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8:31-32
전에 우리는 [날마다 해야 할 일](부흥90-35일째 참조)에 대해서 이미 말씀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꾸준히 해야 할 것들- 계속해서 하라]는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다가 중단하거나 포기하면 아니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영적인 일은 결코 낙담하거나 돌이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간혹 건축 현장을 지나다 보면 공사비가 부족해서, 또는 다른 이유로 공사를 하다가 멈춘 것을 봅니다. 그럼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흉물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계속할 수 없다면 비극입니다. 계속해서 꾸준히 하는 지속성이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이요, 성도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은혜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또한 의로운 자는 자기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더 강성해지리라.](욥17:9)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길을 꾸준히 걸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든, 성경 읽기를 하든, 전도를 하든,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든 꾸준히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착했는데...옛날에는 똑똑했는데.. 옛날에는 어떠했다고 자랑하지 말고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가를 보십시오.
우리가 꾸준히 계속해야 할 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주의 말씀에 계속해서,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꾸준히> 거하면/If ye continue in my word/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리니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주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말씀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말씀은 계속해서 보아야 합니다. 한 때 열심히 성경을 공부했고, 한 때는 뜨거웠고, 한 때는 어떠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재판을 받는데 “옛날에는 죄를 안 지었습니다.”란 말이 현재 지은 죄를 없애 줄 수 없습니다. 검사는 옛날의 깨끗했던 생활에 대해서 고소한 것이 아닙니다. 판사는 옛날의 삶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옛날에는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교회도 열심히 다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 마땅히 책망 받아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꾸준히 거해야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며, 그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또 그가 만일 내 명령과 내 법도를 꾸준히 행하기를 이 날과 같이 하면 내가 그의 왕국을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하셨느니라.](대상28:7)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잘 했던 날과 같이 지금도 늘 그러해야 합니다. 말씀은 계속해서 지켜야 하는 것이지 어느 한 순간, 한 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잠언 기자 역시 [그것들을 계속해서 네 마음에 묶어 두며 네 목에 매어 두라.](잠6:21)고 합니다. “계속해서”란 말을 주목하십시오. 성도가 말씀을 마음에서 잃어버리면, 입에서도 나오지 않습니다. 말씀에 꾸준히 거하며, 계속해서 지키리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의 판단들에 소망을 두었사오니 진리의 말씀을 내 입에서 아주 빼내지 마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을 계속해서 영원무궁토록 지키리이다.](시119:44).
둘째, 우리는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때에 우리가 알게 되리라.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주님을 아는 지식을 계속 추구하시고, 계속 알기를 소망하고 기도하고 찾으십시오. 예전에 알았던 주님, 처음 주를 만났을 때의 은혜로만 만족해하지 말고, 계속 성장을 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몇 년 전의 하나님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은 날마다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고(말3:7)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분이시오(약:17),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시지만(히13:8) 계속해서 주님을 알아갈 때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며, 주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은 멈출 수 없으며, 성장은 중단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성장기가 있고 그 다음에는 노화기를 겪지만 속사람은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고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벧후3:18). 성장은 점진적인 생명의 현상이요, 결과입니다.
셋째,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라/섬길지니라(wait on). [그러므로 너는 네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긍휼과 공의를 지키며 계속해서 네 하나님을 바랄지니라/wait on/.](호12:6). 주를 섬기는 일은 계속해야 하는 일입니다. 죽을 때까지 할 일이며, 영원토록 할 일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종신직입니다. 항상, 언제나, 계속해서 할 일입니다. 나의 사정에 따라서, 기분에 따라서, 내 마음대로 섬겼다가 말았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약직 사원이 아니며, 사표를 낼 수 있는 종업원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를 섬기는 종이요, 자녀요, 신부입니다. [즐거움으로 [주]를 섬기고 노래하면서 그분의 눈앞에 나아갈지어다.](시100:2). 주를 계속해서 섬기는 구약의 모범적인 인물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평생토록 계속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에 왕이 명령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니라. 그때에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계속해서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건지시리라, 하니라.](단6:16, 20참조). 계속해서 섬기는 네 하나님!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힘이요, 간증입니다.
넷째, 계속해서 주를 바라보라. 사람은 자신의 눈이 바라는 방향으로 몸이 움직이며, 발길이 옮겨집니다. 때로 옆으로 보거나 뒤를 보면서 걷는 수가 있지만 잠시일 뿐입니다. 계속 그렇게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걸으면 사고가 납니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눈이 먼저 가고 몸이 움직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보는가? 누구를 보는가? 에 따라서 그 사람의 모습 역시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한번만 보고 말아야 할 것이 있는가 하면 계속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의 눈은 시공간적 제약이 너무나 큽니다. 그러나 주님이 열어 주신 지각의 눈, 주님이 비춰주시는 생명의 빛은 시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소망한다,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디를 보는가? 무엇을 보는가? 는 그 사람의 삶의 핵심입니다. [내가 [주]께 바라던 한 가지 일 바로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하여금 평생토록 [주]의 집에 거하여 [주]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의 /성/전에서 여쭙게 하는 것이라.](시27:4).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오 하늘들에 거하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보소서,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 눈이 [주] 우리 하나님을 바라되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기까지 기다리나이다.] (시123:1~2).
다섯째, 계속해서 기도하라. 기도는 '했다 말았다' 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제자들은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과 함께 한 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행1:14). 사도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오직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행6:4). 계속해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들 때나 생각날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여섯째, 형제 사랑을 계속하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히13:1). 형제 사랑은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해야 합니다(벧전1:22).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내 안에 부음 바 되었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형제 사랑으로 쏟아내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직접 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요일4:20). 형제 사랑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일곱째, 계속해서 은혜 안에 거하라. [이제 회중이 흩어진 뒤에 유대인과 신앙심 있는 유대교 개종자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람이 그들에게 말하며 권하기를 하나님의 은혜 안에 <꾸준히> 거하라 하니라.] (행13:43). 주님의 은혜 안에 계속 거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은혜는 은사와는 좀 다릅니다. 은사는 주님께서 영적 사역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섬기도록 주시는 영적 선물입니다. 성경에는 성령이 나누어 주시는 다양한 은사들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영적 은사들은 은혜의 한 부분이요, 종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적, 인격적 속성을 말합니다. 은혜를 입었다, 은혜를 얻었다. 은혜를 받았다. 은혜를 소유하자,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말라 등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적 인격적 속성이요,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은총을 말합니다. 우리는 항상 꾸준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좀 살만하다고 해서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요, 능력과 지혜가 있는 존재인 줄로 알면 금방 쓰러집니다. 우리는 독립적인 존재,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님에게 소속되고 연합된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꾸준히 은혜의 말씀, 은혜의 영을 의지하고, 은혜의 왕좌 앞으로 나아가 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여덟째, 계속해서 믿음에 거하라.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고 <꾸준히> 믿음 안에 거하라/continue in the faith/ 권면하며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 (행14:22). 믿음은 지속적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신뢰의 끈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내 안에 모든 것을 주시는 통로입니다. 믿음 안에 꾸준히 거하는 것은 뿌리가 땅에 박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 안에 <꾸준히> 거하여/If ye continue in the faith/ 터를 다지고 정착해서 너희가 들은 그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골1:23a). 믿음에서 떠나거나 버리지 마십시오. 믿음은 일회용이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사건을 해결하고 버리는 도구가 아닙니다.
아홉째, 자기 자신과 교리에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라. [네 자신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것들 가운데 <꾸준히·continue in> 거하라. 이는 네가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할 것임이라.] (딤전4:16). 조금 하다 마는 일에 감동, 감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속적으로 할 때 보는 이들에게 증거의 능력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시작한 일을 계속함으로써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 자들을 구령할 수 있습니다. 교리란 하나님의 원칙, 원리입니다. 교리란 정확한 성경적 의미는 주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 가치관과 삶의 틀/자세/행동을 바꾸는 틀을 말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받은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내게 맡기신 복음 곧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에 따른 것이라.](딤전1:11). 이것은 건전한 교리, 경건에 따른 교리, 선한 교리입니다. 성경의 기록 목적 가운데 첫째가 교리입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교리(딛2:10),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나의 교리(딤후3:10)라고 했으며, 경건에 따른 교리, 건전한 교리(딤후4:3)라고 말합니다. 장로는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자들로 정의되어 있습니다(딤전5:17).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마음을 쏟으라.](딤전4:13).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세대주의, 캘빈주의와 같은 신학 사조를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과 삶의 원칙, 원리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나라의 기초적인 법을 가르쳐야 하듯이,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교리, 그리스도의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교리의 틀에 마음으로 순종하면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됩니다(롬6:17-18). 영적으로 성장하면 온갖 교리의 바람에 밀려다니지 않습니다(엡4:14). 선한 교리의 말씀들로 양육을 받으면 주님의 선한 사역자가 됩니다. [네가 형제들에게 이것들을 기억하게 하면 네가 도달한 믿음의 말씀들과 선한 교리의 말씀들로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사역자가 되리라.](딤전4:6). 교리를 교파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리를 딱딱하고, 자기들만 옳다고 싸우는 그런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독교의 분파, 파당이 너무 많아서 교리라고 하면 지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마귀들의 교리(딤전4:1), 사람들의 교리/-금욕주의/혼인과 음식을 금하는 것(골2:22)이 있습니다.
교리에 꾸준히 거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틀로 삼고, 항상 거기에 자신을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과 모든 것을 주님이 주신 교리의 틀에 맞추어 보라는 것입니다. 교리에 꾸준히 거 하는 것은 말씀의 자와 저울을 들고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눈대중으로 대충 살아서는 안 되며, 남을 기준으로 해서도 안 되며, 오직 주님이 주신 교리의 틀로 재어 보고 맞추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 번째,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주님께 드릴 것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찬양의 희생은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받은 목적이 주님께 영광의 찬양이 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 암송할 말씀 : 요8:32, 시123:1-2
☜ 생각해 볼 문제 :
- 우리가 계속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적어 보시오.
- 하나님의 교리란 무엇인가 말해 보시오.
- 건전한 교리와 마귀들의 교리와 사람들의 교리와의 차이를
말해 보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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