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13:1-23

요절: 에스겔 13:22


주의 대언자 에스겔은 같은 대언자들을 향해 대언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대언자라고 모두 같은 대언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대언자들이 주의 말씀을 받아 증거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활동하며, 믿음을 파괴하고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로 이 세상은 언제나 참과 거짓이 함께 있습니다. 이는
비단 세상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과 악이 함께 있습니다. 의와 불의가 함께 있습니다.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이
여전히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고(롬12:21),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며(롬8:13),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요일5:4).


1-2절입니다. [[주]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대언하는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을 쳐서 대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대언하는 자들에게 너는 말하기를, 너희는
[주]의 말씀을 들으라.
](1-2).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을 반대하는, 대적하는 대언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대언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거짓 대언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에는 몇 가지 거짓들이 나오는데 십계명의 하나인 거짓 증거가
있고, 가장 흔한 범죄 중의 하나인 거짓말, 거짓 입술이 있고, 거짓 대언자들, 거짓 그리스도가 있고, 다른 예수를 선포하며 단순한 믿음에서
떨어지게 하는 거짓 사도들(고후11:13)이 있고, 비없는 구름과 같이 열매없는 거짓 선물/은사(잠25:14)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 이적(살후2:9)이 있고, 영벌 받을 이단들을 끌여 와 주를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벧후2:1)이 있고, 심지어 사탄의 회당에서 사역하는
거짓 유대인들(계3:9)까지 있습니다. 세상에 거짓이 침투해서 활동하지 않는 곳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신학교든 교회든 목사들의 세계에도 모두
거짓이 넘실거립니다. 세상의 다른 분야는 달리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언자들 가운데 절대 다수가 거짓 대언자였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라 공개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들을 대적하는 설교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거짓 대언자들의 특징은 양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속은 약탈하는
이리(마7:15)입니다. 주님은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으로는
약탈(掠奪)하는 이리니라.
](마7:15). 거짓 대언자들은 수가 적지 않으며 능력이 없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수에 많은 능력을 행합니다.
그들은 이런 능력을 보여 줌으로 속일 수 있게 됩니다. [거짓 대언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고](마24:11).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
](24:24).
거짓 대언자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는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대언자들에게 이같이 행하였음이라.
](눅6:26). 반면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마10:22,24:9,막13:13) 박해를 받습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눅21:17).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딤후3:12).


거짓 대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없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대언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고, 주의 말씀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대언자들은 자기 말을 모두
성경 말씀인 것처럼 설교하고 강의하고 가르칩니다. 성경에 무지한 백성들은 그것이 그런 줄로 압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그 말을 분별할 영적
분별력도 없고, 지혜도, 믿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은 매우 좋은 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 미가야와 거짓 대언자 시드기야의 말을
모두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가야 대신 시드기야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보소서, 이제 [주]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대언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주]께서 왕을 향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하니라. 이때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주]의 영께서 나를 떠나 어느 길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하니
] (대하18:22~23). 시드기야는 미가야를 치면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님께 속았습니다. 그는 마귀에게 속았고, 자기 자신에게 속았습니다. 진리대신 거짓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속습니다.


주님은 거짓말 하는 영을 보내셔서 거짓 대언자들을 속여
버리십니다(대하18:21-22). 왜 그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불의하십니까? 아닙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모든 자들로 하여금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2:10~12).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받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의 종들을 보내시고, 또 보내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받아
들이지 않을 때 그 다음에는 강한 미혹을 보내셔서 거짓말을 믿게 하십니다. 주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지 한 번 더 설명하십니다. 그들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왜 아합이 미가야의 말 대신 거짓 대언자 시드기야의 말을 믿다가 죽었습니까?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도 이와 동일합니다.


3절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화 있을진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자기 영을 따르는 어리석은 대언자들이여!
](3). 거짓 대언자들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어떤 환상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인가를 본 것처럼 대언합니다. 그들이 본 것은 거짓 환상입니다.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대언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대언하는도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말하지도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너희에게 거짓 환상과 점술과
허무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수를 대언하는도다.
](렘14:14). 그들이 본 환상은 본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대언하는 대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헛되게 만드는 자들이니 그들이 말한 환상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이요, [주]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렘23:16).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영을 따라 대언했습니다. 주님은 거짓 대언자들의 죄를 조목 조목 짚어 가면서 그들을 책망하시고,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 강단의
거성들이라고 존경받는 많은 목사들에게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거짓 대언자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적이 없습니다.


4절입니다. [오 이스라엘아, 네 대언자들은 사막에 있는
여우들 같으니라.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은 사막의 여우라고 하셨고, 우리 주님은 약탈하는 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막의
여우는 포도원을 엉망으로 만드는 장본인입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포도원이라고 하셨고, 대언자들을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포도원을 지켜야 할
파수꾼이 사막의 여우가 되어 도리어 포도원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의 아가 2:15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들 곧
포도나무를 망치게 하는 작은 여우들을 붙잡으라. 이는 우리의 포도나무에 연한 포도들이 있기 때문이니라.
](아2:15)고 말씀합니다.
양떼를 지켜야 할 목자들이 되어야 할 대언자들이 양떼를 삼키는 이리떼가 되고, 포도원을 엉망으로 만드는 여우가 되어 버린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사막의 황무지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울며 말하기를, [시온 산이 황폐하므로 여우들이 거기서
돌아다니나이다.
](애5:18) 한 그대로입니다. 사막의 여우들은 멸망을 목전에 두고도 자기 뱃속만 차리고 있습니다. 여우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헤롯입니다. 주님은 침례인 요한을 죽인 헤롯을 여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기를, 보라, 오늘과 내일 내가 마귀들을 내쫓고 치료하다가 셋째 날에 완전하게 되리라, 하라.
](눅13:32). 헤롯이 어떤
사람입니까? 동생 빌립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부인으로 삼은 탐욕과 권력에 눈먼 죄악의 화신입니다. 하나님의 대언자를 죽이는 살인자입니다.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의 영적 상태와 죄악이 탐욕스럽고, 죄악이 가득한 이방인 헤롯 왕과 동일합니다.


5절입니다. [너희가 무너진 곳에 올라가지도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의 집을 위하여 [주]의 날에 전쟁 중에 서게 하려고 울타리를 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5). 거짓 대언자들은 심판의 선고가
선포되어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적이 코 밑에 다가왔는데도 평화를 외쳤고, 전쟁은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던가, 기도회를 열고, 부흥 사경회를 하던가 백성들의 영적 각성을 위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순간에 그들은 쓰러질 이스라엘의 집을 세울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성벽이 무너진 곳이 있음에도 올라가 보지도 않았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평화를 외쳤기 때문에 벽이 허물어져도 신경 쓸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화해 무드를 조성하면서 정작 적을 향해 일어선 군인들의 힘을
빼놓는 정치가들과 흡사합니다. 벽이 무너지면 울타리라도 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장을 해제한 채 평화를 외칩니다. 에스겔 22:30에 [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울타리를 세우며 무너진 곳에 서서 나로 하여금 그곳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들 가운데서 찾았으나 아무도 찾지
못하였나니
](겔22:30)라고 합니다.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백성들을 멸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세우며, 주님 앞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택한 자 모세가 그 불화(不和) 속에서 내 앞에 서서 내 진노를 돌이켜 그들을 멸하지 않게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그들을 멸하였으리라 하셨도다.
](시106:23). 이는 오늘날 사역자들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설교 시간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무너진 신앙의 제단을 쌓고, 성벽을 보수하며, 죄악된 성도들을 위해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6절입니다. 거짓 대언자들의 언행을 보십시오. [그들이
헛된 것과 거짓 점괘를 보고 이르기를,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하나 [주]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느니라. 또 그들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그 말씀이 이루어짐을 볼 것을 바라게 하였도다.
](6). 그들은 결코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주님의 대언자요, 성경 교사요, 훌륭한 신학자인 줄로 생각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내지
않으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주님이 보낸 대언자는 주님의 말씀을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이를 것과 말할 것을 친히 명령으로 주셨음이니
](요12:49)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단 한 마디도
자기 뜻대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성령께서도 마찬가지십니다. 성령은 스스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받은 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합니다. 이는 주의 성도들이 배워야 할 첫 번째 직무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꿈을 꾼 대언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신실히 내 말을 말할 것이라. 어찌 겨를 알곡과 비기겠느냐?
](렘23:28).


7-8절입니다. [너희가 이르기를, [주]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느니라, 하나 나는 말하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헛된 환상을 본 것이 아니며 거짓 점괘를 말한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너희가 헛된 것을 말하고 거짓을 보았은즉, 보라, 내가 너희를 대적하노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7-8).
거짓 대언자들은 “주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느니라”고 외쳤지만 헛된 환상이요, 거짓 점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대적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팔아먹는 종교 사기꾼들이 극심한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종교 통합이라고 하던지,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평화와 번영,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종교 사기꾼들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거짓 대언자는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을
속이는 거짓 대언자들의 모형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산 채로 불 못에 던져 버리십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자기 혀를 놀려,
그분께서 말씀하시느니라, 하는 대언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렘23:31).


9절을 보십시오. 주님의 엄중한 심판이 그들에게 임합니다. [
손이 헛된 것을 보고 거짓을 점치는 대언자들 위에 임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의 집회 중에 있지 못하겠고 이스라엘의 집 기록 문서에도 기록되지
못하겠으며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리니 내가 {주}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9). 거짓 대언자들은 언제 하나님을 알게
됩니까? 자신들이 버림받고 철저히 심판받은 후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종교 사기꾼들은 세상에 종말이 임할 때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인 줄을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의 때에 주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게 되며, 석가나 마호멧이나 모든 종교 창시자들의
말이 한낱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 줄을 알게 됩니다.


10절입니다. [이는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화평이
없는데도 화평이라 말하였음이라. 보라, 한 사람이 벽을 쌓으면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섞지 않은 회반죽으로 그 벽에 바르는도다.
](10).
거짓 대언자들의 설교 주제는 언제나 화평입니다. 그들은 평화를 가장 강조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대언자들은 죄와 심판, 저주와 형벌에 대해서 매우
강조합니다.


거짓 대언자들은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국가간의 무역과 교류를 통해서, 인종과 언어의 통합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 있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는 한번도 평화가 있었던 적이 없음에도 그들은 계속 평화를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말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벽을 쌓아도 갈라진 틈이 여기 저기 보이고 붕괴 조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벽은 안전하다고 말하며 제대로 썩지 않은 회반죽을 발라 버리고 “보라!”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회반죽이 갈라진 틈을 메울 수
없듯이 거짓 대언자들의 거짓말이 안전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11절입니다. [/너는/ 제대로 섞지 않은 회반죽으로 벽에
바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그 벽이 무너지리라, 할지니 폭우가 넘칠 것이라. 오 큰 우박들아, 너희는 떨어질지어다. 폭풍아, 그것을 부술지어다.
](11).
부실 공사를 하는 자들에게 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라는 것입니다. 폭우가 치고, 큰 우박들이 떨이지고, 폭풍이 몰려 오면 사람들이 쌓은 담과
거기에 대충 회반죽을 발라서 눈가림 공법으로 속였던 건축물들은 모두 쓰러집니다. 마찬가지로 진리의 말씀이 아닌 어떤 말씀이나 환상이나 점괘도
결코 설 수 없습니다.


반석 위에 세운 집, 반석 위에 세운 성벽이 아니면 폭풍우를
견딜 수 없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그 위에 지은 집이어야 안전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그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리니 그 까닭은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
](마7:24-25). 눈가림은 환란의 때에 어떤 힘도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보라, 그 벽이 무너진즉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벽에 바른 그 회반죽이 어디 있느냐, 하지 아니하겠느냐?
](12). 사람들은 당해 본 뒤에야 압니다. 이단에
빠진 자들도 아무리 설득해봐야 모르지만 벽이 무너진 다음에야 벽에 바른 회반죽이 비바람을 이길 수 없고, 폭풍우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위선과 외식에 매우 능합니다. 그들은 성령 충만,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고, 말씀이 내 안에 충만하지 않으면 아무리 작은
죄도 유혹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종교 의식, 거짓 은사, 인간적 열심은 모두 벽에 바른 섞지 않는 회반죽과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겉보기에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능력을 필요로 할 때에 아무런 능력도 되지 못합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친히 격노하여 폭풍으로 그것을 부수고 친히 분노하여 폭우가 넘치게 하며 친히 격노하여 큰 우박이 그것을 소멸시키게 하리라.
](13).
폭풍, 폭우, 큰 우박 등은 모두 주님의 심판의 도구요, 대환란과 연관이 있습니다. 심판의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께서 사악한 자에게
올가미와 불과 유황과 무서운 폭풍을 비같이 내리시리니 이것이 그들의 잔의 몫이 되리로다.
](시11:6). 바다에 있는 태풍이나 땅에 있는
폭풍이나 바람은 성령을 예표하는 점에서 이것들은 주님의 심판의 역사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의 태풍으로 그들을 핍박하시며 주의
폭풍으로 그들을 무섭게 하소서.
](시83:15). [이는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폭풍이 일어나 파도들을 높이 일으키기 때문이로다.](시107:25).
인생의 항해에서 주의 태풍과 주의 폭풍을 만나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길을 가다가 이런 태풍을 만났습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자연 재해는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심판하시는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과 우박과 눈과
수증기와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는 폭풍이며
](시148:8).


하지만 주님은 성도들의 항해에는 지켜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 한
가운데 계십니다. 주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9) 한 마디에 흉흉한 바다는 잠잠해지고, 폭풍우는 소멸되고 맙니다. [폭풍을
고요하게 하시므로 그 파도들이 잔잔하게 되는도다. 파도들이 조용하게 되어 그들이 즐거워하나니 이처럼 그분께서 그들이 원하는 항구로 그들을
인도하시는도다.
](시107:29-30).


14절입니다. [너희가 제대로 섞지 않은 회반죽으로 바른
그 벽을 내가 이같이 허물어서 땅에 무너지게 하고 그 기초가 드러나게 하리라. 그 벽이 무너진즉 너희가 그 한가운데서 소멸되리니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4). 사람이 한 일의 결과는 다 이렇습니다. 태우면 타고, 비가 오면 무너지고,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것이
인생의 수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지 않는 인생은 주님께서 허물어 버리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 (시127:1).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세운 것이 그대로 서 있는지 무너지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심지 않는 것은 뽑아 버리시고, 주님께서 세우지 않는
것은 무너뜨리십니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아니하신 초목마다 뿌리째 뽑힐 것이니](마15:13).


15-16절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내 진노를 그 벽과
또 제대로 섞지 않은 회반죽으로 그 벽에 바른 자들에게 다 이루고 너희에게 말하기를, 다시는 벽도 없고 그것을 바른 자들도 없다, 하리니 이들은
곧 예루살렘에 관하여 대언하며 화평이 없는데도 예루살렘을 위하여 화평의 환상들을 본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대언자들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5-16). 이스라엘에는 새로운 속담이 하나 생겼습니다. “다시는 벽도 없고 그것을 바른 자들도 없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거짓으로 지어진 모든 벽들은 깨끗이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행해진
일이 아니면 우리가 행한 일들은 건초 더미요, 마른 나무처럼 모두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고전3:11-15).


화평을 선언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 대언자입니다.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피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맺은 후에나 찾아 오는 것이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평화는
없습니다. 멸망은 언제 찾아오는가? 평안하다고 외칠 때입니다. [또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
] (살전5:3).


예루살렘에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결코 화평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이란 이름이 ‘화평을 소유하다’란 뜻을 가진 이름의 도시지만 예루살렘은 세계의 어떤 도시보다 전쟁이 많았으며, 현재도 분쟁이 진행 중인
곳입니다. 시편 기자는 [/너희는/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122:6)고
했는데, 이는 주님이 속히 오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17-18절입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너는 이와 같이
네 백성의 딸들 곧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대언하는 자들을 향하여 네 얼굴을 /굳게/ 세우고 그들을 쳐서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화 있을진저, /사람의/ 혼들을 사냥하려고 겨드랑이마다 베개를 꿰어 매고 수건을 만들어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 위에 두는 여자들이여! 너희가 내 백성의 혼들은 사냥하면서 너희에게 오는 혼들은 구하여 살려 두려 하느냐?
](17-18).
하나님은 당시 여자 대언자들을 향해 경고하셨습니다. 여 선지자들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키지만 특히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는데는 아주 압권입니다.
느헤미야는 여자 대언자 한 명의 이름을 불러 가며 심판을 내려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대언자 노아댜와
그 나머지 대언자들이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으니 그들의 이 소행대로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느6:14). 성경에는 미리암,
드보라, 훌다(왕하22:14-15)와 같은 훌륭한 여 대언자들도 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일입니다. 신약에서도 성전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렸던 안나라는 여 대언자가 나옵니다(눅2:36). 그러나 놀랍게도 여 대언자의 두목격에 해당하는 여대언자는 바로 거짓 대언자인 이세벨이란
여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몇 가지 책망할 것이 있으니 이는 네가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자기를
가리켜 여대언자라 하며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도다.
](계2:20). 현재
대부분의 이단들은 여자들이 교주인 곳입니다. 크리스찬 싸이언스의 메리 에디, 제칠안식교의 엘엔 G 화이트, 신지학회의 마담블라츠키, 유니티(Unity)교의
에미오 캐리 등이 다 이세벨의 후예들이며, 전신들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오직 속되고 늙은 부녀(婦努)들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도리어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
](딤전4:7)고 하는데 속되고 늙은 부녀들이 나옵니다. 성경은 여자들이
교회 내에서 가르치는 것이나 남편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나 직분을 맡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딤전3:1,2,8-12, 딤전2:12).
여집사, 여권사, 여 목사 등은 모두 마귀적인 것들입니다.


여자 대언자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의 혼들을
사냥했습니다. 여자 대언자들은 겨드랑이마다 베개를 꿰어 매고, 수건을 머리 위에 올려 주었는데 이는 일종의 점술입니다. 한국의 점집에 가보면
먼저 발이나 주렴을 쳐 놓고 거기를 통과해서 들어오게 하고, 점쟁이는 흰 옷을 입고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하나 들고 앉아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자기가 무슨 도사나 신통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여 대언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어깨에는 베개의 레이스나 무늬에
사용된 그런 것들을 어깨에 꿰어 매어 자신이 뭔가 신통력이 있는 하나님의 대언자인 체 했습니다. 수건을 머리 위에 두는 것 역시 사람들을
현혹하는데 사용하는 무당의 너울 같은 것입니다.


19절입니다. [너희가 몇 움큼 보리와 몇 조각 빵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더럽게 만들고 너희 거짓말을 듣는 내 백성에게 거짓말을 하여 죽어서는 안될 혼들은 죽이고 살아서는 안될 혼들은
구하여 살려 두려 하느냐?
](19). 종교를 직업으로 삼는 자들을 말합니다. 소량의 보리와 몇 조각 빵을 위해서 그들은 주의 대언자
행세를 하며, 백성들의 믿음을 파괴해 버립니다. 거짓 대언자들의 특징은 철저히 물욕적이란 점입니다. [내 백성으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는
대언자들은 자기 이로 물면서도 외치기는, 화평이라, 하며 또 자기 입에 넣어 주지 아니하는 자를 향하여는 전쟁을 예비하는도다....
](미3:5a).
그들의 배가 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의(義)입니다. 그러나 거짓 대언자들의 기준은 돈입니다. 그들에게 죽어서는 안될 혼은
부자들이요, 살아서는 안될 혼들은 성경대로 믿는 신자들이 됩니다.


20절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베개들로 혼들을 사냥하여 날아가게 한다 하니 내가 그 베개들을 대적하노라. 내가 그것들을 너희 팔에서 떼어
내어 찢어 버리고 혼들 곧 너희가 사냥하여 날아가게 한다는 그 혼들을 놓아주리라.
](20). 베개들을 떼어내어 찢어 버린다는 것은 그들이
입은 성직자의 제의를 찢어 버리신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취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들 속에 감추어진 속을 보시며, 위선과 가식과 형식을 다
찢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깨에 걸려 잇는 베개들을 찢으시면 그들에게 속박되어 있던 혼들은 놓이게 됩니다.


21절입니다. [또 내가 너희 수건들을 찢고 내 백성을
너희 손에서 건져 내며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너희 손에 사냥감이 되지 않게 하리니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1).
하나님께서 속이는 거짓 대언자들을 대적하시고, 그들의 수건들을 찢으신다는 것은 먼 훗날에 문자적으로 적용될 예언의 말씀입니다. 거짓 이적과 말로
백성들을 속이던 거짓 대언자를 산 채로 불못에 던져 버리시는 장면과도 흡사합니다. 여기서 계속 반복적으로 “내가 주인줄을 너희가 알리라”는
말씀은 에스겔을 통해 하신 주의 말씀이 문자적으로 성취되는 것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주님을 알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무신론자라
해도 휴거, 대환란 등이 성경에 있는대로 이루어질 때 그들은 주님을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22절입니다. [이는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로운 자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슬프게 하며 사악한 자에게 생명을 약속함으로 그의 손을 강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자기의 사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못하게
하였음이라.
](2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자녀들을 슬프게 하실 때는 죄에 대한 책망으로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경건한 슬픔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가 기뻐함은 너희가 근심하였기 때문이 아니요, 오히려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에 이르렀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어떤 일에서도 우리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7:9,
근심-sorrow/KJV). 하지만 거짓 대언자들은 거짓으로 슬프게 합니다. 사악한 자에게 생명을 약속합니다. 거짓 대언자들은 악인들의 죄를
합리화 해주고, 죄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며, 죄에 대한 자기 변명과 방어를 할 수 있게 해 주며, 위로해 줍니다.
그래서 악인들을 더욱 악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를 들어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600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캐톨릭 사제들은 히틀러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죽이는 것이 정당하다고 신학적,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악인들의 죄를 회개하도록 책망하고,
지적하는 대신 그 일을 계속하도록 힘을 부여 해 주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시는 헛된 것과 신성한
점괘를 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 손에서 내 백성을 건져 낼 것임이라. 그리하면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1323).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대언자의 속임수로부터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건져 내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적용하자면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로부터 성도들의 혼을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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