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부흥(90) -내 눈을 열어 주소서
말씀: 엡 1:18

부흥을 위한 기도회 스무 나흘 째입니다. 양들은 시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앞을 잘 보지 못하고, 거리 감각은 물론이려니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제 자리에서 맴돌다가도 길을 잃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볼 수 있게 해 주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고 3때 안경을 처음 썼습니다. 저는 눈이 나쁜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교실 뒤에서 다른 애들이 다 읽는 글자를 나만 못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추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것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습니다. 눈이 열린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눈이 밝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혔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후5:7)이라 했고, 주님 역시 [도마야,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요20:29)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18에는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보이는 것은 잠깐 있을 뿐이요,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니라.](고후4:18)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선포할 말씀은 ‘눈을 열어 주소서’, ‘보게 해 주소서’입니다. 이것은 모순이 되는 말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완전히 상반되는 것 같은데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 역설이 수두룩합니다. 주님이 보는 것을 무시하실 때는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눈은 안목의 정욕을 쫓아 보기 때문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것을 볼 수도 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전혀 보지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눈은 영적인 눈, 지각의 눈입니다. 우리 속 사람의 눈을 말합니다.

주님은 지상 사역 동안에 많은 소경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게 하심으로써 그들 자신이 눈을 뜨는 것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눈이 열리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것은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눈에 딱 들어왔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간절히 보기를 소망했던 것을 보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육신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기쁨은 더욱 큽니다. 우리 육신의 눈을 지으신 주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도 밝혀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밝아져야 할 눈은 지각의 눈입니다. 

[너희의 지각(知覺)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엡1:18). 이 눈으로 주님의 부르심의 소망,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상속의 영광의 풍성함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앞이 캄캄하다, 앞이 안 보인다”고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멀리 보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 주십니다. 이 눈이 밝아지면 주님을 바라 봅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히12:2a). 예수님을 바라 보는 눈은 언제나 눈물로 젖어 있습니다. 단일한 눈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법규들은 정당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의 명령은 순수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시19:8). 주의 명령은 속사람의 눈을 밝게 하는 안약이요, 안경입니다. 지각의 눈을 밝히는 안약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자신의 죄가 보이게 됩니다. 자신의 헐벗은 것을 보게 됩니다.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네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나지 아니하게 하며 네 눈에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 (계3:17~18). 말씀은 눈을 밝히 열어 주며, 밝게 합니다. 그래서 미세한 먼지 같은 죄도 밝히 보입니다. 주님의 법이 들어오기 전에 바울은 자신의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자기는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법이 들어오면 우리의 의는 더러운 누더기 같음을 보게 됩니다. 죄의 더러움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보게 되며,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자인지 알게 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 가운데 거꾸러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영적 부흥을 위해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은 먼저 자신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고, 주님 앞에 쓰러져야 합니다.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상태에 대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을 드러내시리니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가 짐승임을 보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전3:18). 우리는 짐승이요, 벌레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때 주님의 긍휼과 은혜와 무한한 사랑 외에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는 영광의 주님을 뵌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화로다, 나여! 이는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므로 망하게 되었음이니 곧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면서 내 눈으로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음이라, 하였더라.](사6:5). 영적인 눈을 열어 주를 뵙게 되면 우리 자신을 정확히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사 말씀을 보게 하십니다. [내 눈을 여사 나로 하여금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하소서.](시119:18). 말씀의 보화를 알아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말씀 속에 들어있는 보화를 찾아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말씀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줄 때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귀로 듣기만 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고, 멀리 있는 것을 보게 하시며,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보게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육신의 눈은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믿을 때 눈이 열립니다. 

믿으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믿을 때 보여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가 말하기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라.](요11:40).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반드시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믿으면 주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과 공의와 거룩함 등 고유한 성품들과 지혜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볼 수 없지만 바람이 불 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듯이, 믿을 때 주님의 성품과 임재하심의 결과를 우리는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눈을 열어주십니다. 물이 없어 죽게 된 하갈은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하갈의 기도보다 죽어가는 아이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씀하시며 하갈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 주시매 그녀가 우물을 보고 가서 부대에 물을 채워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니라.](창21:19). 절체절명의 순간에 우리는 때로 예기치 않는 기적이 일어나 살아나는 일을 보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도왔다고 감사하는 대신에 ‘운이 좋았다’, ‘기적이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라고 말하고 그칩니다. 탄식의 기도는 절망의 기도든지 때로는 저주의 기도든지 주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눈을 열어 주신 예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도 눈이 열리지 않아 두려워 떨고 있는 게하시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는 엘리사의 기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여시사 보게 하옵소서, 하니 [주]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보라,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육신의 소경들은 주님께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마20:33)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친 자들 중에 눈이 떠지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눈을 열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샘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둘러싼 주의 손길을 보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하시고, 주의 영광의 풍성함을 보여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에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나누어 그들에게 주시매 그들의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더니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24:30~31). 주님을 알아보는 눈이야 말로 가장 복된 눈입니다. 주님이 앞에 계셔도 감지하지 못하고, 곁에 계셔도 알지 못하고, 안에 있어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눈을 열어 보게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때로는 탐욕으로 단련된 마음으로 인해 미친 짓을 하려 할 때에 눈을 열어 주셔서 그것을 막으십니다. [그때에 [주]께서 발람의 눈을 여시매 그가 [주]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는 머리를 숙이고 얼굴을 대고 납작 엎드리니라.](민22:31).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발람은 죽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때로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시고 그 길이 사망의 길임을 보여 주십니다. 멸망의 길이요, 패망의 길임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것을 보면서도 눈을 감고 달립니다. 그러다 죽습니다.

주님은 우리 눈으로 주를 보게 하십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많은 사람들이 욥과 같이 주님을 보기를 원하면서 그 앞에 주어지는 믿음의 연단과 시련은 싫어합니다. 믿음의 시련 없이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의 본체는 저 하늘에서 보게 되겠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형제를 미워하는 미움은 마음의 눈을 멀게 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2:11).

- 뇌물은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로운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만드느니라.](출23:8).

- 부모에게 불효하고 불순종할 때 눈이 멀게 됩니다. [자기 아버지를 조롱하며 자기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들이 쪼아 내고 독수리 새끼들이 먹느니라.](잠30:17).

- 주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주님은 눈을 감기게 하시며, 잠자는 영을 부어 주십니다. [이는 [주]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 눈을 닫으셨음이요, 대언자들과 너희 치리자들과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29:10). 영적인 졸음, 수면 현상은 어떻게 오는가?

☜ 암송할 말씀: 엡1:18, 욥42:5

☜ 생각해 볼 문제:

-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신 예들을 찾아 적으시오.
-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적으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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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