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시92:10
요절: 시92:10
오늘은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해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성령 충만과 성령 침례, 성령의 기름부음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셋은 흔히 엄격히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 침례는 구원받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잠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침례는 잠기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집어넣어 버리시는 것이 성령 침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침례라고 하지 않고 성령 침례라고 부르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침례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면 성령 충만은 지속적인 것이며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하고, 이것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역을 맡기시거나 어떤 사람으로 임명을 할 때 주시는 임명장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세 가지의 기름부음이 나옵니다. 첫째는 제사장의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삼으면서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은 하나님의 임명장입니다. 제사장의 기름부음은 단 한 번 있었습니다(레8:12).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하라.](출30:30). 이 기름은 때마다 붓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는 왕의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다윗을 택하여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이에 그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이제 그는 혈색이 좋으며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 보기에 잘생겼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시니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라마로 가니라.] (삼상16:12~13). 다윗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기름을 부음받았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순간 다윗은 그날부터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삼상16:13). 이 기름부음 역시 평생에 한 번 있는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대언자의 기름부음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택하여 기름을 붓게 했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다마스커스의 광야로 가고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시리아의 왕이 되게 하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출신의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대언자가 되게 하라.](왕상19:15-16). 이 역시 모든 대언자의 생애에서 단 한 번 있는 일입니다. 반복되는 일이 아닙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무를 받고, 그 직무에 맞는 직위를 받은 것입니다. 왕이든 제사장이든 대언자이든 임무를 수행하라고 부어 주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구약에서 기름 부음은 [왕과 제사장 대언자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는 이 셋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왕은 메시야 왕국의 왕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제사장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주님을 예표합니다. 대언자는 모세가 말한 바 ‘나같은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기름을 부음 받았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무엇 무엇으로 임명받았다.’는 신적인 위임[신탁(神託)]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께 기름을 부음 받았습니다. 이는 주요, 그리스도로 임명받았다는 뜻입니다. 문자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이란 말이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때 그리스도란 말은 ‘주께 기름부음 받은’이란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문자적 의미는 ‘주께 기름부음 받은 예수’란 뜻입니다. 이 부분은 성경에 분명히 증거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주에게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히1:9). 하나님은 우리 주님께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베드로도 증거하기를, [이는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였음이오니] (행4:27)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성령의 기름을 풍성히 부음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처음 성경을 펴서 자신을 증거 하실 때 바로 이 부분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구원을,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짓밟힌 자를 자유하게 하며](눅4:18). 이는 이사야 61:1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름을 부음 받았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요, 메시야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음이라.](행10:38). 우리 주님께서는 기름부음을 받으셨고, 그 기름 부음 받았음을 말과 능력과 행하신 일들로 입증하셨습니다.
[주의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새로운 임무와 사명을 받았고, 책임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될 때 주님은 거기에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누군가 집사의 직분을 맡게 되면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서 그 직무를 잘 감당하도록 기름 부어 주십니다. 누군가 성경 교사가 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사로 세움 받을 때도 주님은 그들을 따로 세우게 하시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이들은 선교 사역을 능력 있게 감당했습니다. 피아노 반주를 하는 일이든, 교회 버스 기사를 하는 일이든 찬양 인도를 하는 일이든 자신이 어떤 일을 맡게 되면 주님 앞에 꿇어 엎드려야 합니다. 주님이 기름 부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기본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단지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순간 직무와 책임이 부여 됩니다. 구원받은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가 누구든지 간에 때 왕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그래서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왕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천년 왕국 때 왕으로서 통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후에도 수십년간 왕은 고사하고 도망자 신세였습니다. 사울이 죽고 나서야 그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곧 왕위에 정식으로 등극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충분히 연단을 받고, 주님과 함께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 곧 자신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6),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음이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로다, 하더라.](계5:10).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없다면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왕과 제사장과 대언자의 직무와 사역을 받고 새로운 신분이 주어졌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시고, 그 사역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구약의 대언자와 같이 우리는 죄를 책망하고, 심판을 선포하며, 다가올 세상에 대해서 증거 합니다. 우리는 모두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전도자요, 증인의 사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즉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기름부음이 없다면 우리는 자격 없는 전도자입니다. 우리 안에 기름부음이 없다면 우리는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장의 자격이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사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1:12). 하나님의 아들이란 이 땅을 통치하는 지배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란 말을 듣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문자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에게 속한]이란 뜻이고, 그리스도란 말의 어원적 의미에서 볼 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고후1:21). 우리는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기름 부어 달라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시도록 기름 부어 달라고 구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도무지 구할 수 없습니다. 이미 기름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름 부어 주시도록 구합니까? 다윗은 자신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았던 것을 별개로 하고 늘 기름부음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유니콘의 뿔같이 높이시리니 내가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으리이다.](시92:10). 다윗은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기를 구했습니다(shall be anointed-미래형).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신선한 기름 부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역시 어떤 일을 위해서 기름 부어 주시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행할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름 부어 주시면 그 일을 능히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기름 부음이 있으면 승리합니다. [주께서 내 원수들의 눈앞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5). 기름부음의 결과는 넘치는 삶입니다.
기름부음은 개별적입니다. 여러분은 각기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들을 위해 주께 기름 부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모든 형제들은 어디서나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할 직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영과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시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슥12:10a)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미 그 은혜를 지금 바로 누려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고, 깨어 기도하고, 기도로 마귀와 영적 전쟁을 수행하고, 병든 자를 일으키고, 마귀를 물리치는 기도를 하려면 기도 자체가 사역이란 크고도 놀라운 강력한 영적 사역이란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의 승리와 패배가 나의 기도하는 손과 무릎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기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 것입니다. 교회가 순결하고 사랑으로 하나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되고, 화평의 매는 띠로 하나 되는가 그렇지 못한가의 차이는 기도하는 나의 마음에 있으며, 마귀의 올무에 사로잡혀 마귀의 뜻대로 사는가 아닌가는 기도하는 형제들에게 달려있음을 안다면 여러분들은 필히 ‘기도의 영, 간구의 영’을 주시도록 구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담대히 입을 열어 복음의 신비를 말하는데는 누군가 기도로 돕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왜 열매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할 것도 없이 당장 기도 모임에 오십시오.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누구에게 기름부음이 있는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사람에게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기도의 사명이 있음을 인식하고, 기도의 직무가 내가 맡은 책임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제사장’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무엘 같은 제사장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않기로 결단한 사무엘과 같이 여러분이 그런 임무를 수행하리라 마음 먹고 주께 구하면 주님은 넘치도록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형제들은 모두 자신이 복음 전파자란 사명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분, 사명, 책임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주의 기름부음이 있음도 압니다. 그리고 능력을 구하게 됩니다. 주의 영은 권능의 영입니다. 지혜의 영이요, 명철의 영이요, 모략의 영입니다. 나는 가족 구원의 사명을 타고 거듭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주의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주께로부터 권능을 받고, 권세를 받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의 영적 제사장이며 ‘아내의 선생이요, 자녀들의 스승이다’라는 사명을 인식할 때 그는 영적 권세와 필요한 기름 부음을 받게 됩니다. 인식하지 않고, 믿지 않는 자들은 구하지도 않을뿐더러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기름부음은 직무를 수행하는 임명장이요, 권세의 위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구하는 일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구하십시오. 오늘날 교회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형제들이 가정에서 제사장의 권위는 고사하고 무시 받고, 짓밟히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를 다니는 형제들은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명령은 잊어버리고 점점 여성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반면 자매들은 고요한 영의 단장이나 순종대신 점점 야수(野獸)처럼 변해갑니다.
저희 교회는 지금 매일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 제목 가운데 하나가 형제들의 회복입니다. 가장으로서의 영적 직무와 권위를 세워 주시고, 성경 교사로서 임무를 받고, 기도의 직무를 감당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를 구합니다. 구하면 받습니다. 찾으면 찾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어떤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도모한다는 자체가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성령 침례는 믿는 자라면 누구나 다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신자에게 성령의 권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과 더불어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후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성령이 임하신 후에 권능을 받습니다. 우리 주님은 침례인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이 때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시고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권능이 임한 것은 그 때가 아니라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돌아오신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에 돌아오시매 그분의 명성이 주변 온 지역에 퍼지니](눅4:14). 권능과 권세를 입는 일은 영적 생활, 승리하는 생활을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동시에 권능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선포할 때 성령과 권능을 실증했다고 말합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과 권능을 실증(實證)함으로 한 것이니](고전2:4). 여기서 권능이란 산을 옮기고, 불가능한 이들을 단숨에 해치우는 식의 권능이 아닙니다. 삼손과 같이 괴력의 육체의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권능은 ‘복음, 십자가,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으로 생각이 새로워지고, 마음이 변하며, 가슴에는 열정이 솟아오르고,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는 것 등의 변화를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고, 말은 있으나 권능이 없고, 잎은 무성하나 열매가 없고, 보기는 좋지만 맛은 없고, 맛은 있으나 영양이 없고, 살아 있다고 하나 죽어 있고,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그런 성도들, 그런 교회만큼 비참한 교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후에는 권능을 받도록 기도합니다. 이런 것은 구해야 합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가 되어야 합니다. 죄를 이길 힘도 없고, 세상을 이길 힘도 없고,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도 없고, 마누라를 이길 힘도 없고, 자식들을 이길 힘도 없다면 여러분은 ‘내 안에 성령이 있느니’ 하면서 떠드는 대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구해야 합니다. 신학적 지식으로는 성령이 언제 내 안에 들어왔고, 이미 나는 누구이고 별소리를 다 해봐야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전부입니다. 일만 권의 책은 못 읽었어도 내 안에는 주님의 말씀이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수는 망치 같고, 찌르는 채찍 같고, 단단히 박힌 못과 같다면 그 사람이 실제적인 권능의 소유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며,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란 사실을 다 압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드러나고, 성령의 은사가 드러나고, 성령의 열매가 드러납니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골1:27) 을 다 압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여러분의 마음 안에 쓰인 그리스도의 서신을 읽습니까? 천만의 말씀! 그렇다면 성령의 권능을 구하십시오. 예수님 믿고, 킹제임스 성경을 알고 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라면 이 세상에 더 살 가치가 있습니까? 제가 이 교회에 와서 4년을 보내면서 느낀 점 한 가지는 성도들이 지난 4년처럼 신앙생활하며 앞으로도 그 모양으로 살 것 같으면 차라리 일찌감치 때려치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장도 없고, 변화도 없고, 능력도 없고, 열매도 없고, 은혜도 없고, 믿음도 없고, 그렇다고 인품이라도 좋은가?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인격자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때는 거의 개망나니 수준입니다. 나이가 들었든 어리든, 남자든 여자든 매 한 가지입니다. 자신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 성령 안에서 살기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권능이 필수적입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면 그대로 사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기도하러 나오십시오.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낫습니다. 내 몸 뚱아리가 하나 없어지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분들은 주께 구하십시오.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 부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해 주의할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모든 것을 아느니라’고 하는 말이 직통 계시를 통해 나는 누구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성령의 조명과 계시로 주님께 집접 배우지 사람에게는 안 배운다 등의 주장을 하는 극단적인 주장에 자주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것입니다. 누구도 배우지 않고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이 성경 교사를 주시고, 목사를 세우시는 것은 배우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배울 때 그 배움을 통해 깨닫고 아는 것은 우리 안에 주어진 기름부음으로 인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성령이 누구인지 알고, 성경이 무엇인지 아는 것 등의 앎은 성경 공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 들은 것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증거해 주시고, 확증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심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분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이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이 진리요 거짓이 아닌즉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대로 너희가 그분 안에 거하여야 하리라.](요일2:27). 이 말씀은 우리가 기름부음을 받았음을 입증해 주는 구절인 동시에 교회의 성경 교사가 필요없다는 말처럼 들리는 구절입니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란 말씀에서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령이 가르친다면 성령께서는 빌립이나 베드로나 바울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를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교회의 감독들을 세웁니다. 교사를 세우십니다. 그럼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 유혹하는 자들이 속일 수 없고, 빼앗을 수 없고 달리 가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 증거가 있고, 확신이 있는 성도에게는 누구도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다른 소리를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가 받은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교단의 교리나 신학교의 주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증거하시고, 인치시고, 보증해 주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에 대해 달리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에 관한 교리는 매우 오해와 악용되는 예가 많습니다. 여러분도 분명히 알아 두지 않으면 시험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는 과연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는가? 에서 시작해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어떻게 체험하는가? 등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고, 그것으로 끝인가? 흔히 은사주의나 오순절 계통의 교회에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이나 되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름부음은 시작입니다. 기름부음은 사역의 완성이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길보아의 산들아, 너희 위에 이슬이나 비가 내리지 아니하며 헌물을 낼 밭도 없을지어다. 이는 거기서 강력한 자의 방패 곧 사울의 방패가 비참하게 버림을 받았음이니 마치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지 아니한 것 같았도다.](삼하1:21). 사울은 기름부음을 받지 아니한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성도들을 향해 하는 말씀과 같습니다. 크리스천이지만 크리스천이 아닌 것 같습니다. 구원받았지만 구원받지 아니한 것 같습니다. 이런 예는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은 모두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사울과 같은 왕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모든 크리스천들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구약에서처럼 올리브와 여러 가지 약재 향료를 써서 순수한 기름을 만들어서 부어 주신 것이 아니라 영안에서 성령을 통해 단번에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무 느낌이 없었던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았는지 조차 모르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순간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신학적 견해의 차이나 사람들의 체험의 차이와 상관없이 영적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생명의 거듭남이 느낌과 상관없이 우리 안에서 믿는 순간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부어 주심 역시 그러합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성령님을 주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 나를 완전히 변화 받게 하거나 놀라운 능력자가 되게 하거나, 성령의 열매를 맺거나 성령의 은사들이 밝히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 진리들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주께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않고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얼마나 육신적인 교인들이었는지는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이 곧 ‘성화’(sanctification)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장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사실이 모든 능력과 권세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말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비록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이 날에 약하여 이 사람들 곧 스루야의 아들들을 다루기가 너무 어려우니 [주]께서 악을 행한 자에게 그의 사악함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삼하3:39).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조차도 요압과 그 형제들을 처리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솔로몬에게 이들을 처리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영적인 생활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울 왕과 다윗 왕은 대언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주님이 메시야 왕국의 왕이 되실 분이심을 예표하는 기름부음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로서의 권위와 권세를 임명받는 것이 바로 기름부음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영적인 지혜와 권능을 소유한 것은 아닙니다. 삼손은 누구에게도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지만 주의 영이 임했습니다. 기드온에게도 주의 영이 임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미가 등 모든 대언자들 역시 주의 영이 임했습니다. 성경에는 심지어 이방 제국의 왕인 고레스도 주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역을 맡기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힘과 권세와 지혜 등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예후는 훌륭한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합의 모든 식구를 멸하기 위해서 그에게 기름 부음을 주셨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함에 이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의 기름부음과 인격은 상관 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성령이 임했다, 성령의 침례를 받았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성령의 인침을 받았다,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등등 무슨 말을 갖다 붙이고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어떤 사람의 인품이나 완전한 인격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령 충만했던 삼손은 죄 가운데 육신적인 일은 다 하고 다녔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사울은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으로써 성령이 떠나 버렸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던 다윗은 범죄함으로 엄한 징계와 심판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침례인 요한은 감옥에서 주님을 의심했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베드로와 바나바는 갈라디아 교인들 앞에서 외식을 하다 바울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했던 사도 바울은 마가를 두고 선배 바나바와 교인들이 보는 앞에서 격렬하게 다투고 서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이들은 교리 문제로 갈라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 충만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시기를 구하지만 그것이 결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신앙 생활의 출발점이요, 삶의 과정이지 결코 완성이나 목표점이 아닙니다.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해도 지독히 육신적이다 못해 불신자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의 은사도 중요하지만 성령의 징계와 훈련은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 사역이 없다면 누구도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아무리 풍성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형통한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징계 사역, 바로잡음, 책망이 시작됩니다.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빚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시는 자는 행복한 자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욥5:17). 주님은 자신이 주신 권능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십니다.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서 바로잡아 주심을 싫어하지 말지니](잠3:11). 이렇게 주님이 채찍질 할 때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이럴 때 주를 찾게 되고, 주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여, 그들이 고난 중에 주를 찾았사오며 주의 징계가 자기들 위에 임할 때에 그들이 /주께/ 기도하였나이다.](사26:16).
주님의 은혜를 입기 전에 백성들은 항상 옷을 빨고 자신을 성결케 했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라. 또 그들로 하여금 옷을 빨게 하고] (출19:10). 주님을 만나기 전에 자신을 성결케 하는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여호수아 역시 그러했습니다(수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할지니 이는 [주]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서 이적들을 행하실 것임이라.](수3:5). 이들은 가나안 정복 전쟁이란 과업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능력은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아이 성에서 패한 후에 이들은 다시 자신들을 거룩히 구별해야 했습니다(수7:13). 히스기야(대하29:5), 요시야(대하35:6)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먼저 성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자신의 모든 죄를 다 씻어내야 합니다.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은 더러운 그릇에 부어지지 않습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이에 야곱이 자기 집안 족속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내어버리고 정결하게 하고 옷을 갈아 입으라.](창35:2). 주님을 경배하기 전에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받을 때 주님이 부어 주신 성령의 기름 부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신선한 기름으로 기름 부어 주시고, 내 잔이 넘치도록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먼저 자신을 성결케 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음을 구하십시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