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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바르게 조명해 주는 유일한 성경



오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정확하게 밝혀 주는 유일한 성경이란 제목으로 성경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매우 평범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아들됨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확실한 조명을 주는 유일한 성경은 킹제임스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대조해 보지 않고 대충 읽는 사람들은 결코 진리의 지식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해 요한 복음의 기록 목적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하고, 믿게 하는데 있음을 압니다. "오직
이것들을 기록함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쓴 것은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게 하려 함이라."(요일5:12,13).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마구 삭제한 성경들은 당연히 생명이 없습니다.
그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생명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 지적하신 그 구절에는 없어도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다른 곳에는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항변입니다. 여러분은 손가락이 열 개입니다. 각 손가락은 자기 위치에 정확히 있어야 정상입니다. 만약
한 개의 손가락이 짧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금니는 양편에 2개씩, 아래 위에 있기 때문에 한 쪽은 없어도
입 전체에는 상관이 없다고 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또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핵심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나니 그 까닭은 이것을 네게 계시한 이가 혈과 육이 아니요,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라."(마16:15-17).


많은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설교합니다. 만약 말씀이 정녕 그렇다면 어휘가 마구 삭제되고,
변개되고, 다른 단어로 대체된 성경들은 성도들에게 충분한 빛을 비춰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렇게 희미하게 알고, 미지근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 가운데 말씀의 빛이 강력하게 비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반복적으로 분명하게 밝힌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종으로 변개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들입니다(THE
SON OF GOD).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경은 천사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sons of
God).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욥기38:7). "그때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주]를 뵈려고 왔는데 사탄도 그들 가운데 오니라."(욥기1:6). 하나님은 자신의 직접적인 피조물들인
천사들뿐만 아니라 아담조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런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이
있었고, 그두라에게서 난 자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삭만을 아브라함의 독자(only son)라고 부르셨습니다(창22:2,12,16).
이삭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이후 계속해서 한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세상에 많은 종교 창시자들이 있고, 성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많아도 그 중 어느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까? 그들은
모두 예외없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공자?, 하나님의 아들 석가?, 하나님의 아들 소크라테스? 말만 들어도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님의 아들이라 불리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느 한 날 여자를 통해서 아들을 낳을 것이란 사실을 수없이
반복해서 예언했습니다. 때로는 선지자를 통해서, 때로는 예표적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게서 아들을 낳을 것이란 사실을 말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아들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불신의 결과일 뿐입니다. 이사야서 7:14, 마태복음1:23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Behold, a young woman shall conceive and bear a son,
and shall call his name Immanuel."(RSV). RSV는 처녀(virgin) 탄생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지
young woman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이 무슨 표적이 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23을 펴십시오.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이라는 뜻이라."(마1:23). 만약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면 마리아는 역사상 가장 흉악한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녀는 분명히 천사 가브리엘에게 말하기를, “이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르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매”(눅1:34).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자의 씨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언의 성취입니다.


누가복음 1:28을 보십시오. "천사가 들어가 그녀에게 이르러 말하되, 크게 은총을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니 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하니"(킹제임스).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개역).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은 여자들 가운데서 복을 받은 것이요,
특권이란 사실입니다. 주의할 것은 여자들 가운데서(among)이지, 여자들 보다(above)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들 가운데
하나인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보다 마리아를 높이기에 안간힘을 써온 로마 캐톨릭은 이 구절을 삭제해 버렸습니다(네가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도다.).


사도행전 3:13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킹제임스
성경-행3:13). 개역 성경은 이 부분에서 예수를 종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servant)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행3:13-개역). 예수님은 신약에서만 46회에 걸쳐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80여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됩니다. 126회에 걸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증언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교묘하게 변개한 자들은 성경을 공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하려는 시도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종으로 표현한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습니다. "내가 택한 나의 종, 나의 혼이 매우 기뻐하는 자 곧 나의 사랑하는 자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리니 그가 이방인들에게 공의를 베풀리라."(마12:18). 이는 구약 성경인 이사야 42:1을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IV를 비롯한 새 역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피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4:6,7을 보십시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상속자니라."(갈4:6,7). 사람인 우리도 예수를 믿고 난 이후로부터는 더 이상 종이 아닌 아들일진대,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행전3:26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시고 너희에게 복을 주시려고 그분을 먼저 너희에게 보내사
너희 각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불법들에서 돌아서게 하셨느니라."(행3:26-킹제임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행3:26-개역). 이 구절에는 아들을 종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예수란 이름조차 빼 버렸습니다. 부활에 대한 기록도 삭제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모든 선지자들도 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신분 조회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갔는데 주민등록 등본에 “자(子)”라고 되어 있지 않고, 종(從)이라고 되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왕의 아들과 왕의 종이 같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이 같은 신분이 될 수 있습니까? 종은 받을
상속이 없습니다. 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며, 우리에게도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습니다. 이는 본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빌2:5,6). 사람의
아들이 사람이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서 1:2-6을 보겠습니다.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개역-자신의 X)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이 아들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이 아들께서는(개역X)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시라. 그분께서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붙드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분께서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게 되신 것은 그들보다 더욱 뛰어난 이름을 상속으로 얻으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이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1:2-6,킹제임스 성경).7)


이방 제국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은 용광로 속에서 4번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보라,
내가 보니 결박이 풀린 네 사람이 불 한가운데서 걷고 있는데 그들이 아무 해도 입지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과 같도다, 하더라."(단3:25).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을 제외한 모든 역본에서는 자신의 종들을 지키시는 주님을
일컬어 “신들의 아들”(a son of god)이라고 바꾸어 버렸습니다. “신들의 아들”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지키겠습니까?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수를 잡아 보겠다는 학자들은
과감하게 ‘신들의 아들’이라고 고쳐 버렸습니다. 그들은 이방 제국의 왕인 느부갓네살이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생각할 법도 했습니다. 자기들이 못 믿는다고 남의 신앙 고백까지 망쳐 버린 예입니다.


요한복음 6:69을 보십시오.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확신하게 되었나이다, 하매"(KJV).
이것이 바른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이 사실을 배우고, 알고, 믿고, 확신함으로 요동치 않는 반석 위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으면서도 이런 구절들을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신념이지 믿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역 성경을 보십시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개역), "We believe and know that
you are the Holy One of God."(NIV)-요6:69. 이 둘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비교의 가치조차 없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확신하는 것과 하나님이 거룩한 자라고 믿는 것과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며, 하나님과 마귀의 차이입니다.
성경에서 "the Holy one of God"는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시온산, 약속의 땅, 율법, 선지자,
사도, 천사 등 부지기수입니다.


요한복음 9:35,38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치유받은 것은 마침 안식일이었기에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을 어겼다는 고소를 받게 되었고, 이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소경은 눈을 뜨자 마자 곧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내쫓았다 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하시니"(요9:35,
킹제임스). 예수님은 육신의 눈을 고쳐 준 것에 그치지 않으시고, 그의 믿음을 도우셨습니다. 믿음의 핵심은 언제나 믿음의 대상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이것은 전이나 지금이나 죄인들을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질문이십니다.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구원을 가늠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해 듣고도 믿기를 거부하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누구냐"?(요8:25). 예수가 누구냐? 예수가
뭐하는 사람이냐? 해답을 기대하지 않고 던지는 질문에 주님은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다음과 같이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9:35, 개역). Jesus heard
that they had thrown him out, and when he found him, he said, "Do you believe
in the Son of Man?"-NIV, John9:35.


요한복음 9:38을 보십시오. 킹제임스 성경에 나오는 고침받은 소경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그분께 경배하니라."
반면 개역 성경에서 고침받은 소경은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구원의 첫 걸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승리의 첫 걸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5).
예수님을 하나님이 종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 인자로만 믿는다면 그 사람은 절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해도, 아무리 헌신되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장시간 기도를 하며, 금식을 한다할지라도 그는 절대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 금식, 교회 생활, 자선, 찬양, 성경 읽기, 집회 등을 효과적으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힘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늘 작고 작은
한 마디의 정확한 말씀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승리와 빛나는 간증 뒤에는 항상 적지만 결코 작지 않는 정확한 한 마디의 말씀이 작용함을 볼
수 있습니다.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동물의 성장과 생명유지에 필요한 성분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무기질 ?물 등 다섯 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 알려졌던 모든 영양물질을 고루 포함시켜 순수하게 조제된 동물의 사료로 사육시킨 동물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거나 생존하지 못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군량미와 비상 식품에 이 다섯 가지 영양분을 충분히 넣어서 지급했지만 군인들은 힘을 내어서 싸우기는
고사하고 이유 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물과 사람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신비한 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습니다.
그 결과 1912년 폴란드의 화학자 C.풍크란 사람이 발견한 것이 바로 비타민입니다. 비타민은 극소량이지만 몸 전체의 다른 많은 영양분들을
효과적으로 자기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는 마치 기계에서 윤활유와 같고, 인체의 호르몬과 같습니다. 성경의 정확한 용어 한
마디, 한 마디는 그것이 비록 작은 관사 하나, 단 복수 하나, 콜론이나 마침표 같은 부호 하나로 내 안에 다른 모든 것들을 살아나게 하며,
승리하게 해 줍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은 주님과의 친교의 첫 걸음입니다. 요한복음 15:4, 요한일서4:15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 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우리는 여기서 “주님 안에 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도 내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완전한 연합입니다. 이보다 더 깊은 친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이상이며, 꿈입니다. 그러나 이런 깊은 친교와
연합의 길이 너무나 간단합니다. 요한일서 4:15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4:15).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우리는 풍성한 생명 가운데,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이 가려지고, 삭제되고, 대체되고, 변개되고, 부패한 성경으로는 도저히 주님과
깊은 친교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친교가 없이 어떻게 영적 능력을 소유하고, 풍성한 생명 가운데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도 구원의 감격이 없고, 마음 가운데는 은혜가 없으며, 메마르고 황량한 사막의 선인장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교인들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국의 기독교가 마치 무속 신앙처럼 타락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 중심이
되는 것은 모두 기본적인 교리부터 틀어진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친교는 오직 바른 말씀으로만 가능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버리고, 성령의 은사들과 뜨거운 체험만을 갈구할 때 문제는 해결되기보다 꼬이기만 할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함으로서 하나님과 친교를 트셨으면 열매를 맺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요15:7).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의 친교는 오직
말씀밖에 없으며, 기도의 원칙 또한 말씀밖에 없음을 봅니다. 오늘 살펴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조차 변개되어 있는 성경의
말들이 내 안에 아무리 풍성하게 거한들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조국 교회의 개혁과 부흥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심정으로 울부짖으며, 설교하는 목사님들과 ‘청교도적 신앙을 회복하자’며
호소하는 양식 있는 성도들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들은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데서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주의와
물량팽창주의가 교회 타락의 원인이라고 대안과 처방을 제시하고, 은사를 구하는 기복 신앙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그 보다 더 깊은
문제는 잘못된 성경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만 사용한다고 해서 일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순수한 신앙을 회복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 말씀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책임은 매우 막중합니다. 우리는 먼저 바른 말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을 욕하고 판단하기에 앞서 행동으로 본을 보여 주어야 할 신성한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