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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

말씀: 히브리서 11:17-19 
요절: 히브리서 11:17-19


믿음의 삶을 살 때 성도는 누구나 다 시험을 받게 됩니다.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시험이 성도들에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고전10:13). 먹을 것과 입을 것, 질병, 연약함 등은 모든 사람이 당하는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은 성도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적인 시험 외에도 믿음의 시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있는 모든 시험은 자신의 욕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약1:15). 대부분의 성도들이 일반적으로 당하는 시험 역시 육신의 정욕에 이끌리기 때문에 받는 시험입니다. 야고보 1:13-14, [아무도 자기가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을 때에 시험을 받나니](약1:13-14). 마음의 탐욕은 믿음을 파괴하고, 자신을 찌릅니다.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숨을 막아 버립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이 겪지 않는데 성도들만 겪는 시험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마귀는 시험하는 자로서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마귀는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시험했고, 욥을 시험했고, 광야에서 주님을 시험했으며, 베드로와 제자들을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성도들을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특히 마지막 날들에 마귀들의 시험은 더욱 강력해 집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들과 이적(異蹟)들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그 선택받은 자들을 속이리라.](마24:24) 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대언자들이 일어나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할 수만 있으면 선택받은 자들도 유혹하리라.](막13:22). 여기서 우리는 말씀과 말씀을 비교해 볼 때 마귀의 시험은 속임수와 유혹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하고 분별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에 속지 않기 위함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이 받는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악으로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때로 몇 가지 목적으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믿음을 단련할 목적으로 시험하시고, 시험을 이긴 자들에게 상급을 주십니다(약1:12).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고 순례의 삶을 사는 동안 주님의 은혜와 긍휼, 섬세한 보살핌과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시험을 받은 적은 있습니다. 두 차례나 아내를 누이라 속인 것이나 사라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몸종 하갈을 통해 아이를 낳은 것 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은 후에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시험이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아담은 죄없이 지음 받았지만 시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시험을 이길 때 그는 의롭게 됩니다(약2:21). 창세기 22:2에는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주는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태우는 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창22:2). 이 시험은 육신의 정욕에 이끌린 시험이 아닙니다. 이 시험은 마귀의 시험이 아닙니다. 이 시험은 주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시험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은 비로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알게 되었다(창22: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시험하시는 데는 이런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목적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시험하실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감독이 선수들에게 미리 ‘시험’을 예고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임하신 것은 너희를 시험하사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출20:20).

둘째,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주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아니하는지 알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관심 바로 이것입니다. [너는 [주]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너를 인도하신 그 모든 길을 기억할지니 이것은 그분께서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또 너희가 그분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그렇지 아니한지 알고자 하심이라.](신8:2). 하나님께서 알고 싶어하시는 것은 우리 마음 속의 중심입니다. 말로만 하는 믿음, 입술로만 하는 사랑, 형식적인 율법 준수 등등으로 일관할 때 주님은 우리를 시험하사 우리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 주시고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뜻, 주의 명령을 지키려 하는지 그 의지를 시험하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주의 뜻을 행하려 하면” 하나님에게서 난 가르침과 그렇지 않는 것은 알게 됩니다(요7:17).

셋째,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려 하심입니다. 거짓 대언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많은 것은 말세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에 그런 자들을 허락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성도들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너는 그 대언자나 그 꿈꾸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이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 너희를 시험하시느니라.] (신13:3).

이런 이유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헌금이나 가산이나 양이나 염소를 바치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두려워하는지,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하나님이 주신 축복만을 사랑하는지 알고자 하셨습니다. 흔히 어린아이들은 아버지의 손을 붙들기보다 아버지의 손에 주어진 선물을 붙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만한 것들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들일지, 사랑하는 아내일지, 힘써서 벌어들인 돈일지, 평생을 쌓아온 명예일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 시간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 해 보시고 처리해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나가 자식 사무엘을 성전에 맡긴 것처럼 어딘가에 맡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손으로 아이를 죽여서 태우는 번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이는 정말 끔찍한 명령입니다. 이는 이교도들, 특히 CULT들 사이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리아 땅에 있는 산을 지정해 주셨습니다. 이는 걸어서 3일 걸리는 여행길입니다. 3일이면 생각이 수 만 번은 뒤바뀔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이 눈 딱감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일을 저지를지, 믿음으로 순종하는지 충분히 시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청년들과 함께 태우는 헌물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날 때, 이삭은 이미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창22:2). 믿음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고 순종한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 아이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을 제단에 바쳐 죽이면 아브라함에게 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씨’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약속으로 받은 씨를 죽이라고 하시면 모든 약속이 다 무효화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브라함을 가장 뒤흔드는 것은 아내 사라가 아닙니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이방 족속들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가장 뒤흔들어 놓는 것이 마귀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일 수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열심히 성경을 읽다가 갑자기 마음속에 찾아드는 불신과 회의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말씀이 모순처럼 보이고 느껴질 때, 나의 상식과 이성을 송두리째 뒤엎을 때 실족하기 쉽습니다. 어떤 때는 주일 설교가 나의 믿음을 뒤흔듭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주님의 말씀은 전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어 보입니다. 믿음은 이성을 넘는 순종을 요구합니다. 여기에는 죽음 이후에 있게 될 부활 신앙이 필요합니다. 약속을 믿고 순종할 때 지각과 이성을 초월하는 신앙으로 인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네가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독생자)".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자식이 이삭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몸종이었던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이 있었고, 후에 얻은 그두라 사이에서 난 자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생자(only begotten son)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육신을 의지해서 낳은 자식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아들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방법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지 않는 모든 일들은 육신의 일이요, 썩을 것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몸으로 행한 많은 일들이 불타는 슬픔을 맛볼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은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갈6:7,8).

18절을 보겠습니다. [이 아들에 관하여는 주께서 전에 이르시되,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르심을 받으리라, 하셨으니](18). 아브라함의 믿음은 단번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25년 동안 사라와 자신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이삭의 출생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삭의 출생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 정확히 믿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해석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내 보낼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1:12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 아이나 네 노예 여자로 인하여 이 일을 네 눈앞에 근심거리로 여기지 말고 사라가 네게 말한 모든 것에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이는 네 씨가 이삭 안에서 부름을 받을 것임이니라.](창21:12).

a.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겨납니다.

b.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강해집니다.

c.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깊이 뿌리 내려집니다. 아브라함 100세가 되기 전까지 이렇다할 만한 믿음이 없었지만 그 이후의 삶은 믿음의 아버지라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심지어 죽은 자들로부터 능히 그를 일으켜 세우실 줄로 생각하였으므로 또한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그를 모형을 받았느니라.](19). 죽은 자와 같았던 아내 사라와 자신으로부터 아들을 낳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아들을 죽인다 해도 다시 살리실 수 있음을 믿었습니다. 부활 신앙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죽음입니다. 부활은 그들의 위협을 하찮게 여깁니다. 죽여도 다시 산다면 죽이려는 사람이 오히려 겁을 먹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대속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22:7,8은 아브라함이 선지자였음을 말해 주는 귀한 구절입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태우는 헌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태우는 헌물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친히 예비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십자가에서 죽으신 죽음과 흘리신 피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완전히 해결해 놓으신 어린양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신앙이 바로 대속의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시고, 연약함을 담당하신 주님께서 다른 무엇을 담당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말 어렵고 힘든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주님은 “너희 짐들을 주께 던져라.”(Cast out thy burdens)고 말씀하셨습니다. 법적인 문제를 변호사에게 일임하듯이 삶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일임하시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십시오. 주님은 지난 6,000년 동안 나와 같은 사람을 한 두 번 다루어 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다루는데 실패가 없으신 전문가이십니다. 재정 문제, 건강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무슨 문제이든 주님께 맡겨 보십시오. 주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성도들을 결코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시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모형으로 받은 것- 구약 성경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모형이 많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들을 주의깊게 공부하면 영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형입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창22:2). 리브가는 교회의 모형입니다. 엘리에셀은 성령의 모형입니다. 이삭은 청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무를 지고 갔습니다. 이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창22:6). 아버지 아브라함이 칼을 잡았을 때,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는 소리 지르거나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모습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만족으로 삼았던 모습이 동일합니다(창22:9). 이삭은 번제에 쓸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속죄를 위한 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삭은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진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 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왜? 라고 이유를 묻지만 이유를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여, 이 시험이 언제쯤 끝나겠습니까? 언제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물어도 그 때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이 어떻게 내 안에 이루어 지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아들들답게 동일한 믿음으로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믿었지만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서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땅을 얻는지 몰랐습니다. 그는 언제 자식을 얻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유를 물어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오랫동안 동행하며 점점 하나씩 알아 나가게 됩니다.

결론

히브리서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믿음을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은 ‘모른 채’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몰랐습니까?

  •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8-10). Not knowing where

  •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떻게 죽은 자와 같은 자신과 아내 사이에서 자식이 생길 수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낳았습니다(11-12). Not knowing How

  •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언제 받을지 알지 못하였지만 믿었습니다(13-16). Not knowing when

  •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왜 바쳐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Not knowing why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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