사망의 직분, 정죄의 직무라고 말합니다. 이는 율법의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7,9 [그러나 돌에 써서 새긴 사망의 직무에도 영광이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으로 인해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거늘...이는 정죄의 직무도 영광이 될진대 의의 직무는 영광이 더욱 뛰어나기 때문이라.] 율법의 역할을 몸소 체험한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로마서 7:9, [전에 율법이 없을 때에는 내가 살아 있었으나 명령이 오매 죄가 되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그가 얼마나 율법에 철저한 사람이었는지는 익히 검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왔을 때 죄가 살아났습니다. 죄는 율법이 없으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권능)은 율법이라.]

주님께서 인류를 2500년간 율법이 없이 두시다가 율법을 주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유죄란 사실을 보여주시고, 인정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치유책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율법은 단지 정죄와 사망의 직분만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율법은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하라, 마라, 요구만 할 뿐 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습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기 때문이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율법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의롭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육체는 하나도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3:11, [오직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이 아무도 의롭게 할 수 없고, 아무도 완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는 너희가 의롭게 되지 못하던 모든 일에서는 믿는 모든 자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하는 것이라.] 히브리서 7:19, [이는 율법은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기 때문이니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성도들은 현재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6장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죽고, 그분의 묻힘과 함께 묻히고, 이제 새로운 삶의 원칙에 따라 살게된 성도들의 자유 선언을 선포한 장(障)입니다. 신자의 삶은 로마서 6:11장부터 시작됩니다. 14절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보다, 죄의 지배로부터의 구출을 말합니다. [이는 너희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임이라.](14). 율법 폐기론자들이 경건한 삶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면, 성경은 곧바로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다 해서 죄를 지으리요?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5). 확실히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할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은 율법으로부터의 구출에 대한 원칙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7:4-6,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으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다른 이 곧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신 이와 결혼하게 하려 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라. 그 까닭은 우리가 육신 안에 있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들의 활동이 우리 지체 안에 작용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를 붙들던 율법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율법 조문의 낡은 것으로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라.](롬7:4-6).-여기서 말하는 법은 의식법이 아닙니다. 7절을 참고하십시오.

갈라디아서 2:19 [내가 율법을 통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고자 함이라.], 갈라디아서 3:23-25,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어 두었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하심이라.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 되었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니라.]. 현재 우리는 율법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8-9,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가 아노라. 이것을 알지니 곧 주께서 율법을 만드신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요, 오직 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불순종하는 자와 속된 자와....].

성도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러면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예수님과 같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본이 우리의 삶의 원리요, 기준이며, 표준입니다. 요한일서 2:6 [그분 안에 거한다고 말하는 자는 그분께서 걸으신 것같이 자기도 그렇게 걸어야 할지니라.], 요한복음 13:15, [이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본을 보였음이니라.], 요한복음 15:12, [내 명령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둘째,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걸으라.-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셋째, 성경은 우리의 삶의 원칙입니다. 요한복음 14:21, [나의 명령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일서 3:22-23,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 그분의 명령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라.] 넷째, 성도들의 보편적인 삶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3: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는 것이 마땅하니라.] 에베소서 5:1-2, [그러므로 너희는 사랑스런 자녀로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에베소서 4:1-2,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를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으며 모든 겸손과 온유로 행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 주며] 다섯째, 육체의 정욕을 삼가고, 빛의 자녀들 처럼, 시간을 아끼도록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1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12-23참조). 에베소서 5:8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 에베소서 5:15-16,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살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0:16,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 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 이를 설명해 주는 아름다운 예가 있습니다. 지상에 사는 모든 어머니들에게 자기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라는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만약 돌보지 않으면, 엄한 벌이 내려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는 그 법을 어긴 어머니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어머니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이는 어머니의 가슴 속에 이미 그 법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법에 대한 의식조차 하지 않고, 훌륭하게 법을 지키는 어머니가 됩니다.

성경의 구약을 교훈적으로 적용해 볼 때, 율법을 새긴 돌판은 언약궤 안에 보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언약궤의 뚜껑을 덮음으로써 사람들은 그 안을 볼 수 없습니다. 언약궤 위에는 자비석이 있어서 대속의 피를 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보시려면 주의 의를 입증하고, 주님의 진노를 풀어 줄 그 위에 뿌려진 피를 통해서만 보실 수 있습니다(히9:4-5). 만약 언약궤를 열어서 거룩하고 의로운 율법의 돌판을 세워서 그것으로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원리로 가르치려 한다면 죽음밖에 돌아 올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은혜란 무엇인가? 디도서 3:4-6, [사람을 향하신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이 나타나사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

에베소서 2:7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사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여러 시대에 보여 주려 함이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은혜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2:8-9,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11-13, [이는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디도서 3:7,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로마서 5:2, [또 우리가 그분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이 은혜 안에 믿음으로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기뻐하느니라.] 사도행전 20:32,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을 주리라.] 에베소서 1:6-7, [이것은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친히 우리를 받아 주시는 은혜 곧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 갈 것이니라.]

은혜는 구원합니다. 은혜는 의롭게 합니다. 은혜는 세워 줍니다. 은혜는 받아 들여 줍니다. 은혜는 구속합니다. 은혜는 용서합니다. 은혜는 유업을 줍니다. 은혜는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담대히 필요를 구하고, 아뢸 수 있게 됩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며, 복된 소망을 줍니다.

로마서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행위에서 난 것이며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로마서4:4-5,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갈3:16-18, 4:21-31참조). 갈라디아서 4: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노예 여자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로운 여자의 자녀니라.]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도덕법과 의식법을 주신 것은 나누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리스도인은 그 산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답하면 될 것입니다. 죤 번연은 말하기를, “현재의 신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너무나 완벽하고 축복된 은혜를 받았기에 시내 산에서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받았던 모세의 율법은 조그마한 흠이나 잘못도 찾을 수 없다. 이것이 율법없이 드러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율법과 하나님의 은혜가 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범해온 거룩하고 의로운 율법의 심판과 정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 받아들이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로마서 3:22,23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모든 자에게 그리고 믿는 모든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이는 거기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2,23).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0:9, [그러므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로마서 10:4,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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