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8:1-18

요절: 에스겔 8:18


에스겔은 성령 안에서 다시 한번 공간 이동을 했습니다. 그는
바빌론에서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성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가증한 일들을 보았는데, 주님께서 세 가지 가증한 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때는 제 육년 유월 오일입니다(1). 이는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힌 해를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1:2).


3절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손의 형체 /같은 것을/
내미사 내 머리털 타래로 나를 잡으시매 그 영(靈)께서 나를 들어 땅과 하늘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속에서 나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북쪽을 바라보는 안뜰의 입구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형상 곧 질투를 일으키는 형상의 자리가 있더라.
](3). 주의 영께서 에스겔을
낚아채어 예루살렘으로 곧장 갔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의 북쪽을 바라보는 안뜰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 문은 주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성읍 밖
갈보리로 끌려가실 때 통과했던 문입니다.


성읍 안에는 질투의 형상, 질투를 일으키는 형상의 자리가
있었는데 질투하시는 하나님(출20:5)의 질투를 일으키는 형상이라면 당연히 마귀입니다. 요한계시록 2:13에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어디에 거하는지를 아노니 곧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하던 그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계2:13)라며 ‘사탄의 자리’가 나옵니다.
질투의 형상의 자리는 곧 사탄의 자리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은 타락할 때면 어김없이 우상을 만들고, 우상의
형상을 새기곤 했는데, 질투의 형상이라면 마귀의 초상화라 할 수 있는 용을 그려 놓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중국인들은 황제를 나타내는 각종 문양에
용을 그려 넣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타락의 절정에 달했을 때 북쪽 성문 안에 용을 그려 놓고 경배했습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북쪽을 바라보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향한 길을 /바라보라/, 하시기에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향한 길을 /바라보니/, 보라, 제단 문의 북쪽 어귀에 그
질투의 형상이 있더라.
](5).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제단 문 북쪽 어귀에 용의 형상이 떡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북쪽은 언제나
주님이 계신 곳을 가리킵니다. 시편48:2-3, [시온 산은 아름답게 위치하여 온 땅의 기쁨이 되나니 곧 북쪽의 옆면에 있는 위대한 왕의
도시로다. 하나님은 그 /도시/의 궁궐들에서 피난처로 알려지셨도다.
](시48:2,3). 위대한 왕의 도시 시온 산이 북쪽에 있습니다.
질투의 형상이 거기에 서서 주님이 계신 그곳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미 이전에 올라 가고 했지만 실패했던 경험이 있습니다(사14:12-13).


주님은 에스겔에게 세 가지 가증한 것들을 차례대로 보여
주시는데, 점점 더 강도가 심합니다.


첫 번째 가증한
것-칠십인의 장로들이 행한 우상 숭배


9절입니다.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들어가
그들이 여기에서 행하는 사악하고 가증한 일들을 보라, 하시기에
](9). 주님이 말씀하신 사악하고 가증한 일들이 무엇인지 보십시오. [내가
들어가 보니, 보라, 온갖 형태의 기어다니는 것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의 집의 모든 우상이 벽의 사방에 그려져 있고 이스라엘의 집 장로들
가운데 칠십 명이 그것들 앞에 서 있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들의 한가운데 서 있고 /그들이/ 저마다 자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짙은 구름
같은 향이 위로 올라가더라.
](10,11). 우상들을 사방에 그려놓고 그 앞에서 향을 피웠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 일을
주도했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믿었고, 이 땅을 버렸다고 말합니다(12). 죄인들의 특징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대신 모든
책임을 주님께 돌리고, 변명하는데 익숙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섬기는 대신 우상들을 그려 놓고 그 앞에 향을 피우고 경배했습니다.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불화나 영정을 그려 놓고 그 앞에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흔한데 이스라엘 집 장로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하는 행동과 말을 다 보시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다면 죄를 짓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 역시 사방에 온통
우상들을 그려 놓고, 걸어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집에는 고급 쇼파, 고급 화장대, 크고 좋은 오디오 비디오 기기들, 좋은 집과 차, 대형
냉장고에 멋진 그림이나 사진까지 벽에 턱 걸어 놓으면 우상들의 집합이 완성됩니다. 바닥에 깔아 놓은 최고급 양탄자에서 천정에 걸어 놓은 눈부신
샹들리에까지 하면 우리는 우상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집이나 차, 자기 외모를 꾸미고
치장하는데 온갖 애정을 다 쏟아 붓고 그런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고급화 되는데 만족을 느끼는데 이는 틀림없이 우상들 속에 갇혀서 평안을 느끼는
죄인들의 마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칠십명의 장로 가운데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란 사람입니다. 사반이 누구인가? 그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명문가요, 신앙의 뼈대가 있는 집안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주]의 집에서 율법 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하들이 그 집에 있던 돈을 모아 [주]의 집을 감독하며 일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주었나이다, 하고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보여 주며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었나이다, 하고 왕 앞에서 그 책을 읽으매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신하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왕하22:8-12).
서기관 사반은 요시야 개혁 정책의 공신으로서 우상을 혁파하고, 몰아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먼 후대도 아닌 그의 아들이 우상 숭배의
현장에서 향을 피우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가 찬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올려 두신 이유는 유다가 얼마나 타락했으며, 누구까지
타락했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짙은 구름 같은 향이 올라가더라.’ 란 말은 이들이 마귀에게
얼마나 열렬하고 뜨겁게 기도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향은 성도들의 기도를 예표 합니다(계5:8, 8:4). 하나님을 거역한 자들은 한결같이
마귀들에게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 때에 이들이 하는 말을 일러 주셨습니다. 에스겔이 그들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말을
들어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아 들으시고,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다 보십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의 집 장로들이 어두운 곳에서 저마다 자기 형상을 둔 방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주]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신다. [주]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기 때문이니라.
](12). 이들은 누가 누구를 버렸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수 차례 주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왕을
구함으로 주님을 버렸습니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말한 모든 것에서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기 때문이니라.
](삼상8:7). 이들의 역사는 주님을 버린
역사입니다. 열왕기상 11:33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들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 족속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에게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걷지 아니하고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 법규와 내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왕상 11:33). 열왕기하 22:17,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들 손의 모든 일로
내 분노를 일으켰음이라. 그러므로 내 진노가 이곳을 향해 /불같이/ 타올라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왕하22:17).


예레미야에는 온통 이 이야기로 덮여 있습니다. 참조구절-렘1:16,5:7,19,
15:6, 16:11, 렘19:4.


호세아 역시 이스라엘이 주님을 버렸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화 있을진저!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떠났음이니라. 그들에게 파멸이 있을진저! 이는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 내가 그들을
구속(救贖)하였을지라도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고
](호7:13).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주님이 자신들과 이 땅을 버렸다며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범죄는 주님으로 버림받았다는 터무니없는 추측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악한 자는 어려운 때에
주님을 찾기보다는 더욱 주님을 버리고, 주님을 불신하며, 저주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의 입은 저주와 속임과 사기로 가득하며 그의 혀
밑에는 해악과 헛됨이 있나이다.
](시10:7)란 말씀대로입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분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셨으니 결코 이것을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10:11). 이들은 또 말합니다. [어찌하여
사악한 자가 하나님을 경멸하나이까? 그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주께서 이것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시10:13).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자기 형상을 둔 방”이란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마음 속의 빈 공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할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게 되자 마귀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하나님이 거할 수도 있고, 마귀가 거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마른 곳으로 다니며 쉴 곳을 구하나 찾지
못하므로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거늘 이에 가서 자기보다 더 사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나쁘게 되니라.
](눅11:24-26). 마음 속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이것이 복된 삶의 기본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습니다. 행복을 위해서라면 복된 삶을 버리고 더러운 것도 기꺼이 받아 들입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을 원합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거룩한 삶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행복한 삶보다 복된 삶을
풍요로운 삶 보다는 거룩한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때 영적인, 내적인 행복과 풍요로움을 맛보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엡5:18). 말씀으로 충만하십시오(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모든 지혜로 풍부히 거하게 하여 시와 찬송가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훈계하며 너희 마음 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골3:16). 사악한 자들을 이기는 방법은 바로 말씀을 속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처음부터 계신 그분을 알았음이요, 젊은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며 너희가 저
사악한 자를 이겼음이라.
](요일2:14).


주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속에 없는
것들을 두 가지 지적하셨습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것들이 무엇인지 보시고, 자신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말씀이 거하지 않는다.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요5:38).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 이유는
많고 많겠지만 그들 안에 아버지의 말씀이 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 [다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음을 내가 아노라.
](요5:42).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자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 둘이 없으면 결국 성령을 받을 수도 없고,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믿음을 지닐 수도 없습니다.


두 번째 행한
가증한 짓- 담무스를 위하여 우는 여인들


주님은 70인의 장로들이 행한 우상숭배보다 더 가증한 짓이
벌어지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데리고 북쪽에 있는 [주]의 집 문의 입구에 이르시니, 보라, 거기에 여자들이 앉아서
담무스를 위하여 슬피 울고 있더라
.](14). 담무스는 바빌론 신으로 일년 중에 반은 죽어 있고, 반은 살아 있는 식물 인간과 같은
신이었지만 이 신을 숭배하는 사상은 하루 중 반은 밤이고 반은 낮인 것과 마찬가지로 태양 숭배와 연관을 맺고 있는 지라 널리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담무스는 여신 아스다롯(미의 여신)의 아들이면서 남매 지간도 되며, 알렉산더 히슬롭이 쓴 Two Babylon에 따르면 부부지간도
되는 그런 이상한 존재인데, 이는 가족간의 불륜에 관계되어 나온 신이란 뜻입니다(고전5:1). 신화의 내용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받아 온 것이 분명한데, 당시 중동 지역의 사람들의 성 의식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잘 보여 주는 예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가 대부분 불륜, 성적 타락과 같은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들의 문화와 종교가 이스라엘 여인들의 종교가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에는 이들이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렘44:17-19,25) 담무스는 하늘의 여왕 아들에 해당하기에 동시에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행한
가증한 짓- 태양신 숭배


주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더 큰 가증함을 보여 주십니다.
15-16절입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오 사람의 아들아,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너는 다시 돌아서라. 그리하면 이것들보다 더 큰
가증한 일들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분께서 나를 데리고 [주]의 집 안뜰에 이르시니, 보라, [주]의 /성/전의 문 곧 주랑(柱廊)과 제단
사이에서 스물다섯 명 가량이 자기 등은 [주]의 /성/전을 향하게 하고 자기 얼굴은 동쪽을 향하게 한 채 동쪽을 바라보며 태양에게 경배하더라.
](15-16).
동쪽은 성막의 문이 만들어진 방향이요, 성소에 들어가는 문이 있는 방향입니다. 성전의 문 곧 주랑과 제단 사이라면 유대 백성들이 환란에 처하면
제사장들이 울며 기도하는 곳입니다(욜2:17). 그렇다면 여기 등장하는 25명은 제사장들을 대표하며, 성소의 고관들(사43:28)이었습니다.
천체 숭배는 모세가 엄히 경고하며, 금지한 것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곧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를 보고 끌려가 그것들에게 경배하며 섬길까 하나니 이것들은 [주] 네 하나님께서 온 천하 민족들을 위하여 나누어 놓으신 것이라.
](신4:19).
그러나 이들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숭배하는 대신 천체를 경배했습니다.


천체 숭배는 이교도들의 경배 대상 가운데 핵심입니다. 이는
마귀가 의의 태양이신 주님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해와 달은 예표적인 것이요, 주님의 피조물로서 주님의 속성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주] 하나님께서 해와 방패가 되시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은혜와 영광을 주시며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리이다.
](시84:11).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義)의 해가 떠올라 자기 날개들에서
병 고치는 /능력을 내리니/ 너희가 나아가서 외양간의 송아지같이 자랄 것이요,
](말4:2). 마귀는 이런 성경적 진리를 흉내내어
사람들에게 태양을 숭배하게 함으로써 타락하게 하고, 주님의 진노를 받게 했습니다.[그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뒤따르고 추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 앞에 펼쳐 놓으리니 그 뼈들이 거두어지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거름이 되리라
.](렘8:2). [예루살렘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도벳의 장소같이 더럽혀지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지붕 위에서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에게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음료
헌물을 부었음이니라, 하라, 하시니
](렘19:13).


이들의 이런 행위는 주님 앞에 너무나 가증한 일이어서 주님은
그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십니다(18). 뿐만 아니라 그들이 큰 소리로 기도를 한다 해도 주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격노로 /그들을/ 대우하리니 내 눈이 /그들을/ 아끼지 아니하며 내가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리라.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겔8:18).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경우가 몇 있습니다.


첫째, 주의 율법을 거부할 때, [그때에 그들이 나를 부를
터이나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아침 일찍 나를 찾을 터이나 그래도 그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리니
](잠1:28).


둘째, 범죄한 손으로 기도할 때, [너희가 손을 내밀 때에
내가 내 눈을 돌려 너희에게 숨기겠으며 참으로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는 피가 가득하니라.
](사1:15).


셋째, 공의를 버리고 범죄할 때, [그때에 그들이 [주]께
부르짖을지라도 그분께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겠고 그들이 자기 행위로 악하게 행한 것같이 그때에 그분께서 자신의 얼굴을 돌려 그들에게
숨기시리라.
](믹3:4).


넷째, 불신을 가지고 기도할 때, [너희가 돌아와 [주]
앞에서 슬피 울었으나 [주]께서 너희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느니라.
](신1:45).


다섯째, 주의 은혜가 족할 때, [[주]께서 너희로 인하여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신3:26).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나의 강한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해지기 때문이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
](고후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족함에도 불구하고 구하는 것은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여섯째,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주님은 우리가 택한 문제로 인해
생긴 결과에 대해서, [그 날에 너희가 택한 왕으로 인하여 너희가 부르짖을 터이나 [주]께서 그 날에 너희를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니라.](삼상8:18).


일곱째, 헛된 것을 구할 때,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그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느니라.
](욥35:13). ① 헛된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은 헛된 영광입니다. 갈라디아서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갈5:26).
그래서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빌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② 헛된 말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이 아닌 말은 헛된 말입니다(엡5:6). [아무도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자녀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
](엡5:6). ③ 헛된 지식이 있습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지식은 모두 헛된 지식입니다. 철학이나 과학은 헛된 속임수요 헛된 지식입니다(골2:8, 딤전6:20). ④ 헛된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같이 걷지
말라.
](엡4:17). ⑤ 헛된 행실이 있습니다. 흔히 전통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들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대속(代贖)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벧전1:18). 이런 헛된
것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그것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성도들이 헛된 영광, 헛된 말, 헛된 지식, 헛된 속임수, 헛된 생각,
헛된 행실을 하면서 하는 기도를 한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많은 기도를 한다 해도 주님은 결코 듣지 않으십니다.


여덟째, 우리의 마음 속에 불법을 생각할 때, [내가 마음
속으로 불법을 중히 여기면 {주}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66:18). 우리의 마음 상태는 기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영적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자신이 스스로 불법을 중히 여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홉째,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고, 말씀을 듣지 않을 때 주님은
결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켜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느니라.](잠28:9). 말씀은
기도의 길잡이이며, 기도의 능력입니다. 말씀없는 기도는 의미 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씀이 배제된 기도는 이교도들의 주문(呪文)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말씀 없는 기도는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열번째, 잘못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기도해도 주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야고보서 4:2-3,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4:2~3).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으로 구합니다. 이는 곧 자신의 신세를 망치고 다른 사람의 신세를 망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달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응답받는 것이 재앙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오히려 망한 예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곧 잊어버리고
그분의 계략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광야에서 크게 탐욕을 부리고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이에 그분께서 그들이 요구한 것을 주셨으되 그들의
혼은 야위게 하셨도다
.](시106:15). 돈을 주십시오. 더 많은 돈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할 때 주님은 그것은 네가 큰 슬픔에 이르는
길이며, 믿음에서 떠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주님은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담대함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들으시는 것이라.
](요일5:14)고 하십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구할 때는 얻지 못하지만 그분의 뜻대로 구할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얻습니다.


열한 번째, 부부간의 불화와 갈등은 기도 생활을 방해합니다.
베드로전서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벧전3:7).


열두번째, 이제 마지막으로 ‘기도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됨에 의해
좌우 된다’는 점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이는 {주}의 눈은 의로운 자들 위에 거하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열려 있으되 {주}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기 때문이니라.
](벧전3:12).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의 형식이나 요령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기도자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교만한 사람이 무슨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그의 기도는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그가 찬양을 하든 무엇을 하든 주님은 그를 대적하십니다. 악인의 기도는 그 기도 자체가
죄가 됩니다. [그가 심판 받을 때에 정죄 받게 하시고 그의 기도가 죄가 되게 하시며](시109:7). 핵심은 어떤 행동을
하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아니하시나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이제 우리가 아나이다.
](요9:31)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딤전6;11, 딤후3:17)으로
완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 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덧입고, 십자가의 피를 통해 저희 양심이 선하고
순수하게 씻음 받고, 말씀의 물로 모든 더러움을 씻어 냄으로써 온전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가증한 것들을 차례대로 보여 주시면서 주신
마지막 경고는 우리의 마음을 두렵게 울립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겔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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