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엡5:9
그리스도인이 구원받은 목적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유일한 이유요, 존재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성경은 말하기를,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골1:10)라고 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열매를 맺으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 다산하라는 말씀은 직역하면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영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에게도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명령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 요건이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요12:24).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요15:1-5; 16). 셋째, 반드시 성령께 복종해야 합니다(롬6:13-19). 이 셋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넷째, 징계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시련, 시험, 징계를 보내십니다. [이제 징계가 그 당시에는 기쁜 것으로 보이지 아니하고 슬픈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성도들은 주님이 열매를 기대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것이 삶의 중심이요, 사고의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흔히 시련을 당하면 의심을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신앙 기준은 열매 맺는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왜 내게 이런 불행이 닥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열매 맺게 하시기 위해서 시련을 보내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벧전4:12). 또 가지를 치십니다. [내 안에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요15:2). 전정 작업은 모든 유실수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스스로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하나님과 말씀에 집중하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내게는 너무 소중한 것 같지만 주님은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을 때 주님은 가위를 드십니다. 이것이 가혹해 보여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다섯째,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인내하느니라.](약5:7). 이것은 열매를 맺는 방법이라기 보다는 열매를 거두는 방법입니다. 생명은 생명의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신약 성경에는 다양한 종류의 열매가 나옵니다.
첫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것을 열매라고 합니다. 사람이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란 것입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인이 늘어나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너희가 말하기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이미 희게 되어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것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같이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요4:35~36). 사람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열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회심케 하는 것이 열매입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고자 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롬1:13).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얻고자 한 “어떤 열매”란 복음으로 혼을 이겨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열매입니다. 잠언 11:30에서도 이르기를,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 나무니 혼들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잠11:30)고 합니다. “혼을 얻는다”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교회 생활을 하지만 혼을 이겨오지 못하는 것은 그가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이란 반증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 말씀의 씨를 뿌리고, 기도의 눈물과 땀의 물을 뿌려야 합니다. 마귀들이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깨어서 기도하고 지켜야 합니다.
둘째, 거룩한 삶이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롬6:22).
셋째, 물질의 구제 역시 열매입니다.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기부하였음이라...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행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인시킨 뒤에 너희에게 들러서 스페인으로 가리라.] (롬15:26,28). 우리는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일을 합니다. 왜 일합니까? 구제하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일을 한다면 주님은 여러분이 하는 일에 점점 더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기록된바, 그가 널리 /재물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지속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시는 분께서 이제 너희 양식으로 빵도 주시고 너희가 뿌린 씨도 번성하게 하시며 너희의 의의 열매도 늘어나게 하시리니)](고후9:9-10,*시112:9, 사55:10참조). 성경적인 노동관, 경제관을 확실히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일을 하는 자체가 고역이 아니라 주님의 사역이 될 것입니다.
넷째, 선행을 열매라고 합니다.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나게 하시고] (골1:10). 성도들은 선한 행위를 지속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 때에 열매를 맺습니다. [또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도 필요한 용도를 /채워 주기/ 위해 선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그리하여야 그들이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아니하리라.](딛3:14).
다섯째, 찬양을 열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여섯째,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형성되는 성품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말할 때 주로 언급되는 열매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이런 열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닮아가도록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들입니다. [(이는 /성/령의 열매가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엡5:9). 성령의 열매는 종류는 매우 많아 보이지만 열매들이라고 하지 않고 단수형으로 사용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은사들(복수형)이라고 말하지만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은사들과는 달리 모든 신자에게 나타내 보여야 하는 생명의 역사이기 때문에 단수형입니다. 분리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나는 다른 것은 문제없는데 인내심이 부족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인내심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 믿음, 온유, 절제 등 모든 것이 다 부족한 것입니다. 열매를 다양하게 묘사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드러나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사랑이 풍성하면 절제력도 뛰어납니다. 여러분이 자녀에게 참는 것과 밥맛 떨어지는 어떤 사람에게 참는 것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사랑이 넘치면 그 사람을 향해 오래 참고, 그 사람을 믿는 믿음 역시 넘쳐 납니다. 성령의 열매는 어느 하나가 있고, 어느 하나는 없거나 부족하고 어떤 것은 넘치도록 풍성하다는 식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자의 삶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변화된 사람의 삶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며 거룩함의 그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 (시29:2). 여러분이 어떻게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주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해, 신실해, 삶이 깨끗해, 사랑이 넘쳐! 와 같은 평을 들을 때 그리스도께 대한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를 드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의 아름다움은 성령의 열매로써 세상에 보여지는 것이며,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절대 말로만 그리스도를 높일 수 없습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그 말로만은 들리게 할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Linton Smith Jr).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면 남들은 저절로 알게 되며, 그리스도는 높임을 받게 됩니다.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기억하여 그분께서 하신 일 곧 사람들이 주목하는 일을 높일지어다.] (욥36:24).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도 선한 행위로 빛을 비추라고 하십니다. 말은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보여질 수 있는 성령의 사역은 오직 열매를 통해서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나와 함께 [주]를 찬미하고 함께 그분의 이름을 높이세.] (시34:3).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주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사랑 등이 우리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입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주의해서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반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우리의 마음 속에 형성되는 것들입니다.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은 이웃과 사람들을 향해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믿음, 온유, 절제는 하나님을 향해 맺어지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의 은사를 열매보다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끔찍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이 주는 선물, 아버지의 재산, 아버지가 가진 것들을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성이나 도덕성, 효도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정의로움 등에 대한 것들에 무관심하다면 어떠할 것 같습니까? 아버지의 재산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가정의 화목과 사랑과 가족애, 공경하는 마음과 효성, 근면하고 성실하면서도 정직하고 순수함 등의 올곧고 바른 성품을 갖추는 것이 훨씬 더 값지다고 하지 않을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성령의 풍성한 은사들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담고 성령의 열매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혼들에 대해서 깊은 슬픔과 탄식을 느끼십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 거룩한 성품, 의롭고 도덕적인 성품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누구의 열매입니까? 말 그대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맺을 수 있는 열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 혹은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짠물과 민물을 내는 샘이 있을 수 없느니라.](약3:12)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 힘으로, 지혜로, 수고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무화과나무에게 올리브 열매를 맺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이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스스로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우리는 절대로 우리 힘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우리 안에 맺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갈2:20)를 통해서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작업을 다 해 두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은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며, 근거가 됩니다. 둘째, 열매를 맺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자신 안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주님으로부터 오는 양분과 생명을 받아 열매를 맺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15:5). 주님은 우리를 낳으시고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신성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나니 곧 /주께서/ 이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사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벧후1:3~4).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따로 구하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도록 하시도록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 것인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1:5~8). ‘이것과 더불어’란 말은 주님이 주신 신성한 권능과 보배로운 약속들,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열심을 다하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이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것은 땅에 파묻어 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주신 것은 그것들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것이 전부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벧후1:5)이라고 말합니다. 8절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한즉 너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빈약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 여기서 주목해서 볼 말은 MAKE(하게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열매 맺게 “할 수(MAKE)없고 5, 6, 7절에 나와 있는 것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우리를 열매 맺게 한다”(MAKE)는 것입니다. 무엇이 열매를 맺게 하는지 주목하십시오.
여러분이 이 교회에서 아무리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설교를 많이 들었고, 모든 예언을 꿰뚫고, 세대주의에 정통하여 환난, 휴거, 그리스도의 심판석, 천년왕국 등에 대한 온갖 지식을 다 습득하였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약 개론, 신약 개론을 다 공부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소유해서 말에 능하다 할지라도 그런 것이 여러분 안에 사랑과 평안과 기쁨이 넘친다는 증거라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개론에 대한 지식, 예언에 대한 지식, 킹제임스 성경에 대한 지식들이 여러분 안에 인내와 절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다양한 학설과 이론이 쏟아져 나오고 일반 교회에서 감히 접하지도 않는 교리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하더라도 자아를 부인하고 육신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다면 결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능통하다는 평을 받는 사람이 자기 아내/ 자기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듭나고 구원받아서 교회에도 열심이지만 자기 남편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아내된 자매들이 없습니까? 반대로 가정에는 너무 충실하고 화목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조금도 도움이되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전도도 할 줄 알고, 누구에게 킹제임스 성경과 개역 성경의 차이를 설명할 줄도 알고 심지어 성경 공부에 어떤 사람을 인도할 줄도 알지만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완전히 게으르고, 오히려 해롭기 조차 한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교회는 이제 모두 새로운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있던 분들은 거의 모두 떠났습니다. 출애굽의 1세대는 불신과 불평으로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40년이 아니라 4년 만에 다 소멸했습니다. 이제 이곳은 완전히 2세대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불신과 불평의 1세대가 아니라 믿음과 덕을 추구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정복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열매 없는 성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순례길을 사는 동안 삶의 자세를 보십시오. 주를 두려워하십시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두려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완수하라.](빌2:12).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이 받은 구원을 완수해야(work out)합니다. 구원받았다면 그 구원을 완수하라는 것입니다. 받은 구원이 미완성이란 말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이 열매로 맺히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경건한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도록 섬길지니](히12:28). 우리는 모두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좀 더 많은 은혜를 얻고자 기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은혜를 힘입어서 해야 할 일은 경건한 두려움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하루 하루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주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면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개같은 삶을 사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주님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지옥 형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회계 보고(롬14:12)를 할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믿음의 삶은 주님을 두려워하는 삶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여기에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벧전1:17). 베드로는 우리의 육신의 삶 동안을 두려움 가운데 지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주를 두려워함이 없는 대신 사망과 실패와 불확실한 장래와 질병 등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삽니다. 대신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평안하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 생활은 늘 경건한 두려움과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주님을 섬기고, 두려움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석을 의식하고, 이미 받은 구원을 두려움으로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믿어왔고, 교회를 다녔고, 신학을 공부했던지 관계없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신성한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 자들이 열매 맺기 위해서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열심입니다. [이것과 더불어 너희는 열심을 다하여 너희의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벧후1:5). 세상 일이든 영적인 일이든 게으른 사람이 열매를 풍성히 수확하는 일은 없습니다. 주님은 [열심을 다하여]가 우선 첫 단계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든 기도를 하든 교회 생활을 하든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지한 열심’은 바로 잡아 주면 되지만 게으른 종은 매질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뜨거움, 열정을 원하십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누구 하나 삶에 열정이 없던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은 낮잠 자고 놀러 다니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적이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삶일지라도 열심히 살던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엘리사는 소를 가지고 밭을 갈 때 부름 받았습니다. 아모스는 뽕나무를 베어 누에를 칠 때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태는 세관에서 일을 하다 부름 받았고,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다 부름을 받았고, 요한과 야고보는 그물을 손질하다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열매니까 성령이 알아서 맺으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성령의 열매를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열심을 품고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할 때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설교를 들을 때 열심을 다하여 들으십시오. 이 말은 “마음을 다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열심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하도록 합시다. 대충 하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최선을 다해 살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도록 기도하고, 이 땅에 오직 나 하나만 남게 되더라도 주의 진리만을 위해 살리라 결단합시다. 이것이 열매 맺는 삶의 출발입니다. 성령께서는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성령의 부어 주심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대언하리라.](행2:17-18). 이것은 단지 종교적 체험이나 환상이 아니라 실제 역사였습니다. 성경의 성취요, 주님이 이미 약속하신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역사가 그들에게만 있고 현재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부어주셨습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음이니](롬5:5). 이 말씀들은 시제가 모두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일어난 일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한번 부어 주시고 끝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또 부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산 지난 날의 모든 삶을 회개하십시오. 열매를 많이 맺고자 하는 열심조차도 없었던 날들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온 것들을 회개하십시오. 성령을 달라고 외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조명을 얻고,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회개하십시오. 세상의 염려와 재물, 이생의 자랑 등으로 인해 믿음이 소멸되고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회개하십시오.
저는 몇 년 동안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책망과 바로 잡음과 경고”를 하지 않고 부지런히 교리만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욕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험담과 비판과 헐뜯는 일에는 선수급이 되었지만 섬기고, 덕을 세우는 일, 열매를 맺는 일에는 완전히 어린 아이들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교회, 남의 목사 욕을 했지만 나중에는 자기 교회, 자기 목사를 물어뜯었습니다. 뒤늦게 저는 제 잘못을 깊이 깨우치고 설교와 성경 공부의 방향을 바꾸어 “책망과 바로 잡음, 경고”를 시작했지만 설교 속에 이런 것들이 받을만큼 성숙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도리어 안하던 짓을 하는 이상한 목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형제는 제게 “설교에서 성경 구절 인용하는 것 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이나 악함이 빚은 결과가 아닙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 맺지 못한 잘못된 목자의 잘못된 가르침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다툼, 분열, 성냄, 분노, 반역, 거스림, 불순종 이런 것들은 모두 육신의 열매들이지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났고, 성령을 부음 받았다고 하지만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잠1:23).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모두 주님께로 돌이킬 것을 제안합니다. 여러분은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들었으면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은 듣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돌이키는 것, 바로잡히는 것이 포함됩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지식은 육신만을 강화시킵니다. 최악의 경우는 육신적인 사람이 성경구절을 척척 들이대면서 사람들과 논쟁을 벌입니다.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변명하고 합리화하는데 써 먹습니다. 회개하는 대신 자신을 변증합니다. 남을 공격하고 비판하고 헐뜯고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위해서 이 시간 주님께 돌이킬 때 주님은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쳐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잠1:23).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돌이키지 않고 계속 완악하다면 그에게는 다른 영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잠들게 하는 영입니다. [이는 [주]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 눈을 닫으셨음이요, 대언자들과 너희 치리자들과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사29:10). 이것도 주님이 부어 주신 영은 영입니다만 평생토록 영적 소경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들이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합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일컬어 주님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더 늦기 전에, 바로 이 시간에 우리의 영을 주님께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아니면 지난 몇 개월 동안 영적 침체기에 있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인해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고, 마음에는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환경은 점점 나쁜 쪽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우리는 주님 한 분만을 바라 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는 할례 받은 귀가 필요합니다.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인내로 열매를 맺는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모인 모든 성도들은 열매가 풍성해 지기를 소원하고, 그런 방향으로 주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소원하시도록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성령을 부어 주시면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께서/ 위로부터 영(靈)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열매를 많이 맺는 밭이 되며 열매를 많이 맺던 밭은 숲으로 여겨지리라.](사32:15). 여러분의 마음이 현재 광야같다고 할지라도 회개하면 부드러워지고, 믿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열매 맺는 밭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이제는 내 몸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지체가 되도록 주님께 드리십시오. 주님께서 내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이루시고, 내 몸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으실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십시오. 우리는 현재 나의 영적 상태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빛도 없고, 향기도 없고, 열매도 없고, 맛도 없고, 열기도 없는 지금 이 대로의 영적 상태로 앞으로 남은 생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영적 갈급함과 주림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 물들을 내고 내 영을 네 씨에게 내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줄 것임이니](사44:3). 이제 우리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데 삶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갈급해 하고, 열심을 품을 때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잠깐 헌신과 결단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 주님을 위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으실 분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 주님이 부어 주시는 영을 받기 위해 주께로 돌이키실 분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 목마른 혼들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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