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말씀




말씀: 출애굽기 35:1-40

요절: 출애굽기


출애굽기는 모세란 한
사람의 출생으로부터 전 생애에 걸쳐 거의 모든 것이 나오는
책입니다. 모세는 대언자요, 왕이요, 제사장의 역할을 모두
수행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중보자로서, 율법의
중재자로서,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구원자로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그런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의 모세를 얼마나
존경하고 그를 신성시 했던지,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요9:28)고 외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모세의 율법’이라고 불렀고 그렇게
통용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요7:19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이기 때문이라.]
(요1:17)고
했습니다. 율법과 은혜의 관계를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로 둔 것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유대인들이 모세를 믿는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했고, 그분의
말씀을 믿으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모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란
점입니다. [너희가 모세/의 말/을 믿었더라면 또 내 /말/을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5:46).
출애굽기는 성경의 여느 책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풍부한 예표와 모형, 예언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시면 우리는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데 전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모든 성경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사람은
성경을 보지 못한 사람이며, 제대로 읽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탐구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거하느니라.]
(요5:39).
*나에 대하여=testify of me.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에
모세와 모든 대언자/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하여 /기록된/ 것들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라.]
(눅24:27).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24:44) 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
대언자들의 글, 시편은 구약 성경 전체를 다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구약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된 글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경 어느
책이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점은 출애굽기라고 해서 예외가
아닙니다. 출애굽기에 계시된 그리스도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본문을 구절구절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모든 사건이
아니라 단지 모세란 한 인물을 통해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구약은 신약의 전조요,
그림자요, 예표란 점에서 우리는 모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와 같은 대언자”라고
했습니다. [주 네 하나님께서 네 한가운데서 곧 네 형제들
중에서 나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켜
세우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니라.]
(신18:15).
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대언자이십니다. [이에 따라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켜 세우고 내 말들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가 그들에게 다 말하리라.]
(신18:18).
모세는 대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예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말대로 모세와 같은 대언자,
모세가 말한 ‘그 대언자’(The Prophet)
소망하며 기다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같은
대언자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침례인 요한이 유다의
광야에서 하늘의 왕국을 선포하고 백성들에게 회개의
침례를 주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그에게 “네가 그 대언자냐?”라고
묻습니다. [그들이 또 그에게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매 또 /묻되/,
그러면 네가 그 대언자(代言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하거늘]
(요1:21). 요한은 모세와 같은 대언자가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말한 대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빌립은 이 점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그에게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대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으니 곧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님이시니라, 하매]
(요1:45). 빌립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그 대언자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합니다. *행7:37 -스데반
역시 동일한 증언을 했습니다.


모세는 여수룬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여수룬 안에서 왕이었으니 곧 백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모인 때에로다.]
(신33:5).
*여수룬=이스라엘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명칭(신33:26, 사44:2).
모세는 분명 이스라엘의 통치자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대로 모세는 왕좌에 앉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동방의
현자들은 [이르되, 유대인들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마2:2a)고 물었습니다.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예수님을 직접 심문하면서 이 점을 물었습니다. [빌라도가
그분께 묻되,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하매]
(막15:2a).
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그렇게 말하는도다, 하시니]
(막15:2b).
주님의 십자가에는 무엇이라고 쓰여져 있는지 보십시오. [그분
위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의 왕], 이라 쓴 글도 있더라.]
(눅23:38). 주님은
유대인의 왕이셨지만 단 한 번도 왕좌에 오르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도리어 종처럼 섬기셨습니다. 대신
주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 안에 하나님의 왕국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임한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으로
계십니다. 이제 얼마 후면 문자적으로, 정치적으로,
물리적으로 눈에 보이는 지상에 세워질 하늘의 왕국에
왕으로 오시고, 모든 것을 다스릴 것입니다.


모세는 재판관이요,
치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치리자와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이르기를, 누가 너를 치리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바로 이 모세를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난 천사의 손을
통하여 치리자와 구원자로 보내셨으니]
(행7:35). *치리자와
구원자. 치리자와 재판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재판관이십니다. 또한 구원자이십니다.
천사들이 증거하기를, [이 날 다윗의 도시에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1)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5:31). *통치자와
구원자
. 모세는 이집트의 속박과 노예 상황에서
해방과 자유를 준 반면 주님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라는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죄와 사망, 마귀,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 구원자이십니다(요8:31-32).
모세는 율법으로 재판하고 다스렸지만 주님은 우리를
은혜와 진리로, 성령의 법으로 다스리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
[이제 모세가 자기
장인 곧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 그 떼를
사막의 뒤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곧 호렙에 이르매]
(출3:1).
모세는 장인의 양을 쳤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먹이고
인도하는 목자였습니다. 40년간 양을 쳤던 그는 40년간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하나님의 양떼들을 먹이고
인도했습니다. [그때에 그분께서 옛날과 모세와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여 이르시되, 자기 양떼의 목자와 함께
바다에서 그들을 이끌어 올라오게 한 자가 어디 있느냐? 그
속에 자기의 거룩한 영을 둔 자가 어디 있느냐?]
(사63:11). [주께서
주의 백성을 양떼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시77:20). 우리 주님은 양들의
목자이십니다(요10:16). 주님은 혼의 목자요 감독이시며(벧전2:25),
양들의 큰 목자이십니다(히13:20). 주님은 양들을 알고,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선한 목자’(요10:11)이십니다.


모세는
침례를 주었습니다
. 침례란 죽어서 묻히는 것을
말합니다. 침례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영적 실제입니다. [또한
형제들아, 나는 /이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모두 바다를
지나가며 모두가 구름과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고]
(고전10: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 아래 있었고, 홍해라는 바다 속을
통과함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죽음을 통과한
것입니다. 침례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들은 이 침례를
통해 “모세에게 속하게 되고”(unto Moses)라고 말합니다. 이
침례를 받지 않고 이집트를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홍해란 바다를 통과하는 체험이 필요하듯이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이전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듯이 침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심을 받은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롬6:3-4).
마귀에게 속한 옛 사람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방법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 의식으로서 물로 침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 너희 가운데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 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이라.]
(갈3:27).


모세는 중보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곁에 선 것이 아니라 멀리 서
있었습니다.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짙은 어둠으로 가까이 가니라.]
(출20:21). 주목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곧
바로 나아갔다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사람은 중보자 없이 아무도 하나님께 곧 바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멀리 떨어져 있던
존재들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3). [또 /그분께서/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에게 화평을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 화평을 선포하셨으니]
(엡2:17).
우리는 이전에 주님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 십자가의 피요,
복음이요, 그분의 죽으심입니다. [전에는 너희가 사악한
행위들로 인하여 멀리 떨어져 너희 마음에서 원수가
되었으나 이제는 그분께서 죽음을 통하여 자기 육체의
몸으로 너희를 화해하게 하사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아버지/의 눈앞에 드리고자 하셨으니]
(골1:21-22).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서 주의 말씀을 전해 준
중보자입니다. [(그때에 너희가 불로 인해 무서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주와 너희 사이에 서서 주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신5:5).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라는 중보자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란 중보자를 통해 주님께 나아가고,
그분의 모든 것을 받습니다. [이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기 때문이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딤전2:5).


모세는
기도의 중보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위기에 빠질 때 모세는 늘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불신과
시험과 죄들을 대신해 모세는 생명을 건 기도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 버리소서, 하니]
(출32:32).
그의 이런 중보 기도를 통해 이스라엘의 불법과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의 죄는 중보자이신 주님의 중보
기도를 통해 용서 받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순간에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눅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살인자들을 향해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자들과 몫을 나누게 하며 강한
자들과 노략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혼을
쏟아 부어 죽기까지 하며 범죄자들과 함께 계수(計數)되었음이니라.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들을
위하여 중보(仲保)하였느니라.]
(사53:12).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인해 용서됩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범죄하여도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주님의 중보 사역은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친히 중보하시고, 저 하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중보(仲保)하시기 때문이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
(롬8:26-27).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롬8:34).


모세의
사역이나 성품 역시 우리 주님을 정확히 예표합니다.

모세는 온유했습니다. [(이때에 이 사람 모세는 매우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였더라.)]
(민12:3).
온유함은 성령의 열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대적하는 반역자들을 향해서 온유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는 사람, 육체의
정욕과 탐심과 기질, 자아를 온전히 십자가에서 처리 받은
사람들이어야 온유함이 드러납니다. 인위적인 겸손과
온유는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금방 터져 버립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안식을 찾으리니]
(마11:29).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느니라.
/그분은/ 온유하사 나귀 위에 앉으시나니 나귀 새끼 곧 어린
수나귀니라, 하라, 하였느니라.]
(마21:5). 주님은
온유하십니다. 온유하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통해 자신이 성품을 드러내실 때 우리는 자신의 상함이나
낮아짐이나 약해짐이나 모욕이나 수치나 여러 가지 어떤
환경에서도 개의치 않고 온유함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실했습니다.
[또 모세는 참으로 나중에 말하게 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그분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으되]
(히3:5).
[내 종 모세와는 그리하지 아니하나니 그는 나의 온 집에서
신실한 자니라.]
(민12:7). 신실함은 선한 청지기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입니다. 신실한 종은 칭찬을 받고 유업을
받습니다. [또한 청지기들에게 요구할 것은 신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고전4:2).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학문이나 학벌이나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청지기에게 필요한 것은 배경이나 가문이나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죽기까지 신실한 그런 신실함이(계2:10)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우리 주님 역시 신실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는 그분의
집이라.]
(히3:5~6). 주님은 신실한 증인이십니다(계3:14).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이것을 행하시리라.]
(살전5:24). [그러나 {주}께서는
신실하사 너희를 굳게 세우시며 악으로부터 지키시리라.]
(살후3:3).


우리는 모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능력과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더 핑크는 자신의 책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닮은 점을 무려 75가지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그는 모세의 출생에서부터 차례대로 정리했는데 저는 오늘
간단히 열 가지만 정리하고 다음 시간에 정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첫째,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육체로는 이스라엘에서 나셨습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롬9:5a). 사람들은 모세를 이집트의 왕자니
무엇이라고 말하지만 모세는 레위 지파의 정통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 같은 대언자 하나를 ...”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본주의자들은 예수님이
흑인이다, 시리아계다, 이집트 출신이다 등등 주장을 하는데
만약 예수님이 유대인이 아니라면 그는 구원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그 대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기
때문이라.]
(요4:22). *구원=구원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 “네 씨, 네 몸에서 난 씨”라고 말씀하신 것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민족적 정체성을 확정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참조-롬1:8, 딤후2:8.


둘째,
모세의 출생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때에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가 심히 아름다우므로]
(행7:20a).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때의 모습 역시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파라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행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 베들레헴 근처의 두 살
아래로 많은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마2:16).
이스라엘의 구원자의 탄생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결코
화려하게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세상에
구원자가 태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안간 힘을 썼고,
살인자로서 생명을 노렸습니다.


셋째,
모세는 입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가
있었지만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매 그녀가
그를 파라오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녀의 아들이
되니라.]
(출2:10a). 우리 주님은 어머니는 계셨지만 육신의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주님 역시 유년 시절을 이집트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들이
떠난 뒤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이르되,
헤롯이 어린아이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어린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 내가 네게 말을 전해
줄 때까지 거기 있으라, 하매]
(마2:13). 이로써 호세아에
기록된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거늘]
(호11:1).


넷째,
모세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사역을 알고
있었고, 행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자기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자 하심을 깨달을 줄로 그가 생각하였음이라.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더라.]
(행7:25).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고자 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그가 사역을 시작하기 40년
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30세에 공생애를 하셨지만 이미 12세에
자신의 사역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반드시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함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2:49).


다섯째,
모세는 자신의 신분이 공주의 아들이었을 때에 히브리
형제들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의 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을 형제로
여겼습니다(출2:11). 우리 주님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이는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기 때문이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2:11). 모세는
자신의 특권과 부와 명예와 모든 것을 버리고 고난받는
형제들과 함께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상을
바라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들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기를 거절하고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음이라.]
(히11:24-26). 이 점에서
우리 주님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無名)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빌2:6-7).


여섯째,
모세는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그들이 다툴 때에 모세가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하여 이르되, 선생들아, 너희는 형제이거늘
어찌하여 서로에게 부당한 일을 하느냐? 하나 자기 이웃에게
부당한 일을 행한 사람이 모세를 밀치며 이르되, 누가 너를
치리자와 재판관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행7:26-27).
백성들은 모세가 자신들 위에 왕이나 재판관이나 지도자로
세움 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주님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영접(迎顚)하지 아니하였으나]
(요1:11).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철저히 배척했습니다.


일곱째,
모세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세월을 보냈습니다.

미디안에서 양을 칠 때 그는 이집트나 자기 민족들에게나
철저히 잊혀 졌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을 장인의 집에서 양을
치면서 그는 멸시와 천대를 경험했습니다. 그 누가 모세의
남은 생애를 예측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주님 역시 30세에
공생애 사역을 하시기 전에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일하셨습니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마13:55a)란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그 누가 나사렛의
작은 동네의 목수 아들이 인류의 구원자요,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신 줄을 알았겠습니까?


여덟째,
모세는 사역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원해서
스스로 알아서 일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름을 받고,
맡기신 일을 했습니다. [그런즉 이제 오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리니 네가 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출3:10). 우리 주님 역시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일하셨습니다.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눅19:10)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아홉째,
모세는 표적을 행했습니다.
모세의 말은 단지 말이
아니라 능력과 표적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그러했습니다(마11:4,5). 주님은 표적을
통해 자신의 메시야 사역을 확증하셨고, 믿음의 증거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다시 보이되 눈먼
자가 시력을 받으며 다리 저는 자가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며 귀먹은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일어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하라.]
(마11:4-5).


열 번째,
모세는 자신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주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집트로 돌아가라. 이는 네
생명을 찾던 자들이 다 죽었음이니라, 하시니]
(출4:19).
모세의 생명을 찾던 이들은 다 죽었을 때 주님은 “돌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찾던
이들이 죽었을 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헤롯이 죽으매,
보라, 이집트에서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이르되, 일어나 어린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라. 어린아이의 생명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니]
(마2:19~20).


모세는 거의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그의 출생, 사역, 성품
등등 찾아보면 백 가지 이상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늘 성경을 가까이 하고,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그런 진리들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권별 강해 >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모세(II)  (0) 2006.08.22
베일로 얼굴을 가리다  (0) 2006.08.21
시내산 언약  (0) 2006.08.20
하나님의 요구  (0) 2006.08.20
질투하는 하나님  (0) 2006.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