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실체
요절: 히브리서 11:1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란 자극적인 문구가 영화로 연극으로 공연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작가(양귀자 원작)의 책 제목이었는데 내용을 전혀 몰라도 그 제목의 자극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머리 속에 쏙 들어오는 그런 명구였던지라 한번 듣고 본 이들은 오랫동안 그 말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성도들에게 이 말은 꼭 에덴의 동산 중앙에 있는 금지된 나무의 실과를 먹는 아담과 하와를 연상시킵니다. 사람들의 일그러진 욕망은 언제나 금지된 것들을 바라고 소망합니다. 죄인들의 죄의 결과가 사망이요, 지옥이란 사실을 알지만 죄의 쾌락을 즐깁니다. 잠언 9:17에 [도둑질 한 물이 달고 은밀히 먹는 빵이 맛이 있다, 하기 때문이로다.](잠9:17)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죄에 물든 죄인들의 욕망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욕망, 야망, 열망, 희망, 소망, 앙망, 선망, 갈망 등 우리 말에는 이와 관련된 어휘들이 매우 발달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얻고자 소망합니다. 자신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 그런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과 탐욕은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그 출발점은 극히 미세합니다. 때로 vision이란 이름으로 둔갑한 영적 야망과 욕망은 교회를 망치고, 성도들을 죽이는 독소가 됩니다.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히 동반되는 말씀(단어)이 바로 ‘소망’입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경 어휘들이 세속의 작가들과 철학자들에 의해서 너무나 왜곡되어 말해지는 터라 영적인 어휘들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역시 많이 부패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표적인 어휘가 ‘사랑’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세상이 말하는 사랑은 소리가 똑 같아도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본질적인 개념이나 성격 역시 완전히 다릅니다. 믿음 역시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세상이 말하는 믿음은 그 사전적 정의나 이해가 같지 않습니다. 자기 확신, 철학적 신념, 신조는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형성된 가치관만이 믿음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주어진 은사요, 열매만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라고, 강해지고, 열매 맺고, 보상을 얻고, 일을 하며, 원수로부터 공격을 막는 방패(믿음의 방패)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란 한 마디 말을 할 때에 참 믿음, 구원하는 믿음, 담대한 믿음, 보상을 얻는 믿음, 회개하는 믿음, 바라는 믿음 등등 믿음을 수식하는 말들을 담아서 말을 합니다. 이는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신학자들이나 세상이 말하는 믿음과는 마치 성경이 계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이교도들이 생각하는 예수님만큼 그 의미가 다릅니다. 거짓 교사들, 거짓 대언자들은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마음의 능력(정신력, 의지력, 잠재의식)을 믿음이라고 미혹합니다. 이들은 믿음이란 말을 적극적 사고방식, 잠재 의식을 깨우고, 잠재 능력을 일으키는 것 등으로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이들은 마음의 힘, 즉 정신력을 믿는 것입니다. 마음의 신념이 현실로 드러나게 하는 것을 믿음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는 동양 종교나 고대 신비 종교들에서 흘러 내려온 마귀의 종교입니다. Mind Control, 선, 단, 기수련, 요가.... 우리는 마음(정신)에 있는 어떤 신비적 심령의 능력을 촉진시키는 신념을 굳게 붙잡거나 그런 능력을 활용하는 능력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말합니다. 소망은 어떻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소망과 세상이 말하는 소망은 그 뜻이 하늘과 지옥만큼이나 크게 다릅니다. 저는 많은 이들에게 [믿음은 바라는(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요](히11:1)란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적었습니다. 너무나 유명한 구절인지라 설교를 통해서 자주 많이 들어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이외로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초 어휘들에 대한 성경적인 조명이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은혜, 긍휼, 영광 등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어휘들의 정확한 용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고 알아 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 우리는 이 시간 성경을 통해서 믿음과 소망의 관계를 바르게 알고 [믿음과 소망]이 마음 속에 차고 넘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할 때 ‘바라는 것-소망하는 것(hoped for)’은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자신의 소원이나 바라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무엇을 갖고 싶다는 등등의 바라는 것들이 많습니다. 누가 내게 ‘소원을 말해 보시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소원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원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얼마 전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성도들이 자신의 소원을 담은 편지들이 바다에서 자루에 담긴 채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삶의 절박한 일들에 대해서 소원을 적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게 해 달라는 편지도 있었고,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고 가정에 충실하게 해 달라는 편지도 있었고, 병을 고쳐 달라는 편지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자신의 바람(desire)을 편지에 적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쓴 것들을 ‘나의 작은 소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간절한 바램을 자신의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정치가들은 좀 더 큰 권력, 더 오랫 동안의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재력가들은 좀 더 많은 재물을 얻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장수를 소망하고 어떤 이는 건강을 소망합니다. 목회자들은 더 큰 교회를 소망하고, 더 많은 성도들을 원합니다. 연예인들은 좀 더 많은 인기를 바랄 것이고,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좀 더 높은 시청률을 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여론 조사에서 약간만 떨어져도 불안해하고 삶의 의욕을 잃습니다. 연주회에 선 연주자는 관객의 숫자나 박수 소리의 크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라는대로 되지 않을 때 낙담하고 크게 상심하게 되며 원하는대로 되는 것을 소망이 이루어졌다라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라고 말할 때 바라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소원이 소망은 아닙니다. 물론 시편에 [너는 또 [주]를 기뻐하라. 그분께서 네 마음의 소원들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라.](시37:4)란 말씀과 [그분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시145:19a)란 말씀이 있지만 소원이 소망은 아닙니다. 열망이나 욕망이나 야망은 소망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망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으면 성경은 그것을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등으로 표현합니다. 욥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과 마주 대면하며 자신을 변론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과 의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소원은 자식을 하나 얻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의 소원은 형과 자신의 처지가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의 소원은 요셉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이고자 모의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소원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 되는 것이었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소원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소원은 예수님 덕분에 ‘더 큰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소원을 소망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이 오고(롬10:17), 믿음을 통해 소망이 옵니다(히11:1).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을 때 그가 가진 바램은 소망이 아니라 ‘정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욕심, 야심에 지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욕망과 소망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 소망이 아니면 그것은 자신의 꿈이요, 기대요, 욕망일 수는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꿈, 소망은 가능성에 근거를 둡니다. 가능성이 있으면 희망이 있는 것이고, 가능성이 사라지면 희망도 사라집니다. 결국 가능성을 소망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소망은 상상력이 아닙니다. 꿈이 아닙니다. 망상이 아닙니다. 상상과 소망(바라는 것)은 그 말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상상력은 자신의 욕망을 기저로 합니다. 자신의 꿈이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것입니다. 말씀이 제시하는 것을 믿고 바라는 것이 소망입니다. 고로 소망은 믿음과 떨어질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소망도 없습니다. 소망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소망하는 것의 실체가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씨 뿌리는 농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씨를 뿌리는 순간에 ‘수확’을 소망합니다. 밭을 가는 자 역시 수확을 소망합니다. 수확이란 소망의 실체가 바로 씨앗입니다(고전9:10). 마찬가지로 말씀의 씨앗이 마음속에 뿌려질 때 우리 속에 생겨나는 무엇이 바로 ‘소망’입니다. 정신력이나 마음 속 상상으로 열매를 바란다고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들만이 수확의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망이란 실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성경이 말한 대로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가 믿음”이라면 ‘믿음으로 바라는 것’만 소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 다시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요.](히11:1). 믿음이란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 하나님이 행하실 일들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미래의 일들이 약속으로, 예언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듣고 믿을 때 마음에는 자연히 소망이 생깁니다. 예언의 성취를 기대하고 그 결과를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대로 행하실 분이시란 사실을 믿기에 인내로 기다리는데 이것이 ‘소망’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다시 오심은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님의 재림을 ‘복된 소망(딛2:13), 영광스런 소망, 산 소망, 앞에 놓인 소망’ 등으로 말합니다. 주님의 오심이 우리의 소망이란 것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런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으면 소망은 없습니다. 소망은 믿음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이교도들에게 소망이 있습니까? 부자 되고 싶은 소망, 성공하고 싶은 열망,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소망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소망이 아니기 때문에 소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더니”(엡2:12)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입게 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광스런 몸의 변화를 믿습니다. 주님 오시는 날 우리는 모두 홀연히 다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듣고 믿을 때 우리는 ‘소망’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이 몸이 죽어도 다시 부활하고 영광스런 몸을 입는다는 말씀을 믿기에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믿음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소망의 실체입니다. 믿음의 내용이 곧 소망하는 것들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요]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것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변화입니다. 영광스런 몸을 입는 변화를 소망합니다. 이런 소망은 뜬 구름 잡는 바램이나 종교적 허상이나 공상이나 황홀경의 체험이나 어떤 희망 사항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확고한 말씀을 통해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 우리 속에 실체가 주어지고, 증거가 주어진 것입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나듯이 소망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주어집니다. [또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인함이니 이 소망은 너희가 전에 복음의 진리의 말씀 안에서 들은 것이라.](골1:5).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은 우리가 스스로 갖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살후2:16). 여러분은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믿을 때 겸하여 소망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소망 역시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늘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믿을 때 소망하는 것의 실체를 가진 것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구속을 소망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로 그들이 믿고 소망했던 것은 메시야 왕국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행28:20), 의의 소망(갈5:5)이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과 능력이 우리 몸을 빛으로, 향기로, 열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의 소망(골1:27)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이는 하나님의 인격의 정확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이루시는 것입니다(롬8:28). 이 소망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시기까지] 산고를 겪는다(갈4:19)라고 말합니다. 자, 보십시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소망한 것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 장에 믿음의 본을 남긴 이들이 소망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이 세우실 왕국이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이었습니다(히11:35). 하나님이 주실 상급이었습니다(히11:26). 하늘의 본향이었습니다(히11:16). 이들이 소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신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생긴 것들입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을 소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것들을 바랐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입니다. 이런 예들을 통해서 믿음이란 소망하는 것들의 실체란 성경적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창22:17)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아들이라고는 이삭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실 것을 바라는 것, 주님이 주신 약속을 내 마음에 받아서 품고 소유하면 그것을 일컬어 ‘소망’을 지녔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만 믿음이 오듯이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소망이 주어집니다. 믿음과 소망의 출처는 동일합니다. 믿음과 소망의 근거 역시 동일합니다. 믿음의 창시자시오, 완성자이시며,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소망’ 그 자체이십니다. 결국 소망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의 소망이신 주님’(딤전1:1)을 바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주는 나의 소망이시니이다. 오 {주} [하나님]이여, 주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니이다.](시71:5)라고 말합니다. 내 안에 소망이 있다는 것은 소망이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난 소망, 주님께 둔 소망만이 참된 소망입니다. 시편 31:24을 보십시오. [[주]께 소망을 둔 모든 자들아, /너희는/ 크게 용기를 내라. 그분께서 너희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로다.](시31:24). 주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주님이 하신 말씀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행하실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소망은 미래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내로써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기다리겠나이까?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주의 긍휼을 기다리고, 주의 도움을 기다리고, 주님의 은혜를 기다립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가 주께 소망을 두는대로 긍휼을 베푸십니다. [오 [주]여, 우리가 주께 소망을 두는 대로 주의 긍휼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33:22). 주님을 신뢰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께 소망을 둘 때 기도를 들으십니다. [오 [주]여, 내가 주께 소망을 두었사오니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들으시리이다.](시38:15).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고, 믿을 것이 없고, 기대할 것이 없을 때에 우리는 주의 말씀만이 나의 소망임을 기억합시다. 기록된 말씀 외에는 아무 것도 참된 것이 없습니다. [내가 아침이 밝기 전에 먼저 부르짖고 주의 말씀에 소망을 두었사오며](시119:147)란 다윗의 고백대로 우리는 주님과 주의 말씀에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소망은 내 기분에 따라 있었다가 없었다, 생겼다가 말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전문가들의 판단이나 예지력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 성취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과 마찬가지로 소망은 계속적인 것입니다. [오직 나는 계속해서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양하리이다.](시71:14). 이것이 영적 제사장인 저와 여러분들의 결단이 되기를 빕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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