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뿔, 적그리스도 -
말씀: 다니엘 7:1-28
요절: 다니엘 7:1,22
우리들은 예언을 공부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오심과 똑 같이 다른 존재들도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요, 또 하나는 사탄(Satan)입니다. 이들은 신, 구약에서 공히 마지막 때, 즉 이 세대가 끝나갈 무렵에
나타날 "Mysterious and Terrible Personage"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뿔이듯이 적그리스도 역시 뿔인데, 작은 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듯이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둘의 구분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은 패배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듯이,
적그리스도 역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 불렸다면 적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에서
“앗시리아인”(사10:5-6, 14:24-25, 30:27-33)이라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로운 분이라 불리듯이 적그리스도는
“악인”(The Wicked) -사11:4-이라 불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왕이라 불리듯이 적그리스도는 “바빌론의 왕”(King of
babylon) -사14:4-“두로의 왕”(King of Tyrus) -겔28:11-19으로 불립니다. 이외에도 적그리스도는 “루시퍼”(Lucifer)
-사14:12, “작은 뿔”(The little horn) -단7:8. 8:9-12 “무서운 용모를 한 왕”(A king of fierce
countenance) -단8:23 “장차 올 왕”(The Prince that shall come) -단9:26 “자기 뜻대로 행하는
왕”(The willful king) -단11:36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죄의 사람”(The Man of Sin) -살후 2:3-8 “멸망의 아들”(Son of Perdition) -살후 2:3-8 “악한
자”(the Wicked) -살후 2:3-8 “짐승”(The Beast) -계13:1-8 *주님없이 적그리스도를 볼 수 없다. 적그리스도는
주님의 존재, 호칭, 사역을 정확히 흉내내며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성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가지며,
드러냅니다.
이사야 대언자는 “적그리스도”를 “앗시리아인”이라고
보았습니다(사10:5-6, 30:27-33). 이사야 11:4은 메시야께서 하실 일에 대한 분명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의롭게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하여 공평하게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호흡으로 사악한 자를
죽일 것이며](사11:4). 여기서 사악한 자(The Wicked)란 일반적인 악한 사람들이나 마귀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수형으로써
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 표현은 놀랍게도 데살로니가후서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친히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살후2:8). 이사야와 바울이 지적한 사람은 “적그리스도”라는
동일한 인물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4:4-17에는
“진노 가운데서 그 백성을 계속해서
매질하였고, 분노 가운데 민족들을 치리하였던 그”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침의 아들 루시퍼”(Lucifer, Son
of the Morning)라고 불리기도 하며, 땅으로 끊어져 내렸다고 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지상에는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그러한 “바빌론
왕”은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은 틀림없이 미래에 바빌론이 재건될 때 등장할 왕일 것입니다. 12절과 14절은
분명히 “루시퍼”라고 불리는 “사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계시록 13:1-2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을 적그리스도 안에 성육신하여 바빌론
왕으로써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는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고 두려워 떨게 만드는 교만의 왕입니다. 대언자 에스겔은 “두로의 왕”에 대한 이와
비슷한 환상을 보았습니다(겔28:11-19).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 미래의 로마 제국은 두로와 바빌론 제국을 합친 국가이며, 적그리스도는 이
두 국가의 왕이 될 것이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작은 뿔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니엘 8장과 11장을 통해 좀 더
자세히 그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 구절들도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다니엘8:3-12, 20-25에나오는 “수양과
숫염소”의 환상에서 다니엘은 숫염소의 눈들 사이에 난 큰 뿔이 꺾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는 두드러진 네 뿔이 나오고, 그 중 한 뿔에서
“작은 뿔”이 나왔습니다.
[그 뿔들 가운데 하나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쪽과 동쪽과 또 그 기쁨의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그것이 하늘의 군대에 이르기까지 커져서 그 군대와 별들 가운데 얼마를 땅에 내던지며 그것들을 짓밟고 참으로 그가 자기 자신을 높여서 그 군대의
통치자에게까지 이르며 그로 말미암아 날마다 드리는 희생물이 없어지고 그분의 성소가 있는 곳이 허물어졌더라.](9-11).
“작은 뿔”에 대해 천사 가브리엘은 이렇게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왕국의 마지막 때 곧 범죄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사나운 얼굴을 하고 숨겨진 글의 뜻을 깨닫는 한 왕이 일어나리라. 그의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 그가 놀랍게 파괴하며 형통하여 /마음대로/ 행하며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하리라. 그가 또
자기의 정책을 통하여 자기 손에서 속임수가 형통하게 하고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며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할 것이요, 또
일어서서 통치자들의 통치자를 대적할 것이나 그가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무너지리라.](8:23-25). 그가 하는 일은 하나같이 주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1. 그는 사나운 얼굴을 지녔다. 2. 숨겨진 글의 뜻을 깨닫는 왕이다. 마귀는 지혜롭다. 3. 권세가 강하다. 4. 그는
놀랍게 파괴하며 형통하다. 5. 그는 마음대로 행한다. 6. 강한 자들과 거룩한 백성을 멸한다. 7. 속임수가 형통하게 한다. 거짓으로 모든
일을 하는 자이다. 8. 자기 자신을 높인다. 9.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한다. 10. 일어서서 통치자들의 통치자를 대적한다. 11.
그는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무너진다. 그렇다면 이 자가 누구인가? 적그리스도입니다.
수많은 성경학자들이 여기에 나오는 “작은 뿔”은 네 번째 짐승의
열 뿔 가운데 나오는 “작은 뿔”과 같은 종류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B.C. 166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그 위에다
“이교도의 제단”(idol altar)을 쌓고, 돼지를 잡아 바친 안티쿠스 에피파네스(Anticus Epiphanes)란 인물이 바로 작은 뿔일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작은 뿔의 행적에 대한 묘사와 안티쿠스 에피파네스가 한 행동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더 크며, 일치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안티쿠스 에피파네스는 결코 하늘의 군대에 의해 내 던져지거나 자기 마음 속에 자신을 높이고 평화로 많은 것을 멸하지도
않았으며, 통치자들 중의 통치자를 대적하여 일어선 적도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B.C.
165년에 타베(Tabae)에서 늙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의 해석은 안티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세대의 끝에 있을 일을
말한 것입니다(단8:17). 이방인들의 때의 끝은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가브리엘은 “진노의 마지막 끝”에 있을 일들, 대환란에 대해서
다니엘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8:9-12,23-25의 작은 뿔은 다니엘 7:7-8에 나오는 작은 뿔과 같은 시기를 말해주고
있으므로, 동일한 인물로서 이는 분명히 “적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11장에서 “자기 뜻대로 행하는 왕”의 환상에서 이
문제에 대해 또 다루게 되겠지만, 여기서 멈추지 말고 다른 성경에서 작은 뿔에 대해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背敎)하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를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드러나게 하려고 무엇이 /그를/ 저지하고 있는지 지금 아나니 이는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라. 다만 지금은
막고 있는 이가 있어 그 길에서 옮겨지기까지 막으리라.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친히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 저 사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권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로 오는 것이니 그 까닭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미혹을 보내사 거짓말을 믿게 하시리니 이것은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한 모든 자들로 하여금 정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2:3-12).
여기서 바울은 다니엘서에 언급된 “작은 뿔”에 대해 세 가지의 다른 이름을 들고 있습니다.
①
“죄의 사람”(THE MAN OF SIN), ② “멸망의 아들”(THE SON OF PERDITION), ③ “악한 자”(THAT WICKED)
멸망의 아들이란 표현은 그리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멸망의 아들이란 말씀은 작은 뿔, 즉 적그리스도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 단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다 이스카리옷”을
가리킬 때(요17:12)이며, 또 한 번은 바로 이곳에서 적그리스도를 가리킬 때입니다.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은 “뱀”(Serpent)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대감(敵對感)을 두리니 여자의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여기서 여자의 씨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뱀의 씨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처녀의 몸에서 잉태하신 것처럼 적그리스도 또한 사탄에 의해 여자(처녀일지는 몰라도)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 요한 이래로 영적으로 깨어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요한 사도 자신도 사람들 가운데 적그리스도가 있지 않을까 늘 열심히 살피고 있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육화된 마귀 인간은 그 출생부터
완전히 사탄에 의해 이루어 진 “타락한 존재”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들”(천사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와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거인들”(mighty men)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귀적인 속성을 물려받아 사악하였으며 악이 심히 번성하게 하였기에 홍수를
촉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창6:1-8). 그렇다면, 사탄은 왜 여자를 취해서 적그리스도를 낳지 못하겠습니까? “멸망의 아들”이란 바로 사탄의
아들인 것입니다. “멸망”(perdition)이란 어떤 장소를 가리킵니다(계17:8,11).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 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그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있게 될 그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계17:8),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여덟번째니 그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계17:11). 유다와 적그리스도는 동일한 “멸망의 아들”이며, 멸망의
창시자인 사탄의 아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70-71에 우리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선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마귀니라,
하시니라. /이것은/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이는 그가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님을 배반하여 넘겨줄 자이기 때문이더라.](요6:70-71).
주님께서 분명히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마귀란 말은 바로 사탄이 육화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권위역 성경에는 “시몬의
아들 유다”라고 번역할 때, “시몬의 아들”이란 단어를 이탤릭체로 처리했습니다. 권위역 성경에서 이탤릭체로 처리한 것은 “원어 성경”에는 본래
없는 단어이지만 의미를 밝혀 주기 위한 것입니다. 즉 시몬이란 사람은 실제 유다의 아버지가 아니라 유다의 아버지로 불린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1)유다의 실제 아버지는 시몬이 아닌 다른 사람(사탄)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질문은 ‘가룟 유다와
적그리스도’가 ‘멸망의 아들’(Son of Perdition)이라고 불린다면, 이 둘은 동일 인물인가? 그들은 완전히 하나인가? 아니면 ‘멸망의
아들들’(복수)로써 다른 두 사람인가? 입니다. 계시록 11:7로 가보면 ‘끝없이 깊은 구렁’(Bottomless Pit)에서 올라온 짐승이 두
증인을 죽이는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짐승입니다. 그렇다면 ‘끝없이 깊은 구렁’은 어디인가? 만약 ‘멸망의 아들’이
동일한 인물이라면 그들의 처소 또한 같은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자기 처소’(his own place)로
갔습니다(행1:25). 자기 처소는 바로 ‘끝없이 깊은 구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사람이 자기 처소로 갔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계시록 17:8에 똑같은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그로 하여금 이 사역과 사도직을 맡게 하옵소서.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고자 하여
범죄함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행1:25).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 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로부터 그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있게 될 그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계17:8).
여기서 짐승은 ‘두 증인’을 살해하는 적그리스도와 동일
인물입니다. 그에 대해 성경은 4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 ‘전에도 있었고(was)', 둘째, 지금은 없으며(is not), 셋째,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오며, 넷째, 그는 멸망(perdition)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요한의 시대에 ‘짐승’(Beast)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전에는 이 땅에 존재했으며, 다시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상의 기록된
적그리스도가 ‘전에 있었으며’(Which was),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다시 올라 올 것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전에 지상에 있었던 적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가룟 유다’가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면 이 말씀들은 너무 쉽게 풀릴 것입니다. “전에는 있었으며”란 말은 가룟 유다가 자살하기 전에 함께
있었을 때를 말하며, “지금은 없으며,”란 말은 그가 자살하여 자기 처소(끝없이 깊은 구렁)로 가 버려서 없는 것을 말하며, “장차 올 자”란
그가 다시 미래에 적그리스도로서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 올 것을 말합니다. 필자는 지금 여러분에게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절과 절’을 비교함으로써 진리의 지식에 도달하라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이란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았고, 결국 ‘적그리스도’와 ‘유다 이스카리옷’은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적그리스도를 일컬어 “죄의 사람”(MAN OF
SIN)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모든 죄는 “죄의 사람”안에서 고개를 쳐든 것입니다. 배교란 단순히 기독교로서의 이탈이 아니라 다시 “죄의
사람”에게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불법(Lawless)”의 본체입니다. "불법의
신비(The mystery of Iniquity)"는 바울이 사역하던 때에는 은밀하게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불법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그 불법의 모든 결과일 것입니다. 현재 세상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불법과 탈법을 적그리스도가 조정하고 있으며, 그 안에(in him)
죄의 뿌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뿔”을 추적하여 그 정체를 살펴봄으로써 요한
계시록에 드러난 짐승과 다니엘에서의 짐승을 비교해 보았으며, 적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조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두 가지 묘사는 “짐승”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
13:1)은 로마 제국의 재건을 의미하며,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오는 존재는 적그리스도입니다(계 11:7, 17:8). 이것은 요한의 시대에
있던 로마 제국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로마 제국은 “전에는 있었고”, “지금은 없는” 제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의
때에 로마 제국이 최고 전성기의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때는 “구렁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 간” 어떤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짐승의 몸과 머리들과 뿔들은 다른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표범의 몸, 곰의 다리, 사자의 입으로 된 짐승의 몸은 재건된
로마 제국이 세 가지 국가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즉, 다니엘의 세 짐승들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바빌론이 사자의 특성을
지녔으며(교회사에서는 영국), 곰은 메데와 페르시아 제국(교회사에서는 러시아), 표범은 그리스 제국(교회사에서는 미국)을 상징합니다. 짐승에게서
가장 많은 부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몸통입니다. 표범에 의해 나타내지는 몸통은 재건된 로마제국의 가장 큰 특징이 그리스의 영향과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낼 것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 13)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으며, 뿔들은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제국이 열 개의 국가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왕국마다 권세를 지닌 왕이 존재함을 말해줍니다.
‘구렁’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은 머리에 왕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왕국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계 17:12). 이 사실을 통해 계시록 17장의 짐승은 “한 주”가 시작될 때의 처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여인은 짐승을 타고 있습니다. 계시록 17장에 와서야 ‘주홍색 옷을 입은 여자’가 처음 등장합니다. 이 여자는 한 주가 시작된 때부터 짐승을
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로마 교회‘를 상징하며, 교회가 휴거된 후 곧바로 모든 권력을 잡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전쟁을 하기 전에 옛 로마 제국의 영토 내에 있던 나라들은 상호 불가침조약을 통해 협력할 것입니다. 그 나라들의 수가 짐승의
뿔에 의해 상징되는 10개입니다. 마지막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 국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당사자가 바로 로마 교황청입니다. 열
국가들은 결국 로마 교회에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까지 내어 줄 것이며, 이로써 다시 “정교일치”의 연합국가가 형성됩니다. 이것이 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위에 앉아 있는 여자”인 것입니다. “주(week)의 중간쯤” 열 국가들은
스스로 정치적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그들은 이 여자를 증오하고, 패망시키며 벌거벗기며, 그녀의 살을 먹고 불태울 것입니다(계
17:16). 교회들과 추기경들, 사제들이 부서지고 죽을 것입니다.
계시록 17:9에서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일곱 산은 로마 제국을 문자적으로 설명해 주는 말씀이다). 계시록 17:10에는 일곱 중에 다섯은 패망하고 하나는 남아있고, 또
하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그가 오면 잠시 머물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요한의 시대에 이 다섯은 이미 멸망했습니다. 하나는 다스리는
황제를 말하며, 아직 하나(일곱 번째)는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다섯 왕은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네로와 같이 포악한 다섯
왕들을 말하거나 역사상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왕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요한 시대에 왕좌에 앉아있는 황제는 “도미티안(Domitian)"이었으며,
그는 요한을 밧모 섬에 유배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황제 즉 일곱 번째 황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가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계시록 13:3에서 “그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서 죽게 된 것 같은 기사가 나옵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기술되어 있지만
문맥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짐승”은 그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기 전에 모든 머리들(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7:11을 보십시오.
“전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이
여덟 번째지만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일곱 번째 머리가 적그리스도라는 더 분명한 사실은 일곱 번 째였다가
죽음의 상처를 입고 다시 살아나서 여덟 번째가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에서부터 이렇게 분명하게 다시 살아나는 까닭은 적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를 추종하게 됩니다(계 13:3).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며, 일할 권세를
얻습니다. 한 주의 중간에 용은 하늘에서 쫓겨나 자신을 적그리스도 안에 육화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유대인과 맺은 한 주간의 언약을 깨뜨리고(단
9:27) 재건된 예루살렘의 성전위에 멸망의 가증한 것(우상)을 세우고(마 24:15) 스스로를 높여 경배 받으려 할
것입니다(계13:13-15). 다니엘서에 나오는 네 번째 짐승은 열 왕 중에 세 왕들을 복종시키고, 자신이 확고한 권세를 잡을 것이지만, 작은
뿔로서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열 왕의 연합국가가 형성된 때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열 왕국의 연합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니엘서와 계시록을 비교하며 "작은 뿔"과 "짐승" 그리고 바울 서신에 나오는 "죄의 사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이 모두 똑같은 예언이며 마흔 두 달이란 똑같은 시간적 길이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모두 적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해
놓았으며, “작은 뿔”이 바로 “죄의 사람”이며, 요한계시록의 짐승이란 사실과 그의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 멸망당할 것이라는 동일한
예언의 반복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언을 연구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바로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행동”을 하며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종말을 고하며 이는 반드시 동일 인물에 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 “이방 왕”(Gentile Ruler)이 될 적그리스도는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지닌 표범처럼 “혼혈 인종”일 것입니다(계13:2). 그는 용이 자신에게 준 능력과 자리와 권세를 지닐 것입니다(계
13:2). 그는 느부갓넷살, 쎄르쎅스, 알렉산더, 카이사 아우구스투스의 지위와 능력을 모두 합쳐놓은 것과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을 끄는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초자연적인 지혜와 이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기만하는데 능하며, 현란한 외교가인 동시에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서의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사탄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이 모든 은사는 그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임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그는 강력한 미혹의 역사와 결코 변하지 않는 결과로 사람들을
취하게 할 것입니다. 그가 살해당한 후 다시 부활할 때에도 그는 전혀 능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받은 모든 능력에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과 사악한 활동을 할 권세를 갖춥니다. 아직까지 이 지구상에는 “작은 뿔”에 대한 묘사와 꼭 일치하는 인간은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상 그런 인물에 대한 기록도 전무합니다. 어떤 작가도 이런 중류의 인물을 쓰거나 상상해 내지 못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이 인물에 대해
정확히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해 놓으신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대한 진리마저도 거부하는 이 세상이 적그리스도가 준비해 놓은
“영원한 저주”에는 적극 동참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어린 양”을 거부한 이 세대는 “짐승”을 자신들의 왕으로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용을 경배합니다.
다니엘은 “작은 뿔”의 동류인 “거짓 대언자”를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요한 사도에게 보인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에는 “거짓 대언자”(False prophet)에
대한 기사가 전혀 없습니다. 아직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에 대해 혼돈이 많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은
정치적으로 재건되는 로마제국과 그의 머리인 적그리스도를 말하며, 땅에서 올라오는 둘째 짐승은 "거짓 대언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요한은 이제 두 번째 짐승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그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첫째 짐승 앞에서 첫째 짐승의 모든 권능을 행사하고 또 땅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로
하여금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자라. 그가 큰 이적들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의 눈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오게 하고 또 그 짐승의 눈앞에서 기적들을 행할 권능이 있어 이 기적들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속이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라 하더라. 또 그가 그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줄 권능이 있어 그 짐승의 형상으로 하여금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고자 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 죽이게도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매인 자에게 그 오른손 안에나 이마 안에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지각(知覺)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 까닭은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이기 때문이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1-18).
요한이 어린 양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린 양처럼”이라고 말한
것은 두 뿔은 양과 같았으나 양이 아닌 용과 같이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짐승은 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세 번씩이나
“거짓 대언자”(계16:13, 19:20, 20:10)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두 번은 “첫 번째 짐승(적그리스도)”과 관련되어 쓰였고 한번은
“용(사탄)”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두 번째 짐승이 거짓 대언자라고 불리는 분명한 이유는 그가
적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4:24에서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을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거짓 대언자와 동일 인물일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짐승”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그가 부활한 인물일
것이라는 암시를 줍니다. 앞에서 이미 약간 언급했듯이 만약 적그리스도가 부활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면 “거짓 대언자” 역시 부활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늘에서 두 명의 증인(모세와 엘리야)이 내려 올 것입니다(계11:3-7). 두 명의 증인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아래에서도
두 명의 사람이 사탄에 의해 올려 보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영원한 불 못”에 산채로 던져지는 두 짐승을 볼 때(계19:20)
그들은 정상의 사람이 아닌 그 이상의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이 입증됩니다. 게다가 첫 번째 짐승은 “재건된 로마 제국의 황제”의 지위에 오를
적그리스도 자신인 것입니다. 그는 한때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면서 이 세상 왕국을 주겠다고 말한 그 왕국(눅4:5-8)을 받아서 다스리게
됩니다. 그는 자신을 높여서 하나님이라고 자처할 것입니다(살후2:4). 그러나 거짓 대언자는 왕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높이지도 않습니다.
그는 첫 번째 짐승(적그리스도)을 높입니다. 그와 적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똑같습니다. 성령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다(요16:13-15). 그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미혹해서 첫 번째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합니다(계13:12).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구속의 날”까지 성령의 인침을 받듯이(엡4:30) 첫 번째 짐승을 따르는 자들도 거짓 대언자에
의해 “멸망의 날”까지 인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계13:16-17, 벧후 3:7).
거짓 대언자는 “이적을 행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행10:38). 거짓 대언자가 행하는 이적 중의 하나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입니다(계13:13).
그때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이 땅에 내려와 있을 때입니다(계11:3-12). 갈멜산에서 누가 참 하나님인지에 대해서 “불 시험”을 했듯이 다시
한번 그런 일이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시험을 한다 해도 예전처럼 엘리야의 승리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거짓 대언자도 하늘에서부터 불을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 대언자는 사탄으로부터 능력을 부여받기 때문에 이런 기적을 충분히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능력이 있음은 욥기1:16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첫 번째 짐승이 적그리스도라는 더욱 분명한 증거는 “거짓 대언자”인 두 번째 짐승이 “첫 번째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고, 그를 위해 경배하게 하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짐승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짓 대언자는 “짐승의 표”를 받는 자들에게만 사고 팔 권리를 줄 것입니다. 오른쪽 손이나 이마에 받게 될 이 표는 666이라고
불리는 짐승의 이름이거나 한 사람의 수, 즉 그 이름의 수일 것입니다(계13:18). 이들은 둘 다 지하 세계에서부터 올라왔으며 둘 다 정상적인
죽음이 아닌
“산 채로 불 못에 던져질 것”(계19:20)이지만 적그리스도가
거짓 대언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둘째 짐승은 설명 없이 바로 등장하여 첫째 짐승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세를 행사하였으며, 사람들로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하고, 거짓을 믿게 하기 위해 “거짓 이적”과 능력을 강조할 것입니다(살후 2:8-12).
사탄은 하나님을 흉내 내기 위해 용, 짐승, 거짓 대언자의
삼위일체를 드러냅니다. 사탄은 성부 하나님처럼 보이지 않고 직접 나타나지 않습니다(하나님과 상대적). 짐승은 명망의 아들, 적그리스도에서
살펴보았듯이 “사탄의 독생자”로써 이 땅에 나타나서 죽고, 부활할 것이며, 자기 아버지, 용으로부터 “보좌”를 받을 것입니다(계13:2). 거짓
대언자는 “성령의 상대자”로써 용으로부터 나와서 적그리스도의 일을 돕고, 용의 말을 할 것입니다. 이 셋 모두 “불 못”에 산채로 던져져
그곳에서 진정한 “사탄의 삼위일체” 모습을 보여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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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진 것과
동일한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실제 아버지가 하나님인 것을 몰랐던 것과 같다.-역주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