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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성령의 칭호
말씀. 고후3:3



성령이 무엇이라 불리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성령의 인격과 신격, 그 사역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이름은 매우 많이 나옵니다. 성령은 Holy Ghost, Holy Spirit, Spirit으로 단독 표기되거나 주 하나님과 연관하여 “주의 영, 하나님의 영”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 영-고전2:10, 성령, 성신, 영원한 영] 등은 성령이 단독적으로 사용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이 다양하지만 모두 한 분 성령을 묘사한 것입니다. 럭크만 박사는 조직신학에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분이시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내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요16:14). 성령 침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성령님의 사역이 아니다. 이것은 이상한 기독교인들이나 하는 말이며, 일이다.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으신 분이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란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성령의 이름은 한 문장 속에서도 2-3가지로 연속해서 연관 지어져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8:19의 경우 아버지가 처음 나오고, 아들이 두 번째 나오며, 성령이 세 번째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13:14절에서는 아들, 아버지, 그리고 나서 성령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주어진 이름과 칭호를 단순히 공부하기만 해도 성령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성령에 관련된 22가지 칭호를 보여 드릴 것입니다. 이 명칭만으로도 성령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와 관련된 성령의 이름을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관련된 성령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고전3:16)’, 주의 영, 주 하나님의 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3)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창세기 1:2에서부터 창조주로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욥은 [하나님의 영께서 나를 만드시고 전능자의 호흡이 내게 생명을 주었느니라.](욥33:4)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사람은 변하여 주의 말씀을 대언하게 되고, 주님과 동일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성경을 통해 봅니다. [사울이 이 소식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시므로 그가 크게 분노하여](삼상11:6).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하나님과 똑 같이 느끼고, 똑 같이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성도들 역시 성령을 통해 주님의 마음을 가지며, 주님과 동일한 감정을 지녀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고, 주님이 분노하시는 것은 분노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의 불신의 자녀들을 보셨을 때 그들은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애곡을 해도 울지 않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치 장터에 앉아 서로를 부르며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아니하고 우리가 너희를 향해 애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하는 아이들과 같도다.](눅7:32). 이는 주님의 말씀에 반응할 줄 모르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이 꼭 그렇습니다. 말씀에 화답할 줄 모르고, 주님의 심정과 뜻을 모릅니다. 예배는 무감각하고 냉냉합니다. 기도를 드려도 건성으로 나오는 것이 전부이고, 찬송가는 매주 부르는 대로 형식에 따라 부르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들처럼 보입니까? 이것은 성경 어디를 펴 보아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들의 모습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지 않기 때문에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만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 첫 번째 요건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롬8:14). 이것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령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인도하십니다. 생각, 말, 감정, 사상, 열정 등 전인격적으로 다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좀 더 성령의 인도함을 구하고, 성령을 의지하면 할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은 분명해 지고, 구체적이 됩니다.

그 누구라도 율법의 행위로 믿음을 대신할 수 없고, 종교로 복음을 대신할 수 없듯이 자아는 성령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히고,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인격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을 삼고 살고자 열망하고 결단할 때 성령은 우리 안에 그 일을 이루십니다. 내가 살 때 언제나 문제가 터집니다. 내가 살 때 내가 힘들고, 내 주변이 힘들어합니다. 하나님은 더욱 불쾌해 하십니다. 성령은 소멸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내 안에 주님이 살고, 주님이 일하시고, 주님이 걸으시고 활동할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주님의 향기가 드러나고, 빛이 비추어집니다. 성령은 충만해지고, 각양 다양한 은사들이 드러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날마다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만이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의 영이란 표현은 구약 성경에만 나오는 말씀인데 주로 사사들과 대언자들 위에 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주]란 표현은 4번만 나오는데 모두 구약을 인용한 경우가 전부입니다(마22:44, 막12:36, 눅20:42, 행2:34). 주의 영이 임하면 그들은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거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주]의 영이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불 때는 백성들이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거나 대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들어 버립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주]의 영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참으로 풀이로다.](사40:7). 주의 영께서는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바람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의 바람입니다. [주]의 영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성령을 의미합니다. [오 너 야곱의 집이라 이름하는 자야, [주]의 영이 제약을 받으시냐? 이 일들이 야곱이 행한 바냐? 내 말들이 곧바르게 걷는 자에게 선을 베풀지 아니하냐?](미2:7). 주의 영은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제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의 영이란 표현이 신약에 사용되지 않는 것은 [주]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사사들과 대언자들, 다윗과 같은 왕들에게 임했던 것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임하셔서 그 안에 거하십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13:5).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안주머니에 충분한 돈이 있거나 귀중품이 있어도 좋아하고, 주의하며, 항상 깨어 있습니다. 산모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몸 안에 아이가 있음을 압니다. 생명이 있음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들 안에는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하여 생명이 되시느니라.] (롬8:10).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서 필요한 때에 모든 필요가 되어 주십니다.

주 예수님과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성령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영- 벧전 1:11, 그분의 아들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라 불립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구약의 대언자들 안에 있던 영과 동일합니다.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게 될 영광을 미리 증거해 주실 때에 /그것들이/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탐구하였느니라.](벧전1:11).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살펴 본 대로 대언자들에게 임한 영은 [주]의 영이이었습니다. [주-LORD]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주]가 [그리스도]란 결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이 증명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에 이미 구약의 대언자들 안에 성령으로 임하셨고, 그들 안에서 미리 증거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도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힘을 공급해 주시고, 환란에서 건지십니다. [이는 너희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서 공급해 주심을 통해 이것이 나의 구원으로 바뀌게 될 줄 내가 알기 때문이라.](빌1:19). 그리스도의 영의 공급을 받으십시오. 이것을 “성령으로 충만하라(채움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야 말로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성령 충만의 전제 조건은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채우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기 부인은 인격의 억압이 아니라 인격의 재창조이며, 자유의 억압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안에 새로운 기능, 새로운 의지, 새로운 지성,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지닌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고후5:17).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옛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죄성과 육신적 본성을 죽음에 처해 버리시고, 새로운 인격이요 새 사람을 창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새로운 신분, 새로운 인격, 새로운 생명, 새로운 자아, 새로운 성품, 새로운 권능을 지닌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공간적으로 거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영과 결합해 버리십니다. [그러나 {주}와 결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 이는 결혼으로 인한 몸과 몸의 결합보다 훨씬 유기적이고 강력한 영적, 내적 결합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자아를 내어 드리고, 주님께 맡길 때 우리의 인격은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최상의 상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격 완성은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없이는 아무리 ‘성령’에 대해 설교를 듣고 강의를 들어도 그는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말하는 ‘나’란 자아는 이전에 말하던 ‘나’가 아닙니다. 이전에 나와 현재의 나 사이에는 십자가를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신 분명한 구획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나는 바울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라며 ‘나’를 주장하는 ‘나’란 자아는 옛 사람입니다. 로마서 7장에 바울이 25번이나 외친 나 역시 옛 사람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한 나는 어떻게 됩니까? 역시 ‘나’는 여전히 ‘나’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나는 사노라”고 말하지만 그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갈2:20)고 말하는 ‘나’입니다. “나는 일하노라”고 하지만 그가 말하는 ‘나’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고 말하는 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명령하노라”고 하면서그 때 말하는 ‘나’란 존재는 이전의 ‘나’가 아니라고 합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령하노니 명령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시니라. 아내는 자기 남편을 떠나지 말라.] (고전7:10).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이루시는 일입니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사시고,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과 결합하여 한 영이 됩니다. 이전에 “나”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나는 복음을 통해,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하는 ‘새롭게 된 나’입니다. 아직도 자신이 죽은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직도 자아가 십자가에서 처리된 줄을 모르고 있다면 성령께서 그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해 다양한 환경을 조성하시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들려지게 하실 것입니다. 듣고 믿으면 그 순간 그는 변화됩니다. 성령은 믿을 때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오직 “듣고 믿을 때” 믿는 일들이 기록된 말씀들, 선포된 진리들이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실제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나 스스로 터득한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자신이 스스로 깨우친 논리나 지식은 몇 일이 지나지 않아서 희미해지고, 오류가 발견되고, 나보다 뛰어난 학식을 지닌 사람이나 변론가를 만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 배운 진리는 확고하여 사람들의 말이나 세상의 유혹이나 전통이나 철학이나 과학적 발견이라 불리는 것들에 의해 흔들리는 법이 없습니다. 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말씀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사람과 관련지어 볼 수 있는 성령의 이름은 [약속의 영, 진리의 영- 요일 5:6, 생명의 영, 은혜의 영, 영광의 영- 벧전 4:13,14, 지혜와 계시의 영, 위로자, 양자의 영, 거룩의 영, 믿음의 영- 고후 4:13]입니다.

1. 약속의 영-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약속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 성취됩니다. 주님의 약속을 보증하고 인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약속의 보증이며, 하나님의 도장입니다.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들은 뒤에 그분을 신뢰하고 또한 그분을 믿은 뒤에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엡1:13). 성령이 약속의 영이라 불리시는 이유는 그분을 주시겠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 주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 자체가 우리를 향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제자들을 향해 반복적으로 주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을 너희에게 보내려니와 너희는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시(市)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주님은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이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목격하면서 분명한 믿음이 마음에 생겼지만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입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말씀을 믿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많은 교인들을 접하고, 신앙 생활을 나름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권능’을 입기를 열망하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믿는 제자들을 향해 성령 침례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도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명령하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너희가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하셨으니 곧 이르시되,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1:4~5). 성령 침례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받는 침례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다양한 성령 침례를 받는 예들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회개하고 침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집안은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안수를 통해 성령 침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시대의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성령 침례를 받은 성도들은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으로 성령 충만, 성령의 권능,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2. 진리의 영 -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불리십니다. 주님이 진리이신 것처럼 성령 역시 진리이십니다.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이는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시며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임이라.](요14:17). 진리의 영께서는 진리이신 주님만을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진리가 아니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란 무엇(what, something)이나 방법(how)이 아니라 인격이신 주님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성령이 가르치시는 진리가 아닙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의 삶 속에만 거하고 그 사람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잃어버린 자요,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와 계시고, 그분이 내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내 안에서 말씀하시고, 일하시고, 걸으시는 대로 우리는 말하고 일하고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위 몇 몇 사람들이 간증이라고 쏟아놓는 이야기들을 들어 보면 주님이 자신 안에 들어와 자신이 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을 믿은 후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증거가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난 후 변화되는 것은 나의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하며, 내가 변화됨으로써 환경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았았다, 거뜬히 이겨 낼 수 있었다는 말이 성령의 증거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진리는 주님이십니다.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요17:17). 성령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말씀 한 가운데로만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요16:13). 모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말씀이며 그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3. 생명의 영 - 성령은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시는 중생의 주체자이십니다. 주님은 살려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고전15:45). 그러므로 성령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는 복음을 통해 새롭게 살아 났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거듭난 자는 영의 사역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또한 우리를 새 /상속/ 언약의 유능한 사역자로 삼으시되 율법 조문의 사역자가 아닌 영의 사역자로 삼으셨나니 이는 율법 조문은 죽이되 영은 생명을 주기 때문이라.](고후3:6).

이렇게 성령의 이름을 정리해 나가다 보면 100여 가지도 넘을 것이며,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한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처럼 될 것입니다.

성령은 은혜의 영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슥12:10). 성령은 영광의 영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하여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라. 그분께서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벧전4:14).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17). 성령은 믿음의 영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노라,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영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4:13). 성령은 거룩의 영이며, 양자의 영입니다.

성령은 위로자로 불리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령을 위로자라고 부르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요14:16).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싸매시고 위로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성령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죄로 인해 마음이 상해있고, 더럽혀져 있고,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단지 우리 마음을 위로하시는 것으로만 그치는 분이 아닙니다. 위로자 성령께서는 가르치시고,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다 기억나게 하시리라.](요14:26). 위로자는 증거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참된 위로자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아무도 나의 속사정을 알 수 없고, 들어 줄 수 없을 때 위로자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낙담하고 지친 영혼에 새 힘을 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위로를 받아 본 사람들이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성령의 타이틀로 제시된 여러 가지 이름들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사역, 내 안에 일하시는 것들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큰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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