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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악에서 구하옵소서

말씀: 마6:13b
요절: 마6:13b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간구마다 두 단어씩 짧게 요약하면 Give us, Forgive us, Lead us, Deliver us입니다. 우선 주목할 점은 ‘내가, 나를, 나의’가 아니라 한결같이 “우리를, 우리를...”하고 구하게 하셨는데 이는 우리가 모두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가족이 있습니다(갈6:10).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자기만을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자체가 하나의 사역이요, 사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잘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고전10:24). 그래서 기도와 간구에서 ‘우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전적으로 독특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함으로 언제나 “우리”라고 말했듯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지체들입니다. 이는 형제란 의미보다 훨씬 더 강한 운명 공동체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肢體)를 가졌으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무를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니 이와 같이 우리도 여럿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서로 지체가 되느니라.](롬12:4-5). *서로 지체가 되느니라. 이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믿든 믿지 않든, 알든 알지 못하든, 교리가 차이가 나고 교파가 다르고 추구하는 노선이 다르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가 누구든지 서로 지체가 됩니다.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다 지체라.] (고전12:27).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요,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서로 지체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 일곱 번째 간구는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구하다(deliver)는 말은 ‘건져내다’입니다. “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내 주시옵소서.”란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구조대원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은 물에 빠진 사람들을 물에서 건져내고, 늪에 빠진 사람을 늪에서 건져내고, 위험과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로 달려가 생명을 구합니다. 태풍이 나고 홍수가 치고 지진이 나고 화재나 교통 사고가 났을 때, 갑작스런 질병으로 쓰러졌을 때 우리는 구조대원을 찾습니다. 자신이 찾지 못하면 다른 누가 불러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 구조와 구원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정말 위기에 처하게 되면 저절로 외마디로 ‘하나님’이 입에서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주님께 구조 요청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이 구조를 받아야 할 상황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옥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신이 악의 구렁에 빠져 있고, 죄악의 물결에 쌓여 있으며 조만간 그 소용돌이 속으로 깊이 빠져 든다는 위기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험이 닥쳐도 위험을 모르는 이들은 구조 요청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란 간구는 주님께 우리가 이미 빠져 있는 악으로부터 건져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미 시험에 빠졌고, 마귀의 올무에 걸린 이들의 절규요 기도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여름이면 강이나 호수에서 자주 목욕을 하고 수영을 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강에 물이 불어났고 덩달아 물 사고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사람 살려!” 외치는 고함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해 준적도 있고, 제 자신이 호수에 빠져서 건져 냄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똑같이 물에 들어가 있어도 수영을 하는 사람은 건져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보트를 타는 사람은 건져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 속에서, 물 위에서 그것을 즐깁니다. 그러나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수영이나 보트 놀이라 할지라도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달라고 외칩니다. 자신이 소리를 지르지 못할 때는 곁에 있던 사람이나 그것을 본 사람이 고함을 지릅니다. 마찬가지로 “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 주시옵소서!” 란 외침과 기도는 그가 자신이 악에 빠졌음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자신이 “악에 빠졌다, 죄에 빠졌다, 불법에 빠졌다”고 아는 순간 죽음의 위험을 직감하며 “나를 건져 주소서”, “사람 살려!” 외치게 되는데 이것은 본능입니다.

악이란 단지 일의 결과가 ‘나쁘다, 잘못되었다, 최악이다’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이 우리 주 하나님의 이름이시고, 성품이듯이 악은 사악한 자 마귀의 이름이요, 성품입니다. 악은 일의 결과나 현상이 아니라 악한 자 마귀의 인격적 성품이요, 기질입니다. 악(evil)은 악한 일, 악한 사람, 악한 영적 존재들, 악한 세상, 악한 성품 등 죄에서 나오는 그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일반적으로 선, 악을 따질 때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고 판단하지만 악은 나타나 보이는 현상 이전에 악한 자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악은 인격적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악을 이길 방법이나 힘이 없습니다. 오히려 악은 우리 안에서 자라납니다. 선을 행하고자 마음을 압도하고, 우리 지체를 이끌어 옵니다. 만약 사람이 스스로 악을 이길 힘이 있다면 주님께 건져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 역시 “스스로 이기고 나오너라. 스스로 극복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스스로 악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세상이 악하고, 때가 악하고, 사람들이 악하고, 마귀와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 마음과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으로부터 건져냄을 받기 전까지 우리 스스로 악의 권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악을 이기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성품이 되고, 우리의 인격적 기질이 되고, 힘이 되실 때 우리는 악으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① 현 세상은 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는 것이며](요일5:19). 온 세상은 악함 가운데 있다! 이것은 현대의 정치인들이나 철학자들이나 교육학에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들은 문명의 힘으로, 교육의 힘으로, 과학 기술의 진보로 점점 더 나은 세계, 더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세상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사느냐? 의 문제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미래 지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충고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온 세상은 사악함 가운데 있는 것이며"(요일5:19b).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고, 친구가 되지 말아야 하고, 일치하지 말아야 하며, 동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악한 현 세상에서 건짐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악한 현 세상에서 건지시려고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기 자신을 내주셨으니] (갈1:4). 우리 주님께서 “악에서 우리를 구하옵소서”라고 구하게 하신 것은 주님께서 구원자가 되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를 악한 현 세상에서 옮기사 저 하늘로 옮기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악한 현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너희에게 이 일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주님은 세상에 대한 승리자이십니다. 그래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역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5:4-5). 십자가의 죽음은 패배처럼 보이지만 승리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믿는 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해 나 역시 세상에 못박히고, 세상을 못 박아 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승리는 십자가를 통해 주어집니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승리는 나의 지략과 능력과 애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고후2:14). 우리를 악으로부터 건져주시기를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를 승리자가 되게 해 주십니다.

② 지금 이 시대는 때가 악합니다.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엡5:16).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날들이 악한 날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의 때라고 외쳐도 잠시 뿐입니다. 번영과 풍요의 때라고 외쳐도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처럼 그런 날들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가정이나 학교가 아닌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함부르크 대학 연구기관 AKUF에 따르면 1999년 전 세계 전쟁 횟수는 35건이며 1945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발한 전쟁은 최소한 212건에 이릅니다. 1945년 이후 전쟁의 90% 이상이 개도국에서 발생하였으며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인종, 종교, 경제적 불평등, 환경, 삶의 질 저하 등이 원인이 되는 내전이 대부분입니다. 5천명의 사망자를 낸 9.11테러와 아프카니스탄 보복 전 외에 최근의 가장 파괴적 전쟁들 가운데 9.11테러 전 아프간과 수단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각각 190만 명과 150만 명의 사망자, 르완다 50만∼100만 명, 앙골라 50만 명 이상, 콩고 170만 명 등 내전에 의한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대부분 민간인들입니다. 전 세계 난민과 실향민 수는 5,7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매년 70만 명에서 200만 명 이상의 여성과 아이들이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불법적으로 다른 나라에 보내지고 있으며 1998년에 교전이 벌어진 전쟁 중 87%에 어린이 병사가 동원되었으며, 그 수는 전 세계적으로 3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누가 지금 이 시대를 평화와 안녕, 자유와 번영의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는 분별 있는 자가 침묵을 지키나니 이는 이때가 악한 때이기 때문이니라.](암5:13). 그래서 우리는 이런 악한 날들을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악한 날에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것은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엡6:13). 주님께서 악한 현 세상, 악한 날들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건지시는 분이심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③ 이 세상의 사람들은 악합니다. 하나님은 말하기를 의인이 없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롬3:11-12). 세상 사람들은 죄인들이요, 사악한 자들이요, 독사의 세대요, 악합니다. 주님께서 [오 독사들의 세대여, 너희가 악하니 어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으리요? 이는 입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라.](마12:34)고 말씀하신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입니다. 그래서 속기도 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합니다.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할수록 모함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면 박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악한 사람들로부터 건짐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하기를, [내가 유대에 있는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시고 또 예루살렘을 위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아들이게 하시며](롬15:31)라고 구했습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주님과 동일한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또 우리를 부당하고 사악한 자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이는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살후3:2).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고전5:10).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지만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한 사람들로부터 건짐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롯을 보십시오. 그는 믿음이 있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악한 자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고, 그들 가운데서 살며 혼이 괴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악한 자들로부터 건짐 받으려는 소원이 없었습니다. 결국 심판을 목전에 두고 주님은 그를 반 강제적으로 그를 건져내셨습니다. [사악한 자들의 더러운 행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던 의로운 롯을 구해 내셨으니](벧후2:7). 많은 이들이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면서도 건짐 받을 의사도 없고, 건지시는 주님을 부르지도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악한 세상, 악한 날들, 악한 사람들로부터 건지시고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신실하사 너희를 굳게 세우시며 악으로부터 지키시리라.] (살후3:3).

④ 마귀는 사악한 자입니다. 마귀는 악한 영입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영적 존재들에게 무관심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악한 영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점성술, 마술, 접신, 점치는 것 등은 모두 악한 영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의 관심분야입니다. 문제는 성도들이 악한 자에 대해 그다지 깊은 영적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란 기도의 핵심은 “악한 자 마귀”로부터 나를 건져 달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울부짖는 사자입니다(벧전5:8). 악한 자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가매] (마13:25). 주님은 좋은 씨를 뿌리지만 마귀는 악한 씨를 뿌려 놓습니다. 그래서 가시와 엉겅퀴와 가라지와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납니다. 악한 자 마귀는 우리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의 씨를 빼앗아 갑니다.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마음 속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요,] (막4:15). *마13:19. [누구든지 왕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에는 저 사악한 자가 와서 그의 마음 속에 뿌려진 것을 채어가나니 이것은 곧 길가에 씨를 받은 자라.](마13:19). 악한 자 마귀는 성도들을 향해 불화살을 날립니다(엡6:16). 믿음의 방패로 이 불 화살을 막고 끄지 못한다면 그는 마귀의 화살에 쏘인 채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앞뒤로 데구루루 구르기도 하고, 이상한 방언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악한 자 마귀는 성도들을 속입니다. [이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이적(異蹟)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택하신 자들까지도 속일 것임이라.](마24:24). *살후2:9~10참조.

마귀는 우리를 이용하려 듭니다. [그것은 사탄으로 하여금 우리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우리가 그의 계략들을 모르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고후2:11). 마귀는 사도 바울을 비롯한 주의 사역자들을 이용하려 했다면 우리 역시 그런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사탄의 사역자들은 의의 사역자들로 가장해서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 것처럼 속입니다.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 또한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11:14~15).

⑤ 우리의 마음이 사악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악함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사악함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하면 그 어떤 환경에서 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일찍이 바울은 자신 안에 무엇이 거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이는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이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알지 못하노라.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기 때문이라. 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17~21). 그는 반복해서 자신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것을 통해 발견한 한 가지를 말했는데, 그 실체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입니다. 그는 자신 안에 거하는 죄를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죄가 거하는 이 몸을 일컬어 “사망의 몸”(롬7:24), “죄의 몸”(롬6:6-7)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일찍이 다윗이 말한 것과 일치합니다. [보소서, 내가 불법 중에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수태(受胎)하였나이다.](시51:5). 자신의 본성을 안다는 것,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알 때 주님을 찾게 되고, 구원을 갈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언자 예레미야 역시 말하기를,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라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우리 속에 거하는 죄에 대해 통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의 죄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마귀를 멸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완벽히 해결된다면 주님은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을 개혁함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주님은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옛 사람으로부터 우리를 건지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악함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해방되었음이라.] (롬6:6~7).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 기도하게 하신 것은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죽으시는 주님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5)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세상도 두렵지 않고, 마귀도 두렵지 않다. 내가 정녕 두려운 것은 내 자신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그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사실만큼이나 주님은 우리와 함께 죽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믿는다면 이보다 복된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13)란 기도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우리 안에 행해 주시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그분이 행하신 일들을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아로부터 건짐 받을 수 있기를 구하십시오. 악에서 구하옵소서. 악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성도들은 무릇 악에서 자신을 지켜 주시도록 간절히 구했습니다. 야베스는 구하기를, [주의 손이 나와 함께하사 나를 악에서 지켜 주시고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4:10b)라고 했습니다. 악으로부터 지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요, 주님의 약속입니다.

악에 대한 우리의 태도

1. 악으로부터 건져 주옵소서. 기도하라.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악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마귀의 모든 궤계와 권세와 올무에서 우리를 구해 내십니다. 악에서 건짐받은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들의 삶 역시 건져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건지심은 과거, 현재, 미래 모두 다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건지고 계시며 또 건지실 줄을 우리가 신뢰하노라.] (고후1:10).

2. 악을 떠나라. [/너는/ 네 혀를 지켜 악에서 떠나게 하고 네 입술을 지켜 교활한 말에서 떠나게 하며 악을 떠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를지어다.] (시34:13~14). 악을 떠나는 것이 명철입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보라,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곧 지혜요, 악에서 떠나는 것이 명철이니라, 하셨느니라.] (욥28:28). 악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주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긍휼과 진리로 불법이 정결하게 되며 [주]를 두려워함으로 사람들이 악을 떠나느니라.] (잠16:6).

3. 악을 피하라.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를지니] (벧전3:11). 때로 어떤 죄와 악은 피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눈을 가려야 할 때는 보지 않는 것이 피하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을 보지 않고, 불의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은 악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비동조, 비일치, 분리는 악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4. 악을 미워하라. 죄악에 대해서 우리는 이성적 판단과 더불어 감정적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슬픔과 미움이 없이 단지 이성적으로만 죄라고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감정이 앞서는 것도 문제이지만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반응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암5:15a).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이니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길과 비뚤어진 입을 미워하느니라.](잠8:13). [[주]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악을 미워하라.](시97:10a). 내 안에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가? 악에 대해 아무 감정도 없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5. 악한 것을 몹시 싫어하라. 미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한 것을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몹시 싫어하다(abhor)란 단어는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는 그런 싫음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파충류 들을 싫어하는데 그 중에 뱀을 보면 그냥 질겁하며 싫어합니다. 만지는 것은 물론이요, 보는 것조차 싫습니다. 아예 대면하기도 싫고 듣기도 싫고, 이야기하는 것도 싫은 것, 그것이 바로 ‘몹시 싫어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악한 것에 대해서 말로만 싫다고 하거나 내키지 않는 정도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에 꾸밈이 없게 하라. 악한 것을 몹시 싫어하고 선한 것에 붙어 있으라.](롬12:9). 악에서 건짐 받기를 구하는 이들이 은밀히 악을 생각하고 적당히 악한 것을 즐기고 있다면 그 기도는 헛된 기도입니다. 악을 미워할 줄 모르는 이는 주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악을 싫어 할 줄 모르는 이는 선한 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악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악한 현 세상, 악한 날들, 악한 사람들, 악한 영들, 악한 내 마음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옵소서!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를 악으로부터 건지시고, 악에서 구원하시고, 악으로부터 지키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면 뜨겁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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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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