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이사야 9:1-12:6
요절: 이사야 9:6
이사야 9장은 7:14에 이어 다시 한번 메시야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등장합니다. 6-7절은 헨델의 메시야에 나오는 가사로도 유명한 구절입니다. 9:1은 8장의 연속으로서 유다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법을 버린데 대한 심판으로서 앗시리아가 유다 전역을 휩쓸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2절은 마태복음4:15-16절에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스불론 땅은 갈릴리 바다의 서쪽 지역이고, 납달리는 갈릴리 바다의 북쪽 지역입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배척된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에게 빛이 되셨습니다. 6-7절은 초림과 재림을 아우루는 예언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여 있고 그의 이름은 기묘라, 모사라, 강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는 아버지라,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임이라. 그의 정권과 화평이 번창하여 끝이 없으며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군림(君臨)하여 그 왕국을 정비(整備)하고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공의와 정의로 그것을 굳게 세우시리라. 만군의 [주]의 열심(熱心)이 이것을 이루리라.](6-7).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은 성육신을 말합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은 주님의 신성을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기묘, 모사,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입니다.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은 훗날 세워질 천년 왕국, 메시야 왕국을 말합니다. (다윗의 왕국-삼하3:10에서 세워지고, 왕상2:45에서 영원히 굳게 세워질 약속을 받고, 왕상9:5에서 언약이 체결되었으며, 누가복음 1:32에서 그 왕좌의 왕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증했다).
8절은 주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심으로 이들에게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다 알게 하셨습니다. 9-10절은 주님의 심판과 징계에 대해 겸손히 회개하는 대신 더욱 교만하게 행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벽돌이 무너지면 다듬은 돌로 다시 쌓고, 뽕나무들이 베임을 당하면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없이 인본주의 문화, 인본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강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10)란 말이 반복되고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을 쌓을 때 한 인간들의 말입니다(창11:4참조). 주님은 바벨탑을 흩어버리시고 그들을 심판하셨듯이 주님은 주변 국가들을 연합시켜 이스라엘을 치게하셨습니다(11-12). 전쟁은 이 땅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주님이 주로 사용하시는 심판은 전쟁, 기근, 역병입니다.
주님은 시리아, 블레셋 사람들을 동원하셨습니다(12). 시리아 사람들과 블레셋이 연합해서 앞뒤로 공격을 하며 이스라엘을 삼키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러나(but)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12b)는 말씀은 심판 중에서도 주님은 긍휼과 은혜를 거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5:25, 9:12,17,21, 10:4참조).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이는 이 백성이 자기를 치시는 이에게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주]를 찾지 아니하기 때문이로다](13). 이는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는 교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징계와 채찍과 책망과 여러 가지 권고의 말씀을 모두 거부하고 여전히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삽니다. 14-21절은 심판의 내용입니다. 유다가 당할 심판은 참으로 끔찍한 것입니다.
이 심판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15-16절은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올바른 인도를 받지 못하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3:12, 렘23:13, 호4:12, 미3:5). 17절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위선을 행하는 자요, 악을 행하는 자이며, 모든 입이 어리석음을 말하기 때문에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18-21절은 기근으로 인한 재앙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 살을 먹을 것입니다. [네 원수들이 너를 에워싸고 곤경에 빠뜨려 괴롭게 하므로 네가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네 아들딸 곧 네 몸의 열매의 살을 먹을 것이니라.](신28:53).
10장입니다. 주님은 ‘화있을진저,’(1)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불의한 법령을 포고하고, 자기들이 제정한 무거운 법을 기록하며](1). 이는 하나님의 법대신 자신들이 제정한 법을 더 우선함으로 범죄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우선할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은 하나님의 법을 무효화시키는 법을 제정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아는 이스라엘마저 그렇게 했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이런 예가 나옵니다(마15:16,막7:13 참조1)). 3절에 [너희를 벌하시는 날(the day of visitation)]은 환란, 천년 왕국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렘46:21,50:27참조, 호9:7,눅19:44,벧전2:12참조).
4절을 보십시오. [나 없이는 그들이 갇힌 자들 밑에서 몸을 구부리며 죽임 당한 자들 밑에서 쓰러질 따름이니라.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분의 손은 여전히 펼쳐져 있느니라.](4). 이스라엘은 주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5). 우리는 주님 없이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 없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도록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오 내 분노의 막대기 아시리아 사람이여, 그들의 손에 있는 지팡이는 내 격노니라.](5).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자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앗시리아를 사용하셔서 위선을 보이는 민족을 치게 하시고 주님을 진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노략하고 탈취하고, 거리의 진흙같이 짓밟게 하셨습니다(6). 그러나 앗시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시는 도구인줄 몰랐습니다. 7-11절은 하나님이 정하신 범위 이상으로 월권을 행하고자 마음을 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에 남왕국도 당연히 멸망시키려 했습니다(11).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12). 주님은 땅의 왕들을 마음대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왕의 마음이 [주]의 손 안에 있음이 마치 강물과 같으니 그분께서 친히 원하시는 곳으로 그것을 돌리시느니라.](잠21:1). 주님은 느부갓레살을 자신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5:9,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북쪽의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을 취하고 그들을 데려다가 이 땅과 그 거주민들과 주위의 이 모든 민족들을 치게 하고 그들을 진멸하여 그들로 하여금 놀랄 일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며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렘25:9).
앗시리아는 주님의 도구였지만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가 교만히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레살 역시 유대를 심판하는 주님의 도구였지만 70년 후에는 주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렘25:12). 5-19절 말씀은 역사적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예언적으로 볼 때 앗시리아는 적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주님은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를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그들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15-16절의 도끼와 톱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16-17절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범위를 보여 주십니다. 살진 자들과 그의 가시와 찔레가 바로 심판의 대상입니다. 주님은 소멸하시는 불로서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십니다(히12:29, 계20:9-불로서 원수들을 멸하심). 18-19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것이 핵 전쟁의 결과가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 만에 다 태워 버리신다면 현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핵이나 생화학 무기가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싸우는 모든 백성에게 [주]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그들이 발로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어 없어지고 그들의 눈이 눈구멍 속에서 썩어 없어지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어 없어질 것이요,](슥14:12).
20-23절은 심판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20)과 야곱의 남은 자들(21)은 주님을 의지하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11장입니다. 11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을 세우시는 영광스런 장면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1절은 이미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막대기와 그의 뿌리에서 나온 한 가지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뿌리를 가지고 있듯이 적 그리스도 역시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밑에서는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에서는 그의 가지가 꺾일 것이며](욥18:16).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온 블레셋이여! 너를 치던 자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이는 뱀의 뿌리에서 독사가 나오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될 것임이라.](사14:29). 모든 면에서 그러하듯이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대로 모방하고 흉내냅니다.
4:2에는 주의 가지로, 예레미야 23:5에서는 ‘의로운 가지’로, 스가랴 3:8에서는 ‘그의 이름이 가지인 사람’으로, 스가랴 6:12에는 ‘의로운 가지’로 나옵니다. 히브리어로 가지란 말은 netzer입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나사렛(the Nazarene) 사람이라 불리는 기원이 됩니다. 사복음서는 바로 4가지 다른 모습의 가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술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2절에 [주]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말인데 일곱 가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아버지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영을 지니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지혜의 영을 가지셨습니다. 잠언은 주님이 지혜임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주님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노라(눅11:31)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명철의 영, 즉 지각의 영을 소유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지각을 열어 주셨습니다(눅24:45). [이에 그들의 지각(知覺)을 여사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눅24:45, 엡1:18참조). 모략의 영은 잠언 8:14을 참고하십시오. [계략과 건전한 지혜가 내 것이니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잠8:14). 능력의 영은 성경 어디에 언급되어 있는지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식의 영, 주를 두려워 하는 영은 성경 곳곳에 나오는데 특히 잠언에 많이 등장합니다.
4절부터 우리는 영광스런 천년 왕국, 의의 왕국, 메시야 왕국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의 저주가 풀립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인간의 다스림을 받던 모든 영역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천년 왕국때 동물들은 다시 초식 동물로 돌아가고, 에덴의 동산에서와 같이 회복될 것입니다. [이는 피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것임이라.](롬8:21).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때에도 뱀에게 내려진 저주는 거두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창세기 3:14에서 주님은 뱀에게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명하셨습니다. 뱀이 흙을 먹게된 것은 저주의 결과였습니다. 이사야 65:25을 보면 여전히 뱀은 흙을 먹습니다.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흙이 뱀의 양식이 될 것이니 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해치거나 상하게 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사66:25).
이보다 더 큰 변화는 주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할 것입니다. 하박국 2:14,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할 것임이라.](합2:14).
10절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와서 경배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49:22절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방인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백성을 향하여 내 군기를 세우리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팔로 안아 데려올 것이요,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사49:22). 이스라엘은 열방의 머리로 우뚝 솟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유대 민족주의를 찬앙햐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을 통해, 야곱을 통해 대대로 말씀해 주신 예언의 말씀이요, 약속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는 곧 성경의 역사이며, 예언의 시계입니다. 온 세계가 유대인들과 화해하고, 그들에게 가는 날이 바로 주님의 재림과 함께 시작됩니다. 스가랴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모든 민족들 중에서 /살아/ 남은 모든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곧 만군의 [주]께 경배하며 장막절을 지키리라.](슥14:16).
11-12절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회복을 보여 줍니다. 13절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하나가 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북 왕국과 남 왕국 사이의 감정이 모두 풀릴 것입니다. 약속의 땅 주변에 전쟁이 전혀 없고, 평화로울 것이며, 분쟁이 사라질 것입니다(14). 15절은 홍해가 말랐듯이 유프라테스 강이 말라서 유대인들의 귀환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임을 말해 줍니다. 16절은 앗시리아 지역에 남아 있다 돌아오는 자들을 위해 큰 길을 만드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길이 출애굽의 여정과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백성 가운데 남은 자들 곧 아시리아에 남아 있다가 돌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큰길이 생기리니 이것은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에 있었던 것과 같으리라.](16). 출애굽의 여정에서 이스라엘은 왕의 대로를 걸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왕의 대로란 주님께서 걸을 길 이름입니다. 민수기 20:17,21:22절을 참고할 것.2)
12장입니다. 12장은 이사야에서 가장 짧은 장에 속할 것입니다. 이곳은 천년 왕국 때에 다스릴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4절에 ‘그날에’라고 말함으로써 이것이 천년 왕국의 이야기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에는 5번에 걸쳐 “그분의 분노는 돌아서지 아니하며”(5:25, 9;12,17,21,10:4)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오 [주]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분노를 돌이키시고 또 주께서 나를 위로하시오니 내가 주를 찬양하리이다, 할 것이니라.](1). 주님은 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이 표현은 이곳에만 등장하는 성경의 유일한 표현입니다. 주님은 분노를 돌이키시고 위로를 베푸십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참으로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시나이다.](시23:4)고 노래한 부분과 일치합니다.
2절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구절입니다. 이곳은 『주 여호와』란 표현으로 인해 킹제임스 성경이 주로 공격받는 구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로다. 내가 /그분을/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 [여호와]께서 나의 능력이시며 나의 노래이시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또한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2). 주(LORD)가 바로 여호와를 번역한 것인데 또 여호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음역한 것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에 순수하게 여호와(JEHOVAH)란 말이 있는 구절은 출애굽기 6:3, 시편83:18, 이사야12:2, 이사야 64:4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이레(창22:14), 여호와닛시(출17:15), 여호와샬롬(삿6:24)과 같이 합성어로 사용된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6:3에서 최초로 “여호와”란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 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엘로힘)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히브리어 표기 |
히브리어 발음 |
영어 KJV |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
개역한글판성경 |
아도나이 엘로힘 ① YHWH + e o a ② YHWH + e o i |
아도나이 엘로힘 아도나이 아도나이 |
Lord God LORD GOD |
주 (고딕) 하나님 (고딕) 주 (진한고딕) 하나님 (진한고딕) |
주 하나님 여호와 여호와 |
그렇다면 발음은 같고 글자만 다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소문자로 구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정확하게 대 소문자로 이것을 구분함으로써 표기는 다르지만 발음은 같도록 한 것입니다. LORD와 Lord는 들을 때 같은 소리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같은 분으로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LORD로 표기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Lord로 표기해도 들을 때 같은 발음이기 때문에 같은 분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삼위일체를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십니다. [이는 /주께서/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이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셨음이라. 이르시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Lord}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行路)를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마3:3). 그러나 이 구절의 출처인 이사야 40:3에는 “너희는 주(LORD)의 길을 예비하라”고 말합니다. 이 때 주와 주는 발음이 같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LORD가 아니신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주(LORD)란 사실은 요한계시록 19:16에 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니, [왕들의 왕, 주들의 주], 라 하였더라.]
여호와와 주에 관련된 몇 개의 성경 구절들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43:11을 보면 [나 곧 나는 [주]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나, 주, 구원자는 동격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주란 단어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읽게되면 여호와가 구원자이고 예수님은 무엇이 됩니까? 예수님이 여호와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 구절은 너무나 좋은 변명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같은 [주]로 읽게 되면 그런 변명과 사적인 해석이 끼어들 틈이 없어집니다. 이사야 45:21을 보십시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의로운 하나님이며 구원자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의로운 하나님이 바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마음 속에 새겨지게 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본문을 읽을 때 본문 속에 있는 말씀이 내 기억 속의 장치를 자극하여 올바른 믿음이 생성되도록 자극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의 위대한 점은 성경을 읽을 때 성경 속의 어휘들이 다른 관련 구절들을 기억나도록 자극하고, 그 정보에 match 시켜 줌으로써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진리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사야를 읽을 때 요한 복음에 기록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란 말씀이 자연스럽게 마음과 머리 가운데 새겨집니다. 이런 작용은 성경이 스스로 하는 작업이며, 성령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주라고 믿는 것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는 주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을 때 구원은 없습니다. [이는 비록 하늘이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어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으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고전8:5,6).-,킹제임스 성경에서만 발견되는 진리들>에서 발췌, 말씀침례 교회.
3절의 ‘구원의 우물’은 천년 왕국 때의 우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을 받음으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지니고 있습니다(요4:14).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것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요7:38). 잠언 10:11에서 “의로운 자의 입은 생명 샘이로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의 우물은 구약도 신약도 아닌 분명히 천년 왕국 때의 일입니다. 환란을 통과한 성도들이 값없이 마실 수 있는 물입니다. [이는 왕좌 한가운데 계시는 어린양께서 그들을 먹이시며 생명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임이라, 하더라.](계7:17).
4-6절은 그날에 부르게 될 위대한 찬양입니다. [또 그 날에 너희가 말하기를, [주]를 찬양하라. 그분의 이름을 부르라. 그분께서 행하신 일을 백성 가운데 밝히 알리라. 그분의 이름이 높임을 받았다 말하라. [주]께 노래할지니 이는 그분께서 뛰어난 일들을 행하셨음이라. 이것이 온 땅에 알려졌느니라. 시온의 거주민아, 너는 소리 높여 외칠지니 이는 네 한가운데 계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이니라, 할 것이니라.](4-6).
이것은 승리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분’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행3:14). [너희가 거룩하신 분 곧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달라고 구하여](행3:14). 그러나 이제 거룩하신 분을 소리 높여 외치며, ‘위대하시다’고 찬양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LORD),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네 한 가운데 계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심을 보여 줍니다. 마태복음 18:20참조할 것. [이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그들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니라](마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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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15: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아도 /의무를/ 면제받으리라, 하여 너희 전통으로 이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효가 되게 하였음이로다. 막7:13- 너희의 전해 내려온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가 되게 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기 때문이니라, 하시더라.
2) 민20:17 원하건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이나 포도원을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며 우리가 왕의 큰길로만 가고 당신의 경계를 지나가기까지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 하라, 하였더니 //민21:22 나로 하여금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地境)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가리이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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