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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 THE WORD


믿음으로 이삭은

말씀: 히브리서 11:20
요절: 히브리서 11:20

우리 말 속담 가운데 권력은 십년을 유지하기 어렵고 부자는 3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부유한 아버지에게 상속을 받은 아들이 그 부를 잘 지키거나 더 큰 부를 일구어 내는 것이 극히 드물다는 것입니다. 이는 물질의 상속 뿐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서도 비슷해 보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탁월한 믿음의 사람들이 그 믿음을 자손대대로 이어갔던 예를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이는 단지 가정교육의 문제로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탁월한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사무엘의 아들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믿음의 용사였지만 솔로몬의 믿음은 다윗보다 못했고, 그 아들 르호보암에 이르면 파산이 나고 맙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그의 아들 므낫세는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밑에 위대한 믿음의 아들이 나오는 예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저런 위대한 믿음의 사람 밑에 ‘패륜아’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은 예는 허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4대에 걸쳐 믿음의 명맥을 유지하고 꽃을 피운 사람이 아브라함과 그 자식들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4대에 걸쳐 모두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란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실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시고 생명의 때가 되어 세상에 태어났는데 구약에서 수태고지를 받고 태어난 최초의 인물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삭은 초자연적인 출생을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아브라함과 어머니 사라가 육체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태가 죽어 버린 90세의 할머니였던 사라와 백 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창18:14a)고 말씀하시며 자식을 낳을 것을 말씀해 주셨고, 죽은 자 같았던 상태에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고대의 어느 민족의 신화나 설화 가운데 신화적인 탄생에 대한 기사 없이 태어난 영웅은 없습니다. 그러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영웅들의 모습과 이삭의 모습은 너무나 다릅니다. 이삭은 믿음의 영웅이었지 세속의 사람들에게 영광을 떨친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히브리 민족을 위해서 어떤 큰일을 했다거나 용맹과 지혜를 사방에 널리 떨쳤다거나 등등의 일을 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삭은 무려 180세란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아버지 아브라함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며 아버지가 걸었던 나그네와 순례자의 삶을 그대로 배우고 계승한 것이 전부입니다.

자 보십시오. 이삭을 히브리 민족의 기초를 낳은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기에는 조금 어색합니다. 히브리 민족이 살아 갈 영토를 정복했다든가 인구를 엄청나게 늘려 놓았다든가 군대를 만들었든지 법률을 정비했다든가 등등의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얻어 175세에 죽었으므로 그는 75년간 아버지가 걸었던 믿음의 본을 따라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받은 모든 것들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었습니다. 이삭은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끝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점에서 믿음의 전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의 복을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유일한 ‘상속자’요 ‘전수자’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 뿐 아니라 세대 간에 믿음을 전수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시는 까닭입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은 타 민족, 이교도들에게 말씀을 전할 의무는 없었지만 자녀들에게는 반드시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또 그것들을 너희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서 걸을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것들에 관하여 말하고](신11:19).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 날 너희 가운데서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들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신32:46). 이 점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훌륭한 믿음의 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를 증거할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전달해 줄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애써야 합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들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말하며 그들의 자녀들은 다른 세대에게 말할 것이니라.](욜1:3).

이삭이 한 일은 약속의 상속자로서 산 것이 전부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독생자였습니다. 육신의 형으로 이집트 여인 하갈에게 태어난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삭’과 약속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이삭이 상속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상속자. 이삭은 개척자가 아니라 상속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 받는 상속자입니다. 우리 주님은 만물의 상속자이십니다. 우리 역시 유업의 상속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모두 받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니라.](갈4:28). *약속의 자녀.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인 동시에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입니다.

누구든지 ‘이삭’이란 이름을 들을 때면 ‘아브라함의 아들’이란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삭은 독자적으로 홀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항상 아버지 아브라함과 더불어 드러나는 이름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열매요, 결과로 주어진 상급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존재 없는 이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육체적인 생명의 문제 뿐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영역이나 약속의 상속에서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은 전적으로 아브라함에 의존된 인생입니다. 이삭은 모든 면에서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순종했는데 심지어 아버지가 자신을 묶어서 제단에 올려놓을 때에도 어린 양처럼 잠잠했습니다. 이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동시에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본입니다.

창세기 26장을 펴 보십시오. 아버지 아브라함 때 들었던 큰 기근과 같은 기근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 때 주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말해 주는 땅에 거하라.’(창26:2) 라 말씀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은 떠나야 하지만 ‘약속의 땅’에는 꾸준히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는 옛 생활, 이전 사람의 습관 등은 모두 떠나야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말씀에도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요8:31). 믿음 안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랑 안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심한 기근이 왔다는 이유로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믿음 안에 꾸준히 거할 때 시험과 시련은 필연적입니다. 이삭은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 때에 무슨 문제가 터졌습니까? 그곳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리브가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아내를 빼앗길 위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잘못하면 이삭은 아내로 인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과대망상증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내를 “내 누이라”(창26:7)하고 거짓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이런 어려움을 모두 보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면서 겪는 어려움, 시험, 실패, 넘어짐 등으로 인해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피할 길을 내시고, 건져 주십니다. [...오직 하나님은 신실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또한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하여금 능히 그것을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b).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시험의 시간이 끝났을 때 주님은 그를 복 주셨습니다. 기근을 겪었던 이삭이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은 백 배의 수확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6:12, [그때에 이삭이 그 땅에서 씨를 뿌려 그 해에 백 배를 받았고 주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 사람이 크게 되어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심히 큰 자가 되었으니 그가 양 떼와 소 떼를 소유하고 종들이 심히 많았더라.](창26:12-14a). 열매를 얻고 더 풍성히 얻는 비결은 주 안에, 주의 말씀 안에 꾸준히 거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요15:5a)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기근의 때에 믿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땅에 거했던 이삭과 같이 우리는 언제나 꾸준히 주님 안에, 주의 말씀 안에 거할 때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삭은 다툼과 싸움을 모르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크게 되고 부자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시기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들을 막아 버렸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강력한즉 우리에게서 떠나가라”(창26:16). 이삭은 두 말하지 않고 거기를 떠났습니다. 자신이 터전을 잡은 곳을 떠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만 해도 견디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땅이 전부이던 시대에 양떼와 소떼를 치던 땅과 우물이 있던 곳, 밀을 거두던 경작지를 두고 떠나는 일은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 땅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나그네요, 순례자로서 삶이 무엇인지 배웠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한 도성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 배의 수확을 얻은 좋은 땅이라고 아까워하고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피를 흘리며 싸워서 지키는 길을 택할 만하지만 이삭은 말 다툼도 하지 않고 늘 조용히 떠나고 우물을 파고, 또 떠나고 우물을 팠습니다.

창26: 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창26: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가서 창26: 23 -이삭이 거기를 떠나.

어떻게 보면 이삭은 끊임없이 쫓겨 다니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없다면 이런 삶은 비참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함께 하심이 있다면 이 삶은 순례자의 삶입니다. 그는 어디에 가든지 우물을 파면 물이 솟아 나왔고, 농사를 지으면 소출을 얻었고, 양떼와 소떼는 불어났습니다. 이는 환경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보여 준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터전을 서너번 옮기고 빼앗기면 망해 버립니다. 이삭을 쫓아내었던 아비멜렉은 이삭이 망할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여전히 건재했고, 어디를 가든지 쇠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이삭이 단지 이삭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고백했습니다.

창26:28 -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창26:29 - 이제 너는 주께 복을 받은 자로다.

간증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 입으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우리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란 사실을 보는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이삭은 다가올 일들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으며](20). 히브리서 기자는 많고 많은 이삭의 행적 가운데서 그의 말년에 자식들을 축복한 장면을 ‘믿음의 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삭의 믿음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실수와 잘못이라면 단연 말년에 있었던 이 사건입니다. 그는 당시 눈이 어두워 앞을 보지 못했던 상태입니다. 문제는 그의 육체가 아니라 그의 영적 분별력도 함께 무뎌진데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와 야곱 중에 에서에 복을 상속해 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리브가를 통해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겠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25:23)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자신이 더 사랑하는 ‘에서’에게 복을 주려 했습니다. 이는 실수가 아니라 이삭이 의도적으로 행하려한 분명한 의지였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불순종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는 이삭이 분별없이 행한 장면에서 “믿음으로 이삭은....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으며”라고 말함으로써 성경을 읽는 독자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아버지로서 이삭은 에서의 성품, 영적 자질을 잘 알고도 남았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아 버렸고, 나이 사십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취함으로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창26:34-35).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않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통해 확립한 불문율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영적 결혼관, 믿음의 결혼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자신이 육신이 원하는 대로 여자를 데려와 아내로 삼아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지만 에서와 같이 영적 지위를 가볍게 여기고, 멋대로 결혼하는 일이 얼마나 흔합니까? 부모의 허락은 고사하고 불신자와 연애하고 결혼함으로써 부모를 근심케 하는 일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결혼에 관한한 당시 그 사회의 풍속대로 여럿을 아내로 두었습니다. 창세기 28:9에 보면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고, 창세기 36:2에서는 아다와 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취했습니다.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으로서 능력이 출중하고 여자들을 원하는 대로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믿음을 계승할 영적 자질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단지 에서를 장자란 이유로, 그가 사냥해 주는 고기를 먹음으로써 에서를 사랑하고 그를 축복해 주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육신의 눈만 먼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마저 어두워지고,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을 때 아내 리브가와 야곱은 공모해서 아버지를 속이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자신이 평소 즐겨 먹던 에서가 사냥한 야생 고기와 집에서 리브리가 요리한 양 고기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만져 보고,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에서의 옷을 입고 손에 염소 털을 붙이고 들어왔던지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구분한 것은 ‘음성’이었습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창27:22). 이삭은 야곱을 에서로 알고 축복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야곱에게 속은 것이요,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잘못 축복해 준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가 아닌 야곱을 축복해 준 것을 안 것은 오래 지나서가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의 전후 결말을 모두 알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믿음으로 이삭은 다가올 일들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으며](20)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속아서, 분별력이 없어서, 실수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히11:20). 이삭은 자신의 실수를 정정하거나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야곱이 약속의 상속자요, 복의 계승자란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통해 하신 말씀, 즉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겠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창25:23)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또 다른 이의 잘못으로 바로 잡아 놓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야곱과 리브가의 방식이 교활하고 아버지를 기만한 것이긴 하지만 이삭의 분별없는 행동을 바로 잡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 교활함을 칭찬하거나 결과론적으로 잘 된 것이라고 합리화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이삭이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다는 점을 말해 준 것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그 내용을 보면 이삭이 믿었던 믿음의 내용, 믿음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8:1-5을 보십시오. 이삭은 이전과 달리 실수가 아니라 정확하게 야곱을 향해 다시 한번 축복해 주었는데 여기에 그의 믿음이 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셔서 너를 다산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사 너로 하여금 수많은 백성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및 너와 함께한 네 씨에게 주사 너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나그네로 거하는 땅을 상속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28:3-4).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아들 야곱에게 정확히 상속해 주었습니다. 이는 모두 앞으로 다가올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서 축복한 것입니다. 이삭이 비록 처음에 야곱을 에서로 알고 축복했지만 그 축복의 내용을 믿었고, 그 약속들을 믿음으로 축복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이 다가올 일들(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해서 야곱과 에서를 축복한 것은 한 치의 빈틈이 없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받은 복을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수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을 통해 받은 바 약속을 일생동안 간직하고 자녀들에게 그 믿음을 상속해 주는 본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가 올 일들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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