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왕상19:5,7
부흥을 위한 기도회 스무 이틀 째입니다. 오늘은 ‘일어나 먹으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우리 몸은 땅의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육신은 땅에서 나는 육신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영은 성령에게서 났기 때문에 속사람 역시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양식이 필요합니다. 욥은 말하기를, [내가 그분의 입술의 명령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내게 필요한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들을 더 귀히 여겼도다.](욥23: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이 영적 양식을 섭취하고, 그것으로 사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은 목자가 양떼를 먹이시듯이 먹이시며, 부모가 자녀를 먹이시듯이 양식을 주시고, 좋은 것으로 먹이십니다.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게 하시며 하늘의 곡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시78:24).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먹고 입을 것들을 넉넉히 공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에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영에 필요한 양식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받아먹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나 주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입을 크게 여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주님은 우리 입에 가장 좋은 밀로 채우시며(시147:14), 기쁨을 채우십니다(욥8:21). 믿음만 있다면 먹을 것은 널려 있습니다. 반면 믿음이 없으면 주는 것도 받지 못합니다. 엘리사 시절에 전쟁으로 먹을 것이 없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비둘기 똥이 고가에 팔리던 시절입니다. 그런 때에 엘리사는 먹이시는 하나님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히 먹을 것을 주셨지만 전혀 먹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 귀족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이제, 보라, [주]께서 하늘에 창들을 내신다 한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하매 그가 말하기를, 보라, 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보리라. 그러나 너는 그것을 먹지 못하리라, 하였거늘 그 일이 그에게 그대로 임하였으니 이는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그가 죽었음이더라.](왕하7:19~20). 불신은 하나님이 주는 것을 받지 못하게 하며, 사람을 주리게 합니다. 배를 주리게 하며, 영의 주림과 갈증을 일으킵니다. 주님은 ‘일어나 먹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지친 혼들을 먹이십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시고, 과부를 통해 먹이시며, 그도 저도 안 되면 천사를 보내 빵과 물을 주십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로뎀나무 밑에 누워 자더니, 보라, 한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하므로](왕상19:5). 여러분이 아무리 지쳐도 엘리야만큼 지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도 없었습니다. 주위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열사의 땅에 작열하는 태양과 모래와 바람뿐이었습니다. 그는 몸도 지치고 영혼도 지쳐서 로뎀 나무 아래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천사를 보내셔서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주]의 천사가 두번째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갈 길이 네게 너무 머니라, 하므로](왕상19:7). 여러분은 지금 영적 노정에서 지쳐서 쓰러져 있지 않습니까? 죄로 지치고, 일로 지치고, 교회에 오지만 아무 힘도 얻지 못하고, 상처를 입고 어디론가 멀리 도망가 버리고 싶은 상태에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일어나십시오.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일어나서 주님이 주시는 양식을 받아먹으십시오. 여러분을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우리 주님은 믿음에서 떠나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을 다시 찾아 오셨습니다. 그들에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본 것은 생선과 빵이었습니다. [그들이 땅에 올라와 곧 숯불이 거기 있음을 보니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하시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가득히 찬 그물을 땅으로 끌어당기니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와서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알므로, 누구시니이까? 하고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이에 예수님께서 가셔서 빵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요21:9~13). 주님은 믿음에서 떠난 제자들을 다시 찾아 오셔서 식탁을 마련하시고 ‘와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먹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른 아침에 그들을 찾아와서 식사 써빙을 담당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고기를 굽고, 빵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식탁을 마련하시는 주님을 체험한 다윗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들의 눈앞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우리에겐 늘 먹을 양식이 있고, 마실 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으로 네 입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5). [주께서 그것들에게 주신즉 그것들이 모이고 주께서 주의 손을 여신즉 그것들이 좋은 것으로 채워지며](시104:28). 하늘의 새들과 들의 들풀조차 먹이시고 입히시는 주님께서 자녀들을 먹이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은 언제 먹을 것을 주시는가?
◇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할 때.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할 때 먹고 입을 것을 더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를 마음에 품고 삶의 기준으로 믿고 산다면 이 말씀이 언제나 진리임을 입증하며 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주님께 아뢸 때. 우리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께 필요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목자로서 양떼들을 먹이시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십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헛된 것과 거짓말들을 내게서 아주 멀리 옮기시오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며 오직 알맞은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30:8). 우리는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빌4:19). 믿으면 체험이 되고, 믿으면 승리가 옵니다. 주님의 공급을 기도하시고, 믿으십시오. 탐욕이 아니라면 얻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느냐? 내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혼이 기름진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사55:2). 하나님의 말씀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면 좋은 것을 먹고, 혼이 기름지게 됩니다. 영육간에 양식을 채워주십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손해일 것 같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기적으로 그렇게 보일지라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찾을 때, [오 [주]의 성도들아,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이는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로다. 젊은 사자들은 부족하여 굶주릴지라도 [주]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34:9-10).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를 찾는 것은 영적 생활의 첫걸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은혜를 입는 비결이요,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곧바르게 걸을 때, [이는 [주] 하나님께서 해와 방패가 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은혜와 영광을 주시며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이다.](시84:11). 좋은 것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을 포함하여 건강의 복, 물질의 복을 다 포함합니다. 주님께서 빵 지팡이를 부러뜨리시고, 건강을 치시는 것은 우리가 곧바르게 걷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 십일조와 헌물을 제대로 바칠 때,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가져다가 창고에 들여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쏟아 붓되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십일조는 신약의 규례나 명령은 아닙니다. 이는 구약의 성전 제사와 레위 제사장들이 있을 때 제정된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신약 성도들은 어떻게 하는가? 자원해서 마음에 정한대로 합니다. 인색함이 없이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풍성하게 하신대로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이 먹을 것이 없어서 헤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행실에 탐욕이 없고, 만족할 때, [너희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라.](히13:5). 우리는 탐욕으로 먹을 것을 쌓아둘 창고를 짓다가 죽은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탐욕을 가진 자들은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요, 결국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들입니다. 영적 타락은 배가 부를 때 시작됩니다. [그러나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기름지고 비대하고 기름으로 덮이매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소홀히 여겼도다.](신32:15). 부(富)를 동경하시는 분들은 부를 감당할 만한 믿음과 은혜를 겸하여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욥이나 아브라함은 아무리 많은 재산도 그들의 믿음을 약화시키지 않았습니다. 반면 롯이나 데마는 많으면 많을수록 영적으로 손해였습니다. 돈 때문에 믿음에서 떠나는 예는 허다합니다. [이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잘못하고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딤전6:10). 돈을 사랑하지 않고 주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주님은 얼마든지 주십니다. 그러나 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초장이 내는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매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서 나를 잊었느니라.] (호13:6).
◇ 의로운 자는 결코 주리지 않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늙었으되 지금까지 의로운 자가 버림을 받거나 그의 씨가 빵을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 여기서 의로운 자는 재물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자를 말합니다. 구약에서 의를 행한다는 의미는 거의 대부분이 구제와 선행을 말합니다. 이렇게 할 때 주님은 그들을 기억하시고 풍성하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께 빌려 드리는 것이니 그분께서 그가 베푼 것을 갚아 주시리라.] (잠19:17). 이 원리는 지금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관대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그가 자기 빵을 가난한 자에게 주기 때문이니라.](잠22:9). 어떤 형제님은 좋은 집이나 차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늘 베푸는데 인색함이 없습니다. 구제와 헌물이 주님이 매우 기뻐하시는 것임을 알고 실천합니다. 저는 그 사람이 불경기를 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는 자는 부족하지 아니하려니와 자기 눈을 가리는 자는 많은 저주를 받으리라.](잠28:27). 남들은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민감하고, 경기가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결코 그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남아돌아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면 주님이 그보다 더욱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 말씀을 지킬 때 주님은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향해 [오 내 백성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스라엘이 내 길들 안에서 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시81:13) 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또한 [주]가 가장 좋은 밀로 그들을 먹이고 바위에서 나오는 꿀로 내가 너를 만족하게 하였으리라, /하셨도다/.] (시81:16)고 했습니다. 이와 동일한 병행 구절이 시편 132:15절입니다. [내가 이곳의 양식에게 넘치도록 복을 주고 빵으로 이곳의 가난한 자들을 만족하게 하리로다.](시132:15). 주님은 말씀을 듣고 지키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빵을 넘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먹어야 할 양식은?
주님은 제자들이 동네로 육신이 먹을 양식을 구하러 간 사이에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혼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하시니](요4:32). 이 때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양식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양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요4:34).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가 먹어야 할 양식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를 늘 걱정합니다. 수입만 보장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약간의 성취감과 보람이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해서 번 소득으로 가족들을 먹이고, 선을 행하는 일이야말로 주님의 뜻에 부합되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위해 일해야(수고해야/ 노동해야-Labour)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인(印)치셨음이니라.](요6:27). 그러자 제자들은 즉시 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정확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6:2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이요, 항상 있는 양식입니다.
우리가 먹을 양식은 주님 자신입니다. [이는 내 살이 참된 양식이요, 내 피가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라.](요6:55). 이는 식인종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살 즉 하나님이 육체 안에 나타나신바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요, 보배로운 피요, 흠없는 피요, 우리를 대속하는 속죄의 피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누구도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여러분은 주님을 양식으로 삼을 때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하늘의 창고, 영원한 생명의 샘을 내 속에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을 양식은 말씀입니다. [내가 입을 벌리니 그분께서 나로 하여금 그 두루마리를 먹게 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네 배로 하여금 먹게 하고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창자를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그것을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3:2-3). 에스겔은 입을 벌려 말씀을 먹었습니다.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 천사에게 나아가 이르되, 그 작은 책을 내게 주소서, 한즉 그가 내게 이르되, 이것을 가져다가 먹으라. 이것이 네 배는 쓰게 할 것이나 네 입에서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계10:9).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두루마리, 주님이 주시는 책으로 배를 채어야 합니다. 입을 열어 먹어야 합니다. 주시는 것을 먹지 않는 것은 반역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오직 너는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 반역하는 집같이 반역하지 말며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니라.](겔2:8).
우리가 먹을 양식은 꿀입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벌집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맛에 다니라.](잠24:13). 꿀 역시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먹을 양식은 구원받지 못한 혼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잡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또 한 음성이 나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행10:13).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더러운 음식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먹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십니다. 혼들을 이겨 오는 것은 생명나무입니다.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잠11:30). 이것이야 말로 주님께서 말씀하신바 ‘알지 못하는 양식’입니다. 베드로가 먹기를 주저하자 두 번째 음성이 들렸습니다. 세 번째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일어나 잡아먹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여 혼을 이겨 오는 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양식을 취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음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몇일 째 굶주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잡아먹어야 할 양식을 취하는 대신 두려워하는 것 역시 주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잡아먹어야 할 양식이 널려 있습니다. 갈렙을 보십시오. 그는 앞에 있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우리의 빵’이라고 했습니다. 먹으러 가자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주]를 대적하여 반역하지 말며 또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우리의 빵이기 때문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주]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민14:9).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들의 밥이 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일어나 먹으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으십시오. 받아서 먹고, 잡아서 먹읍시다.
☜ 암송할 말씀: 왕상19:5,7 시103:5
☜ 생각해 볼 문제:
우리가 먹어야 할 것은? - 공급하시는 주님에 대한 자신의 체험은? - 받아서 먹어야 할 것과 잡아 먹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은혜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흥 90 - 24. 내 눈을 열어 주소서 (1) | 2005.11.08 |
---|---|
부흥 90 - 23. 내게 가르치소서 (0) | 2005.11.07 |
부흥 90 - 21. 나를 믿으라 (0) | 2005.11.05 |
부흥 90 - 20. 선한 싸움을 싸우라 (0) | 2005.11.04 |
부흥 90 - 19. 배우라 (0) | 2005.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