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행7:51
성경을 주의해서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성경 전체의 반 이상이 한 국가, 특정 한 민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전 혀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불리는 이 민족은 성경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다루심과 계획 가운데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들이 결코 누려 보지 못한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맺었으며, 어느 민족에게도 주어지지 않는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구약 성경은 다른 어떤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 관련된 구약 성경의 역사는 서사적이면서, 동시에 예언적입니다. 다른 민족들의 이야기가 조금 언급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역사는 오직 이스라엘과 관련될 때만 약간 기술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민족으로서, 선민으로서 이 땅을 다루시는 한 모형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민족으로 삼으셔서 이 민족을 통해 이 땅을 다루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신실하고 주님과 바른 관계성에 있을 때, 그들은 복을 받고, 부유해졌으며, 강성했습니다. 반면 그들이 불순종하고 반역했을 때 온 세상으로 흩어져 다른 민족들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신명기 28:64절, [주께서 너를 땅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백성들 가운데로 흩으시리니 네가 그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무와 돌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기리라.] 유대인과 관련하여 약속된 가장 큰 축복은 그들에게 메시야가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민족들의 축복입니다.
성경은 인류를 세 부류의 대상으로 나눕니다. 하나님의 교회, 이스라엘, 이방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 부류의 대상을 분명하게 나누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실족하게 하는 자가 되지 말고](고전10:32).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들이고, 교회는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입니다. 이 둘의 구분은 선명합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들은 약속의 백성이었으나 신약 시대부터는 교회가 언약의 백성이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언약들, 축복들이 모두 교회에 상속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발언입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상속의 백성이며, 주님의 언약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로 이런 구절들로 인해 교회가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겉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겉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그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라. 오직 속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런 사람에 대한 칭찬은 사람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롬2:28-29). 그래서 믿는 신자들이 진정으로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누구도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을 대신 차지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유대인이며,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유효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눈멀게 된다는 것이라. 그리하여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니 /이것은/ 기록된바, 시온에서 구원자가 나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돌이키시리니](롬11:25-26).
유대인들의 특권은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불리십니다. 구약 성경에만 무려 199번이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오 그룹들 사이에 거하시는 만군의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는 땅의 모든 왕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나이다.](사37:16). 대언자들이나 제사장들의 기도를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결코 누릴 수 없었던 많은 특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것은 말 그대로 민족적인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교회나 이방인이란 단어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셨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만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신 것이라.] (롬3:1~2).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주셔서 온 세상, 온 민족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들으려면 유대 민족들을 통해서 들어야 했습니다. 주의 율법을 가진 민족은 지구상에 이스라엘 민족뿐이었습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이 날 내가 너희 앞에 두는 이 모든 율법과 같이 의로운 법규와 법도를 가진 큰 민족이 어디 있느냐?](신4:8)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한 민족으로 대우 해 주셨음을 말합니다. 생명의 법도를 지닌 유일한 민족,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이란 점 이 한 가지만으로도 석유나 어떤 지하자원을 가진 수많은 민족들보다 탁월한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대언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자신의 법규들과 판단들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분께서 어느 민족도 이와 같이 대우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분의 판단들로 말하건대 그들이 그것들을 알지 못하였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시147:19~20). 하나님께서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의 머리로 이스라엘을 지정하셨고, 그들을 제사장 왕국으로 삼으셨습니다.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너는 이 말들을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6). 이들이 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감당하면 전 세계에 존경을 받고 머리가 되지만 우상을 숭배하고 주님의 율법을 버리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두 번째 특권은 양자됨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아버지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원전 2,000년 경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민족은 이 지상에 유대인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養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롬9:4). 하나님은 이들을 맏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어떤 나라, 어느 민족의 신도 사람을 아들로 삼는 예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너는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은 내 아들 곧 나의 처음 난 자라, 하시느니라.] (출4:22).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아들”이라고 부르시는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서 태어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의 석학들을 많이 배출하고,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진실로 그들 가운데 최고의 인물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를 배출한 민족이 유대 민족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유대인으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은 유대 민족의 영원한 기쁨이요, 자랑거리입니다. 성경의 많은 대언자들이 다 유대인입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9:5). 유대인들만큼 이름이 많이 알려지고, 존경을 받는 인물들을 조상으로 둔 민족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다니엘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인물들의 이름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이름을 따서 자식의 이름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이런 특권을 스스로 버린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넷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민족입니다. 민족마다 기원이 있지만 그 기원이 하나님인 민족은 유대 민족뿐입니다. [그러나, 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께서 이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께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는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기 때문이니 너는 내 것이니라.](사43:1).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유대 민족의 기원, 민족적 출생이 전적으로 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말합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나라들이 있고, 민족들이 있지만 민족의 이름을 하나님이 친히 지어 주신 유일한 민족이요, 나라입니다. [곧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자라. 이는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를 창조하고 그를 지었으며 참으로 내가 그를 만들었음이라.](사43:7).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창조자시오, 그들의 아버지시오, 그들의 왕이십니다. [나는 [주] 곧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사43:15). 유대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특권과 축복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로마서 9:4,5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삼으심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속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9:4,5). 첫째, 양자 삼으심. 둘째, 영광과 언약들. 셋째, 율법을 주심. 넷째, 하나님을 섬김. 다섯째, 약속들. 여섯째, 조상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일곱째, 그리스도.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령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부터 지휘하셨습니다. 주의 영께서는 모세를 충만케 하시고, 성막을 지을 때 그 기술자들을 충만케 하셨습니다(출36:1). 구약 성경에서 이루어진 개개인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신약 성경의 신자들에 임한 성령의 사역과 눈에 띄게 다릅니다. 다만 그들에게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한 대언자들이나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위에 성령을 부어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주의 영은 선별적으로 거했습니다. 대신 장차 모든 사람들 위에 부어 주실 것이란 약속을 주셨습니다. 오순절에 부분적으로 성취된 성령의 부어 주심에 대한 예언은 이렇습니다. [이는 내가 목마른 자에게 물을 부어 주며 마른 땅에 큰 물들을 내고 내 영을 네 씨에게 내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줄 것임이니](사44:3). 이는 유대 민족들에게 약속된 가장 복된 약속이며, 위대한 약속입니다. 이들은 메시야의 출현으로 주님의 이 약속이 성취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임할 복들에 대해 소망하고 노래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실 성령에 대한 축복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 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하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리라. 또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며](욜2:28-29).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맞은 첫 번째 오순절에 이들은 주의 영이 하늘에서부터 임하는 것을 보고 들었습니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다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모두 주님을 믿고 영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 그들은 하늘로부터 부어 주시는 성령을 자신 안에 갖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1:23에 [너희는 내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내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잠1:23)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육신적인 이스라엘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이 임하면 영적인 이스라엘이 됩니다. 성령을 통해 주님의 몸 된 지체가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점을 근거로 해서 성령을 선물로 받기 위해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회개하여 죄들의 사면을 얻고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구약의 주어진 약속들이 주어지기 위해서 그들은 “듣고 돌이키라”는 말씀, 즉 회개가 필요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눈앞으로부터 이를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抹消)될 것이요,](행3:19). 회개할 때 그들은 대언자 이사야나 요엘이 말한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 동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더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구약에서는 구한다고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그에 합당한 능력을 부어 주시고, 권위를 위임하실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 후로는 누구든지 성령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케 해 주시기를 구하면 주님께서 더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상 성령은 결코 그들 위나 그들 안에 임하시지 않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 성령이 임한 예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은 어떤 사람 안에 임했습니다(요셉- 창41:38, 여호수아- 민수기27:18, 다니엘4:8,5:11-14, 6:3.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파라오가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창41:38). 요셉은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에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영(靈)이 거하는 자니 너는 그를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민27:18). 여호수아 역시 주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단4:8).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와 같이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 속에 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임이라.](요14:17). 이는 엄청난 특권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약의 요셉, 여호수아, 다니엘과 같이 특정한 몇 사람 안에 있던 그 영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영원히 거주하시고 계십니다. 이 성령을 힘입어 살라고 하십니다.
둘째, 성령은 어떤 사람들 위에 임했습니다(삿3:10, 6:34, 11:29, 13:25 삼상10:9-10, 16:13). 사사기를 읽다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세우신 사사들(재판관들) 위에 주의 영이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 위에 임했을 때 그들은 큰 능력을 발휘하여 외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옷니엘을 보십시오. [주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시므로 그가 이스라엘을 재판하였으며 또 그가 나가서 싸울 때에 주께서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리사다임을 이기니라.](삿3:10). 그가 승리한 것은 주의 영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것 역시 성령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드온 역시 주의 영이 임했을 때 이스라엘의 재판관이 되고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영께서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다 모여서 그를 따르고](삿6:34). 입다나 삼손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위에 주의 영이 임했을 때 이들은 원수들을 격파하고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셋째, 성령은 어떤 사람을 충만케 채웠습니다. 성막을 만들 때 기술이 아주 뛰어났던 브살르엘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출31:3, 35:31). 성령께서 이 사역을 위해 그를 충만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역을 위해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성령님께서 사람들 안에 거하셨다 해도 어떤 특정인에게 특정 사역을 위해 특정 시간 동안만 머무셨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예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매우 제한적이었고, 장차 임할 예표요 모형으로 주어진 것이 전부입니다. 이스라엘에 행하신 성령의 사역은 오순절에서부터 시작된 신약 교회에 임한 성령의 사역과는 다릅니다. 그때부터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셨습니다. 구약 때도 내주하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위에(upon) 임하시거나 함께(with) 하셨던 것에 비해 신약 성도들에게는 항상 안에(in) 거하신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영원히 거하신다는 점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한 재능이나 재주를 타고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성령에 의해 더해진 것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것을 성령의 은사라 부르기도 하고, 성령의 사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핵심은 우리가 성령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는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해 재능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지혜가 더해 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 더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신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초자연적인 능력은 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더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문이나 혈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사들(재판관들) 가운데 성령을 통해 능력을 받은 예가 몇 명 있습니다(삿3:10, 6:34, 11:29). 삼손의 힘은 성령께서 그의 위에 임한 결과였습니다(삿14:6).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주의 영이 그 날로부터 다윗에게 임하시더라.](삼상16:13)고 말합니다. 다윗이 위대했던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였지 그의 능력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 전체의 일관된 진리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요, 전도자가 되었던 것 역시 그의 능력이나 재능이 아니라 성령이 그를 충만케 하신 결과입니다. 여러분의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 충만, 은혜 충만, 지혜 충만, 말씀 충만! [또 네게 [주]의 영께서 임하시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대언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변하리라.](삼상10:6). 변화를 구한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대언자들 안에 계셨던 성령이 그들에게 분별력과 지혜를 주신 사실을 계시해 줍니다(벧전1:11).
성령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위에 임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최소한 16명 이상의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요셉 -창41:38 ‧모세 -민11:16,17 ‧여호수아 - 민27:18 ‧옷니엘 - 삿3:10 ‧기드온 - 삿6:34‧입다 - 삿11:29 ‧삼손 - (최소한 3번-사사기 14:6,19,15:14,15 ‧사울위에 -그는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후(삼상10:10) 야벳 길르앗 전투에서 승리하기 직전- 삼상11:6, (성령은 사울을 떠나버린다.-삼상16:14). ‧다윗 위에 -사울의 경우와 달리 성령은 다윗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범죄한 후 성령이 자신에게서 떠날까 두려워했습니다(시51:11;삼상16:1). [나를 주의 눈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엘리야 위에-왕상 18:12 ‧ 엘리사 위에- 왕하2:15 ‧ 에스겔 위에- 겔2:2 ‧ 다니엘 위에- 단4:9 느부갓네살의 증언- 단4:9, 겁먹은 왕후의 증언- 단5:11, 다리우스 왕의 증언- 단6:3. ‧ 미가 위에- 믹 3:8 ‧ 앗사랴 위에-대하15:1 ‧ 대제사장 스가랴 위에- 대하24:20 ‧ 이스라엘의 장로들 위에- 민수기11:25.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 백성들을 인도할 목자를 세우실 때 그들에게 성령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주의 영이 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완전한 인간, 죄 없는 인간을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의 성도들을 통해 볼 때 그들은 성령이 임한 후에 능력있는 일들을 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음을 봅니다. 사울이 그러했고,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신약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의 진리가 나를 초인으로 만들어 주거나 성화된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하면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마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이스라엘의 성막 위에 오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뒤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기 때문이었으며](출40:34,35).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의 거룩한 영께서 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영광의 구름은 성령의 임재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었고, 그들은 그 모습에 압도되어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성령의 임재하심이 현재 믿는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으로 인하여 물을 주사](느9:20). 광야 40년은 백성들이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낮엔 구름 기둥, 밤엔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배움의 과정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 안에 임하셔서 길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우신 대언자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눈에 보이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신약 교회의 성도들을 인도하시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들이 성령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반역하여 그분의 거룩한 영을 괴롭게 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돌이키사 그들의 원수가 되어 친히 그들과 싸우셨느니라. 그때에 그분께서 옛날과 모세와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여 이르시되, 자기 양떼의 목자와 함께 바다에서 그들을 이끌어 올라오게 한 자가 어디 있느냐? 그 속에 자기의 거룩한 영을 둔 자가 어디 있느냐?](사63:10-11). 그들은 성령을 괴롭게 했습니다. 불신과 불순종은 주의 영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성령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여야 마땅한데 이스라엘은 반역과 거역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영적인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성령에 대해 반역의 역사를 가진 백성들이라고 했습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는도다.] (행7:51). 이는 정확한 지적입니다. 왜 그들은 성령을 거역했습니까? 수많은 이적을 보면서 이들이 성령을 거역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들은 육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본성은 성령을 거역하고, 반역하고 거스릅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자아를 죽음에 넘겨 줄 때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을 거슬러 대적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성령은 이스라엘의 성전 위에 오셨습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의 집에 가득하니라. 이에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의 영광이 주의 집에 가득하였음이더라.](왕상8:10-11). 이것은 몸된 성전에 올 성령의 오심, 영광의 예표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희생물을 드리고, 성전을 통해 모든 일을 행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몸된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찢어지고 피흘려 죽는 순간까지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주님이 죽으실 때 성전의 휘장은 갈라지고, 이제는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의 지성소를 막던 휘장은 갈라졌습니다. 솔로몬의 성전, 헤롯의 성전이 아니라 우리 몸이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 주님의 영이 충만하게 거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향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몸이 바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고전3:17, 고후6:16).
환란 기간 동안 성령은 이스라엘 위에 임하실 것입니다(욜2:27-32).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악을 깨닫고 회개할 때 주님은 그들 위에 성령을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천년 왕국 때에도 역시 이스라엘 위에 임하실 것입니다.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고 너희를 너희 무덤들에서 이끌어 올릴 때에 내가 주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또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살게 하겠고 너희를 너희 자신의 땅에 두리니 나 주가 이것을 말하고 이행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겔37 13-14). 주님은 천년 왕국 때 문자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 육신의 이스라엘을 복주시고,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돌려 그들에게 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의 집 위에 쏟아 부었음이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39:29). 이것은 교회에 주어진 예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집에 주어진 약속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본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영적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은 자들/ 곧 할례자라 일컫는 자들로부터 무할례자라 일컬음을 받던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공영권(共榮圈) 밖에 있던 외인들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엡2:11~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우리의 신분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이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되었음이라.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낯선 자도 아니요, 외국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더불어 동료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며] (엡2:18~19). 이것이 현재 우리의 신분이요, 상태입니다. 갈보리의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죽음을 찬양합니다. 그 죽음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 피가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속량했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위에,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우리의 의, 우리의 행위, 우리의 무엇이 아니라 주님의 피와 죽음이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임을 깨닫게 되시기를 빕니다. 지금은 잠시 진리에 눈이 먼 이스라엘이지만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말씀들을 성취할 것입니다. 이 역시 주님의 보혈과 죽음이 그 근거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죄가 사해집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주의 성령을 충만히 부음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 저희를 주의 영으로 가득 채우시옵소서. 주의 은혜, 주의 지혜, 주의 권능으로 충만히 채움 받게 하여 주옵소서.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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