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행1:5,
요절: 행1:5
오늘날 성령론에 관련된 성경적 진리 중에 가장 분쟁과 논란이 많은 주제가 성령 침례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온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와 역사적으로 단 한번으로 끝난 사건이라는 개혁주의 계통의 교회의 주장은 지금도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에 교회에 성령이 임하고, 방언이 터지고, 여러 가지 은사들과 표적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은 주로 체험 위주의 신앙을 강조하는 교회들이 열렬히 선호하는 주장입니다. 표적과 능력과 은사로 드러나는 외적 증거가 있어야 성령 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방언입니다.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은사 등이 나타나면 그는 성령 세례(침례)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는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운동이 교회를 휩쓸 때 부흥회는 온통 성령 세미나, 성령 부흥회로 넘쳐났습니다.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 믿은 후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이 주장에 많은 성도들이 당황하기도 하고, 받으려고 기도하기도 하고,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방언을 받아 보려고 금식 기도하는 사람, 특별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 유명한 부흥 강사들을 따라 다니며 안수를 받는 사람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우리는 킹제임스 성경을 통해 성령과 침례, 성령 침례에 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령 침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증거한 사람은 침례인 요한입니다. 그는 요단 강에서 물로 침례를 주면서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고, 성령 침례를 가르쳤습니다. 침례인 요한이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었으며 동시에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으로 선포했습니다. 요단강에서 물로 침례를 주면서 행한 이 말씀은 예수님의 핵심 사역이 ‘성령 침례를 주시는 분’이란 것입니다. 요한의 물 침례는 백성들을 회개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거듭남이나 구원을 위한 침례가 아니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성령님으로 주시는 침례는 구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는 거듭남을 위한 것이요, 새 생명의 탄생을 주는 침례입니다. [참으로 나는 너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려고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을 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마3:11). 성령 침례는 사도나 목사나 선교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친히 주시는 침례입니다. 주님 외에 누구도 사람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줄 수 없습니다.
침례의 기본적 의미는 잠기는 것입니다. 물 침례는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불 침례는 불 속에 잠기는 것입니다. 불 못(호수)에 던져져서 그 속에 있는 것이 불 침례입니다. 성령 침례는 성령 속으로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역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는 성령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극(極)에 달하고 있는 터라 성령 침례에 대한 무지 역시 혼란과 혼동 그 자체입니다. 성령 침례에 대한 구약의 기록은 이것입니다. [그 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또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며](욜2:28-29).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해 성령을 부음받자 즉시 이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행2:17). 그리고 이 말씀이 바로 그날 성취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실제로 그날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을 부음 받았고, 사도들은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으며, 엄청난 인파들이 말씀을 듣고 회심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온전히 성령의 권능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받은 성령 침례를 사도들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만 한정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면 즉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선물로 받을 것임을 선포해 주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택하신 왕, 대언자, 제사장들에게만 특별히 임했던 성령님을 이제는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고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는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라, 하고] (행2:38~39). 이는 베드로의 신학이나 주장이 아니라 구약의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스가랴 12:10을 보십시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KJV)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곡하기를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기를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몹시 슬퍼하듯 하리로다.](슥12:10). 이 구절을 보면 전반부는 오순절에 성취되었지만 후반절은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계1:7에서 성취된다). 우리 말에는 연속적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킹제임스 성경은 전반부와 후반부에 콜론(:)을 찍어서 분리하고 있습니다. 앞 부분은 오순절에 분명히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부어졌습니다.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던 120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날 모인 3,000명의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계속 믿는 자들이 늘어나면서 모두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대로 유대인들이 모두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성령님을 받았다면 주님의 재림은 그 당시에 바로 있었을 것이며, 후반부에 기록된 말씀 역시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을 것입니다. 민족적인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영접했다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얼마 전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주님의 재림을 눈으로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곧 멈추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스데반을 죽이고, 예루살렘에서 믿는 자들을 모두 흩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잡아 죽임으로써 회개를 거부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것도 거부함으로써 성령님을 받는 일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이사야 32:15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께서/ 위로부터 영(靈)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열매를 많이 맺는 밭이 되며 열매를 많이 맺던 밭은 숲으로 여겨지리라.](사32:15). 이 구절은 앞으로 다가올 천년 왕국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위로부터 영을 부어주시는 일은 이미 오순절에 행하셨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오순절에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의 오심이 단회적인 사건이듯이, 성령의 강림 역시 단회적 사건입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받으심으로 성령을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 천년 왕국 시대에 모두 성령을 부어 주시는 성령 침례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시며, 성령이 바람처럼 불 때 환상의 골짜기에 있던 뼈들이 살아 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께서 위로부터 영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살게 하십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이런 말씀들의 분명하고도 확실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는 성령의 임재와 나타나심, 성령 침례에 대한 가르침이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돌려 그들에게 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의 집 위에 쏟아 부었음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39:29). 주님은 오순절에 문자 그대로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귀여워서, 하는 짓이 예뻐서, 잘 나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을 모독하고, 배척하고, 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에 상관없이 우리 주님께서 기록된 말씀대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장사되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신 근거는 우리의 어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어떠하심에 따른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을 너희에게 보내려니와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시(市)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여기서 매우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진리는 성령의 오심, 부어 주심이 전적으로 오순절에만 맞춤으로써 이전에는 이 땅에 성령이 없었다는 식의 주장을 해서는 안 됩니다. 침례인 요한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마리아, 사가랴 등도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과 이들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디에나 계시며, 언제나 계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성령 침례를 베푸시고, 그 안에 영원히 내주하시며,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연합케 하시며, 새 생명을 주시고, 새로운 성품을 창조하시는 그런 사역을 위해 오시는 성령의 오심은 오순절이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생애 시절, 즉 이 땅에 사역할 때에 주님을 믿고 고백했던 사람들, 따랐던 사람들은 모두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the Lord)라고 믿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구약 성도들 역시 성령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듭났거나 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으로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역을 위해 성령의 능력과 지혜가 주어지고, 감동을 받아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했던 사람들이 있고, 대언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성령 침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오순절 이전에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침례인 요한이 선포했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성령 침례는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상 사역 동안 성령 침례를 받은 제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주께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음이더라.)](요7:39). 주님이 말씀을 선포하시던 그 때에도 성령님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입니다. 여기서 영광이란 십자가, 부활, 승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승천없이 성령의 강림은 없습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에는 누가 성령님을 받습니까?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말씀함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받습니다. 특별한 사역자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부흥사, 목사, 집사와 같은 사역을 맡은 직분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속이는 자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성령은 주님을 믿는 자들이 받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구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을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 침례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서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하겠느냐? 하더라.](행11:17).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를 돌며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 역시 동일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고 또한 그분을 믿은 뒤에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엡1:1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은 친히 말씀하신 대로 성령으로 침례를 주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곧 죄의 단절이나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갔다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성 문제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으면 어떤 외적 증거가 눈에 보이거나 현상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뜨거워진다든가, 황홀경에 빠지거나 환상을 보거나 방언을 말하거나 등의 외적 체험을 경험하고자 하는 분들은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이 있었다는 간증을 하는 분도 많이 있지만 그런 것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분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면 신비한 내외적 경험이나 현상, 감정적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심으로 성령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능력을 심어 주시는 내적인 변화가 있게 됩니다. 성령 침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집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음이니](롬5:5).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일어납니다. 잃어버린 혼들을 향한 연민과 열정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은 성령 침례와 더불어 우리 안에 부어진 것입니다. 성령 침례를 통해 우리는 입술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 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갈4:6).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아버지가 아닌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려면 어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면 어찌나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지 모릅니다. 성령 침례를 통해서 우리가 성령을 마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5). 사도들은 모두 침례인 요한에게 이미 물로 침례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물로 침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에논 강가에서 물로 침례를 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받아야 할 침례는 물 침례가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은 이들이 곧 받게 될 성령 침례를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돌이켜서 십자가 전 날 밤으로 가보겠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오심에 대해서 몇 차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임이라.](요14:16-17).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실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영원히 거하십니다. 떠나시지 않습니다. 사울이나 삼손에게 임했던 성령께서는 그들이 범죄할 때 떠나셨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범죄한 후에 성령이 떠나실 것이 두려워 떠나시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아도 영원히 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성령 침례를 통해 영원히 성령의 전이 됩니다. 성령은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은 성령 안에 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방언입니까? 예언입니까? 병 고침입니까? 통역입니까?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이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이 아닌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가르치십니다. 성경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사도들이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 사건들을 기억해 내어 성경을 기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다 기억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을 배우고, 공부하고 싶어집니다. 아이가 젖을 찾는 것이 본능이듯이, 이는 영적 본능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거듭남은 심각히 의심해 보고,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성령은 우리 안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증거하신 증거를 받음으로써 우리 역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자는 증인이 아닙니다. 남이 듣고 본 것을 내가 말하면 그것은 증인이 아니라 말을 옮기는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가르쳐서 증인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어떤 전도자가 가르쳐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고, 아는 일은 사람의 말로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복음 선포는 반드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마음 속에 확신이 들어옵니다. [...이것들은 곧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전한 것이요...](벧전1:12). 사람의 말로 믿은 사람은 사람의 말로 흔들리고, 더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령의 증거로 믿은 사람은 사람의 말이나 주장에는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과 권능을 실증(實證)함으로 한 것이니 이것은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전2:4-5)고 했습니다. 성령이 주님을 믿는 자들 안에 임하시는 것은 ‘주님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은 누구나 전도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이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저는 구원받은 그날 교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가 믿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증거 했는데 얼마나 열렬히 증거를 했던지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저 아이가 언제부터 교회를 저렇게 열심히 다녔느냐? 마치 10년 이상 다닌 사람 같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러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증거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사도 행전에 성령 충만을 받았던 제자들이 예외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일을 알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이것이 성령 침례를 받은 증거입니다. 여러분 안에 주님에 대한 증거가 있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방언이 아닙니다. 병 고침이나 통역이 성령 침례의 증거가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실 성령께서 제자들 안에서 하실 사역이 무엇인지 분명히 증거하셨고, 가르치셨습니다. 만약 교회가 방언이나 통역이나 병 고침이나 환상을 성령으로 침례 받은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이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령 침례가 성령의 은사들은 아닙니다. 성령 침례가 성령의 열매도 아닙니다. 성령 침례는 말 그대로 성령을 우리 안에 부어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습니까? 아직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어떻게 받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까? 오늘 배우는 말씀을 통해 성령 침례에 대해서 아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 침례란 무엇인가? 이것은 2000년 교회사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펼쳐 들고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읽고 믿을 때 아무런 어려움도 난제도 없습니다.
누가복음을 보십시오. [요한이 그들 모두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시나니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눅3:16). 침례인 요한은 자신은 물로 침례를 주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가지 침례를 주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개역 성경에는 이 부분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주님께서 성령과 불로 한꺼번에 침례를 주시는 줄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성령과 불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침례는 잠기는 것입니다. 물 침례는 물에 잠기는 것이며, 성령 침례는 성령 안으로 잠기는 것입니다. 불 침례는 불에 잠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 사람은 성령 속에 잠기게 하시고, 다시 끄집어내어 불 속에 집어넣으시지 않으십니다. 어떤 부주의한 목사님들이나 부흥 강사들은 ‘성령이 곧 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불이 아닙니다. 불의 속성 즉 흥분, 열정, 뜨거움과 같은 것이 우리 속에 일어날 수 있지만 성령을 불이라고 말한 곳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속임수입니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분명하게 구분해 주고 있습니다. 'he shall baptize you with the Holy Ghost and with fire:'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이 둘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으며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둘 중 한 가지로만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은 불로 침례를 받을 수 없고, 불로 침례를 받을 사람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지 못합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 둘 가운데 한 가지의 침례를 주십니다. 누가복음 3:16은 마침표로 끝나지 않습니다. 17절에 연결된 말씀입니다.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알곡은 모아 자신의 곳간에 들이시되 껍데기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 하고](눅3:17). 침례 요한은 알곡은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고, 껍데기는 불로 침례를 주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 침례는 믿는 신자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침례요, 불 침례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침례입니다. 침례를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령 침례를 베풀어 줄 수 없습니다. 성령 침례와 불 침례는 오직 주님이 주시는 침례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침례를 베푸시는데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 침례요, 하나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불 침례입니다. 이는 지옥 불을 의미하며,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질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불로 침례를 받게 됩니다.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임이라.](막9:49)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4,15)고 하신 말씀 역시 주님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시는 불 침례인 것입니다. 흔히 성령 침례와 불 침례를 동일하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거짓 목사들과 성경 교사들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마귀를 같다고 하거나 하늘과 지옥을 같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주로 잘못된 성경이 그 뿌리입니다. [성령과 또 불로]라고 되어 있는 말씀을 [성령과 불로]라고 붙여서 읽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와 불을 받으라는 말이 동의어처럼 쓰이는 우습지도 않는 일이 교회마다 퍼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도 동일한 증거가 있습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고 하신 분, 바로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성/령이 내려와 누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바로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분인 줄 알라, 하셨기에](요1:33). 예수님은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시란 증거는 오직 침례인 요한만이 증거한 사실입니다. 사도들 가운데 누구도 이런 증거를 하지 않았고, 신약 성경 어디에도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부르시고 임명하신 주님은 지상 사역 기간 동안 그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럼 주님은 언제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신 것입니까? 승천 한 이후입니다. 주님은 친히 성령 침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5). 이 일은 주님이 승천하신지 정확히 열흘 후에 오순절에 성취되었습니다. 침례인 요한이 몇 년 전에 외쳤던 그 선포가 이제 문자적으로 실현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오순절에 정확히 성취되었고, 믿는 자들은 누구나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증거한 후에 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단지 놀란 것이 전부가 아니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자신들에게 들려주신 말씀(행1:5)을 기억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 위에 임하시되 마치 처음에 우리 위에 임하신 것같이 하시더라. 그때에 내가 {주}의 말씀 곧 그분께서 이르시되,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을 기억하였노라.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거역하겠느냐? 하더라.] (행11:15~17). 고넬료의 가족들은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는 순간 승천하신 주님은 그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 침례를 준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셨습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언제 성령으로 침례를 주셨습니까? 믿을 때입니다. 이들은 아직 물 침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안수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하늘에 계신 주님은 이들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셨습니다. 물로 침례를 받기도 전에 말입니다. 이방인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습니까? 듣고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고자 하노니 너희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 받았느냐?](갈3:2).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바울이 되묻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받은 상태임을 전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주시오, 믿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즉 너희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기적들을 행하시는 그분께서 그 일을 율법의 행위로 하시느냐, 믿음에 관하여 들음으로(how-by faith) 하시느냐?](갈3:5). 성령을 받는 일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자신의 소유로 인치시며,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도록 하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침례를 주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침례 역시 성령 침례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펴 보십시오.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은 모두 한 몸 안으로 들어오며, 한 성령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하여 침례를 받아 한 몸(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요, 곧 한 성령에 의하여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라.](고전12:13). 성령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그는 주님과의 종교적 관계는 맺었지만, 유기적 관계, 생명의 관계는 아직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침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됩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몸이 뜨거워진다는데, 성령을 받으면 능력과 권세가 주어진다는데, 성령을 받으면 어떤 기적이나 표적이 있다는데 등의 외적인 무엇을 구한다면 여러분 가운데 대부분은 평생 동안 성령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뜨거운 체험, 신비한 체험을 구하고, 느낌을 구하고,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를 열렬히 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령 그런 체험을 얻고, 느낌을 받았고, 표적이 생겼다 해도 그런 체험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느낌은 곧 사라지고, 희미해집니다. 체험은 기억 속에만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없어진 것입니까? 성경은 어느 한 구절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십시오. 믿고 들음으로써 성령은 고넬료와 그 집안 사람들에게 임하셨듯이 임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은 즉시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고, 그 안에 영원히 거하시며 진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예수님을 증거 해 주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십니다.
성령 침례의 가장 큰 영적 의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는 생명의 유기적 연합입니다. 성령 침례는 다른 표현으로 “그리스도 안으로의 침례”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롬6:3-4).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을 먼저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 넣으셔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을 우리 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침례를 받음으로 내 안에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지냄, 부활, 승천 등이 모두 나의 경험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면,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침례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의미는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또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이라.](갈3:27).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거듭난 자, 구원받은 자, 하나님에게서 난 자와 동일한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 안으로 잠기게 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2,000년의 시 공간을 초월해서 그 역사의 현장에 바로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롬6:3-4). 바울은 이미 “침례를 받은 우리”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영적 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사실을 진리로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나도 못 박혔고, 함께 장사되었고, 함께 일어났다는 성경의 진술이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으므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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