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글 작성자: THE WORD

믿음으로 요셉은

말씀: 히브리서 11:22 
요절: 히브리서 11:22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자 야곱이 사랑해서 결혼하고자 했던 라헬이 낳은 첫째 아들이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그로 인해 나머지 형제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은 인물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요셉은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인물이며, 예수님을 가장 많이 예표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요셉이란 이름은 “주께서 더하시다”란 뜻입니다. 요셉의 출생은 방랑자의 생활을 하던 야곱에게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본토 내 고향으로 가게 하시되](창30:25). 야곱은 요셉의 출생을 보자 아버지 이삭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했습니다. 이는 단지 야곱의 결심만이 아니었습니다. [[주]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친족에게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하시매] (창31:3).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요셉의 출생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며, 촉매가 됩니다. 이방 땅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땅 끝에서라도 메시야의 출현을 볼 때 본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섬들에 있는 자들이라도 약속의 땅으로 불러 모으십니다. 이방 땅에 있던 야곱이 요셉의 출생과 더불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은 예표적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구약의 모든 사건이나 인물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해석하는 것을 "예표론"이라고 하는데 요셉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예표하는 인물이 드물 것입니다.

예표론적 진리를 통해 요셉과 관련된 몇 가지만 살펴보고 본문에 들어가겠습니다.

첫째, 요셉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자기 형제들에게는 미움을 받아 팔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나 자기 백성들이요, 형제들인 유대인들의 미움을 받아 팔렸습니다. 요셉을 판 형제의 이름은 놀랍게도 유다였습니다. 예수님을 판 이는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유다였습니다.

둘째,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죽은 자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평생 동안 요셉이 죽은 줄로 알았는데 형제들이 피 묻은 옷을 가져가서 죽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셋째, 요셉은 땅 구덩이 속에 던져졌습니다. 예수님 역시 땅에 묻히시고, 땅의 심장부 속에서 삼일밤 삼일낮을 계셨습니다.

넷째,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명령으로 형제들에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다섯째, 자기 형제들에게 배반당하고 이집트인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배반당하고 이교도 로마 사람들에게 넘겨졌습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종으로서 살았는데 우리 주님 역시 이 땅에서 종으로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여섯째,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시험을 받았지만 정욕을 피하고 이겨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에게 세 번이나 시험을 당하셨지만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육신의 정욕을 이겼습니다.

일곱째, 요셉은 감옥에서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시험이요, 단련이었습니다. [그분께서 한 사람을 그들보다 앞서 보내셨으니 곧 요셉이라. 그가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족쇄에 상하고 그는 쇠/사슬/에 매였으니 그분의 말씀이 임하기까지 /그러하였도다/. [주]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105:17~19). 우리 주님 역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요셉은 고난을 받은 후 이집트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고,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여덟째, 요셉은 자기 형제들을, 자기를 팔고 죽이려고 했던 형제들을 눈앞에서 용서해줍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형제들을 앞에 두고서 십자가에서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아홉째,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후 이집트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빈곤에 처한 자기 형제들을 구원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참 양식인 말씀을 주시고 자기 살을 생명의 양식으로 자기 피를 참 음료로 온 세상에 주어서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주님이 주는 양식을 먹는 자는 다시 주리지 않습니다.

열 번째, 요셉은 7년 기근 속에서 형제들을 구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7년 대환란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열한 번째, 요셉은 형제들을 이스라엘에게로 보내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 주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나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열두 번째, 요셉은 야곱과 모든 가족들을 초청합니다.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초청합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아들들이 전하는 증거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믿고 기운을 얻었습니다. 수레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제자들의 증거를 믿지 않았으나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영이 살아나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이 외에도 요셉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유사점을 수도 없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족히 40가지는 넘는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이방인 신부를 얻어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야곱에게 축복을 상속받는 것 또한 교회를 잘 예표합니다. 이와 같이 요셉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생애는 온통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적 진리들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우리 주님과 같이 완벽한 의인은 아니었을지라도 믿음으로 살았던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자,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22절입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죽으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자기 뼈들에 관하여 명령을 주었느니라.] (히11:22). 요셉이 믿음으로 한 일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떠날 것이란 점과 자기 뼈들에 관한 명령입니다. 요셉은 죽는 순간에 자신이 믿는 믿음을 선포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유언은 단지 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족장들은 자신들이 받은 말씀을 후대로 넘겨주는 전수자의 역할을 했는데 요셉은 야곱의 뒤를 이어 민족의 장래와 운명에 대해서 선포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계승된 장자권이 요셉에게 이어졌습니다. 역대기상 5:1-2, [이제 이스라엘의 맏아들인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맏아들이었으나 자기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그의 장자권이 이스라엘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더라. 계보는 장자권에 따라 계수할 것이 아니니 유다가 형제들보다 뛰어나고 우두머리 치리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권은 요셉의 것이더라.)](대상5:1-2). 여기서 우리는 통치권과 장자권이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를 통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나오지만 당시의 장자권은 유다가 아니라 요셉, 에브라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요셉의 아들들에게 직접 안수하며 복을 상속함으로써, 요셉은 죽을 때 이삭이나 야곱이 했던 것처럼 따로 아들들을 불러 복을 상속해 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남길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를 떠날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출애굽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미 말씀하신 것이요, 야곱 역시 예언한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계속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란 사실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자신이 살았던 이집트를 떠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이를 것이란 사실 역시 믿고 확신했습니다. 창세기 50: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사 너희를 이 땅에서 데리고 나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창50:24). 요셉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기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실 것이란 사실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그동안 말씀을 통해 단련을 받았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도 제약을 받지 않고 성취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했던 터라 죽음의 순간에 확신에 차 선포한 것입니다. 요셉이 가진 출애굽의 신앙은 먼 미래에 반드시 성취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늘 이 세상을 떠나는 출애굽의 믿음, 출애굽의 소망을 지녀야 합니다. 당장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무덤에서 일어나 이 땅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부활의 믿음, 재림의 소망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믿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로서 이 땅에서 누린 부귀 영화, 권세에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에 자신의 유골에 대해 명령을 내림으로써 이집트는 반드시 떠나야 할 곳임을 선포하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집트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성경도 없고, 성령도 없고, 대언자도 없던 시절입니다. 성전도 없고, 회당도 없고, 제사장들도 없던 시절입니다. 이집트 땅은 온갖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일 강을 중심으로 비옥한 토지에서 나는 온갖 곡물과 상품들이 넘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풍족한 그런 나라였습니다. 요셉이 죽은 후로 이들의 믿음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은 영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인구가 불어나고 삶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집트는 그들이 살만한 곳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이 일어나자 곧 바로 피부로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었고, 종살이를 시켰습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살만하다 싶은 순간, 이 땅에 애정을 두고 뿌리를 내리려는 순간 하나님은 이 땅이 결코 성도들이 살만한 곳이 아니란 사실을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보여 주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소망하도록 하십니다.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셉이 남긴 그 말을 얼마나 학수고대하고 실현되기를 기다렸을지는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컸을 것입니다.

요셉이 죽을 때 남긴 유언은 단지 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대언’이요, 반드시 성취될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른 왕이 일어나 그들을 괴롭힐 때 그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찾아 오신다는 소망을 붙들고 기도했을 것이며, 그 날을 열망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집트는 쇠 용광로였습니다(신4:20). 요셉이 죽을 때 남긴 출애굽에 대한 예언은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노예 생활로 힘들 때 이곳 이집트보다 더 나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맹세로 약속하신 땅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죽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약속과 소망을 남겨 주었습니다. 요셉은 죽기 전에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자치권이나 영토 분할과 같은 정책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을 대거 정계나 재계, 학계, 언론계에 기용해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세력을 형성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농업이나 상업 대신 이집트인들이 싫어하는 목축업을 하며 살았을 뿐입니다. 요셉은 유대 민족이 이집트에서 무사히 생존하고 살아갈 수 있는 어떤 대책을 강구하거나 조서를 남기는 대신 자신이 믿는 믿음을 선포하고 그들에게 믿음의 소망을 지니도록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신다! 이집트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이 없을 때는 하나님의 오심을 별로 열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평안한 이들은 재림에 대한 소망이 크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이들은 주님께서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만족을 주시고, 더 큰 성취와 보람을 느끼게 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용광로 속에 들어가게 되고, 아무도 도움이 없을 때 사람들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신다”는 말씀에 소망을 걸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오실 것과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며 죽었습니다. 출애굽의 소망은 모세가 아니라 이미 요셉이 죽으면서 이들에게 뿌린 씨앗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약속의 땅에 대한 개념이 희미할 수도 있고, 그런 땅보다 이집트가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세월이 지나 약 사백년이 지날 무렵에 주님은 마침내 그들을 찾아 오셨고, 그들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요셉이 믿은 대로, 죽으면서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지만 주님이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이 땅에서 건져 내사 저 하늘에 이르게 하신다는 믿음을 ‘복된 소망, 영광스런 소망, 산 소망’이라고 합니다. 이 소망이 없다면 성도들의 일생은 불신자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요셉이 죽으면서 믿음으로 내린 또 하나의 명령은 자신의 뼈에 대한 것입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창50:25). 이는 요셉의 믿음을 가장 잘 드러낸 말입니다. 당시 요셉의 권한이나 지위라면 죽을 때 나의 매장지는 “나의 조상들이 있는 가족묘지, 막벨라 굴로 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충분히 그 때에 거기에 매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무려 400년이나 이집트에 묻혀 있다가 주님이 그들을 구속하시는 날 자기 뼈를 추려서 ‘약속의 땅으로 가져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시고, 이집트 땅에 사는 유대인들을 모두 데리고 나갈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죽은 몸에 대한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창50:25b). 이 얼마나 확신에 찬 유언입니까? 자신의 사후의 일에 대해서 이토록 분명하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믿음의 확신’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죽으면서 자신의 사후에 대해서 아무 것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자식들에게 유언장을 남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으면서 죽음 이후의 세계, 다가올 미래,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너무나 확실하게 알기 때문에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분명히 압니다. 그래서 영광과 기쁨 가운데 죽음을 맞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 역시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압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찾아 오시고, 그 때에 우리의 몸이 어떻게 될 것인지 이미 알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호라고 일컫는 세익스피어는 자신의 무덤 비석에 “여기 있는 흙을 파내지 말지어다, 돌들을 아끼는 자에게 복 있으라. 그리고 내 뼈를 옮기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이 묻혀진 곳에서 파헤쳐지거나 옮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누가 자신의 죽은 몸을 건드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요셉은 자신의 몸이 반드시 묻혀야 할 곳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은 눈을 감기 전 요셉을 불러, [...원하노니 나를 이집트에 묻지 말라. 오직 내가 내 조상들과 함께 누우리니 너는 나를 이집트에서 메어다가 조상들의 묘지에 나를 묻으라.](창47:29,30)고 했습니다. 요셉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영원히 묻힐 곳은 이집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맹세로 주시기로 약속한 땅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이집트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셉은 영웅이요, 그들의 삶의 지표였습니다. 그들이 요셉의 묘지를 볼 때마다 그들이 장차 가야 할 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이란 사실을 무언 중에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며 후대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갈 것이라고 말하고 죽은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훗날 모세의 손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밤에 요셉의 유골을 취했습니다. 출애굽기 13:19, [모세가 요셉의 뼈를 취하니라.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출13:19). 어느 날 이집트에 있던 요셉의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유골은 모세의 손에서 여호수아의 손으로 넘겨지고 ‘세겜’(수24:32) 땅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 어딘가에 잠자고 있는 우리의 몸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무덤에서 잠자던 자들이 어느날 홀연히 깨어나 순식간에 변화되어 저 하늘로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흙에서 잠자던 사람들은 이 땅에 아무 것도 남겨 두지 않고 저 하늘로 올라 갈 것입니다. 요셉의 몸이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겨졌듯이 성도의 죽은 몸은 저 하늘로 옮겨집니다. 요셉은 자신의 몸에 대해 예언적인 유언을 명령으로 남겨 둠으로써 이집트에 살고 있던 자녀들에게 언제라도 이집트를 떠날 것에 대한 믿음을 심어 준 것입니다. 요셉의 무덤은 항상 하나님의 오심과 출애굽의 소망을 계속해서 선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 역시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웠던 곳 역시 어느 날 비게 될 것이며, 모두 일어나 저 하늘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셉이 죽으면서 남겼던 위대한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은 먼 장래에 있게 될 것들이지만 유업의 상속에 대한 믿음, 출애굽에 대한 믿음으로 요약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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