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16:1-36

요절: 출애굽기 16:4


광야의 이스라엘이 불평할
때 주님이 주신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표하고 있음을
함께 살펴 보았습니다. 만나는 주님이 백성들이 매일 먹어야
할 양식이었다면, 성경은 매일 우리가 먹어야 할 영적
음식입니다. 오늘은 만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책입니다.
시편 40:7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왔나이다.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이 이것이니
](시40:7) 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
](요5:39)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words of God)은 성육신하신 말씀(Word
of God)을 우리 안에 계시해 줍니다. 영국의 위대한 성경
교사였던 아더 핑크는 말하기를 ‘우리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신 그리스도를
먹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했습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는다면,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그리스도)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것입니다.
제임스 낙스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성경)으로 생겨난
믿음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믿음이다’라고 했는데 참으로 적절한 경구입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 모든 단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적용되어야 하며, 그렇게 이해해야만 합니다.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예표입니다. 주님은 광야의 만나에 대해서 친히
해석해 주셨는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빵을 준 것이 아니니라. 오직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빵을 주시나니 이는
하늘로부터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 곧 그가 하나님의
빵이기 때문이라.
](요6:32~33). 만나는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주신 것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빵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린 것으로
믿었는데, 주님은 그들의 오류를 단호히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 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빵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서리가 내리고, 우박이 내리고, 번개가 내리는 것은
보았지만 빵이 내리거나 불이 내리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빵을 내린 사건은 광야 생활 40년간 지속된
사건일 뿐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 빵이 내려왔습니다. 실업자들이 정부를 향해
우리에게 빵을 달라고 외치지만 주님이 주신 생명의 빵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합니다. 육신의 빵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도록 고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지만 거저 주시는 생명의 빵을 얻기 위해 주님
앞으로 나아오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육신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적인 것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거듭나지 않는 사람들은 눈이 멀고, 감각이
어두워져 몰라서 그렇다고 하지만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도무지 왜 그렇습니까? 육신의 빵을 얻기
위해 예배를 날려 버리는 사람은 육신의 빵을 얻지 못할
때에는 살인도 서슴지 않고 할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하는 성도란 점이 매우 기쁩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심지어 주일에도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빵을 얻기 위해 주님과 주님의 일을 버리고
교회를 버리는 사람이 빵을 얻기 위해 이웃은 버리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성실하다,
근면하다, 인간성 좋다! 그런 것은 단지 외모에 불과합니다.
그 성실함이 생명의 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빵을
얻는 것이라면 철저히 무시해도 좋습니다. [사람의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지 못하나니 이는 그 사람이 빵 한
조각을 위하여 범죄할 것임이라.
](잠28:21).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참된 빵, 생명의 빵을 매일 거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철저히 짓밟아 버리고, 무시해 버립니까?


어머니들, 자매님들을 잘
알 것입니다. 자신이 정성스레 차려 놓은 음식을 가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고, 다른 음식을 달라고 하거나, 무시할 때
다시 차려 주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의 빵을 거절하고 무시할 때 성령께서는 슬퍼하시며,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말씀의 빵을 주실 수 없을 것입니다.
만나는 언제 주어졌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불평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반역할 때였습니다. 자신들의 기대와 달리
망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은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을 쏟아 부으시는 대신 그들을 향해
하늘에서 만나를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이 땅에 오셨는가? 생각하게 합니다.
말라기 대언자 이후에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과 대언자가
사라진 가장 암흑기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쓸어 버리셨어도 아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깊은 죄악이 온
세상을 덮을 때 주님은 빛으로, 생명으로, 생명의 양식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만나가 내린 시기가 바로 우리 주님이
오신 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이런 주님의 은혜가
부어져야 할 시간이 아닙니까? 우리 교회는 지금 깊은
암흑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모두 각자의 삶에 바쁩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인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 나은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위로가
필요한 때입니까? 징계와 채찍이 필요한 때입니까? 만나가
내린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해야
하며, 우리의 죄악과 불신에 대해서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만나가 내린 곳은
광야였습니다(1). 우리 주님이 오신 곳은 말 구유였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린 빵은 이 땅의 어떤 유명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의 빵이신 주님은 구중
궁궐이 아니라 어느 여관의 방도 아닌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집을 짓지 않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주님의 오심과 생애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주님은 머리 둘 곳 조차 없이 사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후에는 남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광야의
이름이 신(Sin) 광야였다는 점이 놀랍기만 합니다. 이 세상은
정말 죄악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만나가 신(Sin)
광야에 내렸듯이, 죄없는 주님은 죄된 세상에 내려
오셨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 것같이
만나는 그렇게 광야에 내렸습니다. 아무도 살 수 없는
그곳에 내가 있다할지라도 그곳이 주님의 인도하신
결과였다면 주님은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광야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습니까? 샘을 팔 수 있습니까?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 나무 열매를 구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철저한 무력함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주님의 은혜와 능력, 보살핌을 가장 깊이
누릴 수 있습니다.


만나를 주실 때 광야에는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서 나타났습니다(10). 마찬가지로
주님을 주실 때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서 빛났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충만히
계시되었습니다. 이전까지와는 달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성품과 능력과 사랑과 긍휼을 다 내
보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하나님은
이제 구름 속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십니다.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
.](고후4:6).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신을 계시하시며, 영광을 드러내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이 땅에서 생산되거나 어떤 지역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이 땅의 많은 인물들
가운데 솟아난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늘에서부터
오셨습니다. [첫 사람은 흙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고전 15:47).
땅에서 난 사람들은 땅의 것을 먹고, 땅의 것에 애착을
갖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늘에서 나셨다면 하늘의
양식을 먹고, 하늘에 애착을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났다면 여러분의 본향은 저 하늘입니다. 이 땅에서 난
어떤 고급 요리도 여러분의 속 사람을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성령을 따라 순수한 말씀의
씨앗에서 났기 때문에 순수한 말씀 외에는 도무지 식성이
받아 주지를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갖가지
맛따라 멋따라 우리 몸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너는 악한 눈을 가진 자의 음식을 먹지 말고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내지 말지니
](잠23:6). [여러 가지
이상한 교리에 끌려 다니지 말지니 이는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함이 선한 일이요,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음식에
전념하는 자들에게 음식이 유익을 끼치지 못하였느니라
.
](히13:9).
우리는 다 같은 영적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고전10:3). 오늘날
성도들은 최소한 매주 2-3번은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세상이
그만큼 우리의 영적 건강을 약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형제들과 영적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하늘에서 난 사람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값없는 선물이었습니다(15). 하나님은 만나를 주시면서 어떤
값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갚으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만나는 무엇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대가성도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의 증표였으며,
선물이었습니다. 복음은 값없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값없이 주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구원은 공짜이지
싸구려가 아니다!고 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생명의 빵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고, 믿을 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代贖)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롬3:24).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9:15).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물인 만나로 살았듯이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들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마술사 시몬과 같은 부류입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돈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행8:20).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선물은 가장 필요할 때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주님은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아시며, 가난한 자에게
양식이 필요한 줄 아시고, 죄인들에게 구주가 필요한 줄
아십니다.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
.](빌4:19). 제 때에 만나를 주신 하나님께서
제 때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육신적인 필요가 넘친다고 영적인 필요가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필요가 채워진 성도는 육신적인
필요가 모자라 고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우선
순위를 분명하게 확립함으로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변에 곧 바로 내렸습니다. 그들은 만나를 구하기 위해
산과 강의 위협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13,14).
마찬가지로 생명의 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10:9-10에 [믿음에서 난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에서부터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깊음 속으로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이것은 그리스도를 다시
죽은 자들로부터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 말씀이(The Word)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6~8).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취할 수 있었듯이 세상의 죄인들은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만나는 거두지 않으면 짓밟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주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주님은 [나와 함께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널리
헤치는 자니라
.](마12:3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모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임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떻게 남의
집들이나 돌잔치나 모임에는 거뜬히 참석하는 사람들이
기도 모임과 예배에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성도들에게 성경관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교회관입니다. 신약
성경은 교회를 다룹니다. 교회의 말(마18:17)이 권위가
있습니다. 교회의 귀가 있습니다(행11:22).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의 전송을 받았습니다(행15:3). 그들은 사도들의 전송을
받았거나 몇몇 성도의 전송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교회입니다. 교회의 전송이 아니라면 그는 선교사가
아닙니다. 그는 그를 보내준 그 개인의 사역자일 뿐입니다.


한국인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자기 개인의 이름으로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곳
한인들은 경찰서에 기부를 해도 한인 커뮤너티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합니다. 유대인들이나 중국인들은
자기 돈을 내어도 자기 이름이 아닌 자기들의 커뮤너티
이름으로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힘이 있습니다.
뵈베는 교회의 종이었습니다(롬16:1,27). 디도는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았습니다(고후8:19). 어느 믿음 좋고 영적인 성도나
목사에게 택함 받았다면 그는 그 사람의 비서나 종에
불과합니다. 교회의 택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디도는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라고 불립니다(고후8:23). 사도 바울
역시 교회의 사역자였습니다(골1:25). 그가 만약 바나바의
인정만 받고 교회의 파송을 받지 못했다면 그의 사역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집단적으로 다룹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기도했다고 말하지 믿음
좋은 몇 몇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기도했습니다.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교회의 이름이
중요합니다. 모여야 교회입니다. 모이지 않으며 교회의
이름으로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 개개인이 모여
교회로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구제했고,
교회가 문안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침례교회가 기도해야
하고, 사역해야 하고, 파송해야 하고, 구제해야 하고, 다른
교회에 문안해야 합니다. 육적인 양식을 거두기 위해
여러분은 D.M도 발송하고 전화도 하고, 찾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양식을 거두기 위해서는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까?


만나는 각자가 거두어야
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각 사람이 자기가 먹을 만큼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대로 각 사람이 일 오멜씩
취하되 너희 각 사람이 자기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 하셨느니라.
](16). 남이 대신 거두어 줄 수
없습니다. 주님은 각자가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대신 믿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각
개개인이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요1:12). 그리스도의
복음은 믿는 각 사람(every one)에게 구원을 주는 능력입니다(롬1:16).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해 만나를 주신 것도
사실이지만 거두는 것은 각자의 몫이었듯이 주님이 세상
전체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믿는 것은 각
개개인의 책임이요, 몫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말하는 동시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만나는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이는 매일 거두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제 먹은 음식이 오늘에 합당하지 않고, 내일까지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눅11:3)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日用)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6:11)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가장
자주 실수하는 것이 매일(오늘)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오늘에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오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너희가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한 해
동안 머물며 사고 팔고 하여 이득을 얻으리라, 하나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
](약4:13-14).
기도는 오늘 해야 합니다. 성경은 오늘 읽어야 합니다. 오늘
먹어야 할 빵을 내일 먹을 수 없습니다. 선을 행하는 일도
오늘 해야 할 일입니다. [네게 /베풀/ 것이 있거든 네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고
](잠3:28).주님을 믿는 일 역시 오늘 해야 합니다.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이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잠27:1).


만나는 먹을 만큼 각
사람이 먹을 만큼 거둘 수 있습니다(16,17). 주님은 일 오멜씩
취하라고 하셨지만 더 먹고 싶은 사람은 더 거둘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부르도록 먹어야 먹은 것 같고,
어떤 사람은 배가 너무 부르면 머리도 둔해지고, 몸이
이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거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둔 사람도 있습니다. 식사량을 보면 그 사람의
식욕을 알 수 있습니다. 거두는 정도를 보면 그 사람의
식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자들에게 매우 귀한
교훈을 줍니다. 영적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며,
많이 먹으려 합니다. 주님은 그만 먹어라, 식충(食蟲)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81:10).
영적 욕구는 아무리 강해도 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빌3:14). 우리가 영적 양식을 제대로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그만큼
연약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 역시 약해질 것입니다.


만나는 어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습니다. 민수기 11:4-6에는 썩인 무리들이 만나에
대해서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나오지만
그리스도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만나를 먹으면서도 이집트에서의 음식이 더 좋았다고
말합니다. 노예 생활을 하며 먹는 음식이 맛이 좋을 리가
만무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값없이 먹는 달콤한
만나가 죽도록 고생하며 눈치보며 먹는 고기보다 맛이
없다고 말하는 족속들이 교회 내에는 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과 동화되거나 함께 앉아서는 안됩니다. 이런
자들을 통해 자신을 살피고 경계를 삼아야 합니다.


만나는 땅 위의 먼지 위가
아니라 이슬 위에 떨어졌습니다.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민11:9). 우리말로는
표현이 안 되어 있지만 영어 킹제임스 성경에는 ...fell upon it이라고
이슬 위에 내렸음을 가르쳐 줍니다. 먼지(dust)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 육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주님이
아담이 범죄했을 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하셨고, 우리를 진토라고 하셨는데 이 때 쓰인 단어가 모두
dust입니다. 만나는 이슬 위에 내렸습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결코 인간의
죄성에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분명
육신을 입으셨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히10:5). 그러나
땅의 먼지에 속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만나는 흰색이었습니다(16:31).
이는 주님의 순결성을 말씀해 줍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고후5:21). 주님을 죄를 알지도 못하셨습니다.
주님은 죄와 상관없으신 분이십니다(히4:15). 주님은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벧전2:22). 히브리서 7:26, [이는 이러한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셨기 때문이니 그분은
곧 거룩하시고 해가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신
분이시라
.], 예수 그리스도의 피 역시 순수한 피입니다.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1:19). 성도들은 이 피를 통해
정결하게 되며, 순수한 말씀을 통해 더러움을 씻어야 합니다.
육신의 어떤 양식도 마음을 맑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때로
피를 맑게 해주는 음식은 있지만 마음을 맑게 해주는 음식은
없습니다. 순수한 양심, 거짓없는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의 물,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안에 적용해야
합니다.


만나는 꿀 맛이었습니다(31).
주님은 달콤한 분이십니다. 솔로몬의 아가 2:3을 보십시오. [아들들
가운데 계신 나의 사랑하는 이는 숲의 나무들 가운데
사과나무 같으니 내가 그분의 그늘 아래 앉아 크게
기뻐하였고 그분의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아2:3).
주님을 따르는 길, 십자가의 길이 고행의 길만은 아닙니다.
겉 보기에는 그렇게 보여도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참된 평안과 자유의 길이요, 충만한
만족으로 넘쳤다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의 아가에 나오는
고백처럼 주님은 사과나무 같고 그분의 열매는 내 입에
답니다. 이는 어떤 호텔 요리로도 결코 채울 수 없는
맛입니다. 이 맛을 본 사람은 육신의 갈증이나 욕구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맛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분의 뺨은 향료
꽃밭 같고 향기로운 꽃들과도 같으며 그분의 입술은 백합
같아서 달콤한 냄새를 내는 몰약이 뚝뚝 떨어지는도다.
](아5:13),
[그분의 입은 지극히 달콤하니 참으로 그분은 모든 것이
사랑스럽도다. 오 예루살렘의 딸들아, 이분이 나의 사랑하는
이시요, 이분이 나의 친구시로다.
](아5:16).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달콤하며,
향기롭습니다. 이 맛을 보기 위해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묵상입니다. [내가 그분을 묵상함이
달콤하리니 내가 주를 즐거워하리로다.
](시104:34).


만나는 둥글고 구울 수
있었습니다. 만나의 요리 방법은 다양했습니다(민11:8). [백성이
두루 다니며 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며 납작한 판에 굽기도 하고 납작한 빵을
만들었더니 그 맛이 신선한 기름 맛 같았더라
](민11:8).
이는 주님의 고난을 잘 묘사한 것입니다. 만나가 맷돌에
갈리듯이 주님은 백성들의 완악한 마음과 불신으로
고뇌하셨고, 신음하셨고, 탄식하셨습니다. 만나가 절구에
찧기듯이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란 뜻이 ‘기름짜는 틀’이란
말인데, 주님은 만나가 절구에 찧기는 동일한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주님은 우셨고, 매 맞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요19:28) 외치실 때는 만나를 판에 굽듯이
지옥의 불길에 타는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혼은 세상의 모든 죄를 지고 지옥으로 가셨습니다. 만나가
주님을 얼마나 잘 예표하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나를 그렇게 먹었듯이 우리는 그런
주님을 양식으로 먹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는 몇 가지
특징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만나는 안식일에 썩지 않고
보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 따로 만나를
거두러 가지 않습니다. 안식일까지 만나는 썩지 않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이 되기 전에 죽으셨고, 안식일에 무덤에
보존되었지만 썩음을 보지 않았습니다(시16:10). 만나는 주
앞에서 보관되었습니다(33). 우리 주님 역시 곧 바로 하늘에
올라 가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셨습니다. 만나는 천사들의
음식이었습니다(시78:25). [사람이 천사의 음식을 먹었으며
그분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풍족히 보내셨도다.
](시78:25)
이는 주님이 인간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을 먹이시는
분이시란 사실을 말해 줍니다.


만나는 낮이 아니라 밤에
주어졌습니다. 밤은 사람들이 잠든 시간입니다. 잠든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오셨습니다. 다 함께 무익하고, 연약할 때 주님은
구원의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밤은 이 세상의 상태를
예표합니다. 주님은 밤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앞으로 만나를
다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
또 흰
돌을 주리니 이 돌에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이 돌을
받는 자 외에는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계2:17).
우리는 모두 이기는 자들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우리에게
있는 능력이나 지혜에 있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승리의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
만나를 먹었듯이 우리는 생명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은
생명의 빵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전15:57).
승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십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고후2:14).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
이니라.
](요일5:4). 성경은 믿음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창시자(저자)이십니다(히12:2). 성경과 주님에
의해 생성된 믿음으로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며, 주님
주시는 감추어진 만나를 먹게 됩니다. 다시 만나를 먹을 그
날을 소망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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