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우리가 지켜야 할 것

말씀: 잠4:23
요절: 잠4:23

성경 암송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좋은 시나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고 싶고, 가사라도 구해서 외우고 싶습니다. 이것은 본능입니다. 좋아하지 않아도 중요한 것이라면, 가치있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읽고 외우려고 할 것입니다. 이 역시 사람의 자연스런 성품입니다. 저는 한 시를 몇 백편 외우고 있는 몇 분을 알고 있습니다. 몇 권의 시집을 외운 사람도 보았습니다. 왜 외웁니까?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사랑하면 성경을 읽고 외우는 것이 부담이나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詩)가 아무리 아름답고 교훈이 있고 좋다 해도 다윗의 시편과 비교하겠으며, 솔로몬의 잠언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성경의 귀한 구절들을 암송할 때 우리 마음은 교양과 지성이 풍성해 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말씀의 기름부음이 풍성해지며, 은혜와 진리가 풍성해지고, 성령이 충만해 지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왜 성경을 외우느냐? 제 자신을 위해서도 외우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 귀한 진리의 지식과 영적 보화들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외웁니다. 누군가에게 답변해 주고자 외웁니다. 무엇보다 말씀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외웁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 알고 깨달은 사람,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누어주고, 가르쳐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빚진 마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신자가 성경을 암송하는 것은 귀한 특권임을 기억하십시오. 특권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유익을 주지 않습니다.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들은 그 권리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성경 암송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지키는 것이요, 그 마음에 지킨 말씀의 모든 복과 유익을 향유하는 특권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말씀을 지키시며, 그 말씀으로 낳으신 자녀들 역시 마음속에 말씀을 간직하고, 굳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지킵니까? 자신의 소유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지킬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려고 합니다. 생명이 빼앗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엇보다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지켜야 할 것은 재산이나 집이나 내 직장이나 금고, 내 자식이나 아내가 아닙니다. 맘몬이란 재물의 신을 이기고 극복한 그리스도인들은 혈과 육의 정으로 뭉친 가족주의란 우상을 이기고 극복해야 합니다. 재물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신뢰하는 자는 우상 숭배자입니다. 가족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족주의는 우상 숭배입니다. 사람의 혼은 천하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본주의는 지독한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잠4:23)고 하셨습니다. 무엇인가에, 누군가에게 정신을 빼앗긴 사람은 이미 다 빼앗긴 것입니다. 마귀는 혼들을 빼앗고, 사로잡는 사냥꾼입니다. 거짓 대언자, 거짓 교사들은 모두 혼들을 빼앗고, 도적질하는 이리들입니다.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텅 비워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비우면 마귀가 들어옵니다. 명상, 마인드 콘트롤, 요가, 단, 선, 자기 암시, 최면술 등은 모두 자신의 마음을 비움으로써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귀들을 불러들입니다. 말씀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구하나 찾지 못하므로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거늘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눅11:24~26). 부정한 영이 어디서 나옵니까?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의 몸은 악령의 처소이든 성령의 처소이든 둘 중의 하나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몸을 ‘내 집’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종교를 수행하면 더 사악한 악령들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풍부히 거하게 하라고 하십니다(골3:16). 성령으로 충만히 채우라고 하십니다(엡5:18). 텅 빈 마음을 왜 지킵니까? 이는 빈 창고를 지키는 경비병이나 다름없습니다. 빈 무덤을 헛되이 지키는 병사들의 모습이 얼마나 웃깁니까?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말씀을 채우지 않고, 엉뚱한 마음을 채우고 있다면 주님께서 지키라고 하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속에 정금보다 귀하고, 일용할 양식보다 귀하며, 노략물 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때 우리는 그것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마귀들이 말씀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막4:15).

믿는 성도들의 마음 안에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들어 있습니다.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그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그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성령도 없다면 지킬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마음속에 받은 바,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이 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 암송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텅빈 창고가 아니라 악한 창고가 됩니다. 더럽게 변합니다. 그리고 부패해 버립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께서 마음의 창고를 깨끗하게 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더러워진 마음을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말씀의 물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도록, 때로는 불같은 시련으로 깨끗하게 단련하여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또 주님께 구하십시오. 마음속이 텅 비어서 지킬래야 지킬 것이 없는 사람들은 지킬 보화들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마음에 보화를 쌓아 두십시오. 마음은 창고입니다(마12:35, 눅6:45). 선한보고(寶庫)이든 악한보고(寶庫)이든 간에 사람의 마음은 창고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온갖 좋은 것들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약:17),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는 하나님(눅11:13)께 구하십시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이 위에서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약1:17). 위로부터 받은 좋은 선물들을 잘 지키십시오. 악한 자들에게 빼앗기지 마십시오. 에서같이 장자권과 복을 빼앗기고, 삼손같이 힘을 빼앗기고, 이스라엘처럼 언약궤를 빼앗기고, 사울이나 솔로몬처럼 왕국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신실한 청지기처럼 잘 지켜서 주님의 뜻대로 풍성히 나누어 주십시오.

주님이 지키라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마음과 생각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을 모두 빼앗긴 사람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가식일 뿐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열심을 다하여 네 마음을 지키라. 이는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니라.](잠4:23). 마음에 무엇이 있기에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옵니까? 이는 철학과 세상 종교에서 가르치는 마음이 곧 부처란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 소우주며,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일체유심조’의 사상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식의 말씀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은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그 내용물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생사화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온갖 죄악들, 불법들, 사악함, 더러움이 가득 담겨 있고, 입으로 쏟아내고, 악한 눈으로 나타내고, 행동으로 옮길 때는 그 사람은 자신을 더럽힙니다. 후에 영원한 심판을 받습니다. 마음 속에 선한 것들을 쌓아 두고 입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드러낼 때 주님은 그를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은 마음속에 생명의 말씀이 거하고 있고, 생명의 성령이 거하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첩경입니다. 장수하는 길입니다. 잘 되는 길입니다. 형통하고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가? 주님이 지키라고 하신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보십시오. 주님은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약한 마음에 힘을 주시고,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절망하고, 마음이 찢겨지고 더러워져도 주님은 성령의 기름을 부으시고, 싸매십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풍성히 기름 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뱃속에 음식을 채우고, 기름을 채우듯이 우리의 속사람에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시기를 빕니다.

첫째, *정직하고 선한 마음: 말씀을 잘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마음이 정직하고 선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있는 자들은 이들이니 곧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이니라.](눅8:15). 말씀과 마음의 관계에 주목하십시오. 들음, 믿음, 열매는 연속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는 자, 간직하지 않는 자는 정직하고 선한 마음이 아닙니다. 설령 그렇게 보인다 해도 그들은 위선자요, 변장자요, 가식일 뿐입니다. 말씀을 듣고 간직한다는 것은 성경 암송을 말합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암송함으로 마음에 간직할 때 정직하고 선한 마음이 되며, 그 땅에 뿌려진 씨앗으로 인내할 때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에서 인격이 고매해 보여도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회칠한 무덤같이 분을 잘 바르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심이 두터워 보여도 말씀을 받지 않고, 교묘하게 거부하고 틀어 버리는 자는 정직하고 선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암송함으로 마음 속에 그 말씀을 간직한다는 것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의 소유자란 뜻입니다. 말씀이 거해야 할 위치는 마음입니다.

둘째, *온전히 겸손한 마음: 겸손은 섬기는 자의 마음입니다. 종의 자세, 청지기의 자세가 바로 겸손입니다. [곧 온전히 겸손한 마음과 많은 눈물로 {주} 를 섬기며 또 숨어서 나를 덮치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시험을 받으면서도 {주} 를 섬기고](행20:19). 주를 섬기고, 형제들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마음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이 바로 겸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빌2:3). 겸손한 마음을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섬기는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아내는 남편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고, 남편은 아내를 자신보다 낫게 여기며 섬겨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복종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종이 무엇입니까? 더 나은 자, 더 높은 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인정하며 굴복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내를 섬길 때 남편을 통해 섬겨 주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남편을 섬길 때 어떻게 하십니까? 아내의 손길을 통해 섬기게 하십니다. 이는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섬길 수 있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섬겨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길을 통해서 섬기게 하시고, 그 섬김에 대해 보상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섬김을 이해하고, 받아 들여 섬기면 그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여러분을 섬기기 위해 있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할 상황이 오면 내 놓기 위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겸손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며, 더 많이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하시느니라.](약4:6). 말씀을 받을수록, 배울수록 더욱 섬김의 은사가 충만해진다면 그는 겸손한 사람이요, 바른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암송할수록 마음이 겸손해지면 그는 더욱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더욱 잘 섬기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면 다닐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영적인 권위나 내세우고, 겉멋만 들면 그 안에는 말씀이 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영이 거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참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3:12~13). 겸손한 사람은 참고 용서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킬 때 마음은 거만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암송할 때 마음은 낮아지고, 겸손해 집니다.

셋째, *상냥한 마음, [서로 친절히 대하며 상냥한 마음을 품으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하라.](엡4:32). 우리가 ‘상냥한’ 이라고 번역한 이 말은 tenderhearted입니다. 어미가 갓 난 아이를 대하는 마음, 유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바로 상냥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서로를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이 남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속박하는 것입니다. 저도 냉철하게 돌아보면 목회하기 전에는 ‘애증이 교차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목회한 후에는 완전히 버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마음속 저 깊은 곳에 고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깊이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역시 누구라 할지라도 용서하십시오. 나를 비난하든, 욕하든, 은근히 헐뜯든지 용서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그 용서를 생각하십시오. 나를 향한 주님의 용서의 말씀, 그 음성을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삶이 ‘상냥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딱딱해지고, 높아지면 자기 아내, 자식에게도 친절히 대하지 못합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납니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부립니다. 여러분이 마음에 말씀을 간직할 수 없다면 마음은 암 세포가 퍼져 버린 신체의 일부처럼 되고 맙니다. 누룩이 빵을 부풀게 하듯이 마음은 급격하게 타락합니다. 상냥한 마음이란 부드러워진 마음, 온유한 마음이요, 말씀의 씨앗이 잘 뿌려지고, 자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먼저 살피십시오. 모든 습관, 생각, 행동, 말의 근원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어떤 노력도 헛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눅23:34)을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다면 그의 마음은 ‘상냥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주님은 어떤 죄인일지라도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용서의 유일한 조건은 회개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라. 만일 네 형제가 네게 범법(犯法)하거든 그를 꾸짖고 회개하거든 그를 용서하라.](눅17:3).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용서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무한한 용서의 사랑, 은혜, 긍휼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는 무한정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까지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18:21~22). 저는 누구라도 언제나 용서해 줄 준비가 되어 있고, 회개하기를 기다립니다. 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사과라도 한 마디 해야 할 사람들이 좀처럼 사과조차 하지 않고 도리어 비난하고 욕하고는 도망 가 버리고,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욕을 합니다. 욕을 하고 비난함으로 양심을 약간 진정시킬 수는 있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하다 해도 용서할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어야 합니다.

넷째, *단일한 마음: 단일한 마음은 주인을 섬기는 종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흔히 비둘기의 눈을 단일한 눈(single eye)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비둘기가 한 번에 한 가지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이 단일한 눈입니다. 이 마음은 섬김의 필수 자세입니다. [종들아,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6:5). [종들아, 모든 일에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單一)한 마음으로 하라.](골3:22). 두 마음을 품고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맘몬이든 하나님이든 하나만 섬겨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두 마음을 품고서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섬기는 자는 단일한 마음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다리는 두 개여도 방향은 한 방향이어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길에서 안정이 없느니라.](약1:8). 한 여자가 두 남자를 마음에 품고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까? 반대로 한 남자가 두 여자를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두 마음은 가정생활이든 직장 생활이든 교회 생활이든 신앙생활이든 모든 것을 방해하고 불안정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잡아 놓고도 끊임없이 다른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냅니다. 이런 사람을 채용한 주인은 가장 황당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이 교회에 있고, 마음은 딴 교회에 있는 성도는 double-minded를 가진 성도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죄인들아, 너희 손을 정결하게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약4:8). 두 마음을 한 마음, 즉 단일한 마음으로 만드십시오. 위선자에게는 주의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순수한 마음, [이제 이 명령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딤전1:5). 성경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순수한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심히 사악하고 부패하고 더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순수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순수성이 보존되지 않습니다. 신선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오직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풍성히 거할 때만 마음은 정결해지고, 순수해 집니다. 순수한 마음을 지닌 자만이 깨끗하고 거짓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아무리 불같은 사랑일지라도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사랑이 아니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요, 더러운 욕망입니다. 더러운 사랑은 누구나 뜨겁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없는 형제 사랑’은 오직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혼을 깨끗하게 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진리의 말씀, 순수한 마음, 거짓 없는 형제 사랑은 삼겹줄과 같습니다. 순수한 말씀이 순수한 마음을 주고, 뜨거운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상수원의 원천지라면, 우리의 마음은 말씀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둔 말씀을 누구에게 전달할 때는 여러분은 물을 나르는 관이요, 통로가 됩니다. 듣는 이는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씻어 줍니다. 우리가 말씀의 물이 계속해서 흐르면 파이프 속은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물이 없는 파이프에는 녹이 쓸고, 냄새가 납니다. 병균이 득실거리기 시작합니다. 방치된 상수관, 하수관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완전히 녹슬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 암송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과 불순한 마음에서 나온 사랑은 생수와 오염된 물의 차이와 같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마음이 불순한 자들은 모임을 파괴합니다. 형제들을 더럽힙니다. 주님을 모독합니다.

여섯째, *진실한 마음,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10:22). 진실한 마음 역시 말씀의 물로써만 가능한 일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기도하는 자가 지녀야 할 마음입니다. 가식과 위선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정결한 물로’란 씻는다는 것은 말씀의 물입니다. 더럽혀진 우리의 발을 날마다 씻어야 할 물입니다. 진실한 마음이야 말로 성도가 가져야 가장 중요한 마음입니다. 주님이 가장 경멸하시고, 저주를 선포하신 죄가 위선입니다. 주님은 모든 죄인들을 향해 손을 내미셨지만 위선자들을 향해서는 반복해서 “화로다”를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뉘었으니 이제 그들이 잘못한 자로 드러나리라. 그분께서 그들의 제단들을 파괴하시고 그들의 형상들을 못쓰게 하시리니](호10:2). 오늘날 이런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양다리 걸치는 신앙,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는 분들은 모두 마음이 나뉘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 교회의 성도들은 많이 배웠지만 그들의 마음은 결코 배움을 얻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나오는 마음을 지키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에 입각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진실한 마음의 소유자가 됩시다. 원칙과 기준이 분명하면 갈등할 일이 없습니다.

일곱째, *악한 마음, [형제들아, 혹시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자가 하나라도 있지 아니할까 조심하라.](히3:12). 악한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는가? 란 생각이 들겠지만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는 진리에 비추어 볼 때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자란 명료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도덕적, 사회적, 인간적 기준의 선악이 아니라 성경적 기준을 가지십시오. 악한 마음이란 믿지 않는 마음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가 바로 악한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말씀을 듣고 거부하는 자, 반역하고 거스르는 자야 말로 악한 자입니다. 어떤 철학자는 말하기를 선의 결핍이 악이라고 했지만 성경은 마음에 말씀의 결핍, 믿지 않는 마음이 악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딱딱한 콘크리트바닥 아래 있는 땅은 비가 쏟아 져도 물을 받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가진 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납니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면 몸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듯이 교회를 떠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은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은 그 안에 지킬만한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 안에 말씀의 보화,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가득함으로 늘 마음은 은혜가 충만하고, 진리가 충만하고, 사랑과 주의 영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고, 양약(良藥)이 쏟아져 나옵니다. 마음을 텅 비워 두고, 악령이나 불러들이고, 악한 생각을 지닌 마음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에 생명과 평안대신 환란과 곤고함, 두려움이 임하면 여러분 마음은 이미 누가 쳐들어와 점령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걱정, 근심이 찾아와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면 이미 빼앗긴 것입니다.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얼굴로 보여지고, 말로 나오고, 행동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 교회를 약 4년간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 안에 참된 평안과 기쁨이 풍성히 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뭔가 불만이 있습니다. 뭔가 불안해하고, 늘 근심과 염려를 달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어야 합니다. 극복 가능해야 합니다. 잠시의 불안, 잠시의 염려여야 합니다. 반대로 잠시의 평안, 잠시의 기쁨만 있다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마음을 누구에겐가 빼앗긴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나오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 속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주님이 영원토록 지키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친히 영감을 불어 넣어 주신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단련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이 말씀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시12:6-7). 주님이 이 말씀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는가를 보십시오. 말씀들을 지키시며, 영원히 보존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그 누구라도 말씀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는 것을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일점일획도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그 말씀들을 모두 지키십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성취되리라.] (마5:18).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율법의 한 점이 없어지는 것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이 더 쉬우리라.](눅16:17). 이것은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前)이란 시간의 한정이나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들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주님이 지키시는 말씀을 우리가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은 친히 지키시는 이 말씀들을 우리 안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들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성경 암송은 주님이 지키신 말씀을 우리 안에 두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법규들을 준수하고 자신의 법들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로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105:45). 마음에 없는 말씀을 어떻게 지킵니까? 마음에 쌓아둔 말씀이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하루에 천번 만번 더 변하는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없습니다. 주께서 주신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며,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구해야 합니다. 다윗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올린 기도를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사 부지런히 주의 훈계들을 지키게 하셨사오니 오 내 길들을 인도하사 주의 법규들을 지키게 하소서.](시119:4-5). 바로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더 많이 암송하고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지킬 때 말씀이 나를 죄로부터 지켜주며, 악한 친구들로부터 지켜 줍니다. 악한 사귐으로부터 막아 줍니다. [또 /그것이/ 너를 선한 자들의 길로 걷게 하며 의로운 자들의 행로들을 지키게 하리니](잠2:20). 말씀은 칼도 되지만 강력한 방패도 됩니다. 좋은 길잡이요, 안내자요, 인도자도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힘으로 말씀들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주의 말씀들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키시도록 자신의 의지를 굴복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곧 한계를 드러내고, 지속성이 없습니다. 한 두 번은 할 수 있겠지만 오래도록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릅니다.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고, 지속적입니다.

[내 아들아, 내 법을 잊지 말고 네 마음으로 하여금 내 명령들을 지키게 할지어다.](잠3:1). 암송하지 않으면 누구나 곧 잊어버립니다.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말씀을 암송하도록 말씀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주는가? 우리의 애정이 어디에 있는가? 에 따라서 성경 암송의 승패가 결정 납니다. 암송의 능력은 마음의 문제이지 지식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극 대사를 잘 외우는 배우나 의학 사전을 줄줄 외우는 의학도나 법전을 잘잘 꿰는 변호사도 성경을 잘 외우는 것은 아닙니다.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고, 말씀에 있다면 성경을 잘 외웁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하여금 내 길들을 지키게 할지니](잠23:26).

성경 암송은 생명의 근원이 나오는 마음을 지키는 일임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성경을 외웁시다. 마음 속에 말씀을 지키면 말씀은 나를 지켜 줍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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