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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부흥 90 - 26.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말씀: 골1:27


부흥을 위한 기도회 스무 엿새 째입니다. 주님은 우리 육신 안에는 아무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는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노라.](롬7:18). 이는 사람 안에는 불성(佛性)이 있다느니, 거룩한 신성(神聖)이 깃들어져 있다느니,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는 등의 철학과 종교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렘17:9). 이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현상은 어떻게 드러나더라도 사람의 본질은 악입니다. 성경은 성악설(性惡說)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전7:29- 참조/성선악설]

이런 인간을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복음이란 타락한 본성, 죄의 본성을 지닌 채 태어나 죄 가운데 살다 멸망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고전15:3-4)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않았다면 그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은 죄인들을 향한 복음입니다. 세상을 향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단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모든 죄가 사해집니다. 더 이상 정죄가 없습니다. 저주도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적인 복으로 복을 주십니다(엡1:3).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1:12). 그러나 구원은 신자 생활에서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은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구원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이 아닙니다. 영적인 삶에서 구원보다 중요한 것이 없지만 막상 살아가는 데는 구원보다 아무 것도 아닌 것도 없습니다. 이는 구원을 소홀히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의 육신이 이 땅을 살아가는데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출생이 가장 중요합니다. 생명의 탄생 없이 삶은 존재할 수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매일 자신이 태어난 생일만 생각하고 기억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삶에서 생일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보다 큰 사건이 없으면서 동시에 구원보다 경시받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거듭났을 때에도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오셔서 나를 대신해서 사신다는 점입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안에 오셨다는 사실은 영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고자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다시 오셨습니다. 그 주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우리가 그분을 선포하여 각 사람에게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리고자 함이니 이것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힘쓰며 수고하노라.] (골1:26~29).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이 진리는 감추어졌다가 이제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려주신 신비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주님께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것을 믿을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은 이전 시대와 세대로부터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성령의 조명과 성경을 통해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입니다. 바울이 수고하고 일한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가 아니라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에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의 비결입니다. 믿음의 삶이란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는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빌2:13). 누구든지 성령을 거역하고 대적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우리 안에 뜻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줄을 /내가/ 확신하노라.] (빌1: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의식하든지 하지 못하든지 주님은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죄 가운데 살고, 육신대로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분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시고 제자들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4-5). 주님은 제자들에게 열매 맺는 비결을 말씀해 주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조건은 이 한 가지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열매는 일과 달리 생명의 유기적 관계성이 맺어져야만 맺혀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이것을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밝히 드러내었고 또 드러내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26).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고, 주님 자신이 성도들 안에 있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계실 때는 우리와 함께 계실 수도 있고, 우리 곁에 계실 수는 있어도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 시간에 주님이 예루살렘이나 시내 산에 계시다면 지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로 몰려 갈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주님을 뵙고 싶은 성도라면 그리로 가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은 삼위일체의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 속에 계시고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엡4:6). 우리 안에 계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거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바바리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시느니라.](골3:11).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고전6:19).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이나 헤롯의 성전처럼 나무와 돌과 같이 손으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가 음행을 피하고, 속된 것을 피하고, 몸을 거룩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의 뜻을 행하는 도구입니다. 의의 병기입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입니다. 몸은 영을 필요로 하고, 영은 몸을 필요로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의 성품과 인격과 능력과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삶을 통해 주님의 신격이 드러나고, 권능이 드러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성령이 행하신 일의 결과라고 해서 ‘성령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이 거하시며, 거니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문제는 이런 진리가 선포될 때 얼마나 깨닫고 믿음으로 수용하느냐? 입니다. 성도들에게 이 진리를 선포할 때마다 느끼는 한 가지는 좀처럼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란 질문은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진리는 너무나 중요해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는 버림받은 자라고 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우리 안에는 영광의 주님이 거하시고 계십니다. 이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말씀이 말하는 것을 믿음으로 압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것을 믿는 것과 같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 역시 믿음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사도들이나 특별한 믿음의 은사를 지닌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진리가 아닙니다. 주님은 믿는 자라면 누구에게나 그 안에 들어오시고 거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 즉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주님의 사상이나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자신이란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晩餐)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3:20).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 안에 거처를 삼으십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문을 열어 드렸다는 것입니다. 주님, 내게 들어오시옵소서!!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우리 안에서 사시며, 우리 안에서 걸으십니다. 우리 안에서 가르치시고, 일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졌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후4:7)고 합니다. 우리 육신이 질그릇이라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질그릇 속에 있는 보배란 것입니다. 질그릇에서 나오는 것은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선한 것, 의로운 것, 영적인 것은 질그릇 속에 있는 보배(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우리의 삶 역시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갈2:20a).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은 이제 우리를 대신하여 살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지만, 우리의 의를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란 이 진리를 깊이 생각하시고, 붙드십시오. 묵상하십시오. 주님께서 눈을 열어 주셔서 이 진리를 보게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내 안에 사시는 주님,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이야 말로 승리하는 성도, 열매 맺는 성도가 되는 비결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라.] (빌1:21).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복이나 특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성도들에게도 바울의 고백과 같은 동일한 고백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첫째,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식인종이 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봅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6).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앞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먹는 다는 것은 주님께 나아오는 것이요, 마신다는 것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빵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그렇다면 주님께 나아오고, 주님을 믿는 자는 누구나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요, 주님 역시 그 안에 거하게 됩니다.

둘째,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는 그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힘입어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셋째, 서로 사랑할 때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때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느니라. 그분께서 자신의 영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2-13).

넷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4:15). 이상이 모두 되었다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 암송할 구절: 골1:27, 갈2:20

☜ 생각해 볼 문제:

- 내 안에 계시는 분은 누구인가?
-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는 방법은?
-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쉽고 단순한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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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