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히브리서 12:2
요절: 히브리서 12:2
주님은 십자가를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것을 멸시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지셨지만 죄인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대로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과 같이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일에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형제라 부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히2:11). 주님은 우리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시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히11:16). 주님은 믿는 자들을 형제요, 친구라 부르시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요15:14-15). 주님은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마11:19)란 비난을 받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멀리하는 세리들이나 창기들까지도 기꺼이 만나 주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회의 관습이나 통념을 의식해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부끄럽게 여기는 부류의 사람은 이 땅에서 주와 주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들을 부끄러워하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 중에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시니라.](막8:38,눅9:26). 우리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은 주와 주의 말씀을 담대하게 증거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고, 뒤로 물러나고, 숨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1:16a)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당대 최악의 사형수들이 죽는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부끄러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복음을 전하다 전과자가 되고, 죄수가 되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우리는 그 사람을 자랑스러워하지 결코 그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기쁨으로 십자가를 견디셨고, 수치를 멸시하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멸시한 수치라면 우리 역시 동일한 가치관, 동일한 시각을 가져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그런즉 우리가 그분의 수치를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히13:13)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을 부끄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해 본 적이 없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증인들 즉 사역자들을 부끄러워 해 본 적이 없습니까? 예전에 몇몇 형제들이 서울의 어떤 육교에서 소리 높여 ‘거리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성도들 중에서 그들을 매우 부끄러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뭐하는 짓이냐? 복음을 꼭 그렇게 티내면서 전해야 하느냐? 등등의 훈계 아닌 훈계를 했습니다. 예의와 염치를 내세우면서 사실은 사람들의 평판,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우리 {주}의 증거와 그분의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따라 복음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라.](딤후1:8).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주와 주의 말씀을 조금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2).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시더니” 주님은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모두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못 박힌 십자가는 홀로 죽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 십자가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옛 사람 역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의 몸을 멸하는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롬6:6). 우리가 죽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롬6:7).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도 없습니다(롬6:8).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지 영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 몸으로 당하신 고난과 수치와 죽음은 ‘주와 복음’을 믿는 모든 이들의 죽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대신한 죽으심이요(고후5:14), 우리를 구원하고 살리신 죽음입니다.
주님은 이런 이유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마음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성경적 의의를 살펴 보겠습니다. 주님이 하신 모든 일 중에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행하신 일이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입니다.
1.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주님은 약하심을 통해 못 박혔으나 실은 그 죽으심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고전1:18). 십자가를 있는 그대로 선포하면 됩니다. 극악한 죄인들이 처형 받는 형틀이요, 사악한 죄수들을 못 박는 형틀인 십자가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다는 사실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철학적 의미를 각색하거나 고상한 의미를 덧칠해서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선포하는 자체가 ‘권능’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2.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정 반대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역시 그러합니다. 십자가는 누구의 마음 속에서 떠 오른 적도 없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걸려 넘어지고, 그리스인들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어떤 종교나 철학에서도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은 자’를 신격화하지는 못합니다. 전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줄기차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오 하나님의 지혜시니라.](고전1:23-24).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3.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알아야할 유일의 주제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해야 할 양이 엄청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유일의 주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이라.](고전2:2). 어떤 이들은 목회를 하려면 철학을 하고, 문학을 하고, 성경 원어를 공부하고, 고고학과 지리학 등을 섭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을 공부하고도 정작 알아야 할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배움이 없고, 학문이 없더라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그는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4.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이 못 박힌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가 죽은 장소이며, 나의 육신과 함께 그 애착과 정욕이 함께 못 박힌 곳입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못 박아 죽이는 죽음의 형틀인데 거기에 못박혀 죽지 않았다면 그 십자가는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못 박혀 죽는 죄수가 아니라 죄인들의 죽음을 집행하는 사형 집행인이거나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이들이 십자가를 구경만 하고 각자 자신의 길을 가버립니다. 나와 무관한 십자가라면 그 십자가는 내게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갈2:20a).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5. 십자가를 선포할 때에 누구에게나 거침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공격하고 실족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나 곧 내가 아직도 할례를 선포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핍박을 받겠느냐? 그렇다면 십자가의 실족하게 하는 것이 그쳤으리라.](갈5:11). [육신으로 잘 보이고자 하는 모든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받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갈6:12). 초대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십자가의 실족케 하는 것,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주의로 돌아가기도 하고, 유대교 전통을 따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돌아서는 것이 바로 배교요, 타락입니다. 십자가의 거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믿음의 영이요, 순교자의 영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가진 유일의 자랑거리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자랑하고,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고, 자기가 가진 것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성도들에게 유일한 자랑거리는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아의 가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마땅한 사악한 죄인’임을 인식하고 기꺼이 그 판결에 따라 ‘십자가’에 내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자신을 내 놓았습니다. 이제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은 ‘믿음의 삶’이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세상 일을 자랑하지 않고, 내일 일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자랑거리가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갈6:14a).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과 나의 관계를 정립해 줍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동화되거나 일치되거나 세상의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과 우리는 전선이 형성된 적대 관계입니다. 악한 현 세상(갈1:4)의 통치자는 마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을 그냥 둘 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믿음과 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이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속에 가진 이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영적 세계의 원칙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b).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기운을 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우리는 구원의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자이심을 알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를 주시고, 항상 이기게 하십니다. 싸워 보지도 않고 이길 수 없다고 악한 보고를 한 열명의 정탐꾼들처럼 대다수의 성도들이 믿음으로 싸우면 얻게 될 승리의 보증을 멸시하고 도리어 세상에 항복해 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구든지 믿음으로 나가기만 하면 승리는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룹니다.
십자가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헐고, 끊어진 관계를 연결하며,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 하늘과 땅의 막힌 부분이 십자가를 통해 허물어지고,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를 정죄하는 판결들, 우리를 대적하는 법률들, 규례들에 수록된 모든 명령들의 율법들을 주님께서 친히 자기 육체로 없애셨으니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또 십자가로 그 원수 되게 하는 것을 죽이사 친히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6). 하나님의 저주와 정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은혜와 긍휼이 됩니다. 율법의 모든 저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용서와 사면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는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의와 거룩’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고, 율법과 은혜가 만나고,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곳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화평을 이루사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즉 내가 말하노니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자신과 화해하게 하셨느니라.](골1:20). 우리는 이 십자가를 묵상할수록 더욱 놀라운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며,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9.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규례들, 우리의 모든 범죄 기록들을 말소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기록을 남깁니다. 병원에서는 출생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은 다시 사회 보장국으로 가고, 곧 국가 전산망에 올라갑니다. 우리는 자신의 ID와 고유 Number를 가지고 각종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병원에는 나의 기록이 있습니다. 학교에도 나의 기록이 있습니다. 은행에도 나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기록이 깨끗하기를 원합니다. 교통 위반을 해서 벌금이라도 내는 날이면 그 기록이 D.M.V나 보험 회사, 법원 등에 남는 것이 매우 꺼림칙합니다. 범법에 연루되거나 민, 형사 사건에 연루되어 자신의 기록에 남는 것은 극히 싫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신용 정보 조회를 했을 때 좋은 기록이 아니라 각종 나쁜 기록들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고치거나 없앨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려 할 것입니다. 간혹 사면령이 내려져서 시민들의 가벼운 전과 기록을 말소해 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범죄자들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을 대적하는 기록들이 사라지고, 자신을 대적하는 법규가 폐지되는 것입니다. 빚진 자들은 자신들의 빚이 기록된 증서들이 없어지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 종들은 노예 문서가 불타 없어지는 것이 제일 기쁩니다.
저 하늘에도 우리의 모든 기록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걸음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욥14:16). 주님은 우리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무수한 나의 죄들, 허물들, 범법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변명하거나 부정하지 못할 증거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들을 어떻게 지울 수 있습니까? 사람이 만든 책은 태워 버릴 수 있지만 하늘에 있는 ‘주의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나 곧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네 범죄들을 지워 버리는 자니 네 죄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 [내가 네 범죄들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들을 구름같이 지워 버렸으니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救贖)하였느니라.] (사44:22).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완전히 말소해 주고, 깨끗하게 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일입니다.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는 손으로 쓴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며](십자가를 견디사 ). *흠정역의 어색한 어순 바로 잡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는 물론이고 우리를 늘 범죄자로 만들던 법규들까지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이유입니다.
10.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정사들과 권능들을 노략하고 승리한 장소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 곧 십자가에서 정사와 권능들을 노략하시고, 이기시고 드러내셨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굴욕적인 죽음을 맞아 마귀와 세상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장소이지만 주님은 그곳이 승리의 장소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사(政事)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골2:15). 마귀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승리했다고 여기는 순간 도리어 그의 머리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롬16:20). 주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권능을 가진 마귀’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물론이요, 마귀조차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을 멸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마귀를 멸할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하지만 모든 죄인들이 다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요일3:8) 그냥 멸하지 않으시고 ‘죄인들을 건지시며 마귀를 멸하시는’ 지혜를 발휘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영적 전쟁에서 사용된 최상의 병법이요, 작전입니다.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마귀를 멸한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보이신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히브리서 2:18,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에 참여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히2:14). *요일3:8 참조. 주님은 십자가의 승리로 사망을 삼키신 분이십니다(고전15:54).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십자가의 승리를 확증하는 일이었으며, 마귀의 권세를 멸하셨고, 사망을 폐하셨다는 진리를 확인하고 선포하는 일이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께서 십자가를 견디시고 그 수치를 멸시하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진리,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믿음의 경주를 하십시오.
이로써 히브리서 11장 강해를 모두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