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37:7
부흥을 위한 기도회 열나흘 째입니다. 주님께서 이 기도회를 참석하는 모든 분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시기를 빕니다. ‘기도를 해도 별로 변화가 없다’, 기도를 하지만 예상했던 은혜가 없다고 생각되어 낙심하거나 주저하는 분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오직 말씀에 의지해서 나아갈 뿐입니다.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 절대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끈질기게 기도하고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열매는 소망한다고 바로 주어지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오랜 기다림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인내하느니라.](약5:7).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의 내면에는 ‘속전속결(速戰速決)’의 근성이 있고, 좀처럼 기다리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기다림의 삶이요, 인내의 삶이요, 오래 참음의 연속입니다.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사람이 [주]의 구원을 소망하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고 했습니다. 기다림! 사람은 누구나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곧 바로, 그 자리에서 즉시 응답이 오고 결과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 혼이 주를 기다림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나니 내가 말하거니와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고 했는데, 이는 애가 끓고 속이 타는 듯한 그런 기다림이요, 무엇인가를 간절히 갈망하며 기대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그런 기다림입니다. 학생이 합격 소식을 미리 들어도 합격증이 날아오는 날을 기다리고, 약혼을 하면 결혼식 날을 못내 기다리듯이 우리는 이미 기도한 것을 받은 줄로 성경을 통해서 미리 알고 믿으며 기다립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이 어떤 형태로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굳게 믿지만 때로는 애타게, 때로는 기대감에 충만해서 기다립니다.
◇ 주를 기다리라.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오니 주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소서.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25:5).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이 어디 멀리 외출을 하셨기 때문에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을 기다립니까? 주님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조명, 깨우쳐 주심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얻고, 보호해 주시는 은혜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혼이 [주]를 기다리나니 그분은 우리의 도움과 우리의 방패시로다.](시33:20). 위급하다고 당황하고 초조할 것 없습니다. 원수가 쏘는 불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정확하게 주님의 방패가 그 앞을 막아서기 때문입니다. 이는 진격하는 적군을 보면서 동시에 지원군을 기다리는 병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모두 극적인 순간에 극적인 도움을 얻고, 방패가 되어 주시는 은혜를 누립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제 때에 필요가 공급되지 않고, 도움이 오지 않을까봐 초조해하고 불안해합니다. 주님께서 미리 미리 손을 써 주시고 다 해결해 주시면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믿고 기다리도록 최대한 천천히 주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때로는 안 주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주님이 가장 정확한 때에 꼭 알맞게 도우시며, 원수들의 모든 공격을 막으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의 인내를 시험하는 시간입니다.
◇ 끈기 있게 기다리라. [[주] 안에서 안식하고 끈기 있게 그분을 기다리라. 자기 길에서 형통한 자나 사악한 꾀를 이루는 자로 인하여 초조해 하지 말지어다.](시37:7). 믿는 자는 다급해 하지 않고 초조해 하지 않으며 당황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기 때문에 안식하며 기다립니다. 모든 것에는 목적과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기다리지 못하고 주님의 때보다 더 앞서서 일하려고 하다가는 망합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40세에 민족의 구원자로 자처했지만 자기 형제들에게 배척당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시 민족의 구원자가 되는데 40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부흥이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인위적인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기획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교회는 몇 년 만에 몇 명이 모이고, 누구는 교회 다닌지 얼마 만에 어떻게 변했고 등등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초조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과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주 안에서 안식하고 끈기 있게 주님을 기다리면 모두 해결됩니다. 성경을 몇 독을 해도 변화가 없고, 이 교회에서 몇 년을 성경 공부를 해도 변화가 없다고 생각되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변화를 위해 기도하며,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하며 끈질기게 기다리다 보면 성장과 부흥과 변화를 분명히 주십니다. 자신의 지혜와 힘과 꾀를 모두 포기하고 주님을 기다립시다.
우리는 기도한 후에 금방 돌아서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는 믿음과 겸하여 인내가 필요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에 긴 세월 열매를 기다립니다. 투자자는 투자한 후에 몇 년, 몇 십 년을 기다립니다. 무엇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소망 가운데 기다립시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겠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우리의 기대하는 바는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대합니까? 부흥, 성장, 변화, 권능과 성령 충만(充滿)입니다. 나 자신의 변화, 가정의 변화, 교회의 변화를 위해 기대합니다. 이런 것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주의 영으로만 됩니다(슥4:6). 우리의 기대하는 것은 주님을 기다리면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내 혼아, 너는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라. 이는 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로다.](시62:5).
시편 기자는 얼마나 열심히 주를 찾고 기다렸던가?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주님 앞에 기도하고, 매일 말씀을 묵상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한 것이 언제나 곧바로 응답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응답받지 못했고, 어떤 것은 몸이 피곤할 정도로 부르짖었고 눈이 쇠할 정도로 기다려야 했습니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고 내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동안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시69:3). 주님은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스케쥴에 내 자신을 맞추는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하는 동안 겪는 각종 문제들이 오래 참음(long suffering-오랜 고통)입니다. 주님은 적당한 때에 주십니다. [이것들이 다 주를 기다리오며 적당한 때에 주께서 자기들의 먹을 것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104:27).
◇ 기다리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곧 잊어버리고 그분의 계략을 기다리지 아니하며](시106:13). 주님의 응답, 주님의 계략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해결사를 자임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기도만 한다고 부흥이 되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라며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한 논리를 전개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지금은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무엇인가를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나 여지가 남아 있다면 주님은 그것마저 무너진 후에나 일하실 것입니다. 모세를 기다리지 못한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들었습니다(출24:14). 사무엘을 기다리는데 실패한 사울은 어리석게 행하여 범죄했습니다.(삼상13:8-10). 조급함은 불신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이 응답해 주실 때까지입니다. [보소서,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 눈이 [주] 우리 하나님을 바라되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까지 기다리나이다.](시123:2). 주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 말씀이 있다면 거기에 소망을 두고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주]를 기다리고 내 혼이 기다리며 나는 그분의 말씀에 소망을 두는도다.](시130:5). 말씀을 듣고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내 말을 들으며 날마다 내 성문에서 지켜보고 내 문설주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8:34). 말씀은 신실한 약속입니다. 약속 하나만을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없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어떤 물증도 없이 오직 약속을 붙들고 있다는 것은 깊은 신뢰감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만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을 결코 외면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때가 되면 주님은 주십니다.. 기다린 자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기다리시리니 이것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그분께서 높임을 받으시리니 이것은 너희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라. 이는 [주]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 그분을 기다리는 자들은 다 복이 있도다.](사30:18). 주님은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빈손을 보이시는 법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과 자신을 찾는 혼에게 선하시도다.](애3:25). 기다림을 헛되이 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으로 인내하고, 참고 기다린 자들에게 선하신 분이십니다.
◇ 기도하며 기다립시다.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그 시간에 주님께 필요를 아뢰면서 기다려야 합니다(빌4:6). [그러므로 나는 [주]를 바라보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리니 내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들으시리로다.](미7:7).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이루어진다고...[이는 이 환상이 정한 때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나 그 끝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말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리라. 비록 이것이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이것이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그 까닭은 이것이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이라.](합2:3).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이 해야 할 첫 일을 명하셨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기다림’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일이 제자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전도나 성경 공부를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 부지를 확보하고, 미리 집사를 뽑아두고, 운영 계획을 잘 짜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역은 기다림에서 시작되며, 주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서 시작됩니다. [또 사도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명령하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너희가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하셨으니 곧 이르시되,](행1:4). 떠나면 안 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 날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매 고넬료가 자기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함께 부르고 기다리더니](행10:24). 마찬가지로 우리는 말씀을 증거해 주고, 가르쳐 줄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날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대감과 확신과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님은 넘치도록 복을 주십니다. 내일 말씀은 무엇일까? 무슨 말씀으로 은혜를 주실까? 기다리는 사람들은 은혜를 갑절 이상 더 누립니다.
성도란 늘 기다리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모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떤 은사(恩賜)에도 부족함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고전1:7). 성도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의의 소망을 기다리기 때문이요,](갈5:5). [이는 우리의 생활권(生活圈)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지난 2000년을 기다려 왔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기다림이 인내요, 믿음입니다. 기다림이 없다면 우리는 믿음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설레는 기다림, 이것이 현재 우리가 지닌 믿음의 인내입니다. 주님은 좋은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기다리게 하십니다. 설레임과 기대감을 가득 안은 채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이 없이 얻는 것은 가치가 반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저 복된 소망 즉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라.](딛2:13).
◇ 우리는 몸의 구속을 기다립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救贖)을 기다림은](롬8:23). 이런 기다림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벧후3:13). 이 역시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요, 기쁨과 즐거움으로 소망 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복되고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는 근거 없는 낭설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절대무오하며, 살아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기다리는 일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믿고 기도한 것들을 다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주 안에서 안식하며 기다립시다.
☜ 암송할 말씀:
- 사람이 [주]의 구원을 소망하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 - [주] 안에서 안식하고 끈기 있게 그분을 기다리라. 자기 길에서 형통한 자나 사악한 꾀를 이루는 자로 인하여 초조해 하지 말지어다.(시37:7) - 내 혼아, 너는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라. 이는 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로다.(시62:5).
☜ 생각해 볼 문제:
- 기다림은 믿음이다. 그
근거는?
-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 기다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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