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16:1-26

요절: 에스겔 16:2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그들의 죄를 ‘알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대언자의 직무는 죄인들에게 죄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고, 죽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에스겔에게 죄를 알려 주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너는/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자기의 가증한 일들을 알게 하여
](1,2).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변명하고 합리화하는데 익숙한지라 좀처럼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거나 돌이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해서 죄를
지적하십니다. [/너는/ 크게 외치라. 네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소리 같이 높여서 내 백성에게 그들의 범죄를, 야곱의
집에게 그들의 죄들을 보여 주라.
](사58:1). 죄를 지적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전에, 심판하시기 전에 돌이키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목자들을 통해서 그 죄를 알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진실로 나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어 야곱에게는 그의 범죄를, 이스라엘에게는 그의 죄를 밝히 말하리라.
](미3:8).
죄를 지적하는 것을 포기하는 목자는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의 죄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정죄하고 고소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은 우리의 죄를 비추어 줍니다.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자는 주님의 긍휼과 용서의 은혜를
맛보지만 그렇지 않을 때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죄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3절입니다. [이르기를, {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네 태생과 출생의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족속이요, 네 어머니는 헷 족속이라.
](3). 유대인들에게
이 말은 매우 모욕적인 말입니다. 출생지가 잘못되었고, 부모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 말에도 사람을
비하하거나 모욕을 줄 때 출신지를 들먹 거리거나 혈통, 가문에 대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미 유명하고 검증받은 사람이라도 일이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기면 꼭 촌놈이나 어디 출신이니 어느 혈통이니 하면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해 출신과 혈통에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미국처럼 다민족 다인종 사회에서는 별로 못 느끼지만 한국에서 ‘너의 부모는 흑인이다. 동남아인이다. 외국인이다’란 말은 상당히
모욕적인 말입니다. 더욱이 사실이 그렇지 않는데 ‘너는 혼혈이다’란 말을 들으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네 태생과 출생이 가나안
땅이란 것은 함족의 후예란 뜻이요, 저주받은 자들의 후예란 뜻이요, 우상숭배와 이교도들의 후예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너희 아버지는 아모리 족속이요, 네 어머니는 힛 족속’이라고 하신 것은 비꼬는 말씀입니다. 이는 혈통상, 생물학적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품, 기질에 관한 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려면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순종을 배워야 하고, 그런 것들이 드러나야
하는데 마치 아버지가 아모리 족속인 것처럼 아모리인들의 전통, 습관, 성품을 다 드러내기 때문에 주님은 너희 아버지가 아모리 족속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힛 족속과 같은 짓을 즐겨하기 때문에 너희는 힛 족속의 후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예는 이사야에도 나옵니다. [너희
소돔의 치리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사1:10). 소돔의 치리자,
고모라의 백성들은 그들과 하는 짓이 거의 같아서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4절입니다. [네 출생으로 말하건대 네가 태어나던 날에
/사람들이/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부드럽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포대기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4). 아이가 태어나면 맨 먼저 태 줄을 자릅니다. 그리고 물로 씻어 아기 포대기에 눕히고, 밴 옷 저고리에 쌉니다.
유대인들은 아기의 피부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소금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최소한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것은 원치 않는 아이가 태어났거나
비정상적인 부모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마귀에게서 출생한 자들은 마귀와의 연결 된 줄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마귀에게서 출생한 자들은 더러운 죄가 조금도 씻어지지 않습니다. 태어난 그대로 일생동안 안고 갑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출생은 더러운
죄를 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언급합니다. [누가 정결한 것을 부정한 것 가운데서 가져올 수 있나이까? 아무도 없나이다.](욥14:4).
인간은 부정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순수한 말씀의 물로 씻음 받아야 하며, 다시 태어남의 씻음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딛3:5).
아이가 태어난 채 그대로 있으면 제대로 자랄 수 없듯이, 우리가 태어난 그대로 있으면 우리는 지옥 자식이요, 마귀의 자식일 뿐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깨끗하겠느냐?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무엇이기에 의롭겠느냐?
](욥15:14). [그런즉 사람이 하나님과 견주어 의롭다 할
수 있겠느냐? 또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가 어찌 깨끗할 수 있겠느냐?
](욥25:4). [보소서, 내가 불법 중에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수태(受宅)하였나이다.
](시51:5). 이런 이유로 우리는 거듭나야만 합니다. 육신의 출생은 반드시 씻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정결하게 하시며](엡5:26).


5절입니다. [눈으로 너를 불쌍히 여겨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며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태어나던 날에 /사람들이/ 너라는 자를 심히 싫어하여 네가 빈 들판에 버려졌느니라.
](5).
태어난 날 아무도 보살펴 주는 이가 없다는 것은 여간 불쌍하고 비참한 일이 아닙니다. 태어난 날에 사람들이 싫어하여 빈 들판에 버려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다 버려진 상태요,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우리의 혼은 잃어버린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은
빈들에 버려진 사람을 찾아 주시고, 살리십니다. 육신이 버려진 상태를 ‘고아’라 하고, 혼을 잃어버린 상태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부모를 알지 못하는 고아들의 삶이 비참하고 불쌍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고아들은 더욱 불쌍합니다. 이 세상에 대부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네
피로 더럽게 된 것을 보고 네가 네 피 속에 /누워/ 있을 때에 내가 이르기를, /너는/ 살라, 하였으며 참으로 네가 네 피 속에 /누워/ 있을
때에 내가 이르기를, /너는/ 살라, 하였느니라.
](6). 사람의 피는 모두 죄로 물든 ‘더러운 피’ 입니다. 깨끗하고 귀한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뿐입니다. 핏덩이를 깨끗하게 씻으시고 옷을 입으시며 살아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살리시는 영이십니다. 주님은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는 사람을 죽이지만 하나님은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는/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면 우리 중에
누구도 살 수 없습니다.


7절입니다. [내가 너를 들의 싹같이 번성하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크게 되어 뛰어난 장식품이 되었으며 젖가슴이 생기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7).
주님은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셨고, 크게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로 들어올 때 불과 70여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집트를 나올 때는
200만이 넘었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그들은 당당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었습니다. 옷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이들에게 옷을 입혀 주십니다.


8절입니다. [이제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며 너를 보니,
보라, 네 때가 사랑을 할 때더라. 이에 내가 내 치마를 네 위에 펴서 네 벌거벗은 것을 덮어 주며 참으로 내가 네게 맹세하고 너와 함께 언약
속으로 들어가매 네가 내 것이 되었느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8). 주님은 이스라엘을 아내로 맞아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옷을 입히셔서 수치를 덮어 주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주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날에 해당합니다. [이는 너를 만드신
이가 네 남편이기 때문이니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시니라. 그분은 네 구속자(救贖玆)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니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시리라. 이는 주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받아 영이 괴로운 여인 곧 젊어서 거절당한 아내를 부르는 것같이 하셨음이로다.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사54:5,6). 예언적으로 말하자면 대환란이 끝난 후에 해당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의 짐승과
하늘의 날짐승과 땅의 기어다니는 것과 언약을 맺으며 또 그 땅에서 활과 칼을 꺾고 전쟁을 중단시켜 그들로 하여금 안전히 눕게 하리라. 또 내가
영원토록 나를 위하여 너와 정혼할 것이요, 참으로 나를 위하여 의와 공의와 인자와 긍휼로 너와 정혼하며 나를 위하여 신실함으로 너와 정혼하리니
네가 주를 알리라
](호2:18-20). ‘그 날에는’, ‘마지막 날’ 등과 같은 말은 모두 대환란과 연관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수치는
모두 가려지고 영광스런 모습이 될 것입니다.


9-10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너를 물로 씻고 참으로 네
몸에서 네 피를 완전히 씻어내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또 너를 수놓은 것으로 옷 입히며 오소리 가죽신을 신기고 고운 아마포로 너를 두르며 비단으로
너를 덮어 주고
](9-10).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을 불러내셔서 그들을 씻으신 것은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에 너무나 잘 나와
있습니다. 주님은 그들 안에 찌들어 있던 노예 근성을 씻어내셨습니다. 불순종과 불신, 반역의 영을 씻어내셨습니다. 40년 동안이나 표적과 기사,
이적을 보이시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말씀의 물로 씻김
받았습니다. [전에는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이제는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김을 받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
.](고전6:11).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우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고후1:21). [그러나 너희는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0). 주님은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셨습니다. [또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이라.
](갈3:27).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골3:12).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갑옷을 입고, 의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새사람을 입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옷 입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고후5:3).


11-12절입니다 [또 장식물로 너를 단장하며 네 손에
팔찌를 끼우고 네 목에 목걸이를 걸어 주며 이마에는 보석을, 귀에는 귀고리를, 머리에는 아름다운 왕관을 씌워 주었노라.
](11-12).
하나님은 먼저 씻기시고, 기름을 부으십니다. 씻기지 않고 기름부음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의 씻음 없이는 아무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씻음과 기름부음 후에는 옷을 입히십니다. 더러운 사람을 씻기지 않고 새 옷을 입힐 수 없습니다. 옷을 입힌 다음에는 장식물로
단장합니다. 손에 팔찌를 끼우고, 목에는 목걸이, 이마에는 복성을, 귀에는 귀고리를 머리에는 아름다운 왕관을 씌워 주십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은 어떤 옷입니까? 영적인 옷이라면 그에
어우리는 보석, 치장 역시 영적인 것이어야 짝이 맞습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딤전2:9). [너희가 단장(丹粧)하는 것은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며 옷을 차려 입는 외적인 단장으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는 것 곧 온유하고 조용한 영(靈)의 장식으로
할지니 이것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
](벧전3:3~4). 우리의 속사람은 영적인 옷을 입고 있는 관계로 영적인 치장을
해야 합니다. 외적인 단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단장입니다.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이야말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속사람은 영적인 것으로 단장할 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단장해 주십니다.


1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네가 금과 은으로 단장하고 고운
아마포와 비단과 수놓은 것으로 옷 입으며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으므로 심히 아름답고 형통하여 하나의 왕국이 되었느니라
.](13).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종에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위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주님은 벌거벗은 여자와
같이 핏덩이 이스라엘을 심히 아름답고 형통한 하나님의 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천년 왕국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14절입니다. [네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교도들 가운데로 나아갔나니 이는 내가 네게 단정하게 입혀 줌으로 말미암아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음이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4).
이스라엘은 이교도들 가운데 그 명성이 자자했고, 많은 나라들이 조공을 바쳤습니다. 이는 주님이 단정하게 입혀 주고, 아름다움이 완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세월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예언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대 환란을 통과한 이스라엘의 모습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다스리는 그 왕국이 될 때 이스라엘의 명성은 온 세계에 알려집니다. 완전한 아름다움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사람을
말합니다. 아무리 더러운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주님은 우리를 단정하게 입혀 주시고, 아름답게 하십니다.


신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같이 아름다우며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위엄이 있구나. 네 눈이 나를 사로잡으니 내게서 그 눈을 돌려 다오. 네
머리털은 길르앗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염소떼 같고 네 이는 씻는 데서 나가는 양떼 같으니 이 떼는 다 쌍둥이를 낳으며 수태하지 못하는 것이 그
중에 하나도 없구나. 네 관자놀이는 네 머리채 속에 든 석류 조각 같구나.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며 처녀는 수도 없이 많으나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아니한 자는 오직 하나뿐이로구나. 그녀는 그 어머니의 외동딸이요, 그녀를 낳은 여인이 가장 귀중히 여기는
자로구나. 딸들이 그녀를 보고 축복하니 참으로 왕비들과 후궁들도 그녀를 칭찬하는구나. 아침같이 찬란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위엄 있는 여자가 누구인가? 내가 골짜기의 열매들도 보고 포도나무가 무성하며 석류나무에 꽃망울이 텄는지도 보려고 호두 동산으로
내려갔더니 내가 미처 알기도 전에 내 혼이 나를 아미나답의 병거들같이 되게 하였도다.
](아6:4~12). 성도들의 모습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어떤 아름다운 모습도 없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갖게 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네 아름다움을 신뢰하고
네 명성으로 인하여 창녀 짓을 행하되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네 음행을 쏟아 부었으므로 네 아름다움이 그들의 것이 되었도다.
](15).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해 주시는 분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습니다. 힘은 힘의 근원자가 있어야 유지됩니다. 이는 무엇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건축물이 있다해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거나 관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름다움을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란 보이는 현상이요, 결과입니다. 명성은 어떤 일의 결과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아름다움을 주시고, 명성을 날릴 수
있도록 힘을 제공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신뢰하고 명성을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가지에 맺히는 모든 열매는
뿌리와 줄기의 힘에 의존한 결과인 것같이 내게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명성은 주님을 의존한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근원을 버리고, 결과와
현상만을 쫓으면 그것은 곧 바로 타락으로 더러워집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공급하던 근원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아름다움과 명성으로 창녀짓을 했습니다. [신실하던 도시가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는가! 공의가 거기에 충만하고 의가 거기에 거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사1:21), [네가 또 문들과 기둥들 뒤에 네 기념물을 세웠으니 이는 나 아닌 다른 /신/에게 네가 네
몸을 드러내었음이라. 네가 네 침상을 넓히며 그들과 언약을 맺고 전에 네가 본 적이 있는 그들의 침상을 사랑하였으며
](사57:8). 모든
피조물은 힘과 지혜와 능력, 에너지원의 공급자에서 떨어질 때 형편없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쁜 꽃도 꺽어지면 금방 시들어 버리며, 맑은
호수도 상수원을 막아 버리면 썩어버리듯이 개인이나 교회나 민족이나 창조주 하나님과 멀어지면 아름다움은 변하여 썩어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도 전원이 공급되지 않으면 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요, 오직 우리의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기 때문이니라.
](고후3:5).


16절입니다. [네가 네 의복 중에서 취하여 여러 색깔로
네 산당(山堂)들을 단장하고 그 위에서 창녀 짓을 행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은 앞으로 있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렇게 해서도 아니될 것이라.
](16).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옷을 엉뚱한데 사용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능력,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를 세상을 위해 사용합니다. 이것이 창녀짓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로 돌려드리지 않는 것이 우상 숭배요, 음행입니다. [그런즉 그것이 원하는 자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달리는 자에게서
난 것도 아니며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니라.
](롬9:16).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의복 중에서 취하여 산당을 꾸미는데 사용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난 기름을 우상에게 바쳤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네가 또 내가 준 금과 은의
아름다운 보석들을 취하여 너를 위해 남자들의 형상을 만들고 그것들과 행음(行淫)하였으며 또 네 수놓은 옷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덮고 내 기름과 내
향을 그것들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준 내 음식물 곧 내가 너를 먹인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것들 앞에 베풀어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였나니 참으로 그러하였느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7-19).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형상들을 만들고, 그것들 앞에 내어 놓고 바쳤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사람들은 받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어진 것을 자신이 만든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산과 강, 공기와 물 등은 물론이고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받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소유와 재산을 모두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 샘, 집, 포도원, 과수원 등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기름지고 비대하고 기름으로 덮이매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소홀히 여겼도다. 그들이 이방 신들로 그분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들로 그분의 분노를
일으켰도다.
](신32:15-16).


20-21절입니다.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아들딸들을 데려다가 그것들에게 희생물로 드려 삼킴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네가 이러한 네 행음(行淫)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내 자녀들을 죽이고
넘겨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형상/들을 위해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20-21). 이들의 행위는 가나안의 풍습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암몬 족속들은 몰렉이라는 형상을 만들고 아이들을 인신 공양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매우 사악한 짓입니다. 주님은 명하시기를,
[너는 결코 네 씨 가운데 하나라도 몰렉을 위하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지 말고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주니라.](레18:21)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징계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자든지 이스라엘에 거하는 타국인이든지 자기
씨 중에서 하나라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땅의 백성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내 얼굴을 들고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를 자기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자기 씨 중에서 하나라도 몰렉에게 주어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이름을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자기 씨 중에서
하나라도 몰렉에게 줄 때에 그 땅의 백성이 그 사람을 눈감아 주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내 얼굴을 들어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대적하고 또
그와 그를 따라 음행의 길로 가며 몰렉과 행음(核淫)하는 모든 자를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레20:2-5).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행하는 죄악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말씀하십니다.


22절입니다. [네가 네 모든 가증한 일과 행음 속에서
너의 어렸을 때 곧 네가 벌거벗은 알몸으로 지내며 네 피로 더럽게 된 때를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22). 이들은 이전에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않을 때 타락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배신, 배반,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고 부릅니다. 사사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기드온이 죽으매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서 바알들을 따라 음행의 길을 가고 또 바알베릿을 자기 신으로 삼고 사방의 모든 원수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 내신 [주]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또 기드온이라 하는 여룹바알이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선함에 따라 그의 집에 친절을 베풀지도 아니하였더라.
](삿8:33~35).
요아스 왕 역시 배은망덕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졌고, 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영적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여 버렸습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친절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주]께서 보시고 이 일로 인하여 벌을 주시옵소서,
하니라.
](대하24:22). 은혜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필히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민족성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들이
그분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그분께서 자기들을 원수로부터 건지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시78:42).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주님을 기억하지 않는 민족성이 배교한 이스라엘의 민족적 기질이요, 특성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주의 이적들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주의 풍성한 긍휼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바다에서 곧 홍해에서 그분을 격노하게 하였나이다.
](시106:7). 왜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지워지면 기억에서 지워집니다. 죄를 사랑하고 육신을
사랑하면 모든 은혜는 기억에서 다 사라집니다. 죄에 연루되면 받은 은혜는 기억나지 않고 불평만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그토록 불평이
넘쳤던 것은 그들이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에 연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성도에게 필요한 것이 주님의 징계와
심판입니다. [네가 누구를 무서워하며 두려워하였기에 거짓을 말하고 나를 기억하지 아니하며 그것을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사57:11). 주님께서 얼굴을 드시고 채찍을 드시거나 칼을 빼 드시면
정신이 번쩍 드는 법입니다.


23-26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네게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 모든 사악한 일을 이룬 뒤에 또 네가 너를 위하여 우뚝 솟은 처소를 지으며 거리마다 높은 처소를 만들었도다.
네가 네 높은 처소를 모든 길 머리에 짓고 네 아름다움을 몹시 싫어하는 것으로 만들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네 발을 벌려 네 행음을 크게
더하고 또 몸집이 큰 네 이웃들 곧 이집트 사람들과 음행을 범하며 네 행음을 많게 하여 내 분노를 일으켰도다.
](23-26). 주님은
복을 거두시고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이들은 밀곰, 몰렉에게 아이들을 공양한 후에 우뚝 솟은 처소를 짓고, 거리마다 높은 처소를 만들었는데 일종의
산당을 지은 것입니다. 인신 공양을 드릴 때 북을 쳤는데 그 북을 토벳(도벳)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인신공양을 드리는 살육의 장소란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처소에는 이런 북들이 갖추어져 있는데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현대 교회는 모두 높게 짓습니다.
그리고 드럼을 비롯한 타악기를 갖춥니다. 이들은 드럼을 치면서 찬양 아닌 찬양을 부르면서 기분을 내지만 지옥이나 죄인이 받게 될 저주와 형벌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써 함께 지옥으로 가는데 이는 음행한 현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거리마다 우뚝 솟아 있는 처소들에서
자행되는 현대 교회의 음행은 정도를 넘어 서고 있습니다. 이들이 드리는 예배가 누구를 위한 예배이며, 누구에게 드리는 예배이겠습니까? 거듭난
영을 지닌 성도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드리지 않는 예배는 모두 마귀에게 드리는 예배요, 음행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음행을 멀리하고 저마다 거룩히 구별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그릇을 소유할 줄 알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같이
욕정으로 하지 말고 아무도 어떤 일에서든지 도(度)를 넘어 자기 형제를 속여 빼앗지 말라. 그 까닭은 또한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것같이 {주}께서 이런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라.
](살전4:3~6). 주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신약의 교회 성도들이
행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며, 그에 대해 반드시 복수하시는 분이시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대언자 에스겔을 통해서 이런 죄악들을
조목조목 밝히시는 것은 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저주와 심판을 돌이키는 유일한 길은 말씀 앞에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죄들을 알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은혜와 긍휼을
입고 복을 얻게 하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불법의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Archived(완료) > 구약 개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스겔(19)  (0) 2006.07.03
에스겔(18)  (0) 2006.07.02
에스겔(16)  (0) 2006.06.23
에스겔(15)  (0) 2006.06.22
에스겔(14)  (0) 2006.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