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평판
말씀: 히브리서 11:39
요절: 히브리서 11:39 오늘 말씀은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믿음으로 산 이들은 세상에서는 악평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는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인기를 얻고, 좋은 평을 받고 싶어 하지만 성경대로 믿은 신실한 성도들은 비난, 저주, 조롱, 박해를 받았으며 욕을 먹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요즘은 ‘장로, 집사, 권사’등의 직분이 단지 교회 내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것을 볼 때 ‘믿음’이 마치 양심이 살아있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산다는 표징으로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나는 신앙인이다. 나는 믿는 사람이다.”란 말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사용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성경이 말하는 좋은 평판은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아브라함과 이삭’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21:22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 총대장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도다.](창21:22). 아브라함은 그 땅에 순례자로 나그네로 살았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도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드러내 보였던 것입니다. 이삭 역시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비멜렉과 아후삿과 비골이 이삭에게로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26:28,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가 이제 우리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를 맺고 우리가 너와 언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창26:26~28). 그들은 분명히 여러 차례 이삭을 괴롭히고 우물을 막고, 정착하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선한 간증, 믿음의 좋은 평판이란 이런 것입니다. 야곱을 괴롭히던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고, 이집트의 파라오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이나 벨사살, 메데의 다리오 왕은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산 이들은 자신들 안에, 또는 자신들이 하는 일에서 주님의 함께 하심을 드러내 보임으로서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면서 세상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기를 원하는 이들이 얻는 좋은 평판은 어떤 것입니까? 성격이 화통하다, 너그럽다, 베풀기를 좋아한다, 남자(여자)답다, 돈을 쓸데 쓸 줄 안다, 능력이 있다, 교회를 다니지만 티를 내지 않는다 등등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것은 믿음을 통해 얻은 좋은 평판이 아니라 사실은 ‘모독’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믿으라고 스트레스 주지 않는다 등등의 말이 좋은 평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헛 믿은 것이요, 헛 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라 ‘심한 조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과 돌에 맞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고, 칼로 죽임을 당하고, 옷이 벗겨진 채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산과 굴과 강과 광야로 버려지고 한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은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지만 세상으로부터는 마치 깨끗이 소각해서 치워 버려야할 페스트(전염병균) 같은 취급을 받았고, 세상의 오물, 만물의 찌끼 같은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동행하셨고 다니엘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불신자의 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와 함께 하시는구나!”란 고백을 듣게 된다면 여러분의 삶은 복된 삶이요,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먹고 마시고, 놀았던 곁에 있는 나의 가족도 친지도, 친구도 단 한 번도 너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스도의 빛’을 맡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잘 못 산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우리에게서 악취를 맡아야 합니다. 우리를 trouble makers(세상을 소란케 하는 자들-행16:20)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좋은 평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도 평가를 받습니다. 집안에서는 집안사람끼리 서로 평을 하고, 직장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평가합니다. 동료들은 동료들끼리, 학교 동기들은 동기들끼리 좋은 놈이다, 나쁜 놈이다 평가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이 인생인 줄로 알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직장 상사나 동료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세상의 평가 기준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사람들의 평가 기준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일을 얼마나 잘하는가? 머리가 얼마나 좋은가? 능력이 있는가? 돈을 벌 수 있는가? 등등이 주된 평가 기준입니다. 조직 생활을 위해서 인간 관계에 대한 측정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무엇으로 살았는가? 를 보십니다. 믿음으로 살았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에서 나지 않는 것은 모두 죄이기 때문입니다(롬14:23). 하나님은 사랑으로 행했는가? 그것을 보십니다. 비록 산을 움직일만한 믿음을 지니고, 몸을 불사를 만한 헌신과 구제를 하고, 신비를 풀 수 있는 지식을 지녔다 해도 사랑으로 행치 않았을 때 주님은 ‘아무 것도 아니요’(nothing)이라고 평가해 버리십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를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고전13:3). 하나님은 능력에 따른 평가 대신 신실함을 측정하십니다. 작은 일, 적은 일이라도 신실하게 행했다면 주님은 그 신실함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시고, 보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평가 방법과 기준을 잘 알고, 하나님 앞에서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산 이들은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good report)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좋은 평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신실함으로’ 하는 것이지만 또 한 가지는 ‘법대로’입니다. 아벨과 가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아벨은 믿음으로 행했습니다. 가인은 자기 생각대로 행했습니다. 똑 같이 희생물을 드렸고, 똑 같이 주님께 나아왔고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이 우상에게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분명히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믿음으로 양의 피를 드렸고 가인은 저주를 받은 땅의 농산물, 자신의 육신의 수고를 통해 일한 행위의 열매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수고, 자신의 손으로 행한 일, 행위의 열매를 드리는 것은 종교적 재물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언제나 ‘믿음으로 양의 피’를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이 드린 희생물이 적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대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방법이 아니라 임의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물 가증 스러운 것이며, 임의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영적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만이 참된 경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드린다 해도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법대로’ 드려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 우리가 흘린 땀과 피, 우리가 드린 시간과 노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서 드리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할 수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법이요, 성령의 법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또한 사람이 우승하려고 애써도 법대로 하지 아니하면 관(冠)을 얻지 못하며] (딤후2:5). 법대로(lawfully).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을 보십시오. 우승했다고 들어왔지만 경기 도중에 부정을 한 것이 발견되면 메달을 박탈당합니다. 법을 어긴 사실들이 드러날 때 그가 얻은 점수, 그가 얻은 성적은 무효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올림픽이나 세계 선수권 대회 등을 통해 그런 예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라도 부정행위가 드러나는 순간 그의 합격은 취소됩니다. 선거에 당선된 사람이라도 법정에서 선거법 위반이란 부정 판결을 받으면 당선은 무효가 됩니다. 마찬 가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없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행한 성취는 하나님 앞에서 다 무효가 되고 맙니다.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노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마7:22~23). 이들은 분명히 주의 이름으로 대언을 했고,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았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일을 안하고 했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교회도 지었고, 선교회도 조직했고, 병원이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지었습니다. 출판사를 세워서 성경이나 전도지, 신앙 서적들을 출간했고 방송국을 세워서 설교 방송이나 기타 사업을 했고, 인터넷을 이용해 온라인 전도를 했습니다. 설교 테잎과 시디 제작을 했고, CCM 집회를 열었고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신학교를 세워서 목회자와 선교사, 교사들을 양성해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향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외치십니다. 대체 무슨 불법을 행했단 말입니까?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인기를 얻고, 스타 목사로서 교계의 영향력을 행사하긴 했지만 무슨 불법을 행한 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시국 기도회, 국가 조찬 기도회를 열었고, 통일을 위한 집회도 열었고, 나눔의 실천 등과 같은 행사도 주최했습니다. 성도들로부터 헌금을 거두어서 북한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구호금도 보내었습니다. 조금도 불법을 행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법은 하나님의 법인 성경을 말합니다. 믿음의 법, 사랑의 법, 생명의 법, 성령의 법, 자유의 법, 왕가의 법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행치 않고, 사랑으로 행치 않았을 때 주님은 그가 한 일이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고, 기독교 확산에 일조하고, 교회 건물을 크게 짓고, 곳곳에 세웠다 할지라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도 믿음으로 사랑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하는 형제, 자매님들의 수고를 기억합니다. 어려운 여건에서 믿음의 회복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육신이 연약한 가운데서 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기도와 눈물,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랑의 수고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 너희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살전1:3b).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의 행위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사랑의 수고 곧 너희가 지금까지 성도들을 섬기며 지금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히6:10). 그러나 반대로 돈으로 사회적 지위로 믿음 있는 체 과시하는 자들을 경멸합니다. ‘법대로’라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의 법, 성령의 법을 말합니다. 우리는 왕가의 법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성경은 신앙 생활의 참조 사항이나 권면의 내용들이 적힌 도덕과 윤리 규범이 아니라 믿음과 실행의 모든 면에서 최종 권위이며, 생명의 법입니다. 돌 판에 쓰인 법이 아니라 마음 판에 기록된 지워지지 않는 법입니다. 자,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히11:38). 여기서 ‘이 사람들은 다’라고 할 때 이 사람들은 4절의 아벨로 시작해서 에녹, 노아, 믿음의 족장들과 사사들을 거쳐 38절까지 본문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을 다 말합니다. 믿음으로 산 모든 이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돈으로, 권력으로, 놀라운 발명품이나 법칙을 발견한 대가로 평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얻은 평판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 얻은 것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믿음의 조상, 하나님의 벗’이란 비교할 수 없는 영예를 이미 얻었습니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놀라운 명예를 얻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영예를 얻었습니다. 요셉의 이름은 아직도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름입니다. 이들은 전쟁 영웅이 아닙니다.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도 아닙니다. 영토를 얻고 확장한 인물들도 아닙니다. 찬란한 문명을 구가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판을 얻은 것은 다만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과 같이 약속의 말씀들을 믿고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이 남겨 놓은 불멸의 작품들이나 업적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 준 믿음을 봅니다. 그들이 한 일은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말씀들을 믿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자신의 생애에 이루어지지 않을 먼 미래의 약속들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소유하지도 못할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바라보고, 즐거워하고, 껴안고, 고백하고, 분명히 선포했습니다(히11:13-14). 이 땅에서 받는 고난과 핍박, 죽음까지도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포기했을 뿐 아니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것을 선택했습니다(히11:25-26). 믿음으로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믿음을 통해 얻는 좋은 평판은 실제로 삶에서는 괴롭고 힘든 선택이요, 결단의 결과입니다.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육신의 편에서는 쓰라리고, 괴롭고, 힘든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물들에게 좋은 평가, 좋은 점수를 주시고, 좋은 보고(report)를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이 높게 평가하는 인물들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죄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장소는 단지 불타는 지옥일 뿐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산 이들이 얻은 영예는 궁창의 별들과 같이 빛납니다. “좋은 평판”이라고 할 평판은 report입니다. report는 평가, 보고, 점수, 기사, 보도, 명성, 소문 등 다양하게 번역되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the weather report(기상 통보), a man of good (bad) report -평판이 좋은(나쁜) 사람입니다. Report to the Nation이라면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국민에 대한보고’란 뜻입니다. 성경에는 good report, true report, evil report, false report, honest report 등 다양한 report가 나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반대로 선생님들은 자신에게 배운 학생들, 제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하고, 거기서 직업적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선수들은 감독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배우들은 기자들이나 팬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싶어 합니다. 소위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작품을 내 놓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비평가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싶어 합니다. 때로 비평가들에게 악평을 하지만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기를 끄는 작품이 있고, 전문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작품이 관객들에게는 악평을 받는 그런 작품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나 영화나 연극, 음악이나 기타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은 누구나 다 좋은 작품이다,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는 호평이나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 회사들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열어서 이미지 개선 작업을 합니다. 제품을 낼 때마다 선전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모두 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평생을 통해 남긴 업적이나 성취한 것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람에 대한 사람의 평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기도 하고, 후대에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합니다. 자, 그렇다면 성도들은 누구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말이나 행위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회계 보고를 하고 심판을 받습니다. 마치 국세청이나 감사원의 회계를 받듯이 우리는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에 대해서 회계 보고를 해야 합니다.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니](마12:36).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14:12). 주님은 어떤 이에게 착하고 신실하다고 평하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악하고 게으르다고 평하십니다. [그들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로 예비 되신 이에게 회계 보고를 하리라.](벧전4:5). 우리는 모두 회계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 보고가 최종 보고서이며, 이 때 받게 되는 평가가 최종 평가입니다. 세상이 그동안 우리를 어떻게 평했는지, 친구들이나 친지들이나 가족들이 나를 어떻게 평했는지 보다 더 중요한 평가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도 평가하십니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를 봅니다. 주님의 칭찬과 책망으로 이루어진 일곱 교회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날카롭기 그지 없습니다. 주님은 각 교회가 한 일들을 모두 다 알고 계시며 잘 한 일에 대한 칭찬과 잘못한 일에 대해 책망할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내가 네게 조금 책망할 것이 있나니”(계2:4), “내가 네게 몇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계2:14,20)란 말씀이 반복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평판을 받고 싶어합니다. 악평이나 나쁜 평판을 받을 때면 분하기도 하고, 그런 평을 하는 이들에 대해 나쁜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세상은 주로 사람들이 한 일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성취한 업적을 가지고 평가합니다. 때로 인격이나 도덕적 성품을 문제 삼기도 하지만 주된 평가 기준은 일이나 성취, 업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평가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그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기 때문에 ‘의인’이라 불립니다. 믿음을 통해 복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고난을 겪을 때 주님은 그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적은 믿음을 가지고도 시련을 견딜 때 주님은 그를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내하고, 시련을 당할 때 좋은 점수를 주시며, 칭찬하십니다. 성도가 세상을 위해서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가? 는 평가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what we do 가 아니라 what we are를 가지고 평가하십니다. 세상은 우리가 가진 소유(what we have)를 가지고 평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믿음, 성령을 통해 맺은 열매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금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이들은 믿음을 통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 무슨 큰 일을 했거나 위대한 성취를 남겼기에 ‘좋은 평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시간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 갈3:11, 히10:38).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좋은 평판을 받는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믿음을 통해서’(through faith). 하나님은우리에게 좋은 점수, 좋은 보고, 좋은 평판을 받는 방법을 역사적 예를 통해서 분명하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구구한 설명보다 본보기로 우뚝 선 한 명의 예가 더 선명하게 오래 각인되는 법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열거된 인물들의 믿음을 자꾸 되돌아보고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 톤의 신학서적을 연구해서 얻는 지식보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의 예를 보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구구한 이론적 설명대신 실제적 사건과 인물들을 제시해 주심으로서 사람들의 모든 신학적 이론과 억측과 추측을 잠재우십니다. 자, 다 같이 믿음을 통해서 좋은 평판을 얻은 이들과 같이 동일한 믿음의 영으로 지닌 우리 역시 그런 삶을 살도록 기도합시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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