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25:1-9

요절: 출애굽기 25:8,9


광야의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거하시기 위한 구조물입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또한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되
](8)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서 성소를 하나
제작해서 주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자신이 거할
성막 제작을 위해 성막의 설계도를 보여 주셨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재료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규격은
얼마만 해야 하는지 등 세세한 내용들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막은 예언적 진리와 구속사적 진리 등이 모두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신 건축가요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창조주란 점에서 주님의 설계는
완벽하며, 의미가 없는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밖에서 보면 성막은 별로
보잘 것이 없는 평범한 텐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이 전혀 없습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과 동일한 육체, 동일한
성정을 지닌 종의 형상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성막
제작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백성들의 헌물로 받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내게 헌물을 가져오게
하고 마음에서 즐거이 내는 모든 자들로부터 나의 헌물을
취할지니라.
](1-2).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칙 가운데 하나는
자기 백성들의 헌신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완제품을 만들어서 땅에 세우실 수도 있으시고, 부품을 다
만들어 주신 다음 조립만 하게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가 가진 것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천명을 먹이시기 위해서
오병이어를 사용하셨듯이 우리의 작은 것들을 받으셔서
주님의 영광스런 일을 이루십니다. “마음에 즐거이 내는
모든 자들”이란 자원 헌물을 말합니다. 억지로나 강제
조항이 아니라 마음에 원하는 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성막은 만들어집니다.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주]께 드릴
헌물을 취하되 마음에서 자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주]의
헌물을 가져올지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출35:5). 백성들은
마음의 감동을 받아 자발적으로 성막 제작에 필요한 금, 은,
놋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습니다. [자기
마음에서 감동하게 된 모든 자와 자기 영에서 자원하게 된
모든 자가 와서 회중의 성막 공사와 그 섬기는 모든 것과
거룩한 의복에 쓰도록 [주]의 헌물을 가져왔으니 곧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남녀가 다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반지와 납작한 보석과 온갖 금보석을 가져왔더라. 헌물을
드린 모든 사람이 [주]께 금으로 /헌물을/ 드렸으며
](출35:21-22).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성막 제작에 자원 헌물을 드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께 자원 헌물을 가져왔고, 이런 헌물로 성막 건축에
필요한 재정이 마련되었습니다. [마음에서 자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남녀가 [주]께서 모세의 손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신 온갖 것을 만들기 위하여 [주]께
자원하는 헌물을 가져왔더라.
](출35:29).


성막 건축에 맨 먼저
필요한 것은 백성들의 자원 하는 마음이요, 다음이 그
마음에 따라 드려지는 자원하는 헌물입니다. 이는 주님의
사역에서 늘 그러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과 함께 한 일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기 때문이라.
](고전3:9), [우리가
그분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너희에게도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


후에 솔로몬의 성전 건축
때에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5금은
금으로 된 것들을 /만들/며 은은 은으로 된 것들을 /만들며/
또 기술자의 손으로 만드는 온갖 일에 쓰게 하였나니 이 날
누가 자원하여 자기의 섬길 것을 [주]께 거룩히 구분하여 /드리겠느냐/?
하니라. 6이에 우두머리 원로들과 이스라엘
지파들의 통치자들과 천인대장들과 백인대장들과 왕의 일을
관리하는 자들이 자원하여 드리되 9이때에 백성이
자원하여 드리되 완전한 마음으로 [주]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스스로 기뻐하였으며 다윗 왕도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니라. 14나는 누구며 내 백성은 무엇이기에
우리가 이런 식으로 자원하여 드릴 힘이 있겠나이까? 이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이오니 우리가 주의 것에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29:5-6,9,14). 성막이든 성전
건축이든 핵심은 백성들의 자원하는 마음과 그에 따라
자원하여 드리는 헌물입니다.


주님의 요구와 명령에
자발적으로 응답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주의 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일하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우리의 자원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그 일에 복을
주시고, 성취하시며 우리에게는 기쁨을 주시고,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재산이 없다거나 적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말합니다.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대로 /주께서/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2).


핵심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완전한
마음과 자원하는 생각으로 그분을 섬길지어다. 이는 [주]께서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으로 상상하는 바를 다 아시기
때문이니 네가 만일 그분을 찾으면 만날 것이로되 네가 만일
그분을 버리면 그분께서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28:9).


3-7절은 백성들이 낼
헌물의 목록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헌물은
이러하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고운 아마와 염소 털과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오소리
가죽과 시팀 나무와 등잔 기름과 기름부음에 쓸 기름에 넣는
향료와 향기로운 향에 쓸 향료와 줄마노며 에봇과 흉패(胸牌)에
물릴 보석이니라
.](3-7). 여기에 언급된 것들은 모두
값나는 보석들에다가 옷감, 실, 가죽, 향료 등
귀중품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빌린 것들입니다.


금은 하나님의 신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상징하는 보석입니다. 은은 구속의
몸값을 상징하는 예물입니다. 요셉이 은 20개에 팔렸듯이
주님은 은 30개에 팔리셨습니다. 놋은 희생물을 얹어서 잡는
제단의 재료로 쓰였는데 크기가 5큐빗 X 5큐빗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짐승들이 피를 흘렸고, 태워졌습니다. 놋은
하나님의 진노를 쏟아 붓는 심판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없으면 아무도 주님의 진노의 불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청색은 하늘을 상징합니다.
자주색은 지상에서의 왕권을 드러내는 옷입니다. 왕들의
옷이 주로 자주색이었는데 이는 고귀함을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자주색 옷과
아마포 옷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군사들은 자주색 긴 옷을 입혔습니다(요19:2,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땅의 음녀는 자주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계17:4,18:12,16). 이는 자주색이 천상이 아닌 지상의
고귀함을 가장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이란 땅의
이름인 "land of purple"입니다. 후에 페니키아라고
불렸는데 이 역시 헬라어로 "land of purple"이란
뜻입니다.


주홍색은 주님의 피를
드러냅니다. 산파들은 아이를 받을 때 주홍색 실로 손을
매었습니다(창38:20,30). 성막의 앙장에는 청색, 자주색,
주홍색 실로 그룹들을 수놓았습니다. 휘장 역시 청색,
자주색, 주홍색 실로 만들어졌습니다. 문의 현수막도
그러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예복이나 성소에서 입는 의복
역시 이 세 가지 색으로 만들었습니다. 주홍색 실은 옷감을
짜는데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집을 정결하게 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49그는 그 집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주홍색 /실/과 우슬초를
취하고 51 백향목과 우슬초와 주홍색 /실/과 살아
있는 새를 가져다가 죽인 새의 피와 흐르는 물에 그것들을
담가 그 집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52그는 새의 피와
흐르는 물과 살아 있는 새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주홍색 /실/로
그 집을 정결하게 하되
](레14:49-52). 기생 라합은 주홍 색을
매달아 집안이 건짐을 받았습니다(수2:18). 주홍색은 구속을
드러내는 예는 허다합니다. [이는 모세가 율법에 따라 온
백성에게 모든 훈계를 말한 뒤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물과
주홍색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리며
](히9:19).


고운 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를 나타냅니다.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를 상징합니다. 아마포 옷은 주님이 요셉의
무덤에 장사 지낸바 되실 때 입었던 수의이며, 저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입는 옷이기도 합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분을 따르더라
](계19:14).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또 그녀에게
깨끗하고 희고 고운 아마포 /옷/을 차려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는 이 고운 아마포가 성도들의 의(義)이기
때문이라, 하더니
](계19:8).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아마포 옷을 입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들의 옷이 바로 아마포 옷입니다.


염소 털은 속죄를
상징합니다. 자범죄에 대한 헌물은 숫염소 새끼를
드렸습니다. [자기가 범한 죄를 알게 되거든 그는 흠 없는
숫염소 새끼를 헌물로 가져다가 그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주] 앞에서 사람들이 번제 헌물을 잡는 곳에서 그것을
잡을지니 이것은 죄 헌물이니라.
](레4:23-24). 백성들의 죄
헌물 가운데 속죄 염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머리에 안수하여 염소에게 전가한 다음 광야로 내
보내었는데,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 그 두 마리 염소를 취하여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둘지니라. 또 아론은 두 마리 염소를 두고 제비를
뽑되 한 제비는 [주]를 위하여 다른 제비는 속죄 염소를
위하여 할 것이며 아론은 [주]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가져다가 죄 헌물로 드리려니와 제비뽑아 속죄 염소가 된
염소는 산 채로 [주]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기
위하여 그것을 속죄 염소로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16:7-10).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숫양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 헌물로 드리는 때에 이삭 대신 주님이
수풀에 걸려 있게 하신 것입니다(창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이에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
.](창22:13).
숫양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을 나타냅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 그 표준이 되는 제물이
바로 숫양입니다. 숫양이 어떻게 드려졌는가? 를 보십시오. [
너는 숫양 한 마리를 취하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 것이며 너는 그 숫양을 죽이고 그
피를 취하여 제단 위에 돌아가며 뿌리고 그 숫양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그 내장과 다리는 씻어서 조각 낸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그 숫양의 전부를 제단 위에서
태울지니라. 이것은 [주]께 드리는 번제 헌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니 곧 불로 예비하여 [주]께 드리는 헌물이니라
.](출29:15-18).
숫양은 남김없이 드려졌습니다. 모두 태워졌습니다. 이는
전적인 헌신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오소리 가죽은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가죽은 일반적으로 덮개나 보호용으로 만들어집니다.
오늘날 가죽은 씨트, 옷, 신발, 벨트, 가방 등 활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데 오소리 가죽은 매우 질긴 편에
속해서 신발로 만들어 신기도 했습니다(겔16:10). 오소리
가죽은 주로 성막의 기구들을 덮는 덮개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를 오소리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막대기 위에 두고 또 금으로 된 제단 위에 청색
보자기를 펴고 그것을 오소리 가죽 덮개로 덮고 그 /운반/
막대들을 끼우고 또 그들이 성소에서 섬기는 데 쓰는 기구
곧 섬기는 기구를 다 취하여 청색 보자기에 싸서 오소리
가죽 덮개로 덮고 막대기 위에 둘지니라.
](민4:10-12).


시팀 나무는 부패하지
않는 주님의 인성을 드러냅니다. 시팀 나무는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 알려진 나무인데, 시나이 반도에서
유일하게 목재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였습니다. 견고하고
쉽게 썩지 않아, 성막의 목조 부분에 사용되었습니다. 궤를
만들 때도 시팀 나무로 만들었고(출25:10), 언약궤를 운반할
막대 역시 시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출25:13). 상을 만들 때(출25:23),
성막의 널빤지들, 기둥들, 향을 태울 제단(출30:1) 등도 싯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강하고 견고한 시팀 나무는 다용도
목재였는데,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나무입니다.


등잔 기름은 주님의
신성한 지혜를 나타냅니다. 기름은 일반적으로 성령을
나타내는데, 우리 주님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성소에서 순수한 등잔 기름으로
계속해서 등잔이 타게 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의
지혜는 하늘로부터 온 순수한 지혜이며, 세상 통치자나
철학자들의 지혜가 아닙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를 그대로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올리브를 찧어 만든 순수한 등잔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이로써 계속해서 등잔들이 타게 할 것이며
](레24:2).


향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향기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날로 썩어가는지라 향수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엡5:2).
향료는 연료용 기름에 넣는 향료와 순수한 방향제 두 가지가
있는데, 주님은 자신을 번제 헌물로 드리심으로써 이 두
가지 향료의 역할을 다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뿜는 향기입니다.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나 멸망하는 자들 중에서나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이기 때문이니
](고후2:15).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가? 첫째,
사랑 안에서 걸을 때 향기를 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향기로운 헌물과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5:2).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는 남 다른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적이고, 헌신적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믿음으로 행할
때 사람들은 그 향기를 맡게 됩니다. 둘째, 헌물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헌물을 보내었는데,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니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보낸
것을 받았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것은 달콤한 향기요,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요, 하나님을 심히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4:18).
구약 성경에서 향료의 주된 용도는 죽은 사람의 관에 넣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요셉은 자기 신하 의사들에게
향료를 넣게 했습니다. 향료를 몸에 넣는 일이 무려 40일이나
걸렸습니다. [자기의 신하 의사들에게 명령하여 자기
아버지의 몸에 향료를 넣게 하매 의사들이 이스라엘에게
향료를 넣으니라. 야곱을 위하여 사십 일을 채웠으니 이는
향료를 넣는 데 이 같은 날수가 걸리기 때문이더라. 이집트
사람들이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해 애곡하니라.
](창50:2-3).
요셉이 죽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의 몸에 향료를 넣었습니다(창50:26).
우리 주님의 무덤으로 향하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료를 가지고 갔습니다(막16:1). 향료는 사람이 살았을 때나
죽었을 때나 다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살아서 말씀과 능하신 행위로써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더 많은 향기를 발하셨습니다.


줄마노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을 상징합니다.
동양에서는 서명대신 도장을 주로 사용하는데, 줄마노는
도장용으로 사용되는 보석입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대리석에 이름을 새기듯이 이들은 줄마노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너는 줄마노 두 개를 취하여 그 위에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을 새기되
](출28:9). [그들이 또
줄마노들을 깎아 금 장식핀에 넣어 도장을 새긴 것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을 새기고
](출39:6).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직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10:20)하셨습니다. [또한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도 간절히 권하노니 복음 안에서 나와
함께 수고하고 또 클레멘트와 나의 다른 동료 일꾼들과 함께
수고한 저 여자들을 도우라. 그들의 이름이 생명 책에
있느니라.
](빌4:3).


에봇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대제장직을 예표합니다. 주님은 아론의
계열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열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십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예복을 말합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 아마 에봇을 입고 성전에서 주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이였을 때에 아마 에봇을
입고 [주] 앞에서 섬겼더라
.](삼상2:18). 다윗은 주의
언약궤가 왔을 때 에봇을 입고 춤을 췄습니다. [[주]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니 그때에 다윗이 아마
에봇을 입었더라.
](삼하6:14).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모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주님은 이들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통치자도 없고
희생물도 없고 형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거하다가
](호3:4)라고 하셨는데, 이는 제사장이 없는
시대를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성소를 건축하는데 백성들에게 자원 헌물을 취하라고
하셨는데, 이 헌물들은 모두 다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입니다.


8절입니다. [또한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로 하여금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되
](8).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거하시기 위해
성소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이들의 죄가 모두 해결되었음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할 수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흘린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고, 언약의 말씀을
받아 언약의 피를 뿌림으로 이들의 죄는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인치는 것이며,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회복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거하도록 성소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신다는 신정국가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왕궁이 지어지고, 그 안에
왕이 거합니다. 주님은 왕궁이나 왕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성소를 만들게 하심으로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그들을 인도하실 것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주] 곧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나는 [주]
곧 그들의 하나님이니라
.](출29:45-46).


하나님께서 성소를 만들게
하신 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거하심으로
장차 우리가 거하는 곳이 어디이며 어떠한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음이라.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丹粧)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聖幕)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계21:1-3).
주님께서 이 땅에 장막을 치신 것은 자기 백성들이 있는
그곳에 자신이 함께 계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들을
인도하며, 가르치시며, 필요를 공급하시겠다는 말씀에 대한
눈에 보이는 표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거할
성소를 백성들에게 만들게 하신 것은 주님의 뜻과 계획이
백성들의 자원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육신의 장막을 입고 오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은 마음으로 믿지
않고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자발적인
믿음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문을 두드리고
계시지만 열어 주지 않는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가서 거하실
수 없습니다(계3:20). 성막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일방적으로 만들어져서 이스라엘 한 가운데 거한 것이
아니듯이, 우리 구주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소는 대언자 모세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고, 성전은 왕인 솔로몬의 지휘 아래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초림은 대언자의 사역이 주가 되고, 재림은 왕으로서 오심을
예표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모든 것에 따라 성막의 양식과 그 안의 모든
기구의 양식대로 너희가 그것을 만들지니라.
](9). 주님은
모세에게 산에서 모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대로 성막을 웅장하고 예술적으로
만들었다고 훌륭한 성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주님은 그것을 무가치하게 여기시며, 전혀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땀과 피, 지혜와 힘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종교입니다. 종교
행위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창의성을 발휘해서 만들거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좋은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본 대로
만들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이가 정하여 주사
모세가 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행7:44).


가인과 아벨의 차이가
바로 이것입니다. 가인은 예배 방법을 자신이 정했습니다.
예배의 형식, 헌물의 종류를 자신이 임의로 정했습니다.
반면 아벨은 하나님이 정해준 방식을 따랐습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는 원칙에 따라 어린 양의 피를
흘렸지만 아벨은 피를 무시했습니다. 당연히 가인과 그의
헌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가인과 그의 헌물에는
관심을 갖지 아니하시므로 가인이 몹시 분하여 침통해하니
](창4:5).
주님은 결코 사람들의 영광을 받지 않으십니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아니하노라
.](요5:41). 누가
주님께 무엇을 드린다고 주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께 드릴 때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예배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가 반드시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
](요4:23-24).
이렇게 드리지 않는 예배는 모두 가인의 예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한 선한 마음,
순수한 의도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배의 핵심이 아닙니다. 이런 대표적인
예는 다윗과 웃사입니다. 다윗은 삼만 명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대규모
악단이 준비되고 군악대의 행진 마냥 앞, 뒤로 찬양단이
노래했습니다. 이 행렬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느 국빈의
방문행사보다 더 성대한 그러한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을 국가
규모의 성대한 행사로 치루는 일에 골몰했지만, 정작 중요한
레위 지파가 어깨에 메고 옮겨 옮겨야 한다는 기본적인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편리하게 수레에 싣고
말았습니다(삼하6:3).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진영이
앞으로 나아갈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를 덮는 것을 끝마치거든 고핫의 아들들이 와서
그것을 나를지니라. 그러나 그들이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죽을까 염려함이니라. 회중의
성막에 있는 이것들이 고핫의 아들들이 나를 짐이니라.
](민4:15).


말씀대로가 아닌 자신들이
생각한 좋은 방법, 편리한 방법대로 했을 때 문제는 계속
터졌습니다.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하나님의 궤를 흔들므로 웃사가 손을 내밀어 그 궤를
붙들었더니 [주]의 분노가 웃사를 향해 /불같이/ 타올라
하나님께서 그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를 거기서 치시니 그가
거기서 하나님의 궤 옆에서 죽으니라
.](삼하6:6-7). 웃사는
언약궤가 흔들리자 흔들림을 막으려고 급히 손을 내밀어
궤를 붙들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을
수도 있고, 선한 의도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웃사 역시 말씀대로가 아닌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축제 분위기였던 언약궤의
이동은 졸지에 초상집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크게 성대하게 행사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지만 정작
말씀대로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란 사실을 한
참 후에야 배웠습니다. [그때에 이르되, 레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주]께서
그들을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토록 그분을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대상15:2).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너희가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셨나니 이는
우리가 합당한 규례대로 그분께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올라가고자 하여 자기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모세가 [주]의 말씀에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사람들의 자손들이 /운반/ 막대들로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대상15:13-15). 주님은 다윗이 성경대로
했을 때 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입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사무엘 대신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할 일을 급한 마음에 왕이 대신 해 버린 것입니다.
사울은 말하기를 어쩔 수 없이 드렸다고 합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주]께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그런
까닭에 내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
하니
](삼상13:12). 전시 상황이요, 비상 사태인지라 이해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정과 환경이 주님의
말씀을 바꿀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될 수 없고, 주의 말씀을
탄력있게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대로, 법대로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사울은 언제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행동하는 진정한
자유주의, 인본주의 신학자였습니다. 사무엘과 다윗이
문자주의적 신본주의적 노선이었다면 사울은 영적, 비유적,
은유적, 알레고리적 해석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주]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나이다, 하니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들의
울음소리와 또 내게 들리는 소들의 울음소리는 무엇을
뜻하나이까?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람들이 그것들을 아말렉
족속에게서 끌어왔는데 이는 백성이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양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겼기
때문이오며 나머지는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매
](삼상15:13-15).
이는 주님의 말씀대로가 아닌 자신이 해석하고 이해한 대로
한 행동입니다. 그 때 그가 들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주]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겠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록해 주신 대로,
문자적으로, 보여 주신 양식대로가 아닌 자의적 해석과
자신이 믿는 대로, 상황에 따라, 전통에 따라 사람들의
기분에 맞추어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적 신앙이
아닙니다.


유다의 위대한 왕이었던
웃시야는 말년에 자신이 제사장처럼 직접 분향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께 분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기분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결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왕을
막으며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웃시야 왕을 막으며
이르되, 웃시야여, [주]께 분향하는 일이 왕에게 속한 일이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거룩히 구분된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에게 속한 일이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이는 왕이
범법하였음이니 [주] 하나님에게서 이 일로 인하여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하매
](대하26:18). 그러나 웃시야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분향을 드렸습니다. 그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주]의 집
분향 제단 옆에서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솟으니라. 수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그를 보니,
보라, 왕의 이마에 나병이 있으므로 그들이 그를 거기서
쫓아내고 참으로 [주]께서 그를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대상26:19-20).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든, 성막을 만드는
일이든, 번제 헌물을 드리는 일이든, 전리품을 취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일이든, 언약궤를 옮기는 일이든,
분향을 하는 일이든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면 망한다는 사실을 봅니다.
우리는
주의 뜻을 행할 때 늘 조심해야 합니다. 모세 역시 “주의하라,
조심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 제사장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라. /이것은/ 곧
모세가 성막을 만들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 권고 받은 바와
같으니 이는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양식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라, 하시기 때문이라.
](히8:5).
우리의 신앙 생활은 모두 철저하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여야
합니다. [또한 우승하려고 애쓰는 자가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월계관을 얻지 못하며
](딤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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