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11:2
성령은 인격과 신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흔히 “성령을 받는다”에서 ‘받는다’는 말이나, 성령의 기름 부음할 때 ‘기름 부음’, 성령 충만(充滿)에서 ‘충만’과 같은 말이 성령의 인격성보다는 물질적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새겨집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결코 비인격적인 물질이나 에너지나 힘이나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기(氣)와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인격적이라 함은 지적, 정적, 의지적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인격적 특성인 지(知), 정(情) 의(意)를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인격의 본질적 요소들을 가지신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明哲)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를 두려워하는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사11:2). 성령께서는 지혜, 명철, 모략, 능력, 지식, 주를 두려워하는 등의 인격적 요소를 가지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경은 또한 성령께서 풍부한 감정을 소유하고 계신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곧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심정 속에 부어 주시며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며, 시기하시며, 위로하시고, 동정하십니다. 만약 성령께서 비인격적 존재라면 그분에게는 어떤 감정적 요소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두려움의 영이 아니요,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기 때문이라.](딤후1:7). 성령은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정도와 강도가 보통이 아닙니다.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아내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사심(私心)없는 순수한 사랑이며, 자기 생명을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어디서 배워서,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성령을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않고, 영적인 삶이 불가능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부어지지 않고는 우리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집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음이니](롬5:5).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사랑으로 일하심을 말합니다. 은사 중의 최고의 은사가 사랑이며, 열매 중에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4:8,16).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듭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맺는 열매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성령 없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또한 의지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의지가 없다면 인격적인 존재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은 분명히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에 뜻과 계획을 가지시고 그대로 시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선물을 나눠 주시는가 하면(고전 12:11)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비두니아로 가시는 것을 막으시기도 하셨습니다(행15:6-7).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시고 완전한 조화를 이루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도 안에서 말씀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일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위로자가 되시며, 도우시는 분이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신 혼들을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인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이 많으시고 지혜로우시며 온유하시고 굳세시며 신실하시며 모든 면에서 동등합니다. 인격과 지위, 권능과 지혜, 성품 등에서 완전히 일치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성령을 소개할 때 무려 12번이나 지시 대명사 it을 사용하지 않고, 그분(he)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을 펴 보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성령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시며, 그분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계속해서 그분(he)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이는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시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 (요16:7~8). 성령은 위로자(Comforter)로 소개됩니다. 이는 성령이 물질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우리를 모든 면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이란 의미입니다. 마음이 상하고 다치고 지치고 약한 혼들을 말씀으로 위로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귀를 여시고, 눈을 여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듣게 하시며,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눈을 뜨게 하시고, 영적인 놀라운 것들을 여러분 안에 가르쳐 주심으로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슬픔과 눈물과 어려움을 넉넉히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오셔서"(he cometh) 하시는 일은 또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습니다. 위로자는 일방적으로 위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꾸짖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이 말씀 앞에 환히 드러날 때 여러분은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여길 것이지만 주님은 그 죄들을 꾸짖으십니다.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꾸짖으십니다. 공중 권세자 마귀가 이미 심판을 받아서 더 이상 왕 노릇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기에 굴복해서 세상과 죄의 종노릇하며 살 때 성령께서는 꾸짖으십니다. 위로하시고, 꾸짖으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얼마나 우리 마음을 잘 살피시고 아시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 속의 생각과 상상까지 다 아시며, 그 의도까지 다 분별하시며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책망의 음성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죄에 대한 것인지, 의에 대한 것인지, 심판에 대한 것인지 간에 성령께서 꾸짖으실 것입니다. 죄는 주로 주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여러분이 매사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신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할 때 성령 하나님은 그것을 꾸짖으십니다. 저는 이번에 심한 독감과 몸살을 앓았습니다. 몇 주가 지났음에도 잘 낫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왜 이렇게 낫지 않느냐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는 저의 불신을 책망하셨습니다. “왜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느냐?”고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제가 감기에 걸렸을 때 누구 말을 듣고 무즙을 해 먹고, 한약방에서 준 약을 먹으면서 간단히 나을 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심하면 침이나 한 대 맞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에 대해 성령은 죄에 대해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죄니라](롬14:23) 말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꾸짖으십니다. 심한 두통, 기침, 몸살을 동반한 채 집을 나서는 순간 다시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후서 1:8-10절입니다. [형제들아, 아시아에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에 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가 힘에 겹도록 너무 눌림을 당하여 심지어 생명까지도 단념하고 우리 속에 사형 선고를 받았느니라.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건지실 줄을 우리가 신뢰하노라.] (고후1:8~10). 모든 말씀이 성경과 정확히 일치할 때 우리는 그것이 성령이 주신 음성이요, 꾸짖음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번에 제가 겪은 작은 예입니다. 여러분 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는 죄에 대하여 꾸짖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먼저 찔림을 주시고, 깨우침을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환경을 조성해서 조명을 주시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십니다. 꾸중하시고,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일 역시 성령의 인격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하는 잘못된 생각과 잘못된 행동을 가르쳐 주고, 꾸짖어 주고, 바로 잡아 줄 스승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저의 가장 친한 친구는 인생에서 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이끌어줄 스승,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자신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배우자” -이 셋이면 족하다고 말입니다. 성령은 여러분 안에서 스승이 되시고, 가장 좋은 친구인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친교를 맺게 하시며, 정결한 신부로서 자신을 단장하며 살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인격적으로 이 일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조건 나를 지지해 주고, 지원해 주는 도우미만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내린 결정,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일체 묻지 않으시고 무조건 형통하게 해 주시기만 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주인이 아니라 종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지혜는 있어도 힘은 없고, 능력은 있어도 도덕성은 없고, 도덕성은 있어도 악을 막을 수 있는 의지가 없는 기형적인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하나님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무리 좋은 컴퓨터와 첨단 기계라도 여러분이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고, 완벽히 다룰 수 없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일꾼이라도 통제가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무능함만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완벽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독이라도 약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도 의지도 제대로 통제할 없습니다. 하물며 남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다스리고,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지으신 분이시요,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통제할 수 있는 분이시며,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고 완전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보냄을 받았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일하시는 것이지 우리의 종이 되어 저와 여러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우미, 종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성령의 은사, 성령의 체험 등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았다든가, 입신의 경험을 했다는 등의 간증은 굉장히 많습니다. 성령은 언제 받습니까?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하겠느냐? 하더라.] (행11:17).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시는 것입니다. 산 기도를 가고, 부흥회를 하고, 어떤 특별 집회를 통해 신령한 사람의 안수를 받을 때에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을 때에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불분명한 사람들은 성령을 받는다는 말을 신비적으로 이해하여 탈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령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닌 자기감정에 도취된 무속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믿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믿을 때 여러분은 성령을 이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대상임을 알게 되며, 이것이 성령 충만의 첫 번째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마치 방 안에 연기나 수증기가 가득히 차듯이 가득 차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유롭게 전권을 가지고 일하실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자기 집을 가지고 있거나 세를 들어 살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집 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는 그리스도인들과 성령님의 관계와 같습니다. 주인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세입자는 여러분이십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9~20). 여러분은 세를 얻어 살아도 주인과 함께 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곳 법에는 세입자들에게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주인이 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주인은 볼일만 보고는 가야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값을 치르고 산 집에 친히 들어와서 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주인으로서 자신이 산 집을 성전으로 삼으십니다. 문제는 여러분입니다. 이 주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집처럼 삽니다. 주인이 뭐라고 하면 시끄럽다고 대들기도 합니다. 주인을 무시하며 삽니다. 이 세입자는 자신이 주인에게 한 푼도 전세나 월세를 내지도 않았지만 마치 평생 임대 계약을 맺어 모든 법적 권한이 자기 안에 있는 줄로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손히 대해 주기는 하지만 중요 결정 사항에서는 주인과 나는 갈 길이 다르니 관여하지 말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사이가 좋은데 중요한 문제만 터지면 트러블이 생깁니다. “집값을 내지 않고 살게 해 주신 것에는 감사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사생활이나 인생까지 관여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고 말하는 부류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인에게 안방을 내어 드리고 모든 일에서 “이 집은 당신이 피 값을 주고 사신 집이요, 당신의 소유니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주님께 돈도 내지 않고 이 집에 있을 권리도 없지만 은혜로 살고 있으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제게는 아무 권리도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해당합니까?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여러분이 모든 전권을 내어 드리고 순종합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일컬어 성경은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주인이 결정한 일에 순종하는 일은 때로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 몸과 영의 주인이신 성령께서는 그 과정 하나하나를 다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영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런 삶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여러분이 마치 주인 행세하며 성령님을 억누르고, 거역하고, 슬프시게 하며, 불순종할 때 성령은 여러분을 통해 어떤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신데 성령의 지혜를 자기 지혜보다 낮게 평가하고, 성령님의 감정을 건드리고, 성령님의 의지를 거역할 때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마치 죽은 듯이 고요하며, 없는 듯이 거하십니다.
성령을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고 단지 감화력이나 능력이라고 생각할 때는 어떻게 하면 성령을 붙잡아서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나도 성령을 받아서 솔로몬처럼 지혜롭게 살아 보고, 삼손처럼 힘을 발휘해 보고, 사도들처럼 병자들을 일으키는 기적을 한번 행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에게 왜 성령 충만을 받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마음대로 사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성취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왜 믿음이 크고 강해지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그런 믿음만 있으면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나의 인생을 무지개 빛으로 바꾸고, 무슨 일이든지 척척 해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영적 스타가 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성도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런 사람 중의 하나가 마술사 시몬이었습니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내가 누구에게든지 안수하면 그가 성령님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돈과 함께 네가 망할지어다.] (행8:19~20). 그러나 성령 충만이나 믿음 충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께 복종하게 되고, 믿음이 충만하면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내가 어떻게 성령께 순종하고 성령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직접 말씀하시거나 기록된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거나 사람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그 음성을 분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많이 읽었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인가? 마귀의 음성인가? 쉽게 구별이 갈 것입니다. 기록된 성경의 음성, 음색은 성령의 음성과 음색과 동일합니다. 양들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귀는 속일 수 없습니다. 눈이 어두웠던 이삭이 쌍둥이 아들 야곱을 만지면서도 속았지만 그의 음성은 분별해 냈듯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영적 분별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성경을 듣고,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것은 인격자만이 인간의 사정을 알고, 동정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가르치고, 책망하며,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인격적인 존재라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동정하며, 권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적인 모든 면에서 저와 여러분을 이해하시며, 도우시며, 인도하시며, 가르치십니다. 진리의 영이시기에 진리의 성경을 가르쳐 주십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가장 위대한 교사이십니다. 단지 지식만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켜 주시며, 새 생명을 부여 해 주시는 그런 교사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부르심의 소망, 영광의 풍성함 등에 대한 것들을 속속들이 가르쳐 주신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성령 하나님이 아니시면 감히 어느 누구도 언급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의 지각(知覺)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로 하여금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7~19).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써 하나님의 영역에 속한 것들, 저 하늘에 있는 신비들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신격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영향력이나 힘, 에너지 같은 것이라면 성령은 지혜와 지식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완전한 지식의 소유자이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이는 /성/령께서 참으로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기 때문이라.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2:10~12). 성령의 지식은 완전하며, 무한하십니다(요일3:20). 성령은 진리를 아시며 성경 속에서 진리를 계시하십니다(요16:13, 요일5:6).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중보 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십니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
첫째,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代贖)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롬3:24). 구원은 값없는 선물입니다. 죄인인 저희들을 의롭게 하는 일에 주님은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믿음으로 얻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이 점을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이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단지 죄인을 죄없다. 의롭다 선포하는 판결이 떨어진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대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 여러분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창조되었음을 말합니다.
저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성경을 공부하면서도 제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 보려고 시도했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선교회에 가고 헌금하고 구제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다 이루었다’(요19:30)란 주님의 음성을 설교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평강과 기쁨이 제 마음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저는 죄를 억누르고, 이기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그것이 아니라 죄인 된 제 자신을 십자가에서 처리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도와 믿음, 말씀과 성령 충만으로 내가 조금 더 강하면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방법은 나를 강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옛 자아를 못 박는 것이었습니다. 육신, 옛 사람에게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어서 죄를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못 박아 버리심으로 죄와 육신과 율법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것들을 알게 해 주십니다.
저는 이후에도 영적인 삶을 잘 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경적 원칙에 입각하여 그대로 따르는 삶을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은 영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 보니 매우 율법적이 되었습니다. 원칙과 기준을 강조하다 보니 그 원칙과 기준이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엄한 율법이 되고 짐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죽어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부활 생명을 소유해야 한다.’라고 되뇌었지만 이번 성령론을 공부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또 한 가지는 죽은 사람은 죽었다는 말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는 이미 죽었고 이미 새 생명을 소유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주님께 죽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고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이런 사실을 저와 여러분들에게 알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저의 이 짧은 간증이 여러분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을 알게 해 주십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이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8:32). 이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주님은 아들을 주시고,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지니 이는 모든 것이 너희 것이기 때문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죽음이나 현재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고전3:21-22)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너희 것, ....다 너희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누구이십니까?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저씨가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낳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인색한 것이 있습니까? 아끼는 것이 있습니까? 다 주십니다. 다만 우리의 때와 필요에 따라서 공급하시기 때문에 욕심이 앞선 아이들이 아버지가 안 주시는 줄로 알 뿐입니다.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여러분이 자기 자식에게 갖는 감정이나 뜻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갖는 감정이나 뜻과 비교해 보십시오. 사실 비교를 불허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끼는 것이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풍성하신 하나님, 공급하시는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분 안에 가르쳐 주시고, 믿고 신뢰하도록 하십니다.
셋째, 복음입니다. [그런즉 나의 보상이 무엇이냐? 진실로 내가 복음을 선포할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선포하고 복음 안에서 내가 가진 권리를 남용하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9:18). 복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값없이 받은 복음이 아니라면 값없이 선포할 수 없습니다. 값없는 복음이란 것을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은 사람들이 자꾸 복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마치 무엇을 첨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란 것이 성령께서 2000년 교회사에 늘 가르치신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신 것은 값없이 나누어 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 자기 것을 챙기고, 자기 유익을 구하고,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배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것들을 받아서 주님께 모든 것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넷째, 생명수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다 이루어졌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의 샘에서 값없이 주리라.](계21:6),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계22:17). 신약 성도들에게 생명수는 성령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생수의 샘, 생수의 강과 같은 표현들은 우리가 받게 될 성령이라고 주님이 친히 해석해 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한 것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주께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음이더라.)](요7:38-39). 성령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자신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지 말고, 거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을 거슬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성령을 값없이 받았습니다. 왜 성령을 주셨습니까?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서로 섬기라고 주셨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라고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값없이 받은 귀한 것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땅속에다 묻어두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종처럼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과 바른 인격적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 성령 안에서 걸으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 성령 안에서 살라.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갈5:25)
*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라.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