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말씀: 마7:24-29
요절: 마7:24
오늘 이 시간은 지혜로운 건축자에 대해서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집이란 말 그대로 우리가 거주하는 건물로서의 집과 가족을 의미합니다. 좋은 집이라고 할 때는 건물로서 좋은 집, 값비싼 집이란 의미보다는 부부간에 사랑이 있고, 부모와 자녀들 간에 애정이 있고, 형제들 간에 우정과 친함이 있는 그런 집을 말합니다. 둘째, 이 우주를 집이라고 말합니다. [또 집마다 지은 자가 있으되 모든 것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히3:4). 주님은 이 우주 공간을 만드시고 그 안에 모든 것을 채워 넣으셨는데 이것을 집에 비유합니다. 셋째, 주님의 성전이나 교회를 주의 집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건물로서의 성전보다는 자신의 몸을 친히 성전이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집입니다. 넷째, 우리 몸을 집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몸은 흙집, 장막 집 등으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장차 입게 될 새 몸은 새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집을 짓는 건축자들입니다. 좋은 집, 훌륭한 집, 튼튼한 집을 짓는 방법이 있습니다.
좋은 건물을 사는데는 돈이 필요하겠지만 큰 집, 비싼 집을 가졌다고 좋은 가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집이 되는데는 영적 필요 조건이 있습니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주님께서 세운 집이 아니면 그 집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주께서 세운 가정이 아니면 분란이 일어나고 패망합니다.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을 보십시오. [이때에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오랫동안 전쟁이 있었으나 다윗은 점점 더 강하게 되고 사울의 집은 점점 더 약하게 되니라.](삼하3:1). 본래 사울의 집은 다윗의 집보다 훨씬 부자였고 강성한 집안이었습니다. 다윗의 집은 그다지 명문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의 집을 세우셨기에 점점 강성해 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주님 앞에 밀착하므로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자신의 집을 든든한 반석 위에 지었습니다.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는 자를 나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24). 주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집, 넓고 큰 집을 사기 위해서 돈을 벌고, 애를 쓰지만 주님은 돈이 아닌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꼭 권문세가나 재벌이 되어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는 한없이 초라하고, 형편없는 곳에 살지라도 영적 명문 집안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배출하고, 대학 총장이나 노벨 상을 받는 학자들을 배출하고, 거부들이 쏟아져 나와야 명망있는 집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집안을 부흥케 하고, 명문의 반열에 올리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란 누구입니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복된 일이지만 듣고 행하지 않을 때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야고보서 1:22-25,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거울로 자기의 본래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같으니라. 그는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길로 가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곧 잊어 버리거니와 누구든지 자유롭게 하는 완전한 법을 들여다 보며 그 안에 거하는 자는 듣고 잊어 버리는 자가 아니요, 그 일을 행하는 자니 이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으리라.](약1:22-25). 우리는 말씀을 들음으로서 믿음이 생긴다는 사실을 압니다(롬10:17). 말씀을 듣고 또 들음으로써 믿음이 자라납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좋은 성공을 거두게 되고(수1:8),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듣고 잊어버리거나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이들은 자신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믿음으로 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자기가 행하는 일에서 복을 받습니다.
자신을 세우고 가정을 반석 위에 굳게 세우는 일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써 시작됩니다. 갓 가정을 이룬 부부나 가장들은 특별히 이 교훈을 명심해야 합니다. 빨리 돈을 벌어서 생활의 안정을 꾀하는데 목표를 두면 그 집은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집을 세우려 하면 할수록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 집을 세워 주시도록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행하려 할 때 집은 견고한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어떤 여자가 주님을 향해, [...당신은 밴 태와 당신이 빤 젖이 복이 있나이다.](눅11:27b)라고 했을 때, 주님은 [...그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느니라.](눅11:28)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지키는 자들”이 복된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라고 할 때, 성경 신자들은 본능적으로 ‘듣고’와 ‘행하는’이란 말씀 사이에 “믿음으로”란 행간의 의미를 파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행하는 것은 자기 의와 종교적 행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들은 말씀이 믿음과 결합하지 못했음을 말합니다. 마음 속에 인생의 염려와 재물과 쾌락으로 숨이 막힐 때(눅8:14)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을 달게 들었지만 아무 열매가 없었던 사람 중에 하나가 헤롯 왕입니다. 그는 침례 요한이 하는 말을 달게 들었습니다. 헤롯이 음행과 탐욕으로 인해 형편없는 인간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요한의 말을 달갑게 들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여 그를 주시(注視)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많은 일을 행하고 그의 말을 달갑게 들었기 때문이더라.](막6:20).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 헤롯의 회심이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 다음 구절을 보면 헤롯은 요한의 목을 베어 버리는 것을 봅니다. 헤롯은 요한을 통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듣고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언제나 본문의 말씀을 한 글자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보지만 성경과 성경을 통해 행간의 의미까지도 읽어내야 합니다.
듣고 행하다! 누구도 듣고 들은 대로 다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듣고 믿을 때 믿은 것은 다 행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승리를 주며, 믿음이 행위를 낳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자들이 아닙니다. 모든 율법이나 계명을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무리 작고 사소한 율법을 세뇌가 될 만큼 듣고 외워도 결코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합니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명령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것은 그들이 생명 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도시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계22:14). “행하는 자들”이란 말 앞에는 [믿음으로, 사랑으로]란 말이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만큼이나 행위를 많이 강조하셨는데 이는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믿음과 행위"의 균형을 잡으라는 뜻이 아니라 믿어야 행할 수 있고, 행함의 동력이요 근거가 믿음이란 점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결코 자신의 생각대로 건축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처음 무엇인가를 건축한 사람은 가인입니다. 그는 도시를 건축 했습니다(창4:17). 도시를 세우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세웠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가인과 대조되는 한 건축자는 노아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을 것을 명하셨는데 노아는 모든 과정을 주님의 명령대로 지었습니다. 바벨을 건축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막을 지은 모세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지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지을 때, 세울 때 주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 계시와 조명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 전문가를 찾아 시공을 맡기지만 제대로 교회를 세우는데는 성경의 조명과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체들을 세우는 일이나 양들을 먹이고 양육하는 일이나 감독하는 일은 모두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지역 교회를 건설 회사에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성도들의 믿음과 행위로 세워집니다.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벧전2:5a).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강건하게 세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는 자를 나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하리라.](24). 지혜로운 건축자는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짓습니다. 결코 모래 땅 위에 짓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장막을 치는 사람이었지만 영적인 집을 짓는데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내가 지혜로운 주건축자로서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이 그 위에 세우되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3:10-11).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자신을 세우고,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주님은 친히 반석이 되십니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셨느니라.](고전10:4b). 고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리스도 위에 세움을 받을 때만 안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어떤 기초 위에 아무리 열심히 최신 공법을 이용해서 무엇을 세운다 해도 그것은 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그 집이 무너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그것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라.](25).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혀도 그 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석이신 주님위에 세운 교회는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이는 2000년 교회사가 이미 입증한 사실입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고 해서 그 위에 비가 내리지 않고 홍수가 덮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극심한 박해와 탄압이 있었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불어 부딪혔습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성도 개개인을 보십시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들은 다 박해를 받았습니다. 히브리서에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고문을 당하되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참으로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합당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떠돌아다녔느니라.](히10:34b-38)고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닥친 비요, 홍수요, 바람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기는 하지만 그대로 행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결코 거친 비바람과 홍수가 들이치지 않습니다. 태풍도 없고, 비바람도 없는 곳에 있는 집이 안전할지는 몰라도 튼튼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이곳 미국의 신자들은 참으로 평온하고 안전한 곳에 거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돈 버는데 바쁘고, 애들 교육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성도 개개인을 보십시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불 속에서도 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정금같이 단련을 받습니다. 홍수가 나도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솟아나는 섬처럼 우뚝 솟아 있습니다. 이는 살아계신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나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강들을 건널 때에 강들이 네 위로 넘쳐 흐르지 못하며 네가 불 속을 걸어갈 때에 타지도 아니하고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풍향과 정 반대로 서 있기 때문에 바람을 불지 않는 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바람이 불지 않는 따스한 양지를 그리워하지만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바람을 안고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반석은 내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 있는 말씀이신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반석인 주님은 건물이 기초가 되시며 모두 살아 있는 돌들로 만드셔서 그 무엇도 그 집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26-27절입니다. [나의 이 말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집이 무너져 그것의 무너짐이 심하였는지라.](26-27). 지혜로운 사람과 달리 어리석은 사람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습니다. 듣긴 하지만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행할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집을 반석이 아니라 모래 위에 짓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육신을 신뢰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성령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일로 믿음을 대체하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이들이 세운 집은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져도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는 순간 모두 무너져 버립니다.
성경은 누가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까?
첫째, 반석이 아니라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자입니다. 이는 말씀을 들었지만 행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와 똑 같습니다(시14:1).
둘째, 등불은 가지고 가지만 기름은 없는 자입니다(마25:3).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믿음은 있지만 행함이 없는 자들 역시 이 부류입니다. 주님은 이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속이 아니라 겉만 치장하는 자들입니다(눅11:40). 주님은 이들을 위선자라고 말씀하시며 동시에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아, 겉의 것을 만드신 이가 속의 것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눅11:40). 주님은 겉이 아니라 속을, 일보다 마음을, 행위 이전에 믿음을, 결과보다는 동기를 먼저 보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십니다.
넷째,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해 부요하지 못한 자들입니다(눅12:21). 주님은 이 땅에 육신을 위해 보물을 쌓을 뿐 하나님의 왕국과 의를 구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너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자입니까? 어리석은 자입니까?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세상에 모두 쏟아 붓고 어느덧 정신을 차리면 늙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재물 뿐만 아니라 시간을 사서 아끼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다섯째,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들입니다(눅24:25).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눅24:25). 주님은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해 “너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십니다(고전15:36).
2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놀라니](28). 주님이 산 위에 오르셔서 가르치신 이 말씀들은 듣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충격과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이런 가르침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친히 말씀들을 선포하심으로써 듣는 이들의 마음에는 깊은 대못이 박힌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첫째, 은혜가 넘칩니다. [왕은 사람들의 자녀들보다 더욱 아름다우시니 왕의 입술에는 은혜가 넘치나이다.](시45:2a). 주의 말씀은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4:22, [모두가 그분에 대해 증언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온 은혜의 말씀들에 놀라서 이르되...](눅4:22a).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면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로 우리는 모든 말에 은혜를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은혜로운 말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지혜로운 사람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려 하나니](전10:12)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은혜를 끼치는 말들을 하고 농담, 어리석은 말들, 희롱하는 말들, 부패한 대화는 입 밖에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부패한 대화는 결코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쓸 좋은 것만을 말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은혜를 끼치라고 해서 아첨하거나 칭찬하는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속에 주의 은혜를 입고, 은혜의 말씀과 은혜의 영으로 충만하면 덕을 세우는 좋은 말을 하게 됩니다. [너희 말을 소금으로 간 맞추어 항상 은혜가 있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바를 알게 되리라.](골4:6).
둘째, 깜짝 놀랐습니다. 마태복음 13:53-54, [예수님께서 이 비유들을 마치신 뒤에 거기를 떠나 자기 고향으로 들어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그들을 가르치시니 그들이 깜짝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능력있는 일들이 어디에서 났느냐?](마13:53-54). 마가복음 1:21-22,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즉시 안식일에 그분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그들의 그분의 가르침에 깜짝 놀라니 이는 그분께서 권위를 가진 자로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서기관들과 같이 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더라.](막1:21-22).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듣는 이들은 벼락을 맞은 듯 한 충격을 입었던 것입니다. 찰스 피니 목사님은 설교를 시작하면 마치 성도들이 전기에 감전된 듯 충격을 받고 고개를 떨구었다고 합니다.
셋째,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리스도를 친히 {주}라 불렀은즉 어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보통 사람들이 그분의 말을 즐겁게 듣더라.](막12:37). 주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설교 분위기는 은혜와 더불어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즐거움이 가득하게 됩니다.
넷째,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에 열심히 주의를 기울이므로 자기들이 행할 바를 찾지 못하였더라.](눅19:48). 우리는 듣는 것에 주의해야 하며, 들은 것들에 주의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지금까지 들은 것들에 더 열심히 주의를 기울여 언제라도 그것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히2:1).
29절입니다. [이는 그분께서 권위를 가진 자로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서기관들같이 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더라.](29). 주의 말씀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아마도, 글쎄,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등등의 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시며, 말씀 모두가 진리이기에 무엇이든지 확실하게 단정적으로 선포하는 것이었고, 그 말씀에는 사람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동반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7:45에 주님을 잡으러 갔던 관속들이 그냥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관속들이 대답하되, 아무도 이 사람처럼 말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요7:46). 주님은 서기관들과 달리 성경 해석이나 이론이나 견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깜짝 놀라니 이는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셨음이더라.](막1:22). “권위 있는 자와 같고”란 말씀은 이미 우리가 산상수훈을 읽고 공부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스며 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권능과 신성을 충분히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주의 말씀을 접할 때 은혜롭고, 경이롭게, 즐겁게, 권위로써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로써 산상 수훈을 마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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