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말씀: 슥 4:6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신학에서는 성령론(pneumatology)이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pneuma 는 ‘바람’ 또는 ‘호흡’(숨)을 뜻합니다. 성령은 바람과 호흡(숨)에 비유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처럼 이해하기 쉽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요3:8).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을 마치 바람이 부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바람에게 대언하라. 바람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숨아,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 위에 숨을 불어 그들로 하여금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37:9). 이 역시 성령의 역사를 숨, 바람, 호흡에 비유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할 때도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 (사40:7). 주의 영은 바람처럼 부는데 이 바람은 에스겔에 골짜기의 바람과 달리 사람들을 시들게 하는 고온 건조한 바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높새 바람이라고 하는 이 바람이 영동 산간 지방에 불 때 들의 식물들이 말라 버립니다. 주의 영이 바람처럼 불 때 시들어 버리는 것은 이 바람이 심판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라고 할 때 이는 ‘거룩한 영’이란 뜻이고 중성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Holy Ghost(성신-성령이라고 번역)는 성령의 인격성과 신격을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영(spirit)이란 말 자체가 호흡, 숨, 바람이란 뜻입니다. [하늘들을 창조하여 펼치시고 땅과 땅에서 나오는 것을 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고 땅에서 걷는 자들에게 영을 주시는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사42:5). ‘호흡을 주시고...영을 주시는 주 하나님’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호흡과 영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성경의 용례는 호흡이 영임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아담이 지음 받을 때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명의 숨(호흡)을 불어 넣으심으로 인간의 영이 존재하게 되었음을 압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魂)이 되니라.](창2:7).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호흡(영)을 통해서 다른 피조물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불어 넣어지면 흙이라도 살아있는 혼이 되고, 마른 뼈가 살아나 군대가 됩니다. 그러나 호흡을 거두어 버리시면 살아 있는 사람은 다시 흙이 됩니다. [주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신즉 그것들이 떨고 주께서 그것들의 호흡을 거두어가신즉 그것들이 죽어 자기들의 먼지로 돌아가나이다.](시104:29). [그의 호흡이 떠나가면 그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바로 그 날에 그의 생각들이 사라지리로다.](시146:4).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호흡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호흡이요, 숨이요, 바람인데 결국 이것이 생명의 요체입니다. 욥기에 기록하기를, [모든 생물의 혼과 모든 인간의 호흡이 그분의 손에 있느니라.](욥12:10)고 했고,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 전능자의 호흡은 같은 말입니다. 영을 호흡이라고 한 말에 주목하십시오. 영, 호흡, 바람, 숨은 모두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느니라.](요1:3),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요1:10). 그렇다면 이것은 모순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말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이란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란 다른 언급이 없을 때는 언제나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요일4:12,13,15,16).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성경 어느 곳에는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골1:27).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말하면 아버지와 아들, 성령을 다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하면 우리는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요, 성령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에서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처음에 하나님의 영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말해도 역시 진리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모든 무리가 그분의 입의 호흡으로 만들어졌도다.](시33:6)는 성경의 증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란 단어는 본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언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조의 사역이든 구속의 사역이든 모든 하나님의 사역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역입니다. 이 셋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셋이 분리한다고 삼분의 일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각 완전하면서도 하나로 일치하는 것입니다(요일5:7-8).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용례로서의 어법 한 가지를 꼭 짚어야 합니다. 창세기 1:1에는 하나님이 등장하고 1:2에서는 곧 바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등장합니다.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란 말은 하나님의 영이지 하나님이 아니다’란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를 갖고 계시듯이, 성령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영’이라 불리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유일한 주(主)이시듯이 성령님 역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며, 창조주이시며, 유일한 주(主)이십니다. 우리 말로는 상당히 오해하기 쉬운 어법 가운데 하나가 [--의 아들, --의 영]이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내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이요, 짐승의 새끼는 짐승이듯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이란 뜻이 정확한 어법이요, 용법입니다. 하나님의 영이란 것은 하나님께 속한 부속물이란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과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며,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하나님과 성령은 완전히 일치하며, 동등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이란 의미가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는 이 한 가지 성경적 어법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주의 영이란 말은 주님이 성령이시오, 성령이신 주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어, 헬라어의 어법이나 문법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이도 이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영이 바로 주님이심을 입증하는 구절을 보겠습니다. [짐승이 골짜기로 내려감같이 [주]의 영께서 그를 안식하게 하셨나니 이처럼 주께서 주의 백성을 인도하심은 친히 영화로운 이름이 되고자 하심이라.](사63:14). [주]의 영께서...주께서...같은 말씀입니다. 이는 완전히 동격입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말하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으니 이는 너희 생각 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다 알기 때문이라.](겔11:5).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영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대언자는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주의 영이란 주님이 영이시오, 성령이 바로 주님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용법입니다. 나의 혼이라고 하면 혼이 나의 일부인 동시에 나를 대표합니다. 나의 영이라고 하면 영이 나와 영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영이 바로 나입니다. 나의 몸이라고 하면 그 몸이 나를 나타냅니다. 나와 몸을 분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란 자아를 기준으로 나의 영, 나의 혼, 나의 몸이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때로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식으로 말 할 수 있지만 몸이 했든 혼이 했든 내가 한 것은 동일합니다. 나란 말은 몸, 혼, 영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와 동일한 표현으로 하나님이란 말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 아버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 성령(하나님의 영)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하나님의 영,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란 말이 연속적으로 치환되어 사용된 것을 보십시오. 이 셋은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이란 구절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 거룩한 영, 성신, 성령은 모두 성령 하나님의 칭호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Holy Ghost란 표현이 89회나 등장하는데 이 말은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신격과 인격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가장 잘 표현된 구절 가운데 하나는 고린도후서 13:14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交通)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고후13:14). 또 하나의 예는 마태복음 28: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마28:19). 여기서도 성령은 Holy Ghost로 나옵니다. 셋이 각각 구분되어 표시되어 있지만 이름들(names)이 아니라 이름(단수)으로 단수 처리되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이시란 가장 결정적인 말씀은 요한일서 5:7입니다. [이는 하늘에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기 때문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요일5:7).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성령이 전능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붙들고 성경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공기, 숨에 해당하는 헬라어 어원은 뉴마입니다. 압축 공기를 이용해서 쓰는 드릴을 뉴메틱 드릴이라고 하며, 호흡 곤란(폐렴)을 뉴모니아(pneumonia)라고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뉴마(pneuma)란 어원으로 생성된 어휘들이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덕분에 성령을 하나님께 속한 어떤 것으로 이해할 뿐 성령을 하나님 자신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시지만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신약 성경에서만 성령을 언급하는 구절이 261 곳이나 됩니다. 복음서에서만 56차례 언급되었고, 사도행전에서 57차례 언급되었습니다. 바울 서신에서 112 차례, 나머지 신약 성경에서 36차례 언급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공부를 위해서 지난 2주간 성경 전체에서 성령에 대한 구절을 찾아보았는데 400구절이 넘게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가장 자주 듣지만 가장 잘 모르는 부분이 성령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해서 듣고 배우지만 성령은 마음속에 뚜렷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성령이 누구신가? 어떤 분이신가? 에 대한 진리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분명하게 성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성령의 능력 등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지만 성령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죠지 휫트필드는 말하기를, “성령은 삼위 하나님 가운데 가장 적게 알려지고, 사랑받으며, 경배 받으신다. 성령께서는 삼위 일체 하나님으로써 위엄과 힘과 지혜에 있어서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가운데 집행하시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이 세상을 향한 계획과 목적을 직접 실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령에 대해서 보다 더 오해받고, 오용되고, 불명예스럽게 되는 것은 없다. 교회사는 오랜 기간 동안 교회가 잃어버린 위대한 두 가지 위대한 진리가 바로 성령의 사역이요, 그리스도의 재림이란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다.”라고 했는데 매우 정확한 지적입니다. 교회는 성령에 대해서 외치는 만큼 성령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성령에 대한 공부를 통해 성령에 대한 바른 지식과 믿음을 가짐으로 성령 안에서 살고 걷는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내게 대답하며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슥4:6).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으로 되는가? 에 대한 근본적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힘을 구하고, 능력을 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주로 구하는 것이 힘과 능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런 것들을 간절히 구한 성도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된다는 말입니까? “오직 내 영으로 되느니라”입니다. 주님의 영은 자유로운 영이십니다(시51:12).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힘과 능력이 있어도 자유를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그는 성령을 통해 힘과 능력이 있었지만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죄의 종노릇을 해 본 뒤에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주의 자유로운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시51:12). 사람을 깨끗케 하는 것 역시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주의 영으로 됩니다. [이때에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불태우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어내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가운데서 깨끗하게 하시리라.](사4:4). 성령은 참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진리의 영, 자유의 영, 지식과 지혜의 영, 모략의 영, 거룩의 영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는 이 모든 일들이 주의 영을 통해서 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기간은 주로 성부(아버지 하나님)의 시대였으며, 복음서의 기간은 성자(아들 하나님)의 시기였습니다. 오순절에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성령의 시대입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성령의 오심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 16장 한 곳에서만 무려 12번이나 성령을 그분(he)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언급될 때는 중성명사로서 it이 사용되지만 인격에 관해서는 언제나 남성 명사인 he로 언급됩니다. 성령의 사역이나 영향력에서는 it으로 말하는 것이 옳지만 그분의 인격에 대해서 말씀할 때는 언제나 he로 언급되는 것이 옳습니다. 성령님은 영향력이나 에너지나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공부의 핵심은 성령님께서 인격적인 존재로서 하나님이시란 점을 출발점을 삼습니다. 성령은 호흡(욥33:4), 물(요4:10, 7:38)과 같은 비인격적 상징물로 표현되었으며, 성령의 처음 등장하는 곳에 단지 영향력이나 힘인 것처럼 나타나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성령을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능력의 일부나 에너지 정도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성령의 사역의 결과를 볼 수 있으며(요3:8),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말씀하시며(요16:13,14)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지 않기에 성령을 비인격적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자신은 분명히 인격을 지니신 인격적 존재이십니다.

성령을 비인격적 존재로 생각할 때는 성령 충만은 마치 축구공에 바람이 가득차는 것처럼 우리 안에 무엇이 가득 차는 듯한 체험을 구하게 됩니다. 성령을 에너지로 생각한다면 마치 건전지에 전기가 충전되듯이 내 안에 주의 영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성령이 비인격적 존재로서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성령을 붙들고 잘 사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령을 이용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성령을 영향력이나 힘으로 아신다면 우리는 성령을 받는 방법,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비결 등에 대해서 배우고,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성령만 받으면 만사 O.K 하는 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하나님이요 인격으로 아신다면 ‘내가 어떻게 성령에 붙들린바 되고 그분께서 나를 사용하실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정반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합니까? 성령이 비인격적 존재라면 나는 성령을 사용하는 지혜와 요령과 방법을 잘 배워서 필요할 때 잘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요,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복종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거역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제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아야 하며, 근심시켜 드려서도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성령을 사용하고, 이용하는 것은 성령이 나에게 주어진 힘이나 권세나 지식이나 돈과 같은 어떤 부속물이 되지만 성령이 하나님이시요, 인격이라면 내 안에 들어와 계신 성령께 내가 어떻게 순종하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사용되어지는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용해서 산을 옮길 생각을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해서 산을 옮기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성령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무속적 개념의 종교이며, 이교도적 개념입니다. 인격을 지니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사용하시도록 믿음으로 순종하고 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 바로 건전한 생각의 영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신앙입니다.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지만 성령에 대해 많은 오해와 편견과 잘못된 지식으로 영적 혼란을 겪는 성도들을 저는 참으로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성령에 대해서 강의해야겠다는 강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성령과의 지속적인 교제가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약하고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투를 하면서 어느 시기보다 성령에 대한 더 많은 지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해 알고, 그분께 순종하고, 그분에게 내어 드리십시오. 우리의 육신이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의 주가 될 때가지 그분과 계속 교제하십시오. R.A 토레이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이론적으로 모두 그렇다고 수긍하시면서 실제 여러분의 삶을 살면서 그분을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며, 그분을 향한 실제적인 태도에서 인격자로 대하시는지요?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인격자요, 그분처럼 사랑이 많으시고, 그분처럼 지혜로우시며, 그분처럼 강하고, 그분처럼 신실하시며, 그분처럼 늘 당신과 함께 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이 세대(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재림하실 때까지)에 사람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만들며, 주님께서 지상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 동일하게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교제하십니다. 그분이 과연 당신에게 그런 분이 맞습니까? 여러분은 성령의 교통, 성령의 교제, 성령의 친교, 성령의 사귐에 대해서 아십니까?” (R.A 토레이).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지시하십니다. 성령은 막으시기도 하시고 금지하시기도 하십니다. 성령은 성도들이 짓는 죄에 대해 슬퍼하시며, 억눌림을 당하기도 하십니다. 성령은 성도들의 불신과 불순종으로 제한을 받으시기도 하시며, 거역하는 자들에 의해 배척받으시며, 반역을 당하기도 하십니다. 성령은 기뻐하시기도 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성령은 죄에 대해 꾸짖기도 하시고, 책망도 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며 교회에 말씀을 전하기도 하십니다. 성도들 각인에게 말씀을 주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기도 하십니다. 자신의 뜻대로 각인에게 은사를 주시며,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이 단지 영향력이나 힘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말해 주는 것들입니다.

성령에 대한 모든 것은 특히 은혜시대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령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오늘날 교회는 바울의 경고를 명심해야 한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에 관해 무지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무지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대해서 무지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위로자 성령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위로자란 말은 헬라어로 “꾸준히 도움을 주기 위해 부름 받은 자”란 의미입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를 도와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 꾸준히 우리와 함께 있도록 부름 받은 분이십니다. 또한 이 단어는 “변호하다”란 의미가 있어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변호해주고 해결해 주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꾸준히 우리를 도우시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이 이 땅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떠나심으로 성령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말씀하시는 것보다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훨씬 더 유익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보살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리스도에게 알려지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떠나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과 동일한 위로자를 그들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위로자는 주님의 임재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서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셔서 영광스런 몸을 입고 계십니다. 성령은 이 땅에서 믿는 우리들과 함께 계시며,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데오도르 엡).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지 결코 힘이나 능력, 영향력이 아닙니다. 성령은 삼위 중의 한분이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지성을 가지고 계시며 무한한 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주님의 지상 사역동안 내내 주님 위에 머무셨습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사11:2). 주님은 성령을 거역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광야로 이끄시면 광야로 나아가셨고, 시험을 받을 때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주의 영을 지도하고 가르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주]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분의 모사(謀士)가 되어 그분을 가르쳤느냐? 그분께서 누구와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분께 교훈을 주었으며 의의 길로 그분을 가르쳤으며 그분께 지식을 가르치고 명철(明哲)의 길을 보여 주었느냐?] (사40:13~14). 성령을 지도할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성령께서 다만 우리를 지도하실 뿐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모두 아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이는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기 때문이라.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2:10~11).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 모두 살피십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가르치시는 교사요, 인도자이십니다.

로마서 8:27절에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삼상16:7, 대상28:9)에 대한 참고 구절로써 “그분(he)"이란 말씀이 나오며, 성령 자신에 대해서도 분명히 그분(he)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he)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롬8:27).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아시며,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에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살피십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성령의 전이 되어 성령을 모신 채 살고 있으며, 끊임없이 저 셋째 하늘의 높고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과 끊임없이 영적 친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셀룰러 폰을 보십시오. 기지국과 끊임없이 전파를 교환하며 누가 번호를 누르면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하늘의 하나님과 뜻을 주고 받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뜻을 계시하시고 소원을 주시며,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소원을 중보해 주십니다. 이런 지식이 경이롭지 않다면 여러분은 놀라게 할 지식은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놀라운 과학적 발견을 한 사람들의 학문이나 지식에도 우리가 놀란다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놀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의 지성은 인간이 이해의 범주를 훨씬 넘어서 있으며, 어떤 사람도 성령의 능력이나 지성에 대해서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 풍성히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각의 눈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학식 있고 평생을 학문에 이바지한 사람들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느헤미야9:20, 요14:26).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은 오늘 성령께서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고 무한한 지혜와 명철과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앎으로써 그분의 뜻에 굴복하고 그분의 조명을 받고자 결단하며, 순종하고자 한다면 성령을 아는 지식의 첫 걸음을 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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