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히1:9
[성령과 그리스도]란 주제는 너무나 광범위한 주제이므로 간략하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보겠습니다. 주님이 성령을 받으신 것과 주님께서 성령을 주신 일입니다. 저는 가능한 한 간략하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역사에 대해 정리해서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육신으로 태어나실 때부터 마지막 승천 때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1:2에서부터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고, 말씀은 모두 실제가 되었습니다. [빛이 있으라]는 권능의 말씀이 주의 입에서 나올 때 성령의 역사로 빛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입니다. 성령과 말씀의 관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은 성령이 임함으로 실제가 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이론이나 사상이나 종교적 가르침을 뛰어넘어 영이요, 생명이 되게 하십니다(요6:63).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주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마다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놀라운 은혜와 감동의 역사가 있기를 빕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가? 이 문제는 그리스도께 역사하신 성령에 대한 말씀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첫째, 주님은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습니다(눅1:35,마1:18-20). 성령님은 처녀의 몸에서 잉태하도록 하신 주체자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으며 진짜 기적은 구주의 출생이 아닌 구주의 초자연적인 잉태에 있었습니다. 성령은 생명을 부여하시고, 초자연적인 잉태를 가능하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10:5에 따르면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반면 히브리서 2:14-16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뜻(의지)대로 혈과 육을 입으셨다고 합니다. 우주의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역사가 완벽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인간이 되셨습니까?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그리스도의 관계는 복음서에 너무나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을 창조하는 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부활, 승천에 이르는 모든 사역에 함께 하셨고, 주도하셨습니다.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定婚)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났더니](마1:18).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려는 거룩한 뜻으로 인한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능히 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하시나니/ 곧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또 죄로 인하여 육신 안에 죄를 정죄하셨느니라.](롬8:3). “육신의 모양으로”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십니다. 동일한 한 구절을 더 살펴 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無名)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빌2:6-7). “종의 형제,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란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되신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변화의 능력자이십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을 육신의 모양을 입고 태어나게 하실 수 있고, 흙으로 빚어진 우리의 육신을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은 변화됩니다. 죽어 있던 영은 살아납니다. 생각은 새롭게 됩니다. 몸은 영광스럽게 변화됩니다.
하나님이 육신의 모습, 종의 형체,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은 기록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獨生)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고 증언합니다. 비록 사람의 모습, 육신의 모습, 종의 형체를 입으신 주님이 흠모할만한 아름다움도 웅장함도 멋도 없으셨지만 요한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던 것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고, 이적을 행하실 때 그들은 단지 사람 예수가 아니라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육신의 모양이었지만 여전히 주님 안에서는 하나님으로서의 신성한 권능과 영광이 스며 나왔으며 은혜와 진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그런 것입니다. 이는 향수를 어디에 담아도 그 냄새가 쏟아져 나오고, 빛은 어디에 두어도 비추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걸맞은 형체와 모습이 아니라도 본질은 바뀔 수 없습니다.
둘째, 주님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마3:16, 눅4:18, 행10:38, 히1:9). 메시야로서의 특별한 사역을 위해 기름부음 받으셨으며, 구속의 특별 사역을 위해 택함 받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이름이 아니라 칭호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다면 예수님은 예수님일 뿐이지 [그리스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란 칭호가 ‘기름부음을 받은’이란 뜻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신 분이란 의미입니다.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주}의 영께서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음이라.](눅4:18a)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후에 증거하기를,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께 성령님과 권능으로 기름을 부으시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선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음이라.](행10:38).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미 하나님, 성령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란 칭호는 그 자체로서 3위1체를 완벽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예수님께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교파와 교리로 갈라지고 서로 상이한 주장을 한다 해도 [주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알고, 매일 신앙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란 사실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의 온 집이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바로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셨느니라, 하니라.](행2:36).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께 기름부음 모든 사람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하거나 예표하기 위한 그림자들이었습니다. 사무엘이나 엘리사가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도 그들에게 ‘그리스도’란 칭호를 붙이지는 않습니다. 침례인 요한이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해도 그는 단 한 번도 그리스도란 칭호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the Christ)는 한 분 뿐이십니다. 아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회 시대에 성도들에게 있는 기름부음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을 주에게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 (히1:9). 주님만큼 성령의 인도와 확신 가운데 사셨던 분이 없습니다. 주님은 매순간, 매사에 성령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한량없이 부음 받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말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라](요3:34). 하나님께서 주님께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는 전 공생애 사역 기간 중에 늘 그러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이 땅에 잉태하게 하신 분이시오, 사역에 능력을 부여하신 분이시며, 부활하게 하신 분이시며, 승천하게 하신 분이십니다.
셋째, 주님은 성령의 인침을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인침은 아들의 신분과 그에게 주어진 권위가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과 동등함을 말해 줍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지 말고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인(印)치셨음이니라](요6:27). 하나님은 성령으로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을 인쳐 주십니다. [그분의 증거를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께서 진실하심을 인(印)쳐서 확증하였느니라.](요3:33). 누군가에게 확실한 언약을 받고, 도장으로 꽉 찍힌 증서를 받을 때 마음에 평안을 누립니다. 계약서에 찍힌 도장은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령으로 인쳐 주심으로 아들로서 지위를 영원히 확증해 주셨습니다.
넷째, 주님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들어가사](마4:1). 주님은 스스로 알아서 무엇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아버지의 뜻대로,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철저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면 주님이 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시겠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주님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그 뜻을 따랐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내가 내 뜻대로 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무엇이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도하시며, 그 길로 지도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비 진리는 아무리 좋아 보이고, 유익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성령의 인도함이 아니라 마귀의 인도함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우리 안에 계시해 주시고 그 말씀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말씀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라면 성령의 인도함 역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았다면 환경이 어떠하든, 내 느낌이 어떠하든, 자시의 생각이나 전망이나 전문가들의 견해가 어떠하든 개의치 마시고 오직 받은 말씀을 붙드십시오. 성령은 말씀대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주님은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마12:28). 빌립보서 2:5-8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적인 권능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성령의 힘과 인도하심에 완전히 의존했습니다. 주님은 본래 하나님이시고, 신성을 지니셨지만 이 땅에서 자신의 신적 권능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성을 지닌 사람의 아들로 사셨습니다. 만약 사람의 아들로서 사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주님의 어떤 말과 행위도 은혜로 받을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40일을 굶는 것은 인간으로서 힘든 일이지 하나님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일도 인간으로서 힘든 일이지 하나님으로서는 전혀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귀는 계속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고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정체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능을 발휘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동일한 사람으로서 받으신 시험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이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라.](히4:15). 만약 누군가 말하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시험이 문제가 되었겠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는 성경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서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물리치심으로써 우리에게 본을 남기시고, 자취를 남겨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히2:18).
주님께서 자신의 신적 권능과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오직 사람으로서 시험을 받으시고, 믿음과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을 때 성령의 권능을 입고 돌아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에 돌아오시매 그분의 명성이 주변 온 지역에 퍼지니](눅4:14). 주님 자신의 원래 권능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입으셨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삶, 영적인 사역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성령의 권능’을 입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역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을 힘입은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마12:28). 마귀를 내 쫓는 일이 성령의 권능이요, 성령의 사역이란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일을 성령을 힘입어 일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령님을 대적하여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들의 온갖 죄와 신성 모독은 용서받되 성령님을 대적하여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하겠고] (마12:31). 주님의 사역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사역입니다.
여섯째, 주님은 성령으로 채움 받으셨습니다(요3:34, 눅4:1). 채움 받다(filled), 충만하다(full)는 말은 통제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완전히 성령의 통제아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의 채움을 받아야 했다면, 우리는 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말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라.](요3:34). 주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주의 말씀들을 선포했습니다. 성령으로 채움을 받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주님은 성령과 권능으로 채움받으신 후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언제나 성령으로 채움을 받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계속적으로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일곱째, 주님의 감정 상태 역시 전적으로 성령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성령 안에서 슬퍼하셨습니다(요11:33). 주님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셨습니다(눅10:21). 때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영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울며 기도하는 것이나 회개할 때 눈물이 쏟아지는 것 등은 자신의 진실함과 정직함을 보여 주는 행위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면 성령과는 상관없이 절로 눈물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적이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철저히 성령 안에서 감정을 처리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원리입니다.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주님이 모독을 받을 때 분노하고, 성경의 권위가 부정될 때 괴로워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죄인들을 볼 때 영이 격동합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이제 바울이 아테네에서 그들을 기다릴 때에 그 도시가 온통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을 보매 그의 영이 속에서 격동하므로](행17:16). 반면 육신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가 상할 때 분노하고, 높임을 받을 때 무척 기뻐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모독을 받고, 교회가 멸시를 받고, 성경의 권위가 짓밟히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인들을 보아도 무덤덤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주님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이 상하지도 않고, 급박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자신에 대해서 들려오는 소문이나 작은 소리도 민감하고 크게 들려오는 법인지라 누가 자신에 대해 험담이나 비판이나 수군거리기라도 했다가는 분을 참지 못합니다. 그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전히 자신의 육신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여덟째, 주님은 성령에 의해 자신을 갈보리에서 제물로 드리셨습니다(히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4). 성령을 통해 드린 제물이 아니라면 그냥 애석한 죽음, 안타까운 죽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해 드린 죽음이요, 피이기에 죄 사함의 능력이 있고,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물이 성령을 통해 드려져야 합니다. 자신의 땀과 피로 이룬 일들이라고 해서 땀 냄새, 피 냄새 풍기는 헌물을 드려서는 안 됩니다. 모든 헌물은 성령을 통해 드려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죽음으로 처리되고 그 향기만이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여나 자신의 의와 노력과 무엇을 보여 주기를 소원한다면 그의 제물은 가인의 제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의, 주님의 피, 주님의 희생을 근거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이것이 성령을 통해 드리는 희생물입니다. 헌금을 드리든, 교회에 봉사를 하든, 어떤 형제를 섬기든 간에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들은 다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의 피로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물에서 풍기는 육신의 냄새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신 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영적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아홉째, 주님은 성령에 의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습니다(롬1:4, 벧전3:18). 성령은 생명을 살리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생명을 부여하시며,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부활의 권능을 지닌 하나님이십니다. [거룩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드러나셨느니라.](롬1:4). 성령께서는 부활의 순간에 주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성도들은 모두 성령을 통해 주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경험할 것입니다. 무덤은 우리가 거할 처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거할 처소는 저 하늘입니다.
열 번째, 주님은 부활하신 후 성령을 통해 그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친히 선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하여 명령들을 주시고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의 모든 일을 기록한 것이라.](행1:2). 주님의 말씀 중에 어느 하나 성령님을 통하지 않고 주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모두 성령의 음성이요, 성령의 감동이요, 성령의 권능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었습니다(요6:63). 성령께서는 대언자들을 감동케 하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열한 번째, 주님은 성령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영적 몸 안으로 침례 주십니다(고전12:13).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살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신성한 성품과 능력이 밖으로 표출됩니다. 생명은 밖으로 나와서 열매를 맺습니다. 빛이신 주님은 우리 안에서 빛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십니다. 이는 교리의 문제나 지식과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영과 생명의 문제입니다. 정말 그 사람 안에 생명의 성령이 있다면 영은 혼과 몸을 통해 자신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신실한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고, 교회 내에서는 직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초림 때에 주님은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누구 안에 들어가 거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분을 만나려면 갈릴리나 예루살렘으로 가거나 주님이 이곳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께서 생명의 성령으로 계시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롬10:9)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영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는 너희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공급해 주심을 통해 이것이 나의 구원으로 바뀌게 될 줄 내가 알기 때문이라.](빌1:19). 바울은 성도들의 기도와 위로부터 오는 주님의 영의 공급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이 구원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기도할 때 주님은 자신의 영을 공급해 주심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어떤 사실을 알려 주시고, 우리는 그 사실을 듣습니다.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도의 기도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기를 원할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주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 기록된 말씀, 약속의 말씀들을 성령의 공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열두 번째, 주님은 장차 돌아 오셔서 성령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을 일으키십니다(롬8:11). [만일 예수님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신 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우리는 이 소망으로 이 땅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성령을 제자들과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 주시고, 성령으로 침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도들 안에 부어집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그리스도 없이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들은 성령과도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바로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부를 수 없고(고전12:3),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님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주님은 성령으로 자신을 믿는 자들 위에 침례를 주십니다.
주님 안에 생명과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 곧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성령을 받는 길이요, 모든 영적인 복을 얻는 길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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