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히브리서 11:40b
요절: 히브리서 11:40b
구약 성도들과 신약 성도들의 관계는 무엇인가? 히브리서 11:40절은 이 부분을 명쾌하게 짚어 주고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히11:39a).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에녹,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사사들과 다윗 등은 훌륭한 믿음의 본을 남겼고, 그들의 믿음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빛이 되고, 본이 되고, 따라야 할 옛 길로 남아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없이 신약 성경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구약 성도가 없는 신약 성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구약 성도와 신약 성도의 관계 역시 그러합니다. 이는 그 역도 성립합니다. 신약 없는 구약은 불완전합니다. 신약 성경이 없는 구약은 미완(未完)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약 성도들이 없이는 구약 성도들이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믿음으로 살았고,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서 11:40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선포합니다. 신약 성경을 통해 구약이 완성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이 완성되는 것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가 없다면 믿음으로 살다 죽은 그들의 믿음은 헛된 것이요, 그들은 완전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결과는 우리를 통해 입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 약속과 결과. 우리는 약속을 믿습니다. 신뢰성이 높은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더욱 믿을 수 있습니다. 공신력이 높은 기관이 보증을 서 주거나 국가에서 보증을 서 준다면 더욱 잘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나 국가가 발행하는 주식이나 채권을 구입합니다.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식이나 채권을 자녀에게 상속해 주기도 합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완전해 지는 것은 언제입니까? 국가가 약속한 시각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약정액을 지급 받을 때입니다. 아무도 지급받은 이가 없다면 그들의 믿음은 그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믿음의 결과들을 약속받은 이들은 누구입니까? 신약 성도들입니다. 믿는 순간 구원받고, 죄가 사해지고, 영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유업의 상속자가 되고 등등의 영적인 복들이 단번에 주어진 것은 우리들입니다. 믿음으로 살다 소망 가운데 죽었던 구약 성도들은 자신들이 우리를 통해 믿음의 결과들을 보고, 자신들이 믿었던 믿음에 대한 결과를 보게 되고,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잠깐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구약은 이스라엘 역사에 관계된 것이고, 신약은 교회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주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같습니다. 아침 시간에 이미 말씀드렸듯이 구약 성경은 분명히 주님을 증거하고 있고 구약 성경의 주인공은 신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경을 탐구하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니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요5:39)고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모세/의 말/을 믿었더라면 또 내 /말/을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매주 회당에서 시편과 모세의 글들, 대언자들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구약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가 기록되어 있음에도 그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마음이 주님을 믿지 않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자는 영’을 부어 주셔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마13:13-14) 하셨습니다. 언제든지 회개하고 마음을 돌이키면 마음을 덮는 베일이 벗겨지고,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빛이 그들 마음 속으로 들어 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이 {주}께로 돌아서면 그 베일이 벗겨지리라.](고후3:16).
구약과 신약의 차이라면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것이고, 구약에서는 육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구약이 신약보다 먼저이지만 신약이 구약을 해석하였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대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반면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새로운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닌 과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구약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신약에서 해석되어 완성시킨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누가 말하기를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춰져 있었으며 구약은 신약에서 밝혀졌다."고 했습니다. 신약이 없는 구약은 불완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을 배척하고 구약 성경만 가진 유대교는 불완전합니다. 신약을 통해서 구약의 예표와 모형 등은 그 의미가 완전해 집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믿음의 성도들은 믿음의 자녀들이라 불리는 신약 성도들을 통해서 완전해 집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살다 소망 가운데 죽은 이들은 여전히 약속의 완성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 있게 됩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40).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구약 성도들에게는 단지 약속을 주심으로 믿음으로 소망만 갖게 하셨지만 우리는 그 약속의 실체를 주셨습니다.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던 것들(혼의 구원, 우리에게 임할 은혜)을 주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소망으로 받고, 믿었던 것들의 실체를 우리는 믿는 순간부터 실제로 내 안에 소유하며 누리게 되었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약속을 받았지만 우리는 약속의 내용물을 받았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희미하게 본 것들을 우리는 명료하게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아벨이 믿음으로 어린 양을 희생물로 드린 것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드려짐으로써 비로소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아벨이 믿었던 바른 희생물은 어린 양이었습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그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1:29,36, 고전5:7). 아벨은 믿음으로 의롭다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는 온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구약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공해 주신 더 좋은 것들로 인해 완전해 지도록 해 두셨습니다. 이것이 구약 성도들과 신약 성도들의 관계입니다. 믿음으로 산 구약 성도들이 얻은 것은 좋은 평판입니다(2,39). 얻지 못한 것은 약속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완전케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벨로부터 시작되는 구름 같은 믿음의 증인들은 더 나은 언약, 더 나은 소망, 더 나은 피와 희생물, 더 나은 제사장이 없이도 “더 나은 부활”을 소망하며 세상을 기꺼이 포기하고 버렸습니다. 이는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인해 육신의 죽음이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졌고, 어떤 이는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사랑했고, 어떤 이는 장막에 거하면서 이 땅에서 나그네요 순례자로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오늘날처럼 66권의 완성된 성경이 있지 않았고, 지역 교회가 곳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방송 설교나 책자나 인터넷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늘날 어떤 믿음의 성도들보다 더 크고 강한 믿음으로 믿음의 좋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그들의 믿음은 지금도 우리를 권면하고, 격려하며, 때로는 훈계하고 경고해 줍니다. 낙심하지 말고 믿음의 경주를 마치라고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의 증인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 것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에게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아벨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부모였던 아담과 이브가 아닙니다. 형제였던 가인이 아닙니다.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께 받아 들여졌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아벨은 자신이 믿은 바른 희생물의 실제, 바른 경배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이는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그것을 믿고 의롭게 된 우리가 없다면 아론 역시 불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 같은 탁월한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을 도와 주어서 그들을 완전케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자신이 얻은 모든 것들이 먼저 믿은 그들에게 동일하게 전가되고, 적용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면 구약의 믿음의 영웅들이 보여 주었던 그 어떤 믿음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믿음으로 죄가 제거되고 값없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주어지고, 유업의 상속자가 되는 등의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약속을 받고 소망하며, 확신 가운데 기뻐하며 죽었던” 구약 성도들의 믿음은 헛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없이는 결코 그들이 완전하게 될 수 없다는 뜻은 우리가 믿음의 결과가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효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위대한 증인들은 현재 우리가 가진 66권의 성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마을마다 회당이나 지역 교회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발휘한 믿음은 현대의 어떤 크리스찬보다 더 뛰어납니다. 정기적으로 설교를 듣는 것도 아니고 복음 방송을 듣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성경 교사가 있거나 정기적으로 만나서 믿음의 교제를 나눌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버렸고, 하늘을 소망했습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 사람들은 율법 없이 믿음의 삶을 살았습니다. 율법을 받았던 사람들은 율법의 짐을 진 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은혜가 필요치 않았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성도들이 분명히 믿음으로 살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이 완전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살고 탁월한 믿음의 증거와 자취를 남기고, 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으로 완전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구약 성도의 믿음이 완전한 것이고, 그 믿음의 결과가 완전한 것이라면 신약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없을 때는 없는 가운데, 율법 아래서는 율법의 멍에 아래서 믿음을 보인 것이지 그 자체로서 완전했던 것이 아닙니다.
무릇 완전한 것은 주님이 오심으로써 완전해지고, 은혜를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으면 구약은 미완성이요, 구약 성도의 믿음 역시 불완전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기 때문이니 ...](히7:19). [이 성막은 현재 곧 이때까지의 모형이라. 그 안에서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어도 그런 것들이 양심에 관한 한 섬기는 자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나니](히9:9).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사람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10:1). 그들의 믿음은 “믿음의 완성자”이신 주님이 오심으로써 비로소 완전해 졌습니다. 주님이 믿음의 실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도의 믿음은 ‘수표’와 같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지만 약속된 내용들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다 이루었다”(요19:30) 하심으로서 그들의 믿음이 완전해 진 것입니다. 약속 어음(수표)가 현찰이 된 것처럼 주님의 완성된 사역 위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그들이 완전해졌습니다.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4). 구름같이 허다한 구약의 믿음의 증인들은 단지 믿음으로 죄가 사해지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약속의 상속자가 되는 우리를 보면서 그들이 믿고 소망했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될 것이란 보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의 믿음은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지만 여러분과 저희들이 믿음으로 값없이 얻게 된 믿음의 결과들은 구약 성도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것들이 모두 사실이요, 실체가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란 완성된 속죄 사역 없이 누구도 완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몸을 헌물로 드리심으로써 믿음으로 산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번에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자 다시 말씀을 보십시오. [...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11:40b). 우리가 믿음으로 완전하게 되는 것을 본 하늘에 있는 의인들의 영들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우리 안에 주어진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그들은 모두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사해지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전혀 없이 의롭게 된 것은 주님의 속죄 사역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이루어진 믿음의 결과 즉 혼의 구원은 구약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그들이 완전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34:7, [내가 긍휼을 수천에게 베풀며 불법과 범죄와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이것이 결코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출34:7a). [[주]는 오래 참고 긍휼이 많아 불법과 범죄를 용서하나 이것이 결코 죄 있는 자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민14:18). 이것이 율법의 연약함이요, 한계입니다. 율법은 누구도 완전케 할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 받긴 하지만 결코 그들의 죄가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니라.](히10:4)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그들의 죄는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제거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로다.](요1:29). 우리 주님께서 자신을 희생물로 드리심으로써 이전에 깨끗하게 되지 못했던, 제거되지 못했던 죄가 완전히 제거된 것입니다. [그분께서 ... 이제 세상 끝에 단 한 번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음이니라](히9:26b).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그들의 믿음 역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며, 신약 성도들은 구약 성도들의 완전함을 보증해 주는 증인이요, 증거자가 됩니다.
[...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11:40b). 구약 성도들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데 ‘성령의 내주하는 능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을 위해 세우신 특정 몇 몇 사람들에게만 성령이 임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까지 아무도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반면 신약 성도들은 믿는 순간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악을 이기고, 죄와 싸우는 일은 우리 주님을 통해 주어진 성령의 내주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죄를 이기고,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되는 이런 진리는 우리가 없이는 결코 그들이 알 수 없는 진리입니다.
신약 성도들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리스도와 동일한 몸을 입고, 부활 할 때에 영과 혼이 새 몸을 입는 이런 진리들을 받게 됩니다. 구약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입니다. 이들은 우리를 통해서 믿음으로 산 이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얻게 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제한된 말씀으로 제한된 진리의 지식을 받았지만 동일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믿음으로 완전케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구약 성도들의 믿음을 배우고, 구약 성도들은 우리를 통해 완전하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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