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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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03)

말씀: 마6:32-34
요절: 마6:33,34


주님은 먹고 입을 것에 대한 염려를 없애 주는 대신 우리가 구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기도 제목이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탐욕을 구합니다. 자기 영광을 구합니다. 권력을 구합니다. 돈을 구합니다. 정욕을 구합니다. 건강을 구합니다. 장수를 구합니다. 자녀들의 성공을 구합니다. 원수들의 멸망을 구합니다. 이런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이것을 구하였으되 곧 너 자신을 위하여 장수하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재물도 구하지 아니하며 네 원수들의 생명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을 분별하기 위한 명철(明哲)을 구하였은즉](왕상3:11).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에게 구하지 않는 모든 것을 더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절박한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오랫동안 자식을 구했습니다. 야곱은 도망하는 처지에 있었던지라 생명의 안전을 구했습니다. 때로 모세, 엘리야, 요나와 같은 대언자는 죽음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지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 결코 그가 구하는 것을 주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4:2~3).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빌4:6).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담대함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들으시는 것이라.](요일5:14). 이것은 위대한 기도의 약속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대한 기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의 정욕으로 인해 구하고 또 구해도 얻지 못한 채 빈곤한 영적 생활의 연속인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구하지 말라는 것들을 구하거나, 이방인들처럼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32절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32). 이방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합니다. 그들은 염려합니다. 그들에게는 공급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 아버지가 없습니다. 자신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줄 선하시고 부요하신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염려하고, 스스로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부하고 선하신 아버지가 있는 자녀가 그런 것을 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벧전5:7). 아버지는 자녀들이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바로 해결해 주고자 합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보호합니다(마18:6). 아버지는 자녀들의 필요를 공급합니다(빌4:19). 아버지는 자녀들을 인도하고 가르치십니다(요14:26). 우리는 잠언서를 통해 “나의 아들아”라고 시작하는 아버지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도우십니다(시46:1). 아버지는 자녀들을 징계하고 바로 잡습니다(히12:5-11). 아버지는 자녀들을 먹이십니다(마4:4).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한 선한 계획이 있습니다(롬8:28-29). 우리는 이런 이유로 하나님 아버지 없이 사는 이방인들과는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도 아버지 없는 고아들의 삶과 아버지가 있는 자녀들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선하고 부유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 비해 삶의 근심과 걱정이 훨씬 줄어듭니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먹을거리를 구하러 일터로 가야할 때, 부자 집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고, 스포츠를 즐기고, 책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의 생존을 위해 염려하며 살 궁리를 하는 대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영적인 일을 수행합니다. 이방인들은 먹고 사는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합니다. 세상 지혜가 있습니다. 그들이 구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인생의 자랑.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眼目)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이 다 아버지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났음이라.](요일2:16). 모든 힘과 지혜를 여기에 쏟습니다. 더 많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구합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탐욕으로 인해 더 구합니다. 입을 것이 있으면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을 위해 더 구합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마6:32a)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세상 사람들의 삶의 동기요, 목적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육체의 정욕에 대한 영적 지식이 매우 빈약하여 빈곤이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육체의 정욕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은 죄, 세상, 마귀와 더불어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육체의 정욕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죽음 외에 어떤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육체의 정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함께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말라. 베드로전서4:2-3, [그런즉 그는 자기 육체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사람들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리라. 이는 우리가 색욕과 정욕과 과음과 환락과 연회(宴會)와 가증한 우상 숭배 속에서 걸어 이방인들이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한 것이 우리 삶의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라.](벧전4:2-3). 우리는 이방인들처럼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색욕, 정욕, 과음, 환락, 연회, 가증한 우상 숭배 이 모든 것들이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그들의 삶입니다. 물질주의는 물신 숭배란 종교입니다. 자본주의란 맘몬 숭배란 종교입니다. 인본주의는 철학이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척하고 인간을 만물의 중심에 두는 종교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보다 앞에 두고 위에 두는 종교입니다. 이제는 이런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육체의 정욕들에 맞추지 말라.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들에 너희 자신을 맞추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 (벧전1:14~15).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이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열정이란 정욕(情慾)의 불꽃입니다.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학문을 통해 자신의 욕구에 따르고자 할 때 학구열에 불탄다고 합니다. 예술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고자 할 때 예술혼에 불탄다고 합니다. 스포츠를 통해, 연예계를 통해서 나아가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식이나 남을 뒷바라지함으로써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자신 속에 있는 정욕들에 자신을 맞추어서 달립니다.

셋째,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 [지극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순례자인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라.](벧전2:11). 육체의 정욕은 혼을 거슬러 싸웁니다. 성령을 대적합니다. [이는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갈5:17). 그래서 우리는 육체의 정욕들을 삼가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물욕, 명예욕, 색욕, 탐욕 등 이름만 다를 뿐 본질은 하나입니다. 우리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욕들을 하나하나 처리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죄의 소욕을 실질적으로 생산해내는 공장과 같습니다. 방법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살면 죽습니다. [이는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로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임이라.](롬8:13).

넷째,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롬13:14). 육신의 정욕은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활동합니다.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는데, 어느덧 마음속에는 염려, 근심, 걱정, 불안, 공포 등이 엄습합니다. 육신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엡4:27).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고, 함께 하지 말아야할 친구들과 교제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발을 금해야 할 것들에 가서 앉는 것 등이 모두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육신이 있어야 할 곳은 갈보리 십자가이며, 요셉의 동굴 무덤입니다. 싸워야 할 것들은 싸우되 피해야 할 것들은 피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마음 속에 끊임없이 말씀을 담아두고 묵상함으로써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죄에게 순종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하여금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롬6:12). 우리는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 발동할 때 단호히 죄와 대적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승리하신 주님이 있기 때문에 싸울 때 승리가 주어집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대적하면 승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죄는 육신의 정욕을 자극합니다. 깨웁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하고, 구원받기 이전의 행동과 가치관을 유발시킵니다. 신앙 생활하다 좀 좋아지나 싶기도 하다가도 자꾸 쓰러지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5:24).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肢體)들을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골3:5). 이방인들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나의 육신과 함께 그 정욕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그렇지 않는가? 입니다. 비록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 구하는 모든 것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분의 은혜를 따라 사는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주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33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3). 주님은 재물을 섬기지 말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첫째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마음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요3:3,5). 하나님의 왕국은 다시 태어나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첫째로 구해야할 것이 성령으로 거듭남으로써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주님은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이며, 치리자였던 니고데모에게 “너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요3:7)고 하셨습니다. 성전을 지어야 한다. 율법을 외워야 한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 선행과 구제와 금식과 고행을 해야 한다. 희생제를 제때 드려야 한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등등이 아닙니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은 경제 건설, 부국강병이 아닙니다. 교육 혁명이 아닙니다. 힘을 기르자,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왕국이며, 하나님의 왕국은 거듭남으로써만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란 뜻입니다. 구원없는 교육은 저주요, 구원없는 지식은 허무보다 가볍고, 구원없는 부요함은 어리석은 부자의 말로이며, 구원없는 육신의 힘은 주님 앞에 가증한 것일 뿐입니다.

누가복음17:20-21,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왕국이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다그쳐 묻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왕국은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사람들이 이르기를, 보라, 여기 있다! 혹은, 보라 저기 있다! 하지도 못하리니 이는, 보라, 하나님의 왕국이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니라, 하시고] (눅17:20~21). 하나님의 왕국은 내적인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외적이고,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구하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임할 하나님의 왕국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喜樂)이기 때문이라.](롬14:17). 내 몸은 세상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과 기쁨, 자유,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의가 나를 가르치고 다스립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구하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왕국을 구합니다. 죄악의 왕국, 어둠의 왕국에서 빛의 왕국,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으로 옮겨진 성도들이 결코 잃어버릴 수 없고, 잃어서는 안 되는 왕국입니다. 우리의 왕국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마음 속에, 가슴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는 근심, 염려, 불안, 공포, 걱정, 초조함, 다급함, 혼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는 의, 평강, 희락이 있습니다. 자유와 안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상에 신정 국가를 세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독교 정당을 만들고, 기독교 단체들을 만들고 정치 세력화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땅에 신의 도성(CITY)을 건설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캐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없이 자기들의 교회가 중심이 되어 기독교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가졌습니다. 일부 기독교인들 역시 기독교 신앙과 이상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 건설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지상의 어떤 특정 지역에 특정 신념과 철학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이 우리 몸과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중심에 주님이 주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소유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정치 지도자, 슈퍼스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을 구합니다. 삶의 어떤 분야이든 어떤 일에서든 그 방면에 전문가를 신뢰하기보다 주님을 더욱 신뢰하고 주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0:4, 고린도후서 5:21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롬10:4),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여러분은 예배 때나 기도 시간 때만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요1:29), 우리를 죄로부터 씻으신(계1:5),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하신(골1: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를 선포하시고 믿는 자들 역시 의롭다 하십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들.

1. 새 힘을 얻기를 구하라.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새 힘을 얻게 하시기를 구하라.](롬15:32).

2.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구하라.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고전10:24). 중보 기도는 성도들의 의무요, 특권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엡6:18).

3.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나기를 구하라. [이와 같이 너희도 영적인 은사들에 열심이 있은즉 교회를 세우는 일에 뛰어나기를 구하라.](고전14:12).

4.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구하라. [아울러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께서 말씀 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신비를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또한 이것을 위하여 결박당하였나니](골4:3).

5. 지혜를 구하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6. 필요를 구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빌4:6).

7. 의를 구하고, 온유를 구하라. [지금까지 주의 공의를 행한 땅의 모든 온유한 자들아, 너희는 [주]를 찾으며 의를 구하고 온유를 구하라. 너희가 혹시 [주]의 분노의 날에 숨겨지리라.](습2:3). *딤전6:11

8. 은혜를 구하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청하노니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라.](말1:9a).

9. 위에 있는 것들을 구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거든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3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지니 이는 내일이 자기 일들을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기 때문이니라.](34).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지금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일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이것은 근원적 불안입니다. 흔히 성격이 낙천적이라 근거없이 미래를 즐겁게 보는 이들이 있고, 비관적이어서 늘 불안하게 보는 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욥과 같은 의인도 평소에 불안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앙을 당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 임하였고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내게 이르렀기 때문이라.](욥3:25). 욥은 평소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음 속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고, 말이 복과 재앙의 씨앗이 되어 현실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건전한 생각, 건전한 말이 중요합니다. 염려(thought)는 생각입니다. 근심도 생각입니다. 두려움도 생각입니다. 모두 다 생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떠함같이 그 사람도 그러하기 때문이라.](잠23:7a). 생각은 곧 그 사람입니다.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 염려하면 오늘 염려한 것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4:14, 6:19절을 보십시오. [오 예루살렘아, 네 마음을 씻어 사악함에서 떠나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으리라. 네 헛된 생각이 어느 때까지 네 속에 머물겠느냐?](렘4:14). 예루살렘이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씻어 생각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재앙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생각의 열매였기 때문입니다. [오 땅아, 들으라. 보라, 이 백성이 내 말들과 내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거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위에 재앙을 가져오리니 /이것은/ 곧 그들의 생각의 열매니라.](렘6:19).

이런 이유로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12:1). 그리고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너희의 생각의 영이 새롭게 되어](엡4:23).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두려움의 영이 아니요,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이기 때문이라.](엡4:23). 내일 일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을 삽니다. 매일 매일 필요를 구하고, 날마다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에 있을 뿐입니다. 내일은 오늘의 연속입니다. [자, 이제 너희가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한 해 동안 머물며 사고 팔고 하여 이득을 얻으리라, 하나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 (약4:13~14). [너는 내일을 자랑하지 말라. 이는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잠27:1). 우리는 내일을 자랑하지도 않고, 내일을 염려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잠3:28). 우리는 내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노년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은퇴 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섬깁니다. 주님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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