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예레미야 17:1-10
요절: 예레미야 17:9-10
예레미야 17장은 유다의
극심한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간략한
개요를 살펴보면 1-4절은 죄의 기록, 5-11은 사람들 앞에 둔
하나님의 복과 저주, 12-18은 예레미야의 기도와 경배, 19-27절은
안식일을 범한 죄와 경고로 되어 있습니다.
1절입니다. [유다의 죄는
철필과 금강석 촉(鏃)으로 기록되었으며 그들의 마음 판과
너희 제단 뿔에 새겨졌나니](1). 사람들은 자신이 짓는
죄에 대해서 그 심각성, 중대성, 위험성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죄를 그냥 짓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
기록되고 새겨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판석에서 견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기억하시고, 기록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으니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로 인하여
심판을 받으니](계20:12). 하나님이 책들에 기록한 모든
내용은 자신의 마음 판에 기록된 것과 정확히 일치할
것입니다. 자백과 회개함을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죄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
모릅니다. 무엇으로 죄를 씻습니까?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말씀의 물로 씻어 깨끗하게 됩니다. [이제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깨끗하게 되었으니](요15:3).
하나님은 유다의 죄를
철필과 금강석 촉으로 기록하셨는데, 그들의 마음 판에
기록하셨고, 그들이 찾아오는 성전 제단 뿔에 새기셨습니다.
제단 뿔은 4곳에 있었습니다(출27:2). 제단 뿔은 밧줄로
희생물을 묶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주]시로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빛을 보이셨으니 밧줄로 희생물을 제단 뿔들에
맬지어다.](시118:27). 그러나 유다는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서 드려지는 희생물을 드리지 않음으로써, 그
뿔들에 죄가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도리어 죄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예입니다. 욥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 영원토록
새겨진다면 좋겠구나!”(욥19:24)라고 했는데, 죄는 그보다
우리의 양심, 마음 판에 새겨집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없이
죄를 범한 이방인들은 그 양심에 모든 것이 기록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거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
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느니라.)](롬2:15).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마음 판에 기록하시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기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긍휼과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들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잠3:3), 성경은
말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들을 지키며 내 명령들을 네게
쌓아 두라. 내 명령들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그것들을 네 손가락에 묶으며 네 마음판에 기록하라.](잠7:1-3).
이는 마음 속에 말씀이 들어 있고, 마음 판에 말씀을 새길
때에 안전한 까닭입니다. 시편 기자가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에 따라 자기 길을
조심할 따름이니이다.](시119: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유일한 안전책입니다.
2절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높은 산들 위 푸른 나무들 곁에 있는 그들의
제단들과 그들의 작은 숲들을 기억하는도다.](2). 유다는
하나님의 성전 제단대신 자신들의 제단들을 기억했으며,
작은 숲들을 기억했습니다. 작은 숲이란 우상 숭배의
장소입니다. 주님은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위하여 쌓은
제단 곁에 어떤 나무로든지 작은 숲을 심지 말라](신16:21)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지런히 산들마다 제단을
쌓고 작은 숲을 만들었습니다.
3절입니다. [오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내가 너의 온 지경(地境) 내에서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또 죄를 짓기 위한 네 산당들을 노략물로
내어 주리니](3). 하나님은 이들의 죄에 대해 심판을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너’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네 재산, 네 모든 보물, 죄를 짓기 위한 네 산당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철저히 버리고 자신의 것만 챙긴
결과가 무엇입니까? 죄된 삶이요, 심판으로 인한
멸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지 않을 때 사람은
범죄하게 되며, 모두 노략물로 넘어가게 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 때 하나님은 성도들의
재산과 보물과 죄를 짓기 위해 만든 무엇들을 모두 노략물로
내어 주심으로 손해를 입게 하십니다. 때로는 병원에,
때로는 강도와 도둑들에게, 때로는 사기 당함으로써, 때로는
사고로 그렇게 넘어 가 버리고 맙니다. 이것은 모두 죄로
인한 것입니다. [네 모든 죄로 인하여 내가 네 온 지경(地境)
내에 있는 네 재물과 보물을 값없이 노략물로 내어 주리라.](렘15:13).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준 네 유산으로부터 너 곧 네가 끊어지리라.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들을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분노에 불을 붙여 영원히 타오르게
하였음이라.](4). 하나님이 주신 특권, 하나님이 주신 복,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유다는 이제
끊어지고, 낯선 땅으로 끌려가 원수들을 섬기게 됩니다. 빛(light)을
거부하면 번개(lightening)가 되고, 은혜를 거부하면 저주가
되고, 말씀(word)을 거부하면 칼(sword)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자신의 정욕으로 쓰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헛되이 낭비할 때 하나님은 징계를 내리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사람을 신뢰하며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주]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5).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게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성경학자인 메튜헨리는 “인간을
믿는 자는 앙상한 나무이자, 볼품없는 관목, 황무지의
산물인 사막의 히이드(heath)처럼 쓸모 없고 가치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를 신뢰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주]를 신뢰함이 통치자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118:8). 이 말씀은 불신 사회를
조장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버리고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 저주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형제들 간에 진리와 사랑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가
쌓이는 일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상호 동맹을 맺고, 조약을 맺고, 상호 신뢰를
쌓아 보아야 위기의 순간에는 배신과 실망으로 치를 떨게
되는 아픔만 맛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너희는 친구를 신뢰하지 말고 안내자를
신임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들을
지킬지어다.](미7:5).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전혀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고후1:9).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란 말은 자신들의 의와 능력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육신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것이 허약해 보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같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에
대해서 회의를 품습니다. 반면 눈에 보이는 연약한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습니다. 육체가 무엇입니까?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사40:6)라고
말씀합니다. 육체는 전혀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돈만 있어도 그 돈을 믿고, 약간의 권력이 있으며
거기에 기대려하고, 약간의 연줄만 있으면 거기에 메 달리려
하고,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 갖은 꾀를 다 부리는 것이
사람의 속성입니다. 몸이 건강하면 그것이 밑천이라며
몸으로 때우려 듭니다. 하지만 육체는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자라고 해봐야 그것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재력은 엄청난
힘이 있어 보여도 실제로 그런 큰 위력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1:10-11, [부유한 자는 자기가 낮아진 것을
기뻐할지니 그 까닭은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 이는 해가 돋아 뜨거운 열기로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아름다운 모습이 없어지기 때문이니 부유한
사람도 자기 길에서 이와 같이 사라지리라.](약1:10-11).
대환란 때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유다의 귀족들과
부자들은 느부갓네살에게 먼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전쟁이 나면 부자들은 1차 표적이 됩니다. 노아의 날에, 롯의
날에 부자들이라고 심판을 면제받은 것이 아니듯 대환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지도 말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게 하며](딤전6:17).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는 사람은 풀을 뜯어 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기 때문이라.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1:24)란 말씀 그대로입니다.
성도들은 특히 육체를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는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이기
때문이라.](빌3:3)고 했습니다.
‘마음이 [주]께서 떠난
사람’은 당연히 저주를 받습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해,
혼을 다해, 성품을 다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셨습니다(신6:5).
주님과 밀착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주께서 떠난 사람은
둥지를 떠난 새나 물을 떠난 고기나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면 뿌리가 뽑힌
풀처럼, 잘려나간 가지처럼 급격히 시듭니다. 성경은
반복적으로 주 하나님을 굳게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0:20,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며 또 그분을 굳게 붙들라. 이는 그분이 네
생명이시요, 또 네 날들을 길게 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니
이로써 네가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거하리라.](신30:20). 여후수아는
이스라엘의 살 길은 이것 하나 뿐임을 알았습니다. [부지런히
주의를 기울여서 [주]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모든
길로 걸으며 그분의 명령을 지키고 그분을 굳게 붙들며 너희
마음을 다하고 너희 혼을 다하여 그분을 섬길지니라, 하고](수22:5).
[오직 [주] 너희 하나님을 굳게 붙들기를 너희가 이 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수23:8). 그러나 그들은 곧
주님께로부터 물러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과
밀착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밀착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훈계는 네 생명인즉 그것을
굳게 붙잡으며 그것을 놓치지 말고 지키라.](잠4:13). 룻이
나오미를 붙들듯이(룻1:14) 그렇게 붙들어야 합니다.
마음이 주께로부터 떠나면
몸은 급격히 죄로 기울게 되며, 주님의 불같은 진노와
저주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하는데 무엇을 붙들면 되는지 함께 살펴 봅시다.
① 선한 것을 붙들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5:21).
악한 것, 더러운 것들에는 손도 대지 말고, 이야기도 하지
마십시오. 불경건한 것들과는 함께 앉지도 걷지도 마십시오.
마음이 주께로 밀착하면 악을 미워하고 선을 붙들게 됩니다.
② 건전한 말씀의 틀을
붙들라. [너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내게 들은 그 건전한 말씀들의 틀을 굳게 붙들고](딤후1:13).
이상한 교리들에 마음이 끌리지 말고, 건전한 말씀의 틀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③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라. [가르침을 받은 대로 신실한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리니 이로써 그가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건전한 교리로 능히 권면하고 확신시킬 수 있으리라.](딛1:9).
④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굳게 붙들라.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는 그분의 집이라.](히3:6).
⑤ 처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굳게 붙들라. [이는 우리가 처음에 가진 확신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될 것임이라.](히3:14).
첫 사랑을 끝까지 붙들고, 처음 배웠던 성경적 신앙을
유지하십시오.
⑥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을 굳게 붙들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이 계시니 하늘들 안으로 지나가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라.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을 굳게
붙들지어다.](히4:14).
⑦ 내 이름을 굳게 붙들라.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어디에 거하는지를 아노니
곧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그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계2:13).
⑧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굳게 붙들라. [다만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계2:25).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왕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
마음이 주께로부터 떠나지
않고 그분을 붙잡으면 저주대신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됩니다.
타락하지 않고, 속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6절입니다. [이는 그가
사막의 히스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할
것임이니 오직 그는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거하지 않는
메마른 곳에 거하리라.](6). 이는 마음이 주께로부터 떠난
결과입니다. 사막의 히스 나무란 살기 어려운 척박한
환경에서 겨우 겨우 살아가는 처참한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땅에서 사막으로,
광야와 소금 땅과 메마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자신이 마치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5절에 나온대로
사람을 신뢰하거나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았거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난 것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환경이 어렵더라도 마음은 성령의 기름 부음이 넘쳐야 하며,
평안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저주받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7-8절입니다.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7-8).
5-6절과 7-8절은 선명한 대조와 대비를 통해 성경을 읽는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성경은 사람이 주를
신뢰하면 어떤 복이 임하는지 상세하게 보여 줍니다. 주를
신뢰하면 흔들리지 않습니다(시21:7). 주를 신뢰하면
타락하지 않습니다(시26:1). 주를 신뢰하면 긍휼이
에워쌉니다(시32:10). 주를 신뢰하면 양식을 먹습니다(시37:3).
주를 신뢰하면 복이 있습니다(시40:4,시2:12). [오 /너희는/ [주]의
선하심을 맛보고 알지어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34:8). 주를 신뢰하면 마음이 확정됩니다(시112:7).
주를 신뢰하면 주님은 도움이시오, 방패가 됩니다(시115:9-11).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분을
신뢰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분을 찬양하리로다.](시28:7).
주를 신뢰하면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시125:1). 주를 신뢰하면 행복합니다(잠16:20).
주를 신뢰하면 기름지게 됩니다(잠28:25). 주를 신뢰하면
황폐하게 되지 않습니다. [[주]께서 자기 종들의 혼을 구속(救贖)하시나니
그분을 신뢰하는 자는 아무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시34:22).
주를 신뢰하면 안전하게 됩니다(잠29:25). [[주]께서 그들을
도우시며 건지실 것이요, 사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건져
구원하시리니 그 까닭은 그들이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이니이다.](시37:40).
주님을 신뢰하면 기도
응답이 있습니다(대상5:20). [/주께/ 도우심을 입었으므로
하갈 족속과 그들과 함께한 자들이 다 그들의 손에
넘어갔으니 이는 그들이 싸울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분을 신뢰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구를
들으셨음이라.](대상5:20). 주를 신뢰하면 영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그분은 나의 선(善)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시니
내가 그분을 신뢰하므로 그분께서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시는도다.](시144:2).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어떤 직분의
권위는 주님을 신뢰할 때 주님 역시 우리의 권위 아래있어야
할 사람들을 복종하게 해 주십니다. 이런 이유로 욥은 고난
가운데서도 고백하기를,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오직 나는 그분 앞에서 내
자신의 길들을 그대로 지키리라.](욥13:15)고 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다윗은 권면하기를,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시62:8)고
했습니다.
7-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가
물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그 뿌리를 강가에 뻗치고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그 잎이 푸르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할 것임이라.](7-8).
무엇보다도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둘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끊임없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위가 오고, 가뭄이 와도 아무 걱정이 없이
열매맺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실수가 열매를
맺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도는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이
뿌려져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열매맺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23). 이런 엄청난 배 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땅 즉 마음 밭이 좋아야 합니다.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두는 마음 그것이 바로 말씀을 받아
많은 열매를 내는 가장 좋은 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두는 것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5). 주님 안에
거할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사시사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바로 주를 신뢰하는 것이며, 주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갈5:22-23에는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존재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은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열매를
맺기를 기도했습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 그의
바라는 것은 풍성한 열매였습니다. [내가 선물을 바라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회계장부에 열매가 풍성하기를 바랄
뿐이라.](빌4:17). 열매없는 채소나 나무를 키우는
농부보다 더 서글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땀 흘려
일했는데, 열매는 없고 쭉정이만 가득한 벼나 보리, 그런
논밭을 보는 것은 미칠 노릇입니다. 열매가 가득할 때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11). 징계를 받는 것도 열매를
맺기 위함이요(히12:11), 선한 일을 하는 것도 열매없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함이며(딛3:14), 씨를 뿌리는 것도 열매를 거두기
위함이며, 찬양의 희생을 드림도 우리 입술의 열매를 위한
것입니다(히13:15). 이 모든 열매를 어떤 환경에서도 맺을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고 각 사람의 길과 각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각
사람에게 베푸느니라.](9-10). 이 말씀은 인간의 마음은
본래 선한다든가, 백지 상태여서 교육과 환경을 통해서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엎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성악설입니다. 주님은 [...이는 사람이 마음에서 상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라....](창8:21)고
증거하셨습니다. 마음은 모든 죄악의 창고요, 원천지와
같으며, 뿌리입니다. [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증거,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니](마15:19). 다윗은 고백하기를, [보소서, 내가
불법 중에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수태(受胎)하였나이다.](시51:5)라고
했고, [누가 정결한 것을 부정한 것 가운데서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욥14:4), [사람이
무엇이기에 깨끗하겠느냐?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무엇이기에 의롭겠느냐?](욥15:14)고 했습니다. 모두
타고난 죄성에 대한 깊은 자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나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깨끗한 영을 창조해 주셔야 합니다. 다윗이 기도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라고 했는데, 핵심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의 변화없는 외적
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
새로움은 전혀 새로움이 아닙니다. 마음이 깨끗함을 입는
간단한 방법은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15:9에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사...](행15: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10:22).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마음은 깨끗해 집니다. 영이 거듭나야만
해결됩니다. [또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너희에게 살같이 /연한/ 마음을 줄것이며](겔33:26).
주님은 유다의 우상
숭배와 같은 외적인 죄에 대한 근본 원인이 바로 그들의
마음이 사악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음이
주께로부터 떠났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사악함으로
더럽혀졌습니다. 주님은 마음을 살피시고, 속 중심의 생각을
시험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는 하늘 곧 주의 거처에서
들으시고 용서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의
길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이는 주만 홀로 모든
사람의 자녀들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이니이다.)](왕상8:39).
이 말씀에 따라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동안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이나 수군거리시는 것, 그들의 생각들을 다 아심으로
자신이 구약이 증거하는 주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마9:5,
12:15, 12:25, 16:8), “예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마22:18),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아시고..."(막2:8)란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이는 주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입증하신 것입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섬길지어다. 이는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니 네가 만일 그분을 찾으면 만날 것이로되 네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대상28:9).
주님은 아실 뿐만 시험하시기도 하십니다. [오 사악한
자의 사악함을 끝내시고 오직 의로운 자를 굳게 세우소서.
이는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마음과 속 중심을 시험하시기
때문이니이다.](시7:9). [그러하오나, 오
의로운 자를 시험하사 속 중심과 마음을 보시는 만군의 [주]여,
내가 주께 내 사정을 드러내었사오니 주께서 그들에게
원수갚으심을 내가 보게 하옵소서](렘20:12). 오늘날
우리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늘 내주하시고
계심으로 우리의 속 중심은 완전히 드러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를 살펴보신
내용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동기와 숨은 의도, 마음의
계획들을 말씀 앞에 다 드러나게 해 하심으로 회개할 것들은
회개하고 중심을 바로 잡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역할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권능이 있어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骨髓)를 찔러 나누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피조물이 하나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in his sight/ its가
아님에 주목)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성경은 거울과 같아서 우리의 속을 다 비추어 줍니다.
말씀은 빛입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며, 다 드러나게 해
줍니다. 우리 자신을 성경의 조명 아래 둔다면 어둠 속을
걷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