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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성경은 여느 종교 경전이나 서적과는 달리 모두 사실을 <br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며


두 부활



성경은 여느 종교 경전이나 서적과는 달리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며, 모두 사실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은 단지 정신 세계나 관념을 다룬 철학이 아닙니다. 성경은 언제나 사실을 다룹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실이듯이, 주님의 부활 또한 사실입니다. 주님은 지상 생애동안 부활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주님 자신만의 부활이 아니라 산 자이든 죽은 자이든 모든 사람은 다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의 가장 강력하고도 분명한 선언입니다. 부활은 성경의 본체이며,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성경에서 이 보다 더 분명하고도 강력한 기록은 없으며, 이 보다 더 중요한 교리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인들의 선포하는 것과 믿음은 헛것이며, 거짓 증인이 될 것입니다. 죄사함도 없으며, 믿음 가운데 죽었던 사람들은 멸망한 것입니다.

성경은 “만약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이란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13-19. [만일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리라. 또 그리스도께서 만일 일어나지 아니하셨으면 우리의 선포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리니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우셨다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일으켜 세우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도 멸망하였을 것임이라.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이리라.](고전15:13,19).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이 땅에 태양이 없는 것보다 더 깊은 어둠이요, 공기가 없는 것보다 더 숨막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법은 언제나 현재 사실의 반대나 있을 수 없는 일을 나타내기에 걱정이 없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 이것은 단지 우리의 소망이나 믿음이나 그렇게 믿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주님은 부활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주님이 부활이시라면, 주님 안에서 잠든 자들은 모두 부활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은 자들의 첫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8:11,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이는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이전에도 일으킴을 받은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잠든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셨을까요? 열왕기상 17장에는 엘리야의 기도로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도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도 지상 사역동안 “야이로의 딸”(마5:22-43),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17), “나사로”(요11)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부활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부활이 아닙니다. 이들은 죽음에서 살림을 받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으며, 모두 다시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활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것이 성경의 부활이라면, 주님 역시 다시 죽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그런 부활이 아닙니다. 단지 죽음에서 살아나신 것뿐만 아니라 다시는 죄와 죽음과 상관이 없는 그런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은 나사로의 부활과는 질적으로 다른 부활입니다.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영광스런 부활이며, 죄의 몸과 상관없는 부활입니다. 다시 죽지 않는 부활입니다. 이를 성경은 더 좋은 부활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35, [여인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다시 살려서 받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고문을 당하되 풀려 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히11:35). 믿음의 선진들, 신약 교회사에 나오는 순교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처참하게 죽어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었고,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바로 이런 부활에 대한 믿음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우리는 구약 성도들이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소유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욥기 19:25-27, [이는 내가 알기에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니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위에 서시리라.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뒤에도 내가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 콩팥이 내 속에서 소멸될지라도 내가 직접 하나님을 보리니 다른 것이 아니요, 내 눈이 바라보리로다.](욥19:25-27). 다윗 역시 부활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시편 16:9,10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이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하여금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이사야(사26:19), 다니엘(단12:2), 호세아(호13:14) 등 구약의 대언자들은 부활을 예언했으며, 그 사실을 전파하였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이 모든 사람의 부활이 어느 한날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다른 두 가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첫째 부활이 있고, 둘째 부활이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이요, 의인의 부활이며, 믿는 신자들의 부활입니다. 이는 ① 구약 성도들의 부활, ②신약 성도들의 부활, ③ 환란 성도들의 부활을 다 일컫습니다. 전 시대에 걸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미 잠자는 성도들 가운데 일부(구약 성도들)는 일어났습니다. 마태복음 27:52-53,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많은 성도들의 몸이 그분께서 부활하신 뒤에 일어나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것을 첫 열매들이라고 합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숨을 거두자마자 일어난 일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의 일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성도들로서 자신들을 구속할 메시아를 믿음으로 기다리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일어나셔서 승천하실 때 무덤에서 나와 예루살렘을 걷던 사람들과 아브라함의 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저 하늘로 데려 가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히2:14)의 권세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내려 하심이라.](히2:15)는 말씀대로 모두 건져내신 것입니다. 첫 열매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4:8). 첫 열매들은 곧 수확이 올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했고, 지하의 낙원에서 끌림을 받아 저 하늘로 들림을 받았습니다(눅16과 고후12:1-4비교할 것). 첫 열매들은 십자가를 통해 마귀를 이기신 승리의 전리품이며, 노략물입니다. 골로새서 2:15에 정사들과 권능들을 노략했다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혼의 구속을 완성하셨기에 구약의 성도들이 더 이상 지하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정사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spoiled)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2:15). 신약 성도들 역시 몸이 죽으면 혼이 즉시 저 하늘로 올라 가게 됩니다. 교회 시대가 끝날 때에 주님이 오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3-18), 살아 있는 성도들은 그분과 같은 모양으로 변화되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11:26).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죽음을 잠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는 신약 성도의 부활에 대해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니](고전15:51,52).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소망하고 기다리는 소망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광스러운 소망, 복된 소망, 산 소망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일컬어 성경은 수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첫 번째 부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있을 죽은 자들의 부활이 한 번 더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1:11,12에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생명의 영께서 그들 속에 들어가시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더라. 이 두 대언자가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큰 음성이 나서, 이리로 올라 오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 이들은 환란 중에 죽은 성도의 부활과 휴거를 보여 줍니다. 두 증인은 환란 중에 죽었지만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 갔습니다. 요한 계시록 7장에서 우리는 144,000명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하심을 받아 이 땅에서 주의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계시록 14:1-3에서 하늘에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에는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없습니다. 산 자든 죽은 자이든 주님은 다 데려 가셨습니다. 첫째 부활은 3 가지 서로 다른 시점에 발생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첫째, 마태복음 27:52에서 발생 둘째, 주님께서 오실 때 마지막 나팔 소리(고전15:51,52), 셋째, 환란 성도의 부활 및 휴거(계11:11,12). 성경은 이 셋을 가리켜 첫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 바로 첫 번째 부활인 것입니다. 계시록 20:5,6절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리는 권능이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계20:5,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천년 동안 이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영적으로 거룩한 족속이며, 왕같은 제사장이지만 그 날에는 문자 그대로 이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주의 주, 왕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악인은 천년 왕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부활하지 못합니다. [이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을 행하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영벌(永罰)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죽은 자들의 부활이란 바로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석 앞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나오는 심판입니다. 여기서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영원히 불타는 불 못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한번 죽고 부활 한 후 심판을 받아서 또 한번 영원한 고통 가운데로 던져짐으로 또 한번 죽습니다.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이 바로 [죽은 자들의 부활]입니다.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5:28,29, [이 말에 놀라지 말라. 이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hour)가 오기 때문이니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영벌의 부활로 나오리라.]. 만약 여기서 "때"(hour)란 말이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부활은 이미 지난 2000년간 계속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25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hour)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요5:25)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때(hour)란 단어를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사용하셨습니다. “hour, day, season, time”이란 단어를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day에 관해서는 벧후3:8, 고후6:2, 요8:56참조). 누가복음 14:13,14을 보십시오. [잔치를 베풀거든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를 부르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지 못하므로 네게 복이 있으리니 이는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갚음을 받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 구절에서 첫 번째 부활에 대해서만 언급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2,23절은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요, 그 뒤에 끝이 오리니 곧 그분께서 모든 치리와 모든 권세와 권능을 폐하시고 왕국을 하나님 곧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때라.](고전15:22,23).

요한계시록 20:4-6은 두 부활에 대해서 다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신자의 부활과 그렇지 않는 악인의 부활에는 시간적 간격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 위에 앉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동안 통치하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니 이것은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이들을 다스리는 권능이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계20:4-6). 12-13절은 영벌에 이를 두 번째 부활에 대해 말해 줍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자기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고](12-13).

성경의 증언은 믿는 신자들의 몸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일으킴을 받고,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주님을 만나며, 불신자들보다 1000년 앞서 부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 말할 때는 항상 몸만 가리킨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몸을 떠난 영은 하나님께로 가며, 혼은 주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거나, 지옥에서 고통을 당합니다(빌1:23, 고후5:8, 눅16:22-23). 혼의 수면이나 의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실제적 중요성과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는 신자들이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선포해 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흘리신 피가 구속의 가치가 있음을 확증해 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우체국을 통해 물품을 보냈는데, 받았다는 답장이 안 온다면 우리는 매우 답답할 것입니다. 제대로 갔는지, 중간에 분실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분의 죽음이 정말 대속의 죽음인지, 우리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죽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음은 모두가 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심으로 죽음은 끝이 아니며,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을 때 죄는 사해지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주님의 말씀이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신 것은 주님의 승천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는데, 그 뒤에 아무런 소식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이 저 우주로 날아가셨는지, 어디서 실종되셨는지, 누구말대로 저 공중에 있다가 다시 히말라야 산으로 숨어 들어가셨는지 별의별 추측이 다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성령이 오심으로 주님은 저 하늘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주님의 죽음에 대해 천가지 만가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심으로 모든 입을 막고, 주님의 기록된 말씀만이 홀로 권위를 얻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주님의 능력을 선포해 줍니다. 부활의 능력은 존재하는 모든 능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주님은 병을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말씀으로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고,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보다 백배나 더 한 능력을 보여 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모진 고초를 받으시고 피를 흘려 죽으신 뒤에 성경대로 3일만에 다시 일어나신 것입니다. 부활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의 결정체요,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있게 드러나셨느니라.](롬1:4).

하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 부활의 능력을 공급하심으로 삶에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부활장이라 일컫는 고린도전서 15장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5:57,58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는 자가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니라.](고전15:57,58). 죽음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내 삶의 초석이며,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부활이 바로 나의 부활이란 사실을 믿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자신의 부활을 선포합니다. 고린도전서 15:22, [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라.](고전15:22). 우리는 모두 부활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부활의 권능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빌립보서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하여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모습이 되어](빌3:10).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의 매일의 삶 속에서 재현되고 체험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명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고행의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금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로 하여금 매일, 매순간 부활의 승리와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 가도록 하시기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주님의 십자가는 단회적인 사건이었지만 내가 질 십자가는 “날마다”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부활은 단회적 사건이었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부활은 매일입니다.” 이 명령에 가장 잘 순종해서 본을 보여 준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31에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기쁨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바울의 성령 충만한 삶과 그의 열매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고행의 길이 아니라 부활의 길입니다. 매일 십자가를 지는 삶은 겉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만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입니다(고후4:16). 부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은 마음 가운데 낙심, 낙담을 하지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절망을 승리로, 슬픔을 기쁨으로, 고난을 역전시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썩어 없어지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고후4:16).

그리스도인이 환란과 시련을 기뻐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통해서 진가를 발휘하는 부활의 권능을 직접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을 소유한 성도는 기쁨으로 모든 것을 맞이합니다. 마치 추위를 넉넉히 이기는 멋진 가죽 털옷을 사놓은 사람이 추위를 기다리는 것처럼, 부활의 권능은 고난을 기다립니다.

이 시간 부활에 대한 바른 조명을 얻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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