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구조에 대해서 |
킹 제임스 성경은 이 지구상에서 하나님이 누구이며, 마귀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계시해 주는 유일무이한 책인 동시에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사람이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란 문제는 철학자들과 인류학자들, 과학자들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께 나와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란 특별 계시가 없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지으셨는가에 대해 보여 줍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몸)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영) 사람이 살아 있는 혼(living soul)이 되니라." 이로써 우리는 몸이 흙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현미경이 발견되기 전, 생물학이 발전하기 전부터 이미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흙은 32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인체의 구성 요소와 한 가지도 다르지 않고 그대로 일치합니다. 몸이 죽어서 완벽히 흙으로 동화한다는 사실은 성경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이 흙에 하나님은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생명의 숨”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흙으로 빚은 몸에 생명의 숨이 결합하여 사람이 만들어졌는데, 그 사람은 영도 몸도 아닌 바로 살아 있는 혼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영, 혼,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삼위일체이듯이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지은 사람 또한 삼위일체로 지으셨습니다.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습니다. 영은 성령의 모습입니다. 혼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나의 실체는 바로 이 혼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몸은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문제는 바로 혼입니다. 이 혼은 구원이냐? 잃어버린 바 된 그대로냐?에 따라 낙원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킹제임스 성경이 아닌 모든 현대 역본에서는 다 가려 버렸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혼”이라고 말하는 대신 “생령”(living spirit)이라고 변개 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흙(몸)에다 하나님의 호흡(영)을 불어 넣었는데 “혼”이 생성되지 않고 “영”이 되어 버렸다면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혼은 대체 어떻게 생성되었단 말입니까? 그래서 이들은 영과 혼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영과 혼은 글자가 다르고 뜻이 다르며, 기능이 다릅니다.
몸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소마(soma)입니다. 히브리어는 바살(basar)입니다.
헬라어로 혼은 프쉬케(psyche)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심리학(psychology), 심신학(psychiatry)와 같은 단어가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혼은 네피쉬(nephesh)입니다.
헬라어로 영에 해당하는 단어는 프뉴마(pneuma)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루아흐(ruach)입니다.
영어로든 원어로든 한국어로든 이 셋은 완전히 별개의 단어와 뜻을 지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과 혼을 같다고 하는 이유는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는 마귀와 그의 수하들이 인간의 혼을 영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스스로 신(神)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45에서 첫 사람 아담에 대해서 창세기를 정확히 인용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15:45). 반면 개역 성경을 비롯한 현대 역본들은 아담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개역-고전15:45). 영과 혼에 대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간단하게 영과 혼과 육에 대한 기능을 요약하면 영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기관이며, 혼은 자아를 인식하는 기관이며, 육은 자연계를 인식하는 기관입니다. 몸은 다섯 개의 오감각을 통해 자연계, 즉 외부 세계를 인식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성막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몸에 해당하는 뜰이 있고, 혼에 해당하는 성소가 있으며, 영에 해당하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삼분법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신 몸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고무 풍선처럼 몸이 부풀어 오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 서신서에 이 사실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는도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살전 5:23). 성경의 많은 구절에서 영과 혼은 서로 교차되어 사용된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이 있기는 하지만 결코 교차해서 사용할 수 없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영혼과 몸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철학이 만들어낸 소산일 뿐입니다. 이는 영과 혼에 대한 구분을 전혀 할 수 없었고, 죄로 인해 인간에게 일어난 생물학적 변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 처음 지음 받았을 당시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몸은 늙거나 병들거나 죽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생명 나무의 실과를 먹고 계속해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 몸에는 일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몸의 죽음입니다. "땅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창3:19). 영은 소멸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 기능이 완전히 죽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신 영은 하나님께서 회수해 가십니다.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나와 모두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거니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는 자가 누구이랴"?(전3:20, 21). 이 부분도 현대 역본들은 모두 변개되어 있어서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 개역 성경과 비교해 봅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3:20,21-개역).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천사는 영과 혼은 있으나 몸이 없고, 짐승은 혼과 몸은 있으나 영은 없고, 오직 사람만이 영과 혼과 육을 지닌 존재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리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천사는 영적인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부활할 때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날 때에는 장가가지도, 시집가지도 아니하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기 때문이니라."(막12:25). 우리는 부활할 때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됩니다. 그 몸은 하늘의 천사들과 같은 몸입니다. 천사는 분명히 몸이 있습니다. 짐승에게 영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짐승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 구원에 관련하여
영과 혼과 몸의 3분법은 구원의 교리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에서도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는 모두 분명한 구분을 두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는 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 혼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너희가/ 너희 믿음의 결말 곧 너희 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이 혼의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대언한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되"(벧전1:9,10).
베드로는 분명히 믿음의 결과로 주어지는 혼의 구원을 말씀했습니다. 이 진리는 너무나 쉽고 명백하여 오해할 여지조차 없지만 개역 성경을 비롯한 모든 현대어 역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인간의 구조에 대해 헷갈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첨가)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혼의--삭제)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개역-벧전1:9,10).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21에서 말씀을 통해 받는 혼의 구원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접붙여진 말씀 곧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킹제임스 흠정역).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면 우리의 혼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 역본들은 영과 혼에 대한 구분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道)를 온유함으로 받으라"(개역, 약1:21).
▶ 영은 거듭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이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거듭남이란 출생과 관련된 말입니다. 육에서 육신이 태어나듯이 성령에서 영이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말한 것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 영과 육은 완전히 다른 것이며, 이 둘은 구원이 아닌 출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육이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영적 출생이 있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최대 관심은 육이 아닌 영이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베드로도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육신이 다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혼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혼은 구원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통해 정결케 되었고,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깨끗하게 되었지만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영입니다. 이 둘은 결코 헷갈릴 수 없는 것입니다.
▶ 육은 구속받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지치고, 병들고, 늙고, 쇠하며, 죽습니다. 육신은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바람과 같으며, 마르는 풀, 시드는 꽃과 같다고 말합니다. 구원받고 난 후에도 이 몸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육신은 구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과 더불어 몸의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고전15:49). 우리의 몸은 부활하사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게 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이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도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요, 또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라.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주께서 /승리로 사망을 삼키시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고전15:51-54).
성경은 분명히 몸의 변화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은 구원받거나, 거듭나는게 아니라 새 몸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는 옷이 더러우면 옷을 갈아 입습니다. 옷의 모양이 곧 몸의 모양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혼이 입은 옷과 같습니다. 거듭난 영, 구원받은 혼이 영원히 살기에 적당하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면 당연히 적절한 새 옷을 입어야 할 것입니다. 이 옷은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입혀 주십니다. 이 몸은 영에 속한 몸입니다(고전15:44). 주님 오실 그 날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영에 속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생활권(生活圈)이 하늘이기 때문이라. 우리가 또한 거기로부터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하시리라."(빌3:21).
구약에서 영과 혼이 교차되어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영과 혼과 몸의 구분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간의 영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 버렸고, 혼은 더러워졌고, 몸은 시한부 생명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를들어 갈렙은 다른 영을 소유했다고 말합니다. 한나는 슬픈 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어떤 영을 지녔는지 알지 못한다”고 꾸중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혼과 교차되어 사용된 말입니다. 또 구약에서는 몸과 혼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교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내 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에 따라 주께서 나를 살리소서"(시119:25). 그래서, 혼이란 말은 몸을 대신해서 자주 사용되었고, 몸이 부정한 것을 만지거나 더러워지면 그 혼도 부정하고 더러운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는 말씀의 칼로 영적 수술을 받아 몸과 혼은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히4:12,13; 골2:10-13).
"자, 원하건대 당신은 내 누이라 말하라. 그리하면 내가 당신으로 인하여 잘되고 내 혼이 당신으로 인하여 살리라, 하니라."(창12:13).
"의로운 자는 자기 혼이 만족하도록 먹으나 사악한 자의 배는 주리느니라"(잠13:25).
"먼 나라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혼(魂)에게 냉수 같으니라"(잠25:25).
"이는, 보소서, 그들이 내 혼을 잡으려고 숨어서 기다리며 강력한 자들이 모여서 나를 치려 하기 때문이오니, 오 [주]여 이것은 나의 범죄 때문도 아니요, 나의 죄 때문도 아니로소이다."(시59:3)
이 구절들은 몸과 혼이 교차되어 사용된 예입니다. 그러나, 신약은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은 몸과 혼과 영이 각각 분리되어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삼위 일체, 영과 혼과 몸에 대한 교리는 오직 킹제임스 성경에서만 분명하게 발견되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혼과 몸이 가는 곳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를 살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펴 보십시오. 누가복음 16:22에 따르면 부자는 죽어서 장사되었습니다. 그의 몸은 분명히 죽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반면 그의 혼은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영은 어디로 갔습니까? 성경은 그의 영혼이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혼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의 영은 하나님께서 회수해 가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야 하며, 혼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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