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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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말씀: 마7:16-20
요절: 마7:16

관상수는 보기에 좋아야 하지만 유실수는 열매가 많고 좋아야 좋은 나무입니다. 올리브 나무이든 포도나무이든 무화과나무이든 그 나무의 가치는 열매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는 법”에 대해서 많이 설교해 왔고,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시기를 늘 기도하고 소원합니다. 욥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내 뿌리는 물가에서 뻗어 나갔고 이슬이 내 가지 위에는 밤새도록 내렸으며] (욥29:19). 욥이 얼마나 풍성한 영적 생활을 누렸는지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욥과 같이, 다윗과 같이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로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 예가 많이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을 물가에 심은 나무(시1:3)입니다. 다윗은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이들이 강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물있는 강가에 심은 나무가 제 철에 열매를 맺는 나무 같으며 그의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리로다.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형통하리로다.] (시1:3). 주를 신뢰하는 이들 역시 그러합니다. [주를 신뢰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 곧 뿌리를 강가로 뻗은 나무 같아서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잎이 푸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 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리라.](렘17:7-8). 결국 열매를 많이 맺는 비결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과 주를 신뢰하고 주께 소망을 두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를 신뢰하는 자들은 푸른 올리브 나무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올리브나무 같으니 하나님의 긍휼을 영원무궁토록 신뢰하리로다.](시52:8). 의로운 자를 ‘종려 나무’ 또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다고 말합니다. [의로운 자는 종려나무같이 흥왕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자라리로다. 주의 집에 심긴 자들은 우리 하나님의 뜰안에서 흥왕하리로다](시92:12). 아내를 포도 나무, 자녀들은 올리브 묘목(시128:3)과 같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주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가시 나무’(아2:2) 같다고 말합니다. 나무는 한 민족을 예표하기도 하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심은 포도 나무로 나옵니다. 발람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그들이 골짜기 같이 퍼지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주]께서 심으신 알로에나무 같고 물가의 백향목 같도다](민24:6)라고 말합니다. 천년 왕국 때의 이스라엘은 수로 옆의 버드나무입니다. [그들이 풀 가운데 있는 것같이 솟아나며 수로(水路) 옆의 버드나무같이 솟아나리라.] (사44:4). 하지만 범죄한 이스라엘의 모습은 “광야의 히스나무같이”(렘48:6) 되고 말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 예는 동서양을 무론하고 흔하디흔합니다. 훌륭한 사람을 “거목-큰 나무”라고 칭송합니다. 주님 앞에 범죄한 사람들의 모습은 물 없는 나무요, 열매 없는 나무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불에 사르는 가시 나무’라고 하십니다. [백성은 불에 타는 석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사33:12). 주님은 좋은 나무, 부패한 나무를 예로 들어 사람 역시 나무와 비교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나무의 용도나 효용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주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자 합니다. 16-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썩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썩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7:16~20). 주님은 나무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말씀하십니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구별하는 법은 거짓 대언자들을 구분하는 방법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은 열매로 나무의 수종을 알 수 있고, 나무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듯이 그 사람의 어떠함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좋은 나무 vs 썩은 나무. 자,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나무는 좋은 사람입니다. 이는 태생이 좋은 사람, 혈통이나 육신이나 가문이나 학력이나 권세나 부의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이란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선한 교리의 말씀을 받아 들여,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받아 들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선한 말씀으로 양육하여 열매 맺게 하시는 사람이 바로 좋은 나무입니다. 썩은 나무(corrupt tree)란 부패한 사람, 변질된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나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패한/썩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냥 나무이기만 하다면 썩은 나무나 고목에서 어떤 열매도 나오지 않습니다. 좋은 열매든 악한 열매든 썩은 나무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때로 고목에서 꽃이 핀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고목에 날아든 꽃씨나 버섯 같은 균류가 썩은 나무를 거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부패한 나무란 부패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패한 나무(사람)가 ‘나쁜(evil-악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난 사람은 부패한 사람입니다. 선한 양심을 버리고 파선한 사람은 부패한 사람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급히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부패한 사람들입니다. 이익을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패한 사람들입니다(딤전6:5). 악한 사귐을 일삼는 사람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킨 사람들입니다.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15:33). 진리를 거역하는 자들은 부패한 자들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사람이 얀네와 얌브레입니다. 그들은 부패한 자들이었는데 주님은 이들을 썩은 나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이들도 진리를 거역하니 이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니라.](딤후3:8). 노아의 홍수 때의 사람들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 역시 부패한 사람들의 훌륭한 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부패 속에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잡혀서 죽도록 지어진 짐승들 곧 본래 이성이 없는 짐승들 같아서 자기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비방하므로 자기들의 부패 속에서 철저히 멸망을 당하며](벧후2:12). 주님은 이 시대가 노아의 때, 롯의 때와 같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극소수의 남은 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패한 나무들입니다.

부패 방지를 위해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도덕성 회복 운동을 전개하고, 언론의 지속적인 감시 체계를 가동하지만 정작 부패의 원인인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지 못하는 한 부패는 결코 단절될 수 없습니다. 말씀의 물, 성령의 새롭게 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 심성의 부패를 방지하는 유일한 치료제이지만 어떤 정부나 교육가나 종교인들이나 철학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부패의 원인도 부패의 치료제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한 마디로 자연인들의 마음은 부패한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무엇으로 치장을 하고, 꾸며 놓아도 본성은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결하게 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주를 떠나고, 말씀을 떠나면 그는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고 부패하게 됩니다.

누가 부패한 나무입니까? 우상을 따라가는 이들은 스스로 자신을 부패케 하는 이들입니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올라간    ? 사이 스스로 자신들을 부패시켜 버렸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였느니라.](출32:7). 모든 무신론자들과 불신자들은 아무리 지혜로운 것 같아도 다 부패한 자들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 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그들은 부패하여 가증한 일들을 행하였으니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시14:1). 부패한 자들 즉 썩은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부패한 자들이 맺는 악한 열매란 하나님의 길을 부패케 하는 것이요(창6:12),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부패시키는 많은 사람들 같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함에서 난 자같이, 하나님에게서 난 자같이 하나님의 눈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도 바울 당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들을 부패시키고 있었음을 봅니다. 바나바 서신이니 도마행전이니 유다 복음이니 등등의 위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들은 더욱더 성경을 부패시켜 70인역이니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등의 부패한 사본들을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부패한 자들은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란 말씀은 그들이 맺은 열매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인지 마귀의 사역자들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사역자들은 교회를 정치 체계로 만들었습니다. 거짓 일꾼들은 복음을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을 비유와 알레고리를 적용하여 은유로 해석하는 종교 서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이 맺은 열매는 로마 교황청, 종교 재판, 마녀 사냥, 성경 신자들 박해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마리아 숭배, 크리스마스, 부활절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른 사본에서 나온 성경을 불태우고, 사제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좋은 나무란 좋은 사람 즉 선한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막10:18, 눅18:19). 우리는 우리 육체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압니다(롬7:18). 주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요10:14). 그렇다면 주님을 영접한 이들이 선한 사람들입니다. 바나바는 선한 사람이었습니다(행11:24). 사도 바울은 평생 동안 선한 양심을 지키며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는 순간부터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선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빌1:6).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나오듯이 선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게 되며,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선한 양심을 붙들고, 선한 행위를 지속하게 됩니다. 선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5:22).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부드러움, 선함, 믿음, 온유, 절제. 선함의 열매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을 주심으로 맺어 가시는 열매입니다. 착한 체 한다고 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접붙여진 사람만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머리이시며, 뿌리입니다(롬11:18). 주님은 우리가 뿌리 내려야 할 땅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워지며 가르침을 받은대로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그 안에서 넘치도록 감사를 드리라.](골2:7). 좋은 열매를 맺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열매는 행위 이전에 주님과의 영적 관계성, 생명의 연합에서 오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 어떤 육신의 행위로도 열매를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16절입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16). 주님은 사람을 나무에 비유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흔히 사람들은 15절의 문맥을 무시하고 16-20절까지를 떼어서 이 말씀을 ‘구원의 판별법’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입술로 주님을 고백해도 행위의 열매를 보여 주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했다는 식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란 말씀에서 “그들”은 15절에서 말한 거짓 대언자들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으로 구원 여부를 판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거짓 대언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법으로 그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지만 육신의 일들을 합니다. 데마는 구원받은 성도였지만 현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딤후4:10).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구원받은 성도였지만 성령을 속임으로써 죽임을 당했습니다(행5:1-4).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너무나 육신적이어서 파당을 짓고 서로 물고 뜯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세상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음행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구원받은 성도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잘못된 판단입니다. 롯이나 삼손 등은 신약 성경의 조명이 없이는 그들이 의인 줄 차마 판단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므낫세는 유다의 왕중에서 매우 악한 왕에 속하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했다는 사실(대하3:12-13)은 역대기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고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경솔하고 위험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구원을 받았지만 좀처럼 술을 끊지 못해서 간증을 잃어 버립니다. 그는 술을 마실 때마다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가? 의심을 했고,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어떤 이는 구원을 받았지만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밝히지는 않지만 구원 받은 이후에도 악한 습관들에 끌리고, 여전히 옛 생활을 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정해 놓은 기준으로 남의 구원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눈에 차야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란 말씀은 거짓 대언자, 거짓 교사들, 마귀의 사역자들과 의의 사역자들을 구분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겉은 양의 옷을 입었는데 속으로는 약탈하는 이리들”(15)인 거짓 대언자들을 열매로 판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과 거짓의 판단은 겉모양이 아니라 열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전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어떤 나무인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참포도 나무이신 주님의 가지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접붙여진 가지들입니다. 본래 우리는 야생 올리브였는데 좋은 올리브 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 가지들 중에서 얼마가 꺾이고 야생 올리브나무인 네가 그들 가운데 접붙여져서 그들과 함께 올리브나무의 뿌리와 기름짐에 참여하게 되었을진대](롬11:17), [네가 본래 야생 올리브나무에서 잘려 본성에 역행하며 좋은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졌을진대 하물며 본래의 가지인 이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자신의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지겠느냐?](롬11:24).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꾸준히 거하기만 하면 그는 많은 열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다시 16절입니다.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16). 주님은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라고 하심으로써 그들의 말이 아니라 ‘열매’에 주목하라고 하십니다. 거짓 대언자들의 겉모습은 양의 모습입니다. 거짓 대언자들은 좋은 말과 빼어난 언변을 지니고 있습니다(롬16:18). 설교자들 중에는 말만 잘하고 말씀을 잘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강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지 않고 온통 사람들 이야기, 세상 이야기로 도배를 해 버리고는 설교를 마칩니다. 거짓 대언자들은 주님을 높이는 대신 자기를 높입니다. 사람들을 섬기는 대신 자기를 섬깁니다. 양들의 생명을 돌보는 대신 이익을 챙깁니다. 거짓 대언자들의 열매는 생명의 성장, 열매가 아니라 조직의 확장입니다. 영적인 복 대신에 현세의 물질적인 복을 추구합니다. 영적인 유익보다 육신의 유익을 추구합니다. 하늘의 소망 대신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둡니다.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란 말씀대로 영적 분간을 할 수 있습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 수 없듯이 거짓 대언자들로부터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볼 수 없습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아담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낸 나무들입니다. 가시나무는 말씀이 떨어져도 숨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나무입니다. [더러는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지매 가시나무가 자라서 숨막히게 하므로 열매를 내지 못하였고](막4:7). 가시나무는 자신을 높여 모든 나무들의 왕이 되고자 하는 나무입니다. 참조-사사기 9:8-15. 올리브, 포도, 무화과 나무는 주님의 백성을 예표하는 나무지만 가시 나무는 죄인들을 예표하는 나무입니다.

17절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썩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17).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핵심은 우리가 좋은 나무에 접붙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요15:4~5).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자는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처럼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 전에 먼저 좋은 열매입니다. 나쁜 열매, 육신의 열매는 아무리 많이 맺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의의 열매입니다. 화평의 열매입니다. 그런 열매는 주님을 통해서만 맺어질 수 있습니다. 열매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안 날로부터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텅 빈(vain) 가지, 열매 없는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온 세상에서처럼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도다.] (골1:6).

“썩은 나무”(부패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부패한 본성에서 좋은 말, 건전한 생각, 선한 행위가 나올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2:33-35에 [나무도 좋고 그것의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썩었고 그것의 열매도 썩었다 하든지 하라. 나무의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오 독사들의 세대여, 너희가 악하니 어찌 선한 것을 말할 수 있겠느냐?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寶庫)에서 선한 것들을 내고 악한 사람은 마음의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12:33~35).

18절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또 썩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18).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새 사람은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요일3:9). 그 속에 하나님의 씨가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악을 생각조자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겉 사람, 옛 사람, 육신의 본성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디오피아 사람이 자기 피부를, 표범이 자기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리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고 하셨습니다. 부패한 나무는 절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가장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일은 일시적으로 가장할 수 있지만 열매를 속일 수 없습니다. .

19절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나니](19). 침례 요한은 유대에서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며 말하기를, [이제 또한 도끼가 이제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지느니라.](마3:10)고 했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좋은 열매입니다. 입술의 찬양은 좋은 열매입니다. 감사와 희생은 좋은 열매입니다. 기도와 구제 역시 좋은 열매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 몸을 주님께 드리는 것도 좋은 열매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말씀의 선한 씨앗이 뿌려지고, 주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가능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땅만 버립니다. 하나님은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불 속에 던져 태우실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부패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버려져서 시드나니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우느니라.](요15:6). 어떤 사람도 썩은 나무 가지를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0). 이미 앞에서 다룬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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