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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의 인격(2)
말씀: 빌2:1


말씀

성령의 인격(2)
말씀: 빌2:1 요절: 빌2:1

계속해서 성령의 인격성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은 동일한 성품과 지혜와 능력을 지니시고 계시며, 동일한 신성과 인성을 지니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지 못했던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힘이 존재하며, 절대 불변하는 어떤 원리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절대적인 힘, 지혜, 원리 등은 인격성을 배제한 것이며 가치중립적인 것으로서 선이든 악이든 그런 도덕적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가치 중립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우주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절대적인 원리를 터득해서 그 원리에 순응하는 그런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요, 철학입니다. 이 우주에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붙들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무한한 지혜와 권능을 지니신 분이시며 동시에 자신이 지은 피조물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십니다. 말씀을 하시고, 명령하시고, 권면하시고, 위로하시고, 꾸짖으시기도 하시며, 고쳐 주시기도 하십니다. 사랑하시고, 슬퍼하시고, 뜻을 돌이키기도 하시며, 동정하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피조물들, 예를 들면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심지어 마귀들과도 대화를 나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말씀을 들으시며, 심중의 고통이나 마음 속 깊은 탄식 소리까지 들으십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광야의 짐승들이라도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시고, 들 풀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돌보시며 입을 것을 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적이라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 교제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말씀을 하고 주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상호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고,사랑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대우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도다.](고전1:9). 교제란 말은 인격적인 관계성, 상호 신뢰와 사랑과 존경의 바탕에서 성립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과 교제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안위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인정(人情)이나 긍휼이 있거든](빌2:1). 성령의 교제란 말은 성령과 인격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여러분의 뜻을 전달하고 믿고 복종하는 그런 관계란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교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사귐을 갖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요일1:3). 우리는 존귀하신 성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모두 친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으로서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선물을 주시고, 위로와 힘을 주시며,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와 친교를 원하시며, 깊은 사귐을 나누시고자 하십니다. 흔히 영성이라고 말하는 신앙 훈련은 말씀의 교제, 복음의 교제를 통한 성령과의 깊은 친교를 말합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사귐을 위해 빛 가운데 걸어야만 합니다. [만일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1:7).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란 말은 성도와 성도 사이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인격성을 매우 잘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빛 가운데서 걸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形像)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1:26a,27).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단수), 우리의 형상(복수)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친히 계시해 주셨습니다. 사람 역시 삼위일체입니다. 혼은 하나님 아버지, 영은 성령 하나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에 따른 것입니다.

성령의 인격성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셔서 우리 안에 영을 주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생명을 부여해 주신 생명의 부여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세 부분으로 만드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몸) 생명의 숨을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영) 사람이 살아 있는 혼(魂)이 되니라(혼).](창2:7).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 성령은 우리의 영을 만드셨습니다. 영이 없는 몸은 죽은 몸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여 영이 죽었을 때 몸 역시 자연스럽게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23). 사람은 이후로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서 땅을 갈며 수고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죄를 범함으로 성령께서 우리 코를 통해 불어 넣어주신 “생명의 숨인 영”은 죽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기능의 상실, 활동의 정지를 말하는 것이지 소멸이나 없어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자동차가 켜지지 않으면 스타터 모터가 죽었거나 아니면 무엇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제품이나 물건이 만든 목적에 따라 활동하지 못할 때 우리는 고장 났다거나 죽었다고 말합니다. 귀는 멀쩡한데 청력이 죽은 사람이 있고, 눈은 그대로 있는 시신경이 다쳐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화상으로 피부 조직이 죽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범죄 하는 순간 우리 안에 있던 영의 기능은 죽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의 계시와 조명을 얻는 영적 직관(直觀)의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의 몸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 지음 받았던 흙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때에 흙은 전에 있던 대로 땅으로 돌아가며 영(靈)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로다.](전12:7). 물리적으로 육체가 죽은 사람 외에 영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약2:26).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 가운데 영이 살아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은 모두 죄와 허물로 죽어 있습니다. ‘죽음’이란 말을 정확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몸의 죽음이란 몸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하는 것이며, 아무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죽은 것과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죄인의 영은 죽어 있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혼은 영원히 살아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 지었던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지옥에서 살던 하늘에서 살던 혼은 불멸(不滅)입니다. 영은 주님께서 거두어 가십니다(전12:7). 몸은 흙으로 돌아간 후에 생명의 부활을 하던 영벌의 부활을 하든지 부활합니다(요5:29). 영은 죽은 상태요, 죽어 가는 육체의 장막 속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혼이 바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영이 죽은 상태의 혼은 반역적이며, 불순종합니다. 영이 죽은 상태의 몸은 죄의 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롬6:6), 우리의 몸은 사망의 몸입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영이 죽은 상태의 혼(魂)은 반역적이며, 어릴 때부터 악하며, 그 마음은 심히 부패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과 닮은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며 또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대로(similitude) 만들어진 사람들을 저주하느니라.] (약3:9). 하나님의 모양(similitude)이란 것은 사람이 하나님과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의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그는 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아담이 에덴의 동산에서 잃어 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처음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 안에 호흡을 불어 넣으셔서 살아 있는 혼이 되게 하셨듯이 지금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성령이 없이 살던 때를 이전 사람, 옛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온 이후부터를 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옛 사람은 죄에 대하여 살아 있었으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죽어 있던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입니다. 옛 사람이란 정욕의 썩어질 욕망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이란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쫓아 마귀의 영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몸이 신이요, 배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영광을 돌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영을 쫓아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죄의 종이었던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주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옛 사람으로 살았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들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일들의 끝이 사망이기 때문이라.](롬6:21). 이것이 새 사람이 되기 전의 우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실 때 우리의 옛 사람, 이전 사람을 함께 처리해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롬6:6). 옛 사람이란 예전에 에덴에서 지음 받았던 사람,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혼과 몸이 붙어 있는 상태의 사람을 말합니다. 옛 사람은 혼이 몸에 굴복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우리의 혼이 진토(塵土)에 꿇어 엎드리고 우리의 배가 땅에 붙었음이니이다.](시44:25). 몸이 아픈 것이 두렵고 몸이 죽는 것은 더욱 두렵습니다. 혼은 몸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합니다. 몸이 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혼이 몸을 위해 무엇이든 생각해 내고, 꾀를 쓰고, 거짓말을 하고, 일을 합니다. [내 혼이 진토(塵土)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에 따라 주께서 나를 살리소서.](시119:25). 혼이 진토에 붙어 있다는 것은 몸과 혼이 하나로 묶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몸이 더럽혀지면 혼 역시 더럽혀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몸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혼)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됩니다. 육신은 그대로지만 여러분의 영은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났습니다. 혼은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 되었으며,영광스런 변화를 위해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아담이지만 영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전의 행실에 관하여는 너희가 속이는 것으로 가득한 욕심들에 따라 부패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의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었도다.] (엡4:21~24). 부패한 옛 사람 vs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 성령은 옛 사람과 교제하지 않습니다. 오직 새 사람만이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옛 사람을 고치시지 않으시고 더러운 옷을 벗듯이 벗으라고 하십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사역을 기초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영을 거듭나게 하신 분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요3:5-6).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또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말한 것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요3:5~8). 주님은 자신이 우리를 낳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낳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비인격적 존재라면 생명을 낳을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습니다. 성령은 썩지 아니할 씨, 곧 살아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약1:18). 생명만이 생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고, 마른 뼈들의 골짜기에서 군대를 만들어 내시며, 영적 죽음이든 물리적 죽음이든 개의치 않으시고 살려 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자신이 살려낸 사람들의 생각과 말 행동, 삶의 모든 부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영의 거듭남이 성령의 역사이듯이, 혼의 구원 역시 성령님의 역할이 필수적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듯이, 성령 역시 동일한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은 제 2의 탄생입니다. 새로 태어났다면 이전 사람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죽었습니다. 아담 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처리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영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아나니, 알지 못하느냐?]며 성경은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성령이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면 성령에게서 난 새 사람 역시 인격이란 결론이 납니다.

여러분은 현재 여러분의 새로워진 신분, 새로워진 상태를 인식하고 있습니까?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가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3:9-10).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여러분은 이미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든 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었도다.](엡4:24). 이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금식하며 울고 기도하며 구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행해야 할 명령도 아니고, 약속도 아닙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이미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믿음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이루신 이들이 내 안에 능력이 되고, 체험이 되고, 실제가 되지만 믿지 않을 때 그것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아무리 보아도 새 사람이 된 것 같지 않고, 여전히 옛 사람에 속한 성품이 나오고, 옛 사람의 기질이 나올 때 우리는 말씀이 맞는가? 내가 느끼고 겪는 이 현실이 맞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구원받은 사람 새 사람인가? 나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전히 악하고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육신적인 자신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원받았으며,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요, 하나님의 신성한 권능(벧후1:4)과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 자(벧후1:5)가 된 내가 왜 여전히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신의 일들을 하는 것입니까? 죽었다고 듣고 배운 옛 사람은 살아 있고, 다시 태어났다고 들은 새 사람은 죽은 듯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성경이 이미 말씀하신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대신 여러분의 느낌을 쳐다보거나 말씀대신 자신을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시지 않으신 어떤 일을 사실로 만들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일을 내가 사실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이 행하실 일들을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진리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이해하게 하시고, 믿도록 하십니다. 이런 저런 사건을 통해서 배우게 하시며, 책망과 징계를 동반하기도 하십니다. 성령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압니다. 죽었지만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새롭게 창조된 새 생명으로 살도록 가르치십니다.

빛이 없는 어두운 길에서 멀리 비치는 후레쉬를 받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기 저기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후레쉬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한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볼 것이며,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만 비출 것입니다. 내가 후레쉬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후레쉬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앞에서 비추어 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비추어 주는 대로만 가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이 비인격적 존재라면 여러분이 성령을 사용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사용하면 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령도 말씀도 여러분의 손 안에 쥐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약간만 지나보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 앞에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시면 여러분은 그 길로만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비추어 주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비춰 주실 때 그 길이 안전하고 평안한 의의 길입니다. 성령이 인도자이시고, 주인이시라면 성령께서 필요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비춰 주실 것입니다

배에는 강력한 전조등이 있어도 바다에서 헤맬 때가 있습니다. 배에도 조명등이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등대에서 비취는 빛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안에도 빛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를 바르게 인도해 주는 성령의 조명은 더욱 필요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 안에서 걸으시며,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우리 몸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십니다. 성령이 비인격적 존재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보상으로, 선물로 주신 성령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성령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사용 하는가?로 인생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양 종교나 무술 수련하는 사람들이 흔히 기(氣)를 불어 넣고, 기(氣)를 채운다는 식으로 교인들은 서로 성령을 채움 받고, 성령을 불어 넣어 주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비인격적인 에너지나 힘이 아니며, 물질적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기뻐하시고, 불의와 죄를 슬퍼하시며, 불순종할 때 억눌림을 당하시며, 모독을 받으십니다.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이란 존재이심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은 지, 정, 의를 지니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성령은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7). 기름부음이란 말은 분명히 비인격적인 무엇처럼 보이는데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느니라”고 분명히 인격적인 하나님의 역할을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이란 실상 성령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말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역할은 성령이 하십니다. 성령은 주(主)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가르치는 능력은 느헤미야 9:20과 요한복음16:13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시며, 지식을 축적하시며, 계시하시고, 가르치시며, 확증하시고, 우리가 잊었을 때 기억나도록 하시는 선생님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인간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아십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속생각들을 아십니다(시편139:1-4절 참조).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십니다(계2:2). 성령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마6:32).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롬8:26).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눅16:15.요21:17, 행1:24, 15:8). 성령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우리에게 은사들을 주십니다(고전12:11). 성령의 의지는 곧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 구절은 특히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믿는 자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시겠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고전12:4-10).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뜻대로 나누어 주신 은사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굴복하시며(눅22:42.요5:30, 요일5:8) 주님께서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성령은 아버지의 뜻대로 말씀하십니다(요14:10, 16:13). 성령은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십니다(요15:26, 16:7). 이는 지위의 고하(高下)에 따른 굴복이 아니라 인격적인 상호 순복입니다.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인격성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인도하시고 지도하십니다(요16:13, 롬8:14). 성령은 명령하십니다(행8:26-29). 성령께서는 금지하시기도 합니다(행16:6,7). 바울과 실라, 디모데는 자신들이 가고자 했던 선교지로 가지 말라는 성령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다(롬8:26,27). 기도할 때 우리를 도우시며, 중보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仲保)하시기 때문이니라.](롬8:26). 여러분이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먼저 도움을 주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중보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사실을 알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됩니까? 하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를 강력하게 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얼마나 큰 위로와 축복이 되겠는가?

성령은 사람을 부르셔서 일을 시키시며, 임무를 부여 하십니다(행13:2,20:28).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께서 부르시고 세운 선교사였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말씀하시듯이, 동일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안티오크에 있는 몇몇 장로들에게 선교사로 파송할 사람을 세우도록 말씀하셨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2:7,11.17,17,29; 3:6,13,22)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부르짖으십니다(갈4:6). 성령은 증거하십니다(요15:26,16:13, 벧전1:11, 요일5:6-9).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모든 신자들에게 증거하셨으며, 영적 은사들을 나누어 주셨으며, 우리가 가진 믿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환란과 박해 때에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너희를 넘겨줄 때에 무엇을 어떻게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바로 그 시각에 /지시를/ 받을 것임이라. 이는 말하는 이가 너희가 아니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기 때문이라.](마10:19,20). 성령께서 여러분의 입을 사용하셔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하십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인하여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와 함께 힘쓰며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롬15:30). 성령의 사랑이나 주님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사랑이란 완전히 동일한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령은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분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속(救贖)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4:30). 바울은 특별히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지 말라고 적극적인 명령을 했습니다. (성령의 슬퍼하시는 모습에 대해서는 계2:4을 참고할 것). 성령께서 슬퍼하시는 것은 사랑의 더 큰 표현입니다. 슬픔은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수들에게는 슬픔이 아니라 화가 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증거하십니다.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요, 물과 피로 오셨고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그 까닭은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요일5:6). 우리 주님께서 신실한 증인이셨듯이, 성령 역시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증거하시는 증인이십니다. 성령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증거하시기 위함입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 것같이 그들에게도 주사 그들에게 증거하시고](행15:8).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님의 것을 받아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 것을 받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 (요16:13~14).

성령은 여러분과 말씀하시고, 들으시고, 가르치시고, 계시하시고, 인도하시며, 힘을 주시고, 선물을 주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며, 악을 버리고 미워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우리를 예배자로 만들어 주시며,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성령은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속생각을 하나님께 알리시고,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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