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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에스겔 43:12-27

요절: 에스겔 43:27


주님은 에스겔을 통해 성전을 계시해 주시고, 성전에 대한 법규를
일러 주셨습니다. 이전에 모세의 율법 아래에서 성전에 대한 법규가 있었듯이 천년 왕국 때에 세워질 성전 역시 그들이 지켜야 할 법규가 있습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교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전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에 올라가 경배를 드리지 않고, 헌물을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과 진리로 어디서나 주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요4:24).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
](요4:21-24). 신약 성도들은 구약의 율법, 구약의 성전이 필요치
않았듯이 천년 왕국에서도 성전이나 율법이 필요치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주님께서 친히 성전이 되시므로 건물로서의 성전이
없습니다(계21:22). 하지만 천년 왕국 시대에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이 필요하며, 성전에 나아가 헌물을 드리고 주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는 이스라엘의 온 집 곧 그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내 거룩한 산과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나를 섬길 것임이니 거기서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리라. 또 거기서 내가 너희의 헌물과
봉헌물의 첫 열매와 너희의 모든 거룩한 것을 함께 요구하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겔20:40)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특정 장소가 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또 이레 동안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정화(淨化)하며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분할지니라. 이 날들이
다 끝나고 여드레째 되는 날과 그 이후에는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너희의 번제 헌물들과 화평 헌물들을 드릴지니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으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 (겔43:26~27)고 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요구하는 이런 헌물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주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됩니다. 주님은 “거기서 내가 그들을 받아 들이리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으리라.”고 선포하심으로 이들에게 성전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영적 생존의 필수 요건이요, 주님과의 교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곳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섬길 때
성경과 성령이 필요하듯이 천년 왕국 때 이스라엘은 성전과 헌물이 필요합니다. 이는 구약의 모든 율법들이 그림자들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16-17, 히브리서 10:1을 펴 보십시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
](골2:16-17). 이것들은 “지난 간 것이니라”고 말하지 않고,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라고 말합니다. 구약은 앞으로(천년 왕국 때) 올 것들의 그림자입니다. 천년 왕국 때는 구약의 율법에 있고, 교회
시대에는 없던 성전이 있고, 헌물이 있고, 거룩한 날, 월삭이 있습니다. [이는 율법은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히10:1a).
*앞으로 올 좋은 일들- 이는 갈보리 십자가의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천년 왕국 때의 성취될 일들을 말합니다. 율법은 분명히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완전한 성막을 통하여
/오셔서/
](히10:1). 주목해서 보십시오. 주님은 2,000년 전에 대언자로 오셨습니다. 현재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자로 계십니다. 왕으로서 오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왕과 제사장(계1:5, 5:10)으로 삼으시듯이 주님은 만왕의 왕이요, 대제사장으로서
오십니다.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이란 이 땅에 세워질 하늘의 왕국과 기타 모든 구속 사역의 성취를 말합니다.


12절입니다. [이 집에 대한 법규는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위의 전 구역은 사방으로 지극히 거룩하리라. 보라, 이 집에 대한 법규가 이러하니라.
](12). 주님은 이들에게 성전에 대한 법규를
주셨습니다. 이 법은 전에 시내 산에 맺은 첫 번째 연약과는 달리 그들 마음 판에 새겨질 것입니다. 그들 안에는 새 영이 부어질 것이요, [주를
알라] 하지 않아도 모두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율법은 더 이상 행할 수 없고 지킬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이들이 기쁘게 행할 수 있는
그런 법입니다.


13절입니다. [큐빗에 따라 /잰/ 제단의 치수는 이러하니
이 큐빗은 일 큐빗에 손바닥 넓이/를 더한 것이라/. 밑바닥은 일 큐빗이요, 넓이도 일 큐빗이며 그 가장자리의 턱은 돌아가며 한 뼘이니 이것이
제단의 높은 곳이요
,](13). 주님께서 ‘이 집에 대한 법규는 이러하니라’고 말씀하시며 곧 바로 ‘제단의 치수’를 말씀해 주십니다.
에스겔 성전에 사용된 큐빗은 일반 치수의 큐빗보다 손바닥 넓이를 더한 것이기 때문에 길이가 깁니다. 보통의 일 큐빗은 이곳 치수로 보통
22인치인데 비해 에스겔 성전에 사용된 큐빗은 손바닥 넓이를 더한 28인치 정도입니다. 제단의 모양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 쉽게
그림이 그려집니다. 제단은 성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단의 구조는 아래로부터 ‘땅위의 바닥’과 그 위의 큰 판이 놓이고 작은 판이
놓이는 3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제단은 주님을 섬기는 단입니다. 성막이나 성전이 없을 때부터
제단은 주님은 섬기는데 핵심이었습니다. 노아는 “주께 제단을 쌓고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창8:20). 아브라함 역시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말씀하자 곧 바로 그곳에서 주께 제단을 쌓았습니다(창12:7-8). 창세기부터 등장한 제단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요한 계시록에까지 계속 나옵니다. 성막이나 성전의 제단은 주님께서 친히 치수와 재료, 모양을 알려 주시고 거룩하게 구분하게 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또 땅 위의 밑바닥에서부터 아래 선반까지는
이 큐빗이요, 넓이는 일 큐빗이며 작은 선반에서부터 큰 선반까지는 사 큐빗이요, 넓이는 일 큐빗이니
](14). 제단은 밑바닥에서부터 아래
선반까지 이 큐빗입니다. 아래 선반이 큰 선판이고 그 위에 작은 선반이 있는데 큰 선반과 작은 선반까지는 사 큐빗입니다. 땅 바닥에서부터 총
높이는 육 큐빗이 됩니다.


15절입니다. [그러므로 제단은 사 큐빗이며 제단으로부터
위로 뿔이 넷 있으며
](15). 제단의 높이는 4큐빗이고 제단의 사면 각 모퉁이에는 네 뿔을 만듭니다. 이 모습은 성막 제작 때부터
그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모양입니다.


16절입니다. [제단은 길이가 십이 큐빗이요, 넓이가 십이
큐빗이며 네모 반듯한 네 면이 직각이고
](16). 길이가 12X12 큐빗의 정 사각형 모양의 제단인데 이는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에 사용된 제단과는 크기가 다릅니다. 출애굽기 27:1과 역대기하 4:1과 비교해 보십시오. [너는 시팀나무로 제단을 만들되 길이를 오
큐빗, 넓이를 오 큐빗으로 하여 네모 반듯하게 하고 그 높이는 삼 큐빗으로 하며
](출27:1). 모세는 싯팀 나무로 제단을 만들었고,
솔로몬은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또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이십 큐빗이요, 넓이가 이십 큐빗이요, 높이가 십
큐빗이더라.
](대하4:1). 치수가 차이가 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성전에는 제단의 재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17절입니다. [선반의 길이는 십사 큐빗이요, 네모 반듯한
네 면의 넓이는 십사 큐빗이고 그 턱은 반 큐빗이며 밑바닥은 일 큐빗이고 그 층계들은 동쪽을 바라보게 할지니라.
](17). 선반의 길이가
14X14 큐빗이라면 양 쪽에 일 큐빗씩 여유 공간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바닥 역시 일 큐빗씩 여유 공간이 있으므로 바닥의 크기는 16X16
큐빗이 됩니다. “그 층계들은 동쪽을 바라보게 할지니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성전 자체가 동향이고, 제단의 방향 역시 동향입니다. 성경에서 진행 방향은 일관되게 “동쪽에서 서쪽으로”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잘못된 이동은
모두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서에서 동으로 이동했습니다. 살인자 가인 역시 쫓겨날 때
서에서 동으로 이동했습니다(창4:16). 야곱이 도망칠 때도 서에서 동쪽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는 예외 없는 법칙처럼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의
부름을 받고 보여 주실 땅으로 갈 때 동에서 서로 움직였습니다. 야곱이 돌아온 것이나 신약 성경에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이동 경로 역시 모두
동에서 서로 향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 경로 역시 동쪽 올리브 산에서부터 요단강을 건너 서쪽으로 진행됩니다(슥14:4). 성령의 바람은
동에서 서로 붑니다. 미국의 개척 역사 역시 그러합니다. 동부에서 서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방향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18절입니다. [또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사람의
아들아,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 헌물을 드리며 그 위에 피를 뿌릴 때에 /지킬 규례/
곧 제단에 대한 규례가 이러하니라.
](18). 성전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제단이 만들어진 날’에 드리는 번제 헌물입니다. 제단이
만들어지는 날 드려지는 일종의 봉헌 예물입니다. 천년 왕국 시대에 다시 성전이 세워지고, 그 중앙에 제단이 있고, 피를 뿌리는 번제 헌물이
드려진다는 이런 사실은 놀랍기만 합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구약과 신약이라 두 시대만 존재하고 더 이상 율법이나 성전 제사 등은 없다고 믿지만
성경은 분명히 다시 피를 뿌리는 번제 헌물이 드려지는 때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음이라.
](히10:12-14)는 말씀에 따라 더 이상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신약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드릴 헌물도 제사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단번 속죄’에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그들은 단번에 영원히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되지도 않았습니다. 대 환란에서 천년 왕국으로
들어간 사람들, 천년 왕국 때 태어난 사람들 등은 거듭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대별, 대상별로
정확히 말씀을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혼란에 빠지거나 비유나 상징 등으로 말씀을 멋대로 푸는 잘못을 범하고 말 것입니다.


19절입니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너는 내게
가까이 와서 나를 섬기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 곧 사독의 씨에서 나온 자들에게 어린 수소 한 마리를 주어 죄 헌물을 삼게 하되
](19).
레위의 자손 아론의 가문이 제사장 직분을 맡았는데 아론의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 가운데 한 사람이 맡았습니다. 다윗은 엘르아살의 아들들 중에
사독과 이다말의 아들 가운데 아히멜렉에게 이 직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대상24:3). 후에 솔로몬 왕이 왕위에 등극할 때 제사장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옷니야를 왕으로 세우려 했고, 사독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데 동참했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자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하여금 요압 대신 군대를 다스리게 하고 아비아달 대신 제사장 사독을
세우니라.
](왕상2:35). 천년 왕국 때 주님은 사독의 씨에서 난 레위 자손들로 하여금 제사를 맡게 하셨습니다.


20절입니다. [네가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의 네 뿔과 그
선반의 네 모퉁이와 그 턱에 돌아가며 발라 이와 같이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며
](20). 성전 제사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이
부분은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성막 제단에서부터 행해져 온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피입니다. [그 소의 피를
취해 네 손가락으로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서 옆에 쏟을 것이며
](출29:5). 모든 것은 피로써 정결하게 됩니다.
제단에 올려진 제물들은 사람들의 부정함과 죄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단은 언제나 피로써 정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함으로부터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할지니라
.](레16:19). 피 외에 또 한
가지는 기름입니다. [너는 날마다 속죄에 쓸 수소 한 마리를 드리고 또 제단을 위해 속죄할 때는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그것에 기름을 부어
거룩히 구별할지니라.
](출29:36). 기름은 성령을 예표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써 깨끗하게 됩니다. 하지만
본문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모세의 율법 아래서 드리는 성전 제사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를 예표하는
진리로서 행하는 것이었다면 천년 왕국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제사를 통해서 이미 갈보리에서 완성된 사역의 진리들의 의미를 재현하고 실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새 마음과 새 영으로 행하는 율법과 성전 제사는 주님께서 어떻게 구속 사역을 완수하셨는가를 구약의 율법과 비교해
생생하게 마음 속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또 죄 헌물의 수소를 가져다가 그 집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태우고
](21). “그 집의 정한 처소”는 성전 안이지만 성소 밖의 어느 곳을 말합니다. “죄 헌물의
수소”는 말 그대로 수소입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죄 헌물이 되셨습니다. 이 진리는 천년 왕국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
때부터 해왔던 율법을 다시 행함으로써 확증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드렸던 모든 헌물은 희미한 그림자였다면 이제는 실체를 확인하고, 증거하고,
입증하는 그런 헌물이 됩니다.


22-23절입니다. [또 둘째 날에 네가 흠 없는 염소
새끼를 죄 헌물로 드릴지니 그들이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수소로 정결하게 하는 것같이 할지니라. 네가 제단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친 뒤에는 흠
없는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양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리되
](22-23). 속죄 제물은 칠일 동안 드려지는데 첫째 날은 수
송아지(21), 둘째 날에는 “흠없는 염소 새끼”, 그리고 나머지 날들에는 “흠없는 어린 수송아지 한 미라와 양들 가운데서 흠없는 숫양 한
마리”를 드립니다. 주님은 이레 동안 염 소 한 마리를 죄 헌물로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구약에서는 칠일 동안 매일 어린 양 두 마리를 드리되
아침저녁으로 드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출29:38-39). 놀라운 것은 천년 왕국 동안에는 제단 위에는 “어린 양”이 드려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갈보리에서 드려졌던 예수 그리스도는 [하니님의 어린 양]으로서 단번에 영원히 드려졌기 때문에 반복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은 한 번으로 족합니다.


24절입니다. [그것들을 [주] 앞에 드리고 제사장들은 그
위에 소금을 치며 [주]께 번제 헌물로 올려 드릴지니라.
](24). 번제물 위에다 소금을 침으로써 번제물을 한층 더 정결하게 합니다.
번제물이 제단의 불에 탄다는 것은 죄인들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옥에서는 죄인들이 불로 소금 치듯함을 받습니다. 주님은 제단
위에서 그 모습을 재현해 보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임이라.](막9:49).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지옥의 저주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 진리가 천년 왕국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헌물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진리요, 믿은 진리들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 이런 영적 진리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25-26절입니다. [너는 날마다 이레 동안 염소 한
마리를 죄 헌물로 예비하고 그들은 또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양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숫양 한 마리를 예비할 것이며 또 이레 동안 제단을 깨끗하게
하고 정화(淨化)하며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분할지니라.
](25-26). 이레 동안 제단에 관한 봉헌 제사가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율법에
기록된 정규 제사가 드려집니다. 제단이 만들어지면 이레 동안 위에서 말한 모든 과정을 거쳐 재단을 깨끗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분해야
합니다.


27절입니다. [이 날들이 다 끝나고 여드레째 되는 날과
그 이후에는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너희의 번제 헌물들과 화평 헌물들을 드릴지니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받으리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27).
일주일 동안 정해진 헌물을 드림으로써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분한 후에 여드레째 되는 날부터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각
사람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드립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은 그들을 받아들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 예배가 완벽히 부활합니다.


가인이 드린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을
받지 않으시고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지만 아벨과 그의 예물은 받으셨습니다. 주의 제단 위에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드릴 때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은 그들을 받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욥기 42:8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제수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 헌물 들리라. 그리하면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터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며....
]욥42:8a). 주님이 정해 준 대로 드리는 헌물은 그 자신이 주님께 드려지는 것과
동일합니다. 바른 헌물은 우리가 임의대로 정성을 다해 드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대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소로부터
네게 도움을 보내시고 시온으로부터 너를 강하게 하시며 네 모든 헌물을 기억하시고 네 태우는 희생물을 받아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20:3).
우리는 이런 헌물들을 드리는 대신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영적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감사, 찬양은 우리 입술이 주님께 드리는 헌물입니다. 기도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물입니다. 구제의 헌금이나 형제들을 돕는 것 역시 주님이 심히 기쁘게 받으시는 헌물입니다. 하나님은 헌물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고 헌물 이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받으시는 분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주님께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가 드리는 희생물도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간청하기를, [오 주여, 주께 간청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 헌물들을
받으시고 주의 판단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시119:108)라고 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찬양, 감사와 구제 등의 모든 헌물들이
주님께 받아 들여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 우리를 받아들이십니까?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일 때입니다. 복음을 듣고 마음에 믿으면 주님 역시 그 사람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주님은 그 사람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만 아들로 받아 주실 뿐 어떤 사람이나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 받아들이라.](롬15:7).


주의 말씀을 받지 않고,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드리는 헌물이
아니면 주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 14:10,12을 보십시오. [이 때에 주께서 이 백성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그들이 이같이 떠돌아
다니는 것을 사랑하여 자기 발을 억제하지 아니하므로 주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불법을 기억하며 그들의 죄들을 징벌하리라, 하시고
](렘14:10),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그들이 번제 헌물과 봉헌물을 바칠지라도 내가 그것들을 받지 아니할 분 아니라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역병으로 그들을 진멸하리
](렘14:12). 사람들이 먼저 주님을 마음에 받아 들여야 합니다. 주님이 문을 두드릴 때
열어 드려야 합니다. 바리새적인 종교심은 소용없습니다. 인간적인 열정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5:22, [너희가
비록 나를 위하여 번제 헌물고 너희의 음식 헌물을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짐승으로 드리는 화평 헌물도 내가 중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암5:22).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드린 헌물은 주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 훨씬 많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그들은 죄를 더 많이 지었습니다. 스룹바벨의
성전, 헤롯의 성전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이들 안에는 새로운 영, 부드러운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 때에 에스겔의 성전에서 그들이
드리는 헌물은 주님께서 열납하시는데 그들 안에 주님이 주시는 새 영과 새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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