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출애굽기 25:1-9
요절: 출애굽기 25:8,9
오늘부터 성막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 것을
명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현재 광야를 이동하는 중에
있으므로 언제나 이동할 수 있는 고정식 성전이 아니라
이동식 성막을 제작하게 하셨는데 성막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을 예표하는 동시에 하늘의 모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건축 양식을 연구하면 그 시대의 문화,
철학, 과학 수준, 삶의 방식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집트의 대 피라밋이나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태양 신전, 청나라의 자금성 등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교회 건물만 해도 성 베드로 성전이나 성
바오로 성전 등은 끊임없이 관광객들이 붐빕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위대한 건축 설계사와 건축 재료들을 활용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할 수 있는 건물의 건축을 명하신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장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장막, 성막이라고 하는 건물은 말이 건물이지
이동식 천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성막은 규모나
예술성,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친히 모양을 보여 주시고, 재료와 규격 등을 말씀해
주셨다는 점에서 지상의 어떤 건물과도 구별되는 독특한
집입니다. 용도 면에서도 이 건물은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점에서 이 세상 모든 건축물과는 확연히 구별됩니다.
성막은 예표적으로 너무나
풍부한 교훈과 진리들을 담고 있으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한번은 성막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가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시고,
제작하도록 명하신 지상의 구조물 중 첫째가 노아의
방주였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규격,
제작 방법, 재료 등을 말씀해 주셨고, 노아는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는 비를 통한 세상의 심판
와중에 노아의 가족은 물론이고 그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생물들을 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작하도록 명하신
두 번째 구조물이 본문에 나오는 성막입니다. 성막은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만든 바벨탑과는
달리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지상에서 건축된 구조물
가운데 처음부터 가장 완벽하게 지어졌으며, 유지 보수
공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설계 변경이나 사람들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유일한 집이 바로 광야의 성막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산으로 부르셔서 모든 모양을 보여 주셨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막의 재료나 구조는 모두 하늘의
예표였으며, 구속의 예표였습니다.
성막의
의의는
첫째, 이곳이 주님이
거하시는 곳이란 점입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지만 이제 주님은 사람들 한 가운데
자신의 처소를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선언하신
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또한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되](출25:8).
주님은 친히 광야의 백성들과 거하시기 위해 성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성소는 장식용이 아닙니다. 성소는
종교 의식을 치르는 단순한 집회 장소가 아닙니다. 성소는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만든 주님의
집입니다. 금, 은으로 도배된 집이 아니라 천막으로 지어진
집입니다. 이는 주님의 초림의 모습을 예표합니다. 육신을
입으시고, 종의 형체로, 죄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것이 바로 광야의 성막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살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들과 함께 거하기 위해 광야의 백성들이 거하던 장막과
같은 그런 장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조금만 돈 있는 사람도
호텔에서 자려고 합니다. 사람들 사이가 아니라 따로 한적한
곳에 고급 맨션이나 별장을 지어 놓고 거기에 머물려고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캠핑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이곳에
거하기 위해 오셨지만 고급 호텔을 짓게 하신 것이 아니라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둘째, 성막은 모형입니다.
성막은 한시적인 것이었으며, 실체가 아닌 모형입니다. [이
성막은 현재 곧 이때까지의 모형이라. 그 안에서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어도 그런 것들이 양심에 관한 한 섬기는 자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나니 이 성막은 단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에 속한 규례들로만 유지되어
개혁(改革)의 때까지 그들에게 부과된 것이라.](히9:9-10).
모형은 실체가 나타나면 그 가치는 사라집니다. 성막과
성전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손으로 만든 거룩한 처소들
곧 참된 것의 모형들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눈앞에 나타나시기 때문이라.](히9:24). 성막은 참된
것들의 모형이었는데 이는 주님이 들어가신 하늘의
모형이란 말씀입니다. 모형은 실체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며,
실체를 기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누구나 성막을 볼 때
성막의 실체에 들어가고자 하는 소망이 생기며,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셋째, 성막은 우주의
모습이며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막의 구조는 우주의 구조와
인간의 구조와 같습니다. 성막은 뜰, 성소, 지성소로
나누어졌는데, 이는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의
모습과 같습니다. 인간은 영, 혼, 육으로 되어 있는데 뜰은
육, 성소는 혼, 지성소는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막이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성령님께서 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은
첫째 성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드러나지 아니하였다 하는 것이라.](히9:8). 하나님이
거하시는 셋째 하늘을 상징하는 지성소는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예수의
피가 없이는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히10:19).
오직 예수의 피만이 우리를 하늘의 하나님께로 갈 수 있게
해 줍니다.
넷째, 주님은 완전한
성막이십니다. 광야의 성막이 손으로 만든 성막이라면
주님은 완전한 성막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여기서 “거하신다”는 말이
바로 tabernacle(성막을 치다. 장막을 치다)란 단어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이 바로 성전이란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거늘 네가 그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그분께서는 /성/전인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2:19-21). 주님은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완전한 성막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완전한 성막을 통하여 /오셔서/](히9:11).
다섯째, 하늘에 성막이
있습니다. 모세가 본 성막의 실체는 이것이었습니다. 이
성막은 사람이 친 것이 아닙니다. [성소와 참 성막을
섬기시는 이시니 이 성막은 {주}께서 치신 것이요, 사람이 친
것이 아니니라.](히8:2). 광야에 친 성막은 참 성막의
모형이었습니다. [그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있는 증거 성막의 /성/전이 열리며](계15:5),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聖幕)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계21:3).
주님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성막을 세우셨지만 백성들이 범죄하면
성막을 떠나십니다. [실로의 성막 곧 친히 사람들 가운데
두신 장막을 떠나시고](시78:60). 주님께서 백성들 사이에
거하시던 성막을 떠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의 포로가
되고, 치욕을 당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땅에 성막을
세워두고도 산당들을 지어 섬기고, 주님을 떠났습니다. 이
때 주님은 성막을 떠나셨습니다.
다음은 성막의 여러
이름들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 성막(聖幕)(Tabernacle,
미쉬칸, 스케네, σκηυη´ 처소, 거하는 곳) : 성막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어진 이동식
구조물로서 광야 시대에 하나님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 중에 거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Tabernacle는 이동식 성전인 장막에 대한
명칭인데, 히브리어로는 ‘오헬’로써 간편한 주거로 종종
씌어지는 말을 뜻했습니다. [오-헬]은 [천막]을 뜻하는
말로서, 족장시대의 천막(장막, 창 9:21 기타) 같이 보통
생활에 씌어진 것이었습니다. 성막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말은 미쉬-칸(거하고 있다)입니다. [미쉬칸]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말인 [셰키나](하나님의 임재)라는
유대교적 용어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보통 주거용
천막에는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 장막(帳幕) : 성막의 또
다른 말로 장막이란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유목민, 목자,
병사들이 쓴 이동식 주거(창 4:20, 25:27, 삿 8:11), 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여 만들게 하신 텐트형의
이동할 수 있는 성소(출 25장)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장막은
신약에서는 육신의 몸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사용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고후 5:1-2). 장막의 특징이 이동성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곧 저 하늘로 옮겨갈 사람들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장막은 영원히 거하는 집이 아니라
일시적인 집이듯이 우리의 육신은 영원히 살 집이 아니라
잠시 동안 영혼을 담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참으로 내가 이 장막(帳幕)에 있는 동안에
너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여 일깨우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하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보여
주신 바와 같이 내가 머지 않아 반드시 이 장막(帳幕)을
벗어야 할 줄을 알기 때문이라.](벧후1:13-14).
● 회중의 성막- 회막(the
tent of Meeting) : 성소에 대한 또 다른 말은 회막입니다.
회막이란 회중의 성막이란 뜻입니다. 이 곳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만나시며 그들과 사귐을 가지셨습니다. 회중의
성막의 범위는 번제단과 물두멍과 그 안에서 인하는
제사장들을 포함한 바깥뜰입니다. [이것은 너희 대대로 [주]
앞에서 회중의 성막 문에서 항상 드릴 번제 헌물이니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인하여 회중의 성막이
거룩히 구별되리라. 내가 회중의 성막과 제단을 거룩히
구별하며 또 아론과 그의 아들들도 다 거룩히 구별하여
제사장 직분으로 나를 섬기게 하리라.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곧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나는 [주] 곧
그들의 하나님이니라.](출29:42-46). 이곳은 주님과 만남의
장소입니다. 주님은 거기서 만나서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회중의 성막은 만남의 장소입니다. 출애굽기
33:7-11을 보십시오. 모세는 많은 백성이 보도록 자기 장막을
성막과 진 사이에 치고 회중의 성막이라 불렀으며, 주님과
대하했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취하여 진영 밖에 쳐서
진영과 멀리 떨어지게 하고 회중의
성막이라 부르니 [주]를 찾는 자는 다 진영 밖에 있는 그
회중의 성막으로 나아갔으며 모세가 성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온 백성이 일어나 저마다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때까지 그를 바라보았더라. 모세가
성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와 성막 문에 서며 [주]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온 백성이 성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음을 보고 다 일어나 저마다 자기 장막 문에서 경배하더라.
[주]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씀하시니라. 모세는 다시 진영으로
돌아왔으나 그를 섬기는 자 곧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성막 밖으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33:7~11). 회중의
성막은 만남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곳에 나올 때는
거룩히 구별하게 하셨고, 물로 씻고, 피를 뿌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 증거의 성막(the Tabernacle
of the Testimony) : 성막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셨던
언약에 대해 계속 증거하시는 곳입니다. [오직 레위
사람들은 증거의 성막 주변에 돌아가며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레위
사람들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무를 맡을지니라,
하셨음이라.](민1:53). 성막의 존재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지키도록 요구하셨습니다. 증거의 언약, 증거
궤 등은 모두 증거의 성막 안에 있었습니다.
● 성소(聖所) : 성막의 또
다른 이름은 성소입니다. 거룩함(카도쉬)에서 나온 말로 “거룩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기에 임재해
계시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됩니다. 따라서
성소에서는 두려움을 가져야 하며 믿음과 순종을 통해
주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예배의 중심지였습니다. 해마다 세 번 성소로
올라와 예배를 드렸고, 이곳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님 역시 성소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하셨습니다.
◈ 백성들은 성소에 와서
도움을 얻었습니다. [성소로부터 네게 도움을 보내시고
시온으로부터 너를 강하게 하시며](시20:2).
◈ 백성들은 성소에서
주를 뵈었고, 권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성소에서 주를 뵈온 것같이 주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보고자
함이니이다.](시63:2).
◈ 백성들은 성소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73:17).
그들은 주의 길이 성소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사오니 우리 하나님같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누구오니이까?](시77:13). 성소에는
주님의 존귀와 위엄, 능력과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분의 성소에
있도다.](시96:6).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높은 성소의
모형인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소를 통해 찬양을
드리고, 경배하며,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행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아무데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왜 꼭 교회에 가야 하느냐? 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결코 왜 학교에 가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습니다. 그들은 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불만인 사람이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주님은
성소에만 계신 분이 아니심에도 성소에 모이게 하셨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로 모이게 하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성소에서 너희 손을 들고 [주]를
찬송하라.](시134:2).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그분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분을 찬양할지어다.](시150:1). 성소를 무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 버렸고, 그들의 성소는
불타 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를 무시하는
성도들은 결코 주님과의 바른 영적 교제를 유지할 수 없으며,
바르게 주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 성소는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삿18:31) 또 주의 집이었습니다(삼상1:7). 성전은
내 아버지의 기도하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3:15).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3:15).
이번에는 성경에 나오는
성전의 순서를 살펴 보겠습니다. 성막(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주신 선물입니다. 죄와 허물로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급선무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버린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만나주셔야 그 만남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막(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에덴의 동산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바로 교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후 아벨은 단을 쌓았습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히9:22). 아벨은 제단 위에 어린
양의 피를 흘렸습니다. 주님은 아벨과 예물을 받아 주셨는데
이 때부터 ① 돌단(출 20:25) ② 토단(출 20:24) ③ 금단(대하
4:19) ④ 놋 단(왕상 8:64) ⑤ 백향목 단(왕상 6:20)과 같은
다양한 단 제사가 열렸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은 모두 단을 쌓았던 인물들입니다. 성막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들은 단을 쌓아 주님께 경배했습니다.
이제 주님은 성막 시대를
여셨습니다. 모세에게 이동식 성막을 만들게 하셨고, 성막은
이스라엘 회중의 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광야 생활을 마친
후에 광야를 지나 온 성막은 처음에 실로에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때 법궤(언약궤)를 빼앗겨(렘 7:1-15, 삼상
2장-7장) 블레셋에 있었다가 기럇여아림으로 보내져서 20년간
머물러 있었습니다(삼상 7:2).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약궤에
그다지 관심이 높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을 세우는 일에
집중했고,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을 뿐 성막
재건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민선 왕으로
선출된 사울은 왕이 되었지만 언약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이 즉위하고 40년이 흘러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그의 관심은 성막, 성전 건축에 집중되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인본주의 신앙과 신본주의 신앙의 차이입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옮기는 일과 기브온으로 성막을 옮기는 일을
착수했습니다.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 제사장들을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주]의 성막 앞에 서게 하여 항상
아침저녁으로 번제 헌물 제단 위에 [주]께 번제 헌물을
드리되 [주]의 율법에 기록하여 그분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게 하였고 또 [주]의 긍휼이
영원하므로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과 및 택함을 받아
지명을 받은 자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세워 감사를 드리게
하였고 또 그들과 함께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심벌즈와 하나님의 악기로 소리를 내게 하였고 또 여두둔의
아들들을 문지기로 삼았더라.](대상16:39-42). 다윗의 제일
관심사는 바른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는 국정 제일
과제로 바른 예배의 회복을 채택했습니다. 저는 오늘날
성도들이 주님께 많은 것을 구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인
“예배를 제대로 드리는 삶”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을 자주
봅니다. 이는 사울의 신앙입니다. 공부도 해야 되고, 돈도
벌어야 되고, 일도 해야 되지만 정말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바른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다윗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가 먼저 삶의 최우선 순위, 중심에 주님께 바른 경배를
드리고자 결심하고 실행한다면 많은 영적인 복을 누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는
물론이고 각 가정, 성도들은 예배의 회복, 예배 우선 순위의
삶에 집중할 때 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가? 늘 결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주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고, 그 일에 집중한다면
별로 집중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들에 빼앗기는 모든 시간과
열정, 소모적인 낭비를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와서 장막 안에 두었지만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하고, 다만 건축에 필요한 모든 준비만을 했습니다.
주님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는데 솔로몬 재위 4년
때에 착공 7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온 회중이(왕상 8:13,14)
참여한 솔로몬의 성전 봉헌 의식은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모든 국면을 통합하는데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성전 중심 신앙은 날이 갈수록 소멸되었고 성전은 단지
건축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들에게
성전을 빼앗아 버렸는데,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성전이 불타 없어짐으로써 그들은 성전만 잃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토와 재산과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70년의 포로 생활이 끝나 본토로 돌아오자
그들은 다시 한번 성전 재건을 위해 온 힘을 다 모으게
됩니다. 이 성전을 스룹바벨의 성전(뒤에 헤롯에 의해
재건됨)이라고 합니다.[요한복음 2장(주전 516-주후 70년)].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성전의 역사였습니다. 학개와
스가랴에 의해 재건이 시작 되었는데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서 휠씬 못 하였습니다(학 2:3). 스룹바벨의 성전은 후에
헤롯 왕이 민심을 얻고자 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재건축을
결정함으로써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헤롯은 주전 20-19년
헬레니즘 양식으로 성전을 세우기 위해 성전을 분해했고, 10년에
걸쳐 기초 골격을 완성했지만 공사 기간은 무려 46년이나
걸렸습니다(요2:20). 주님이 오셨을 때 이 성전은 완전히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마21:13,막11:17,눅19:47). 결국 이
성전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단지 성전의 파괴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전 역사에서 보았듯이 온 민족이 모두 영토를
잃고 온 세상으로 흩어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이들이 다시 성전을 가질
때 까지 이스라엘은 어떤 힘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새롭게 성전을 주실 것입니다. 이
성전이 바로 에스겔의 성전입니다. 천년 왕국 때 세워질
성전이며, 이전 성전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이상 성전의
역사와 민족의 역사와 일맥상통함을 보았습니다. 현재
우리는 건축물로서의 성전이 아닌 성령의 전인 성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몸이 바로 성전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고전3:16-17).
우리는 몸된 성전을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살 곳을
잃어 버렸듯이 우리 역시 우리의 몸된 성전이 사라지면 그
즉시 죽습니다. 성전은 삶,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이 거하시는 곳
그곳이 가장 거룩한 곳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되”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의 존재 목적이 주님을
위해서이듯이,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는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음이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이제 우리가 성막의
공부를 통해 성경의 풍성한 진리들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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