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3:3-8
요절: 요3:3,7
오늘날 성경 용어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호감도 높은 단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는 ‘거듭나다’란 말입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 혁신, 변화, 구조 조정 등과 같은 단어와 동일하게 치환(置換)하여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괄목상대(刮目相對), 혁명적인 변화 등을 [거듭남]과 동의어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씁니다. 거듭난다는 말만큼 자주 사용되지만 오용되는 말도 드물 것입니다. 거듭남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거듭남은 인간의 성격 개조나 인간성 개발이나 종교심을 심어 주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이란 한 번 더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모태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윤회를 통해 다음 생에서, 내세에서 다른 사람이나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정신적 각성이 있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거듭남이란 이미 모태를 통해 한 번 태어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에게서 나는 것을 “거듭 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탄생입니다. 이는 육신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의 생명의 탄생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있듯이 영적인 아버지가 생겼음을 말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어머니의 태에서 한 번 태어난 것과 같이 또 한 번의 탄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두 구절을 비교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2-13과 3:8입니다.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니라.] (요1:12~13).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3장에서는 “성령에게서 난 사람”(요3: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우리 주님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태어나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낳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 가지로 하나님이십니다. 한 구절 더 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풍성하신 긍휼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다시 낳으사 산 소망에 이르게 하시며](벧전1:3). 우리를 다시 낳으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영적 출생은 성령에게서 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 아비지께서 낳으시는 것이란 점에서 성령은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이심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너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그분께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에서 나고 또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에게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말한 것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마음대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에게서 난 사람도 다 이러하니라.] (요3:3~8).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나는 일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입니다.
어떤 종교와 철학에서도 거듭남의 진리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사람은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고, 고치면 되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철학으로 종교와 수행으로 잠재력을 개발해 주고, 마음 속에 잠자고 있는 능력을 일깨워주고, 정신을 각성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결코 거듭남이란 것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을 과대 평가합니다.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는 신성의 불꽃이 있다. 선심(禪心), 선근(善根)이 있다, 불성(佛性)이 있다, 우리가 결코 다 쓸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와 잠재력이 있다, 신성(神性)이 있다 는 등 별별 좋은 소리를 다 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엉망으로 사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이런 것들에 대해 무지하고, 이런 것들을 개발하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산파술(産婆術)을 주창했습니다. 이 말은 먼저 깨달은 사람이 산파가 되어 무지한 사람 속에 있는 지혜를 일깨워 줌으로 옥동자를 태어나게 하는 산파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동양 철학에서도 비슷합니다. 끊임없이 심신을 수련함으로 군자(君子)가 되고, 성인(聖人), 성현(聖賢)의 경지에 도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거듭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고 개선하고 개발하면 그만입니다. 이들은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말을 쓰기도 하고, 득도(得道)란 말을 하기도 하고, 달관(達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그들이 말한 최상의 상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 이들은 단지 모양 다른 죄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신의 경지에 오를 정도로 수행했고, 깨우침을 얻었고, 무엇이 되었다고 주장해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시62:9). 주님은 영을 달아 보시기 때문에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가득 채워도 허무보다 가벼운 것입니다. 영이 거듭나지 않는 이상 항상 모자라기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fall short of -모자라더니] (롬3:23). 이것이 현실입니다. 종교인들, 학자들, 교만한 인간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는 현실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한다 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수 없고, 죄악 가운데 태어난 자신의 본성과 생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태어난 장소를 바꿀 수 없듯이 자신에 관한 한 머리카락 색깔 하나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하십니다.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그러나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죄는 수행을 거듭해도 내 안에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도 제거되지 않습니다. 핵폭탄에도 부서지지 않으며, 어떤 화학 물질로도 씻겨 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 죄를 깨끗이 씻기며, 제거할 수 있습니다(엡1:7,요일1:7).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최선, 최고, 최상의 상태에 도달해서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살아있는 부처니 성인이니 현자니 천사 같다느니 신의 경지란 찬사를 듣는다 해도 주님의 평가는 완전히 다릅니다.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한 뼘만큼 되게 하셨사오니 내 시대가 주 앞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 하오며 참으로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시39:5).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옛 사람을 처리해 버리시고,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아담에 속한 것들은 다 죽음에 처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라.]는 것은 거듭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 안에 역사하셔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거하게 하시고, 생명의 말씀을 거하게 하시고, 친히 우리 안에 거하시며 성령의 은사들을 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그 사람 안에 성령을 통해 새 생명을 낳으십니다. 그 사람 안에 죽어 있던 영을 살리십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십니다. 이를 거부할 때 그는 누구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이며, 잃어버린 사람이며, 지옥 자식입니다. 그가 누구든지 간에 그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의 자녀입니다. 구원은 거듭남,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딛3:5).
주님은 우리에게 행위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행하십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도 없고, 애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일어나셨음(고전15:3-4)을 믿기만 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동산에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먼저 흙으로 사람을 만드신 후에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셔서 살아 있는 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새 사람을 만드시는 방법은 이와 정 반대로 먼저 영을 거듭나게 하신 후에 혼을 새롭게 하시고, 마지막으로 몸을 구속/변화시켜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순간 영이 죽고, 결국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악하여지고, 생각하는 바와 상상하는 모든 것이 어려서부터 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영이 죽어 버리자 사람의 혼은 급격히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혼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 정도를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몸은 병이 들고 약하며 죽어서 흙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성령께서 단지 도덕적 감화력으로 우리를 가르침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죽은 영을 살리시고, 혼을 새롭게 하심으로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세 사람입니다. 나는 한 혼, 한 몸, 한 영을 가지고 있습니다(살전5;:23). 혼도 사람이며, 영도 사람이고, 몸도 사람입니다. 사람의 자아, 정체성은 혼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하셨습니다. 말씀의 씨앗을 통해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것을 새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입니다. 첫 사람 아담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새롭게 창조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여러분 안에 영이 태어났습니다. 혼은 몸과 분리되는 영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을 일컬어 주님은 새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하신 새 사람을 입었도다.](엡4:24).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3:10). 거듭남이란 여러분의 삶과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면 거듭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인간에 관련된 성령의 가장 중요하고도 위대한 일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육신의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데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 영존하는 생명]이라고 합니다. 육신의 생명과는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생명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주님 안에 있던 생명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전달됩니다. [이는 생명의 근원이 주께 있으므로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볼 것임이니이다.](시36:9). 성령은 말씀이신 하나님의 말씀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생명의 씨앗이고 성령은 영원한 생명을 우리 안에 주십니다. 영생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선물입니다. 영생은 값없이 주어집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하십니다. 거듭남은 일이나 행위가 아니라 생명이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에 심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접붙여진(engrafted/심겨진) 말씀 곧 능히 너희 혼을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약1:21).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심겨질 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타고난 육신의 성품 대신 하나님의 본성을 주셔서 새로운 성품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나니 곧 /주께서/ 이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사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벧후1:3~4). 하나님의 본성은 거룩함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거룩함을 사모하는 성품이 바로 거듭난 성품입니다. 불의, 불법, 죄악에 대한 증오가 전혀 없는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이 내 안에 심겨진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이런 사회 운동에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짓기보다 병원을 짓고, 양로원을 짓고, 고아원을 짓는 것이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나 사도들이나 초대 교회의 어떤 믿음의 형제들도 그런 일을 주님의 사역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도 평생토록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섬기고,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하나님의 성품은 아니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악을 미워하고, 더러운 것을 가증이 여기며, 불법을 미워하는 거룩함입니다. 세상과 동화되지 않고, 일치하지 않고, 그 안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의를 기뻐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수치를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을 맞추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주신 새로운 성품입니다.
성령에게서 난 사람이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 안에서 걷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슬프시게 하거나 억누르거나 제한하거나 거역하는 일은 성령에게서 난 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걷고, 성령 안에서 살라, 성령으로 충만하라(엡5:18)는 말씀은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란 성령으로 태어나 성령의 은사들을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입니다.
거듭나는 일은 우리의 성격이 변했다거나 가치관이 변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때로 거듭난 사람이 그런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거듭남은 그런 것을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낳으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장난감을 만들듯이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과 본성을 그대로 물려주신 것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며 살아 있는 성전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누구입니까? 그분을 영접한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요1:12-1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이는 우리의 영의 탄생을 말합니다. 육신이 태어날 때 우리의 영은 죄와 허물로 죽어 있었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말은 영이 없다거나 소멸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영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눈은 있지만 시력을 잃어버릴 수 있고, 귀는 멀쩡하지만 청력을 잃을 수 있고, 혀는 있지만 미각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문둥병자들의 육신이 감각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경배하는 등의 일체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 버렸습니다. 주님은 영을 고쳐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난 것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거듭났는지 증거를 찾고자 한다면 몇 가지 점검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하나님에게서 난 자입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자,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는 체 기독교란 종교인의 삶을 살며, 봉사 활동을 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않습니다. 성경의 사상, 메시지, 기독교 철학, 예수님의 정신 등에 대해서는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매우 싫어합니다. 이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습니다.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이는 거듭난 생명의 씨앗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입니다.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옵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1:23).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 거듭나는 일은 없습니다. 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 환상을 보았다, 뜨거운 체험이 있었다, 놀라운 기적을 보았다, 기도 응답을 받았다 등으로는 결코 거듭날 수 없습니다. 꿈이든, 환상이든 체험이든 기적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그와 동반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표적을 단독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그와 동반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으로 그 말씀을 믿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수많은 표적을 보았지만 그들이 거듭나지 못했던 것은 표적만 구하고, 표적에 동반되는 주님의 말씀을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거듭난 자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니 또한 낳으신 그분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자도 사랑하느니라.](요일5:1). 예수님을 대언자, 위대한 랍비, 4대 성인, 철학자, 슈퍼스타, 사랑의 화신 등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민중 혁명가요, 위대한 교육가요, 종교 창시자로 믿는 자도 역시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가 하나님에게서 난 자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증거를 스스로 찾아보고 싶다면 여러분 안에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를 보면 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이는 자연스런 것입니다.
셋째, 거듭난 증거는 죄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요, 죄를 지을 수도 없나니 그 까닭은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이라.](요일3:9).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에 선뜻 ‘아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준으로 하면 지상에 거듭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습니다. 베드로, 요한, 바울, 바나바, 마가 등 믿음의 본이 되는 제자들이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서로 다투고,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싸우고, 외식하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도 않고, 지을 수도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이 한 구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니 오직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자기 자신을 지키매 저 사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그렇다며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우리의 영, 혼, 몸 가운데 영을 말합니다. 거듭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거듭난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새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속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이 사람은 결코 범죄하지 않으며, 죄를 범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여러분의 몸이나 혼이 아닙니다. 몸과 혼은 여전히 죄에 노출되며, 연약함으로 인해 죄의 법을 섬깁니다. 그러나 영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생명은 죄성과 정반대가 되며,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며 섬깁니다. [이는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7:22). 여러분의 육신이 약하고, 만족할만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고, 주의 말씀을 기뻐하고, 두려워한다면 그런 것들이 거듭난 자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거듭난 자는 영적 전쟁을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육신을 거슬러 대적하며 싸우십니다.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싸웁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거듭난 성도는 2 가지 성품이 있습니다. 옛 성품, 새 성품입니다. 옛 사람, 새 사람이 그것입니다. 거듭난 영이 강건하여지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 때 육신의 행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어떻게 죽입니까? 성령을 통해서 말씀의 칼로 죽입니다. 십자가로 처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티벳의 라마승들이나 인도의 요기들, 중국의 불교도들이 흔히 종교적 수행으로 삼는 고행(苦行)이나 금욕(禁慾)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땅에 있는 너희 지체를 죽이는 자는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육신의 정욕을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처리하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 죽음이 믿는 우리 안에 현재적으로 역사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몸의 행실, 땅에 있는 지체들을 죽이는 것이지 수도승들이 하는 것처럼 엄한 규율과 명상과 금식과 여러 가지 주문을 외우는 따위의 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성령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사역과 말씀을 근거로 우리 안에 일하십니다. 주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이 되게 하시며,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게 하심으로 육신의 모든 죄성을 처리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거듭난 자는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가? 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누가 거하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요14:6).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면 나에게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유무(有無)는 내 안에 생명이신 주님이 거하시는가의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마음에 영접하면 그는 생명이 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여러분 안에 주님이 계십니까? 스스로 확인해 보십시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불분명하다면 여러분의 구원과 거듭남 역시 불분명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주님은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주시는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골1:27). 여러분 안에 내 아닌 또 누가 있습니까? 점쟁이, 무당들, 마법사들, 영매자들은 자신 안에 마귀들을 불러 들여서 그들의 지시를 받습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그들 안에 있는 모든 마귀들보다 크신 주님이 거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라.](요일4:4). 여러분 안에 주님이 거하신다면 여러분은 거듭난 사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이 진리를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포도 나무와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신 상호 내주의 이 진리는 오늘날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서 가장 귀한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열매 맺기를 소원하는 성도들에게 이 보다 더 복된 진리는 없을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들처럼 버림받아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요15:4-6). 열매를 맺는 비결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며, 주님 역시 우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 역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것이 거듭난 가장 크고도 분명한 증거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명료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15-16절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또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5-16).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은 자신이 주님 안에 거하고 있는지, 주님께서 자신 안에 거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십니다. 그 사람 역시 그 안에 거합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쉽습니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려고 갖은 수고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은 여러분이 물을 마시려고 부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키를 돌려 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쉽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그 안에 거하십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완전한 사랑이란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직접 보여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랑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2:20).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나를 향한 그 사랑을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거하십니다. 셋째, 주님의 살(성육신하신 주님-요1:14.딤전3:16)을 먹고 주님의 피(하나님의 피-행20:38)를 마실 때 주님은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6). 이 말씀은 캐톨릭 교회에서 미사를 드릴 때 먹고 마시는 성병이나 포도주가 아닙니다. 주님이 내 살, 내 피를 말씀하신 것은 주님이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신 것과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행20:38)를 가지신 분이란 사실을 믿을 때 주님께서 그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이 주님 안에 있는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지 점검하고, 확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위의 세 가지를 점검해서 아니다 싶으면 이 시간 즉시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주님이 여러분 안에 들어오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아들로 받아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란 점입니다. 이 점을 믿으면 성령에 대한 진리를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1.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2. 성령은 인격이시다. /교제하시는 분이시다.
3.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말씀에 호흡을 불어 넣으신 분이시다.
4. 성령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것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계시해 주시는 분이시다.
5.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영적 생명을 주시고 낳으시는 분이시다.
지금까지 한 것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성령을 이렇게 알고 믿는 다면 성령에 대해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순복하고, 충만함을 받고,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