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의 인도하심
말씀. 요16:13

오늘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증거 하겠습니다. 성령은 진리로 성도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요, 말씀의 빛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양들을 인도하시는 목자처럼 우리의 순례 길을 인도하시며,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선장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마치 맹인에게 빛을 비추어 어떤 문으로 인도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귀머거리에게 소리를 쳐서 오라고 하는 일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의 손을 잡고 좁은 문으로 인도하십니다. 생명 샘으로 인도하십니다(계7:17). 양은 오늘은 어느 초장에서 먹고, 내일은 어느 물가로 가서 마실까를 계획하지 않습니다. 계획은 목자가 합니다. 양은 늘 목자의 인도함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실 성령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성령은 우리가 육신의 장막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인도자 하나님이십니다. 신비주의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와 계시를 매우 신비한 방법으로 받아야 하는 줄로 알거나 환상이나 환청이나 꿈이나 직통 계시 등을 받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받은 것만이 성령으로부터 받은 것인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천사들을 보았다거나 영들을 보았다, 빛을 받았다는 등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했다는 분들의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성경과 너무 달라서 즉시 거짓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성령은 어떻게 성도들을 인도하시는가? 매일 매일 매 순간 인도하십니다. 천성에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주님은 하루하루 매 순간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길잡이 역할을 하십니다. 그 예는 출애굽의 과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간 양떼처럼 인도하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보내셔서 매일 걸어야 할 만큼 걷게 하시고, 진을 쳐야 할 곳을 가르치셨고, 어떤 때는 며칠이고 몇 날이고 머물러야 했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이스라엘 자손이 이동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장막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명령에 따라 이동하였고 [주]의 명령에 따라 장막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장막 안에서 안식하였고 구름이 성막 위에 여러 날 동안 오래 머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명령을 지켜 이동하지 아니하였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며칠 간 머무를 때에도 그들이 그리하더니 [주]의 명령에 따라 장막에 거하였고 [주]의 명령에 따라 이동하였으며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머물다가 아침에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이동하였고 밤이든 낮이든 구름이 떠오르면 이동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장막에 거하고 이동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이동하였으니](민9:17-22). 이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식으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내 앞에 보인다면 모를까 그런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믿을 때 각자 우림과 둠밈이라도 하나 주셔서 그것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게 해 주셨으면 싶은데 그런 것도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말씀하십니다.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 손에 성령이 조명해 주실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구름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성경을 보는 것이 [우림과 둠밈]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합니다. 성경을 보는 것이 환상을 보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경험하는 것보다 더 확실합니다. 다윗이 말하기를, [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사 나를 인도하게 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들로 나를 이끌게 하소서.](시43:3)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심으로 인도]하십니다. 설교를 통해서, 성경 읽기와 묵상과 암송을 통해서 말씀을 보내십니다.

주님께서 심판하시고, 벌을 주실 때는 악한 친구들의 입을 통해 악한 교제를 하게 하심으로 육신적인 말들, 생각들을 전문가의 견해요, 유경험자의 경험인 것처럼 진리를 가장해서 보내 주심으로 그들을 혼란 가운데 지게 해 버리십니다. 주님은 때로 악한 영들을 보내시고, 마귀들의 교리를 쫓도록 하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오니 주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를 가르치소서.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25:5). 주의 진리란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말씀으로 가르치십니다. 따라가는 사람도 알 것은 알아야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모르면 물어야 하고 가르쳐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주심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기록해 두셨고, 성령을 통해서 인도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주의 진리로 인도하시고 말씀을 정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주께서 주의 권고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시73:24). 주의 권고 역시 말씀입니다. 성령은 성경으로만 인도하십니다. 말씀으로 분명한 길을 보여 주시고, 충만한 기쁨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께서 진리의 말씀이 아닌 표적이나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이끌어 주신다면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영적 성장이 있을 수 없으며,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나 영적 지각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말씀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그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자라나기 때문입니다(롬10:17).

제가 아는 한 형제님은 창립 예배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의 집회란 집회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집과 교회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지리산 자락 아래에 있는 시골 동네에서 전주까지 차를 몰고 왔습니다. 저는 그 형제가 그 교회에 오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 보았습니다. 신학을 하고, 성경을 좀 안다고 까불던 창립 멤버들은 모두 떠나가는데 어떻게 그리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지 물어 보았더니 자기도 그 문제로 고민을 하고 기도를 하는데, 설교 중에 ‘자신이 현재 있는 그곳이 가장 좋은 곳이다’란 말을 듣고는 마음을 정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주의 빛과 진리를 보내서 그를 인도하신 예입니다.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좀처럼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타 대학으로 옮길까, 신학 대학을 갈까 고민을 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집회에서 들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는 말씀을 통해 다니던 대학에서 잃어버린 혼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저 또한 양육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줄 아는 귀와 마음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주의 빛과 주의 진리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꿈을 통해서도 아니요, 환상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서 주님이 보내신 말씀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제 인생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마음을 잡고 대학을 다니면서 또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빨리 고시를 공부해야 하는데 사법 고시를 할까, 외무 고시를 공부할까 고민했습니다. 본래는 사법 고시를 공부해서 판사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 선교사를 생각하다 보니 외무 고시를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것을 가지고 매일 기도하고 상담도 하고, 고시 정보도 수집하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주님, 저의 결단을 축복해 주셔서 4학년 재학 내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마침 그 때 과 선배가 외무고시를 합격했습니다.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축, 영문과 4학년 *** 외무고시 합격>이란 베너를 보며 교정을 오르고 있는데 말씀이 임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17). 저는 그 때 제 인생의 모든 것이 틀어짐을 알았습니다. 꿈과 계획이 다 틀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수가 없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고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영적으로 어린데다 세상과 육신적 야심과 영적 열정의 구분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대개 육신적인 성도들은 자신이 정한 뜻에 합한 것, 마음에 드는 말씀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거부합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받고 싶은 말씀만 들립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들립니다. 이런 저의 체험은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동일하게 겪는 일입니다. 설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간증은 일이 끝난 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성령을 통해 인도함을 받는다는 현재와 미래가 없습니다. 오늘 만난 하나님, 오늘 받은 하나님의 말씀, 오늘 나를 인도해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이 전혀 없습니다. 저희 교회를 향해 성령께서 제게 깨닫게 해 주신 말씀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 [마음은 무디어지고, 귀는 듣기에 둔하고](마13:15,행28:27)란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정확하게 판단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부흥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기도회는 재미로, 교회 행사로 연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신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았습니까?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눅8:15). 늘 거짓말을 일삼고, 부정직한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지 않고 삐딱한 마음을 지닌 자들은 항상 불의에 동조하며, 거슬리는 영과 반역의 영에 휩싸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시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있기 전에 마음이 있습니다. 일보다 마음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닫히면 말씀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으면 성령은 인도하실 수 없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율법과 만군의 [주]가 이전의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영으로 보낸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고자 하여 자기 마음을 금강석같이 /굳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주께로부터 나왔느니라.](슥7:12).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받고, 깨닫고, 간직하고, 믿고, 순종하려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해 주시기를 늘 구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인도하십니다. 바른 마음이 되면 바른 기도, 바른 예배, 바른 찬양, 바른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인내하며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갖추도록 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직하고 선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에 말씀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습니다(눅8:15). · 온전히 겸손한 마음입니다(행20:19). 이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주님께서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는 마음입니다. · 상냥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용서하는 마음입니다(엡4:32). · 단일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두려움으로 주인을 섬기며 순종하는 마음입니다(엡6:5). · 순수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거짓 없는 형제 사랑과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벧전1:22).· 진실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충만한 믿음의 확신 속에 주님께 나아가는 마음입니다(히10:22). ·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오직 [주]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의 모든 길 안에서 걷고 그분을 사랑하며 또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섬기고](신10:12). ·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잠3:5).

성령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셔서 인도하십니다. 인도자는 누구라도 먼저 가르칩니다. 이는 등산 안내자라 할지라도 그러하며, 여행 가이드라 할지라도 그러합니다. 주의 사항을 가르치고,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들을 가르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주의 뜻을 가르치시고 주의 뜻을 행하게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오니 나를 곧바른 땅으로 인도하소서.](시143:10). 전혀 통제가 안 되고, 말을 듣지 않는데 지휘를 잘 할 수 있는 지휘관은 없습니다. 불신과 불순종하는 회원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팀웍을 이루고 목적지로 잘 인도할 수 있는 leader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때는 먼저 철저히 징계하고 심판하여 어떤 경우에도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든 다음에 인도하십니다. 지휘자는 모든 단원들을 철저히 가르치고 연습시킨 후에야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연출자는 배우들을 잘 가르치고 대본을 완벽히 소화해 낼 때에야 촬영을 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수십 번 새로 찍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항해하기 전에, 달려 갈 길을 달리기 전에 주님의 뜻을 배워야 하며, 배우면서 가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말씀을 배우지 않고 주의 인도함을 받았다는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도 없습니다. [내가 지혜의 길로 너를 가르쳤으며 바른 행로들로 너를 인도하였은즉](잠4:11). 주님은 가르치고 인도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목자를 세우셔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감독자는 누가 세웁니까? 성령님이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모든 양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게 하셨나니](행20:28).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신 성령님께서 교회의 감독자들 역시 친히 세우십니다. 성령은 자신이 세우신 감독자를 통해 먹이시고, 인도하십니다. 주님께서 목자를 세우시는 것도 똑같습니다. 친히 하실 일, 친히 하실 말씀을 목자를 통해서 하시기 위함이요, 그들을 통해서 배우고, 인도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목자이시기에 목자를 세우십니다. [그분께서는 목자같이 양떼를 먹이시고 어린양을 자기 팔로 모아 품에 안아 옮기시며 어린것들과 함께하는 어미들을 부드럽게 인도하시리로다.](사40:11). 성령의 인도하심은 목자가 어린 양을 품에 안아 옮기는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주님은 목자들에게 자신의 영을 두어 양떼들을 먹이고 인도하도록 하십니다. 성령의 인도함은 목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이 진리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자들은 주로 만인제사장 교리를 비틀어서 목양을 거부합니다. 순종을 거부합니다. 이 시대의 타락한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목양의 인격적 관계성이 완전히 파괴된 것입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은 목자들이 있는가 하면 개와 돼지들이 교회 내에 수두룩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은 교회 내에서 서로 연극을 합니다. 순수한 양 무리들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양과 목자의 역할을 소화해 내느라 애를 씁니다. 평소에는 문제없이 연극을 하지만 이권이 걸리거나 이해관계가 있을 때는 본래의 모습을 다 드러냅니다. 저는 짧은 목회 경력 밖에 없지만 이런 예를 수없이 보아 왔고 몸소 체험했습니다. 여러분은 목자를 세우시고 목자를 통해 인도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적 진리를 마음 속에 확증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길입니다.

어떤 분은 직장, 어떤 분은 이사, 어떤 분은 사업, 어떤 분은 개업....갖가지 선택 사항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목사는 사업에 전문가도 아니고 여러분의 삶을 책임질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인도함을 받으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자는 영적 원칙을 제시해 줍니다. 거기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얼마나 이득이 많이 남을 수 있는 직장인지, 사업인지를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직장, 그 사업을 해도 영적 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을 판단합니다. 이사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목자가 간단히 판단해 줄 수 있습니다. 동부로 학교를 갈 것인가? 캘리포니아에 남을 것인가? UCLA로 갈 것인가? UC Berkely로 갈 것인가 금식하며 고민할 것 없습니다. 제게 물어 보십시오. 간단하고 명료하게 판단 내려 줄 수 있습니다. 인도함을 받기 싫어서 묻는 것조차 싫어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곁에 있는 목자에게도 묻지 않는 자들이 꼭 보이지 않는 성령께 물어서 답을 얻었다고 자랑하는 바보는 되지 말기 바랍니다.

주님은 성령을 부어 주신 자신의 목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옛날과 모세와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여 이르시되, 자기 양떼의 목자와 함께 바다에서 그들을 이끌어 올라오게 한 자가 어디 있느냐? 그 속에 자기의 거룩한 영을 둔 자가 어디 있느냐?](사63:11). 주님은 성령을 부어 주신 자신의 목자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모세와 같은 그런 목자가 어디에 있느냐? 고 하십니다. 성경관도 교회관도 없는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다 보니 자기들이 끼리끼리 모여 수군덕거려서 내린 결론을 마치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고 말하는 가증스런 일들이 오늘날 각 교회마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시라면 우리에게 목자를 세워주십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어 보십시오. [그로 하여금 그들 앞에 나가고 들어오게 하시며 또 그들을 인도하여 내고 들어오게 하사 [주]의 회중으로 하여금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하니라.](민27:17). 성령의 인도하심은 목자를 세우심으로 목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교회 내에서 목자가 전혀 모르는 일들이 성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감독이 모르는 작전이 있을 수 있습니까? 목자도 알지 못하는 일이 이미 결정이 난 것들인데 그런 일들이 당사자들에게는 “주의 인도하심이었느니, 주님의 응답이었느니”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들을 때면 하나님의 처지가 졸지에 입헌 군주제의 아무 실권도 없는 상징적인 왕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이나 성령은 자기들이 애써 찾아내고 이루어낸 일들에 대해 사후 추인만 해 주는 정도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매일 눈에 보이고, 주의 천사가 앞서 가는 상황에서도 양떼를 인도할 목자가 필요했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목자의 역할은 달리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싶다면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십시오.

성경은 목자를 통해 성령의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분명한 성경적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그들을 먹일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부족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렘23:4). 이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법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도자로 세움 받은 목자에게 순종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도자를 찾습니다. 진로를 결정할 때,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이사를 갈 때, 사업 종목을 선택할 때도 면밀히 검토하고 고민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인도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슨 학교, 무슨 직업, 무슨 동네로 갈 것인가? 자녀들은 어디로 보내야 하며, 나는 어느 교회로 가야 하는가? 선택과 결정의 과정에서 우리는 주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의 인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 앞에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결정해 버립니다.

때로 어떤 이는 ‘만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만 확실히 알기만하면 무엇이든지 그대로 따르겠다’고 큰 소리 치는데 이 사람의 말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절대로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말입니다. 누구도 주님의 뜻을 확실히, 분명하게 확신할 수 없다는 강한 불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이란 말은 언제나 불신과 불확실과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영적 어둠의 상태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입술의 고백입니다. 누구의 입에서도 ‘성경을 읽어 보고 결정했습니다. 설교를 들어 보고 결정했습니다.’와 같은 말은 잘 안 나옵니다. 대신 ‘기도를 해 보았습니다’란 말은 많이 합니다. 기도를 하기 전이나 한 후나 어차피 변동 사항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마음속에는 자신의 뜻이 정해졌고, 기도는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영적 안정제 역할만 하면 될 것이며, 누구의 물음에나 당당하게 자신의 결정이 영적이었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멋진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로 교회 당회나 소위 말하는 제직회의 때의 광경을 보십시오.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제를 결정 지워 본 일이 있습니까? 사실 교회의 일은 다수의 의견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누가 성경을 펴들고 "주님의 말씀이 분명히 이러하니 이 말씀대로 합시다"라고 말하면 끝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 모임을 그래도 교인들이랍시고, 시작하기 전에 기도는 빠지지 않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회의 진행과 의결 때를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과 권위는 한결 같이 침묵합니다. 성경은 아무 발언권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모든 계획과 결정에서 먼저 말씀을 연구하고 찾습니까? 보다 좋은 계획, 보다 좋은 방침, 좋은 방법, 등 기술적인 정보를 추구할 뿐입니다. 주님의 방법이 무엇인가? 모두가 기도하여 주님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기도가 있다면 이미 계획되어진 일을 도와주고 형통케 해달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오직 말씀과 성령님을 통한 주의 인도를 실제로 간구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자부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들 자신이 계획하여 세운 사업/일/생각을 성경적으로 합리화시켜놓은 것에 불과하고, 기도가 있다면 그 계획을 잘 추진할 수 있는 방법과 길로 인도해달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자신들이 이미 마음으로 정해 놓은 뜻을 차질 없이, 어떤 trouble을 일으키지 않고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합심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또는 온 밤을 새며 기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사업의 일개의 조력자일 뿐이지 주인의 위치는 아닙니다. 먼저 주님의 뜻을 진정으로 구하여 알고 그 뜻대로 인도하여 시작되는 사업과 계획과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사업이요, 일이요, 계획이요, 뜻이지 주님의 사업은 결단코 아닙니다. 이런 자들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운운하고 말할 때면 저는 분노를 넘어서 허탈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주의 인도하심, 주님의 응답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에 복을 비는 기도를 해 주겠다고 기도하다 보면 저의 영이 무겁고 괴로워 지치고 맙니다. 차라리 인간적으로는 얼마든지 형통함과 복을 빌어 주겠는데, 차마 하나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은 신성 모독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의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나님을 주인의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모든 것에 결정을 내리는 결정권자라는 점입니다. 내가 내린 결정에 추인해 주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서 계획서를 짜고, 주님의 결재를 기다리거나 통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다만 순종할 따름입니다. 그 때에 주님은 우리의 인도자로서 모든 것을 뜻대로 인도해 나가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는 이 하나님께서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니 그분께서 /우리가/ 죽기까지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리로다.](시48:14).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도록 주신 성령을 통해 늘 인도자가 되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게서 가나안까지 순례의 길을 인도하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야곱의 모든 인생길을 인도하신 분도 주님이셨습니다. 요셉을 인도하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요나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스페인으로 도망가는 경우도 있고, 기드온처럼 주님의 뜻을 두 번이나 시험하는 사람도 있고, 입다처럼 경솔하게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며 뜻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믿을 때 인도함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일은 어떤 신비적인 일이 아닙니다. 환청이나 환상을 보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구한 좋은 예는 아브라함의 집사 엘리에셀입니다. 그는 주인의 명을 받아 이삭의 신부를 구하러 떠났습니다. 사실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과 인도함을 받는 일 외에는 어떤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르되, 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주] 하나님이여, 원하오니 이 날 내게 일이 잘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친절을 베푸시옵소서. 보소서, 내가 여기 우물 곁에 섰다가 이 도시 사람들의 딸들이 물을 길러 나오면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원하건대 네 물 항아리를 내려 나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녀가 이르기를, 마시소서. 내가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마시게 하리이다, 하면 바로 그 소녀가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여자이니이다. 이로써 내가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친절 베푸심을 알겠나이다, 하더라.] (창24:12~14). 그는 주님께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는 누구를 정해 놓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먼저 기도하고 그에 합당한 사람을 보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런 비슷한 기도를 참 많이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얼토당토 않는 기도가 많습니다. 자신은 엘리에셀의 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표적으로 점괘를 치듯이 ‘주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이렇게 안 해 주시면 아니란 뜻으로 알 테니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란 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자매와 결혼하고 싶어서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서 “오늘 우리 교회에 새 신자가 오면 결혼하라는 뜻으로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응답이 되었다고 떠벌리면서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선교사로 가려고 하면서 이런 저런 몇 가지를 정해 놓고 응답이 되면 다 정리하고 선교지로 떠나라는 뜻인 줄 알고, 그렇지 않으면 아닌 줄 알겠다고 기도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어떻게 되어도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차라리 색깔 다른 구슬 두 개 놓고 흰 것이 나오면 가라는 뜻이요, 검은 것이 나오면 가지 말라는 뜻인 줄 알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도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 됩니다. 이들의 기도와 엘리에셀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엘리에셀은 뜻을 정해 놓고 주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이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강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정해 놓습니다. 저를 보내시고 싶으면 검은 색이 나오게 해 주시고, 아니면 흰색이 나오게 해 주세요, 결정은 주님 당신의 몫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이들은 엘리에셀이나 기드온을 예를 들면서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성령께서 이런 식으로 인도한다면 우리는 주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다지 말씀을 공부하거나 영적 분별력을 가지려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점괘를 뽑듯이, 주문을 외우듯이, 내가 미리 정한 어떤 기준에 충족이냐 부족이냐? 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도권은 주님에게 있는 것이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도자는 주님이시지, 내가 이렇게 저렇게 인도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하면서 성령을 주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고용된 참모나 도우미나 가이드 정도로 생각하거나 비서 정도로 여기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나 친구나 배우자가 여러분에게 “내일까지 이것을 사 주면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안 사주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줄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이것은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입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에게 용돈을 200불을 주면 친구들과 라스베이거스로 떠나라는 뜻으로 알고, 안 주면 친구들과 빅 베어에 있는 스키장으로 가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여러분에게 간구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해 줍니까? 응답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따귀를 한 대 갈겨 주면 딱 맞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기도로 성령의 인도를 받겠다는 자들이 오늘날 교회 내에서 저지르는 짓거리들입니다.

우리는 주사위를 던져서 길을 정하듯이 경우의 수를 정해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인격적이며, 지성의 이해, 감정의 완벽한 감화, 의지의 완전한 순종이란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한다는 어떤 목사님은 교회에 문제가 있자 사직서를 써서 품에 놓고 다니면서 만약 교회에 어떤 문제가 하나만 더 터지면 당장 사임하겠다고 하나님을 협박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후에 자신이 넘긴 위기를 간증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조금 다닌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성경 구절을 갖다 대며 합리화할 능력이 있고,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말 재주가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막아 주시고, 금지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이시기 때문이오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인도하고 지도하소서.](시31:3).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위해 늘 기도하되 먼저 우리가 뜻을 정해 놓아서는 안 됩니다. 경우의 수나 조건을제시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종이 할 일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헌신을 하고 전적으로 성령께 맡기면 멀리 아프리카 오지나 나환자촌으로 자신을 가라고 할까봐 겁이 나서 헌신을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남은 인생을 전적으로 주님께 드려 버리면 나는 로봇이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자아는 소멸되고, 나의 인생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란 강한 두려움이 몰려 와서 주님께 헌신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다툼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로마서 12:1을 가리키셨습니다. 강단에서는 수시로 이 구절이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롬12:1). 섬김의 원칙이란 공부를 할 때도 여지없이 이 구절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하였을 뿐 아니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5). 성령의 음성이 분명히 들려왔습니다. 이것이 없이는 주님의 인도하심이나 하나님의 평강이나 기쁨을 기대하지도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제게 이루어주시지 않는 것들이 많다고 따졌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란 말씀도 제게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말씀도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몇 년 동안 로마서 12:1을 짚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저는 제 자신을 주님께 제대로 헌신했습니다. 이전에는 말로만, 입술로만, 형식적으로 헌신을 결단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고, 순종하기로 헌신을 결단했습니다. 이 때 얻은 평강은 구원받았을 때 얻은 평강만큼이나 컸습니다. 자유의 문제가 해결되고, 갈증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십시오. 누가 나를 이끌어 주는데 ‘손을 내 미시오. 당신 손을 내게 주시오’라고 해도 얼른 내 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손이 나를 잡아 이끄는 손이 아니라 절단해 버리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손 때문에 구출할 수 없으니 손만 잘라 버리면 나올 수 있다고 한다면 울면서라도 내어 놓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나의 온 몸을 전적으로 맡기는 그런 믿음입니다.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할지라도 기록된 말씀, 하나님의 성품, 능력을 믿고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안고 가실 수도 있고, 들고 가실 수도 있고, 꽁꽁 묶어서 가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이 없는 성령의 인도하심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나를 구원한 주님을 믿는다면 나를 인도해 주실 주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고,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후로는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십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이 원하는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십니다. [파도들이 조용하게 되어 그들이 즐거워하나니 이처럼 그분께서 그들이 원하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시는도다.](시107:30). 주님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사 기쁨으로 나오게 하시고 자신의 택한 자를 즐거움으로 나오게 하시며](시105:43).

우리는 오늘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매우 원칙적인 이야기지만 마음속에 품고 되새기면 모든 일에 인도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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